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70)
제 271화
팔을 털어 내고는 왕비의 앞으로 걸어갔다.
“최근 들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뭐……뭐?”
“나에 대한 소문들을 그냥 축소해서 퍼트렸었어야 했나 하는 그런 생각.”
장난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거다.
“괜히 사실 그대로 퍼트리라고 해서 아줌마 같은 머저리들이 깝죽대는 거잖아. 사실 그대로를 못 믿어서. 아마 거짓을 섞어서 대부분이 납득할 수 있게끔 조작해서 퍼트렸다면 조금은 달라졌을 거야.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게 하나 있어. 내가, 너 같은 머저리들이 기어오르는 상황을 예상 못 했을까.”
“……뭐라고?”
해맑게 웃고 말았다.
“너 같은 애들은 축소해서 퍼트리든 과장해서 퍼트리든 결국 뒤에서 모략을 꾸미면서 기어오르다가 뒤질 게 확실한데, 이렇게 죽여 달라고 발악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앞으로 내가 죽일 너 같은 머저리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그러니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진심이었는데, 왕비는 정말 놀랍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표독스러운 눈을 거두지 않았다.
나를 노려보며 외친다.
“이 건방진 놈이-!! 내가 누군질 아느…….”
짜악-!
왕비가 멍한 눈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고는 한 손을 들어 자기 볼을 쓰다듬는다.
붉어진 볼.
그리고 들어 올려진 내 손.
“지금…… 지금 네놈이 내 뺨을?”
거참.
이건 뭘 잘못 처먹은 건가.
여전히 표독스러운 눈을 한 우리 왕비님께서 또 무언가 외치려고 한다.
그냥 무시했다.
다시 손을 휘둘렀다.
짜악-!!
한 번 더.
짜악-!!
털썩하고, 바닥에 쓰러진 왕비의 눈에 눈물이 주루륵하고 흘러내린다.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 같은데.
내 모토가 남녀평등이야.
“아줌마 명령에 따른 기사는 죽었으니까. 당연히 그 명령을 내린 아줌마도 뒤져야겠지.”
웃으며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아까 말했잖아.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했다면 그게 실패했을 때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라. 그러니까 겸허히 받아들여.”
그대로 휘두르려는 모양새를 취하자 왕비가, 황급히 양손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어디서 본 건 있는 모양인데, 그걸 바라보다 그냥 손을 내렸다.
왜냐면 약 1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매우 굳어진 표정의 사미트가 보였거든.
“전에는 왕성에 있는 사람들 전부 내보내서 이런 일이 안 일어난 거 같은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네. 너도 몰랐던 거 같은데 이참에 알아 둬. 신기하게도 내가 가는 곳마다 사고가 터지더라고. 거의 공식처럼.”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사미트는 나름 신중하게 물었지만 글쎄, 내가 내 입으로 설명할 일은 아니지 싶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안 왔지?”
“무엇이?”
“그때 말했던 그 귀족들, 걔네가 단체로 너한테 뭔가 요청할 거라며.”
분명 사미트가 그러기를, 이스마엘의 귀족들이 모여서 자기한테 무언가 이야기를 하러 온다고 했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직 안 온 모양 같아서 물은 거다.
“그대 말대로 아직이다. 몇몇은 도착한 모양이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더군.”
“누구를?”
잠시 말을 멈춘 사미트는 슬쩍 자기 왕비를 바라보더니.
“‘그들의 수장’을.”
거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이스마엘의 지존이자 모든 귀족의 수장은 템-사미트 이스마엘일 텐데 그들의 수장이라고 따로 지칭할 정도면, 음.
아무래도 진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려나 보다.
저 표정과 저 모습.
저건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이거든.
피 냄새를 맡은 오크들이 딱 저랬지.
그대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전에 내가 네 체면을 안 세워 줬었잖아. 잘됐네. 이번에 네 체면 세워 줄게. 얘네는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왕비가 자기 첩들과 함께 사미트에게 다가갔는데, 그런 그 네 명을 사미트는 아무 말 없이 노려보았다.
녀석도 아는 거지.
내가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아무 이유 없이 누구를 줘 패거나 이유 없이 누구를 죽인다거나 하는 그런 짓은 안 한다는 거.
아, 그리고.
“빈방 하나만 좀 내줄래? 옷 좀 빌리자.”
“……옷?”
“좀 스타일리쉬한 걸로. 마침 오늘이 보름달 뜨는 날이잖아.”
“보름달이랑 옷을 빌리는 게 무슨 상관이지?”
슬쩍 웃고 말았다.
글쎄.
“그건 보면 알걸.”
고개를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자 못 당하겠다는 듯 웃고 계신다.
* * *
상당히 큰 방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내 어깨에 앉아 계시던 스승님이 바닥으로 내려왔고, 머지않아 스승님의 몸을 빛이 감싼다.
언젠가 보았던.
그리고 과거에 항상 보았던 그 모습.
그렇게 스승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스승님의 모습은, 음.
아니다.
