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49)
제 250화
* * *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당연히 괜찮지. 그냥 어이가 없어서 그래, 어이가 없어서.”
{…….}
아니, 어이가 없는 게 당연하잖아.
내가 진짜 이 말을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한 거 같은데.
똥인지 된장인지 그냥 보면 알잖아.
그런데 꼭 모르는 애들이 있어.
직접 먹어 보고 싶은 애들, 제발 좀 먹여 달라고 하는 애들.
왕국 연합이 허술한 조직인 건 맞지만 이렇게 곧바로 일을 진행시킨다는 게 난 참 어이가 없네.
멍청한 건지, 아니면 유능한 건지.
쯧.
“대충 정리하면 지금 이스마엘 위원회에 속한 애들이 지들끼리 모략을 꾸미려고 귀족들을 소집했다…… 이거잖아?”
{그렇죠. 아직 계획 단계니까 계획이 확실하게 짜이고 인원 편성이 완료되면 진행할 겁니다. 아무리 늦어도 아카데미 대전이 끝나기 전에는 진행하겠죠.}
슬쩍 웃고 말았다.
그거면 된 거지.
그런데.
“얘네는 지들 왕이 무섭지도 않대? 그래도 상급 마스턴데?”
{조사해 보니 템-사미트 국왕의 첫째 부인이 파나메로 재상의 장녀더군요. 거기다 세 명의 첩들도 전부 파나메로 재상이 꽂은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나름 믿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대화로 미루어 보면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언급하기엔 조금 부적절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야 할 듯싶다.
마나 유저는 임신을 조절할 수 있다.
임신은 기본적으로 정자와 난자의 결합인데, 마나 유저는 몸 내부를 제대로 관조할 수 있고, 경지가 높아질수록 아주 ‘세부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사고로 인한 불임 같은 그런 게 아니면 생각 외로 임신이 쉽다는 거지.
템-사미트는 1명의 왕비와 3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 자식이 없다는 건, 템-사미트가 자식을 만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파나메로 재상.
조금 이상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엔 파나메로라는 아저씨가 꽤 큰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주군이 보시기에도 그렇습니까?}
“어, 템-사미트가 자식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그거밖에 없잖아.”
추측이긴 한데, 가능성이 99%에 육박하는 추측이다.
“파나메로 재상에게 권력을 위임해주고, 믿음도 원한다면 줄 수 있다, 형식적인 왕비의 자리나 국가의 2인자라는 자리, 그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신뢰는 다르다. 이런 거잖아. 보니까 파나메로 아저씨가 과거에는 꽤 능력 있는 사람이었나 보네. 지금은 자기 스스로를 주체 못 하는 거 같고.”
{그렇죠. 저도 주군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실 겁니까?}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왕성이다.
그것도 이스마엘 왕성.
우리 템-사미트 국왕님께서는 술이 모자라시다면서 술을 가지러 방을 나갔는데, 지금 오고 있네.
“글쎄, 이거 잘하면 재미있는 구경거리 나오겠는데.”
{…….}
“일단 신경 쓰지 마.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통신이 끊기는 것과 동시에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허허허.”
사미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공간을 격리시켰나?”
슬쩍 손을 휘젓자, 나와 스승님을 감싸고 있던 마나의 막이 쩌엉 하고 깨졌다.
왜, 그런 말 있잖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난 그냥 주의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떠버리여도 도청 사실을 떠벌릴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거든.
“비밀스러운 대화라면 이 내가 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야겠구만. 한잔하겠나?”
말없이 사미트를 바라보았다.
쟤는 저렇게 해맑은 웃음 너머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왕으로서.
군림하는 것 이전에 통치라는 걸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왜 그렇게 보고 있나? 아, 혹시 그건가? 잘생긴 사람은 잘생긴 사람을 알아본다는 그거? 자세히 보니 내가 자네보다 조금 더 잘생긴 것 같은데 말이야.”
근육 돼지가 헛소리를 하네.
“나보다 잘생긴 놈은 없어.”
“그런가?”
“어.”
술을 탁자에 턱, 내려놓은 사미트가 기이한 웃음을 짓는다.
“나한테 할 말이 있어 보이는군.”
픽 웃고 말았다.
“할 말은 무슨,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말했잖아.
재미있는 구경거리 생길 것 같다고.
며칠만 지켜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사미트가 술을 쭉 들이마시더니, 문 앞으로 걸어갔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하나 있다고 하던데, 같이 가겠는가?”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 놀랐다고 해야 할까.
내 생각을 그대로 읽은 건가.
뭐야, 얘 격리된 공간 안에서 내가 했던 말 다 들은 거야?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구경거리?”
그런데 기우였나 보다.
“마수의 숲의 엘프가 오늘 밤 ‘노예시장’에서 매물로 나온다더군. 같이 가겠는가?”
chapter 2
11월 14일 19시 30분.
“네! 오늘도 ‘마야’에 찾아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경매의 사회자를 맡은 ‘엑스트라’입니다.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수많은 이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어림잡아 약 1700명.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 형태는 동일했다.
눈, 코, 입이 있을 부분만 뚫려 있는 회색의 둥근 가면. 그 가면의 이마 부분에 점이 딱 하나 찍혀 있었는데, 이게 이스마엘 왕국에서 가장 큰 노예시장인 ‘마야’의 상징이라더라.
