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5)
제 26화
“저…… 꽃 사실래요?”
웬 꼬마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손에 든 장미꽃을 내게 내밀고 있는 여자애를 바라보며 나는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이 꼬마의 몸이 지나치게 삐쩍 말라서?
이 꼬마의 피부가 지나치게 창백해서?
아니다.
그딴 게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나만의 사단을 만들려고 한다.
이걸 조금 좋은 표현으로 풀어 보자면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몇 번이고 언급했으며 행동으로도 보여 주었지만 나는 눈이 좋다.
정말로 좋다.
누군가를 집중해서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잠재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내 경험과 안목이 합쳐진 무기이자, 세상의 정점에 섰던 나와, 스승님만이 가능한 나름의 기술이다.
그런데 이런 건 또 처음이다.
마나를 눈에 집중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딱 보자마자 느껴진다.
이 꼬마의 몸 주변에 마나가 휘몰아치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변 기운이 반응하는 것을.
누군가는 이 꼬마의 창백하디창백한 피부색과 심각하게 마른 얼굴이 묘한 위화감을 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확실하다.
이거 보물이다.
보석, 원석, 다이아몬드.
무슨 말을 같다 붙여도 모자라다.
무조건 최소 9서클 이상, 정말 잘만 하면 10서클까지도 키울 수 있는 최상급의 재능.
왜 이런 재능이 길바닥에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나는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품에서 골드가 담긴 주머니를 통째로 건네주며 재빠르게 말했다.
“너, 내 병아리…… 아니지, 내 동료가 되라.”
안 그래도 병약해 보이는 꼬마가 묻는다.
“동……료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 주었는데, 꼬마가 이상하게도 몸을 벌벌 떤다.
처량하면서도 안쓰러워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겁을 먹었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영양실조라고 해야 할까.
비쩍 마른 수준이 아니라, 매우 병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꼬마가 천천히 주머니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흐악!”
기이한 소리를 내뱉었다.
꼬맹이의 투명한 눈동자에 비치는 골드의 향연.
한 20골드 정도 있던 거 같은데, 20골드면 평민들이 거의 일이 년을 돈 한 푼 안 쓰고 꾸준히 일해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주머니 안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꼬마가 그중 1개의 실링을 꺼내 들고는 내게 주머니를 다시 돌려준 것이다.
“이 정도면 돼요…… 고마워요.”
그러고는 들고 있던 장미꽃과 수많은 장미꽃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통째로 내게 건네준다.
이어서 정말 고맙다는 듯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타이밍을 놓쳤다.
몸을 돌려 걷는 꼬마의 모습에, 결국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방금 상황.
그 골드 주머니 안에서 고작해야 1실링만을 챙기는 모습이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욕심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나는 손에 들린 꽃을 스승님의 귀에 꽂아 주었다.
“꽤 잘 어울리십니다.”
스승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물끄러미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그 꼬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뱀파이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응?
뱀파이어?
* * *
“뱀파이어요?”
스승님은 건국 신화에조차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비운의 영웅이며 지금은 이야기로나마 들어 볼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몸소 겪은 당사자다.
그런 스승님께 내가 들은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아마 소설로 쓰자면 최소 수십 권은 훌쩍 넘어갈 거다.
몇 번 언급했지만 스승님은 영광의 시대를 끝장내고 인간의 시대를 열었다.
여기서 영광의 시대란 몬스터들이 지배하던 시대를 뜻한다.
과거 이 서대륙에는 균형자이자, 감시자라 자처하는 20마리의 드래곤이 존재했으며, 그 외 오크와 하피, 엘프, 트롤, 그리고 뱀파이어 등의 이종족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인간이 위치해 있었다.
그때 그 시절, 당연히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위치했던 종족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 불리는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그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드래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유일하게 드래곤과 견줄 수 있던 종족.
그들은 오크나 엘프가 아닌 바로 뱀파이어였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이었나?’
십 년이 맞나?
여하튼, 그때 뱀파이어들이 마수의 숲에서 드래곤들과 전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전쟁의 이유도 기억난다.
마수의 숲을 벗어나기 위해서.
당연히 전쟁은 드래곤들의 승리로 끝났고, 패했던 뱀파이어의 일부는 마수의 숲에서 거지처럼 살아가고, 다른 이들은 전쟁하던 그 틈을 타 마수의 숲을 벗어났다고 들은 거 같다.
그러면 이거, 이야기를 대충 짜 맞춰 보면 저 꼬마는 그때 마수의 숲에서 도망쳤던 뱀파이어들 중 한 명이라는 뜻이 아닌가.
아니지.
나이를 보면 그때 도망쳤던 뱀파이어들의 자손이라고 해야 하나.
음.
‘이게 이렇게 이어지나?’
솔직히 그게 뭐든 관심 없다.
내 눈에 저 꼬마는 보석으로 보인다는 거, 그리고 키울 만하다는 거.
그거 말고는 관심도 없다.
“저, 확실하게 정했습니다.”
[무엇을 말이냐.]“제 사단의 첫 번째 병사를.”
스승님은 바보가 아니다.
내 말의 뜻이 단순히 저 꼬마를 거둔다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걸 스승님은 안다.
그렇기에 스승님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내가 현재 세상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묻고 싶구나. 정말, 그리해야겠느냐?]다시 내 시선이 비실비실한 그 꼬마에게로 옮겨졌다.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그 여자아이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동정심을 자연스럽게 유발하고 있을 정도로 처량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누구 하나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꼬마는 입고 있는 옷도 꾀죄죄했고 어디서 뒹굴었는지 몸에는 상처도 가득했다.