“아, 제 이름이 왜 엑스트라인지 궁금하신 분들 있으시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스스로를 엑스트라라 소개한 사회자는 너스레를 떨며 무대를 이곳저곳 누비기 시작했다.
마치 희극인처럼.
“그건 우리 마야가 익명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를 중시하지요. 하하하.”
등등.
이야기는 길었지만, 그냥 그거였다.
이름이 엑스트라인 이유는 그냥 본명을 밝히기 싫다는 거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건 익명을 지키고 싶다, 뭐 그런 거지.
그리고 여긴 ‘고객’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숫자로 불린다.
실제로 내 손에는 1607번이라는 번호표가 들려 있었다.
내 옆에 앉은 템-사미트는 1606번.
자리에 앉은 채로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가면에 가려져서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하지만 내 어깨에 앉아 계신 스승님은 아니었다.
[전에 네가 그러지 않았느냐. 과거나 지금이나 약자는 착취당한다고.]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내 시선은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자,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벽에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그저, 너의 말이 맞았을 뿐이다. 내가 살았던 세상에도 이런 ‘노예 시장’이 있었었지. 그때는 인간이 운영하는 시장이 아니라 이종족들이 운영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지만…… 음.]“음, 다음은요?”
[잘 모르겠구나. 뭐가 다른지.]그대로, 앉아 있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내 눈에 보이는 천장.
마치 용 무늬가 그려지고, 온갖 무기가 새겨진 그 천장의 문양을 바라보다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아.
토할 것 같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역겨워서, 토할 것 같습니다.”
[…….]“짜증이 나서, 다 찢어 버리고 싶습니다.”
요람, 가나안, 마티아스, 테슬란.
이 네 개의 왕국은 노예가 불법화된 곳이다.
하지만 툴칸 제국과 이스마엘 왕국은 노예가 합법이었다.
그렇다고 앞선 네 개의 왕국이 노예 제도를 철저하게 막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이건 민간 산업과도 관련되어 있는 건데.
노예가 불법이면 민간 산업에서 노예는 비싸게 다뤄진다.
왜냐면…… 불법이니까.
그걸로 이득을 취하는 이들?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테슬란에는 없다.
전부 뒤졌으니까.
내가, 전부 죽였으니까.
이스마엘 왕국은 노예 제도를 합법으로 규정했고, 노예 상인이 왕국 곳곳을 활보한다.
방금 고작해야 5골드에 팔려 나간 10살 남짓한 남자애.
그리고 아까 50골드에 팔려 나간 18살의 여자애까지.
“스승님.”
[말하거라.]“스승님이 살던 세상은 영광의 시대였습니다. 이종족은 최상위 포식자였고 인간은 노예에 불과했죠.”
[음.]“그때 노예가 되었던 인간이 이제는 이종족을 노예로 삼고, 한 술 더 떠 같은 종족을 노예로 삼고 있네요.”
[…….]“역사가 아무리 조작되었다고 노예에 대한 역사는 분명 제대로 전해졌을 텐데, 인간의 욕망이란 게 참 신기합니다.”
스승님이 그대로, 내 머리를 쓸어내린다.
[나는 억압받던 인간들에게 세상을 선물해 주었다. 그 선물로 그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미래를 만드는지 나는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정확히는 궁금해할 수가 없었지. 그저 믿었을 뿐.]“…….”
[흑마법사인 나를 원하지 않아 하는 세상이었고. 이미 큰 혼란을 겪은 세상에 또다시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굴에 갇힌 채 시간을 보냈지. 남겨진 자들은 억압받은 과거가 있기에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나치게 이상적이었지. 그래, 나는 분명 실패자다.]그대로 눈을 감았다.
[너는 이 세상을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이종족에게도 단죄를 내릴 수 있고, 드래곤에게도 단죄를 내릴 수 있으며, 인간들에게도 단죄를 내릴 수 있지. 그건 네가 단순히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고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네가, 바로 내 제자이기 때문이지.]스승님의 눈은 따뜻했다.
주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모든 걸 알면서도 스승님의 눈은 따뜻했다.
왜냐면 예언자처럼.
이 이후에 벌어질 일이 어떤 일인지 짐작하셨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회초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도 제대로 된 회초리를.]슬며시 웃고 말았다.
“스승님이 살던 세상에서 노예 시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몰라서 묻냐는 듯, 스승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부 불태웠다. 노예 상인은 단 한 놈도 빠지지 않고 모조리 죽였지. 도망을 갔다면 대륙 끝까지 찾아가 죽였다.]나도 알고는 있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그냥 물어본 거다.
힘의 차이니, 우열이니.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느니, 선을 지키고 악을 박멸한다느니.
웃기지도 않은 그런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 궤변이고 모순이라는 걸 아니까.
스승님이 내게 굳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
그리고 내가 아까부터 기분이 더러웠던 이유.
간단하다.
이곳 노예 시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사기邪氣 때문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바라보고 있던 벽 쪽, 그리고 지금 바라보고 있는 천장.
아카데미에서 보았듯, 나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바라본다.
마나의 결이 선명하게 새겨진 세상.
그 결을 타고 이 세상의 기운이 아닌 사기를 읽을 수 있고, 귀신도 볼 수 있으며 혼의 기운을 끌어 올릴 수도 있다.
전에 툴칸 제국으로 귀화하겠다고 같은 토벌대를 죽인 버러지 새끼들을 죽이러 갔을 때.
그때 강철 산맥 곳곳에는 원한으로 가득한 사기가 주변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도 역겨웠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