그저 빈민가의 아이,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꼬마.
거기다 묘한 위화감을 가진 꼬마.
가까이 가는 게 이상하다.
시선은 그 아이에게 둔 채로 입을 열었다.
“그거 아십니까, 스승님?”
[무엇을 말이냐?]“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어느 상점가로 들어가려다 문 앞에서 무언가를 한참 고민하는 꼬마의 모습이 보인다.
무엇을 저렇게 고민하는 걸까.
순간 찌릿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것도 오른쪽 어깨에서.
고개를 돌리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스승님이 있었다.
스승님의 맑고 큰 두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춰 보인다.
약간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진지함이 묻어 나오는 내 모습.
나는 이 순간 정말 진심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예.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너의 결정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 짧은 순간 내린 결론이 아니고?]스승님의 말에 작게 웃고 말았다.
“설마요.”
스승님은 보기와는 다르게 마음이 매우 여리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기에 보통의 상식의 범주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스승님은 매우 여리게만 보인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배경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거 스승님은 당시 살아 있던 모든 드래곤들을 비롯해 모든 이종족들의 왕과 언약을 맺었다.
이 언약이라는 게 중요하다.
세부적인 내용은 넘어가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면.
‘인간을 제외한 모든 이종족들은 인간 세상에 간섭하지 않는다.’
혼의 힘을 사용해 그들의 심장에 박아 넣은 스승님의 언약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거대한 무기임과 동시에 ‘인간의 시대’를 연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인간을 제외한 모든 이종족들이 마수의 숲으로 터전을 옮겼다.
정확히는 옮겨야 했다.
과거 스승님은 절대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괴물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무려 400년이 흘렀고, 당시 언약을 맺었던 이종족들의 왕은 대부분 죽음을 맞이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각 종족을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이들이라 해도 시간의 흐름은 피하지 못하니까.
즉,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언약에서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해방되지 못했다.
기본 수명이 무려 2천 년에 달하기에, 별일이 없는 한 그들은 마수의 숲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왜 이종족들은 마수의 숲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간단하다.
드래곤들이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해는 한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
그 자존심 높은 고고한 생명체가 스승님이라는 진짜 괴물에게 협박당해 강제로 거취가 정해졌다.
세상의 최정상에 선 생명체로서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드래곤.
정확히 두 마리의 로드와 당시 언약을 맺었던 다섯의 일반 드래곤은 선택했다.
마수의 숲에서 지배자로 살겠다고.
그래서 그들은 이종족이 마수의 숲을 벗어나지 못하게 아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감시자이자 마수의 숲의 왕, 그리고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고고한 존재라 여기고 있으니까.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마수의 숲에 있는 마수들은 인간들에게 꽤나 큰 보약이라고.
마수의 숲에 거주하는 이종족들은 인간이라는 세력에게 있어서 살아 있는 샌드백에 불과하다.
칼로 베고, 주먹으로 뼈가 짓눌릴 때까지 구타해도 자기 방어밖에 하지 못하는 이종족들이 샌드백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스승님이 없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뜬금없는 내 말에 스승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스승님이 살던 시대의 이종족들은 지금 시대의 이종족들과 다른 이들입니다.”
영광의 시대.
스승님이 살았던 세상은 전쟁이 일상이었던 세상이다.
인간, 엘프, 드래곤, 뱀파이어, 트롤, 하피.
수많은 종족들이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던 그런 세상에서 스승님은 군림했고, 절대자로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 버렸다.
그런 스승님의 입장에서 전쟁을 일으킨 이종족들이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이종족들을 마수의 숲으로 보낸 거다.
더 이상 그런 전쟁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어찌 보면 상당히 과해 보일 수 있으나, 내가 볼 땐 전혀 아니다.
스승님은 당시 전쟁을 일으키던 당대의 이종족들에게만 제약을 걸었던 거지, 그들의 후손에게는 제약을 걸지 않았으니까.
그 기간 동안 인간들은 자립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이종족들은 자연스럽게 세대를 교체했다.
스승님의 판단은 분명 옳았다.
하지만, 모든 게 계산대로 흘러가면 그게 세상인가.
스승님은 드래곤을 전부 죽였어야 했다.
전생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내가 놈들의 씨를 말려 버렸던 것처럼.
슬쩍 고개를 돌려 스승님의 표정을 살폈다.
무표정으로 보이는 그 조막만 한 얼굴의 작은 두 눈이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허름한 행색을 한 아까의 그 뱀파이어 꼬마.
스승님은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아마, 이 세상에서 나밖에 모를걸.
“스승님.”
불렀지만, 스승님은 대답 없이 뱀파이어 꼬맹이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결국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어야 하는 그런 세상이었지 않습니까.”
결국 스승님이 고개를 돌린다.
[네가 무엇을 안다고…….]“자세히는 몰라도 알 만큼은 압니다.”
저는 스승님의 제자니까요.
결국, 스승님이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사실, 과정이 어떻건 결국 과거의 그 언약은 인간을 풍요의 시대로 이끌었다.
이종족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금 세상은 적어도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매우 평화로운 세상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그래, 네 뜻대로 하거라.]스승님이 결국 내 손을 들어 주셨다.
고개를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며 싱긋 웃자, 스승님이 내 말 아직 안 끝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구나. 적어도, ‘너의 피’는 먹이지 말거라.]그 말이 끝이었다.
스승님이 다시 고개를 돌렸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 피를 먹이지 말라는 건지 조금은 궁금했지만 그냥 묻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피를 먹일 생각이거든.
뱀파이어잖아.
좋은 거 먹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