우리 스승님이 너무 벗은 모습만 이야기하니까 내가 변태처럼 보이잖아.
난 변태가 아닌데.
그대로 몸을 돌리고는 옷장을 열었다.
꽤나 많은 옷가지들.
그중에서 나는 딱 하나,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코트와 면티, 그리고 반바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옷을 스승님에게 건네주었다.
[전부터 느낀 건데.]“뭐가요?”
[너는 신기하게도 내 취향을 다 알고 있구나.]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전에 가볍게 이야기한 적 있었는데 나는 스승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그걸 스승님도 어렴풋이는 알고 계실 텐데, 지금 저 말에는 뭔가 조금 다른 뉘앙스가 느껴진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고 내 직감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 스승님은 과거에 너랑 내가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맞냐는.
분명 그런 뉘앙스였다.
애매하게 웃었다.
“글쎄요.”
썩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셨던 건지, 눈매를 살짝 찌푸리시는데 그보다.
“저, 눈을 어디다가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옷부터 입으시지요.”
작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신 스승님은 그대로 옷을 입으셨다.
그렇게 준비가 끝났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와 스승님은 맞은편에 앉은 뒤 시간을 보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단둘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항상 스승님의 곁에 있고 싶다, 그런데 스승님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스승님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으면 한다는 거.
그렇게 생각하다 스승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처럼 자연스럽게 웃어 보이자 스승님은.
시선을 피하셨다.
* * *
“왕비.”
“……예, 폐하.”
사미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눈빛마저 차가웠다.
그렇기에 왕비는 겁을 먹었고, 두려웠다.
템-사미트 이스마엘.
그는 호탕한 것을 넘어 무언가 결정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 결정을 밀어붙이는 남자였으니까.
“전사의 나라에서, 전사도 아닌 왕비에게는 어떤 힘이 있지?”
“예?”
“그저 왕비라는 이유, 내 옆에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아. 좋은데, 오만한 것은 달라.”
사미트의 어조가 바뀌었다.
“사치를 부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아비인 파나메로가 그만한 재물을 창고에 쌓아 주니까. 그래서 파나메로가 위원회에 속한 이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가만히 있었지. 그는 정치를 잘했으니까. 배신감이 밀려오긴 했지만 참았어, 앞서 말한 대로 그는 정치를 잘했으니까. 모든 게 내 손바닥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어. 그런데.”
사미트의 눈은 왕비를 포함 세 명의 첩들도 전부 훑고 있었다.
전부 파나메로의 손을 타서 왕성으로 입성한 이들.
알고도 당해 줬고, 최대한 밀어줬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알고 있어야 했다.
정치를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밀어주었고 왕비의 자리마저 주었을 정도로 사미트는 단호하고 화끈한 결정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
정치를 못하고 괜한 욕심을 부리고 선을 넘는다면. 사미트의 그 단호함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10년, 그렇게 10년을 보냈는데, 이제는 왕비가 나보다 더 왕 같고 파나메로는 그 왕보다 위에 있는 신적인 존재 같더군. 그걸 역사에서 보면 간신이라고 하지. 너무 오래 풀어준 모양이야.”
“폐하!! 오해십니다!!”
사미트는 웃었다.
아까처럼 싸늘하게.
그러고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린 뒤 말했다.
“둔-시엘.”
“예, 폐하.”
“왕비를 비롯 이 세 명의 첩을 전부 왕성에서 쫓아내시게. 그리고.”
왕비와 세 명의 첩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자리에서 휘청였다.
하지만 사미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리사들에게 만찬을 준비하라고 하시게.”
“만찬, 말씀이십니까? 혹시 귀족들과 만찬을 하려 하시는 것이면 회의실을 식사 장소로 잡을까요?”
사미트가 고개를 저었다.
곧 시체가 될 이들에게 만찬은 무슨.
“전에 자리 잡았던 그 식당으로, 양은 그때와 비슷하게. 혹여 내가 식사하는 중에 귀족들이 온다면 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왕성 대전에서 기다리라고 전하시게.”
“추웅-!!”
사미트는 걸음을 옮겼다.
잭 발란티에, 그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니까.
사미트에게 있어서 그건 자국 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우선이었다.
* * *
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마자, 나와 스승님은 방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펼쳐져 있는 아치형 복도를 다시 걸었고, 흔한 미술품보다는 무기가 진열되어 있는 곳을 지나, 식당에 도착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코를 찌르는 냄새.
달콤하고, 짰다.
문을 열었다.
그 식당에 차려진 수많은 음식.
마치 예식장에 차려진 뷔페를 보는 것처럼 음식들은 화려하다 못해 찬란했다.
식당에 앉아 있던 사미트의 눈이 천천히, 동그랗게 떠졌다.
그의 두 눈은 내 옆에 있는 스승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옷이 필요하다는 게 그런 의미였군.”
그건 마치 혼잣말 같았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잘 어울리는군.”
나와 스승님의 사이가 어울린다는 건지.
아니면 스승님이 입고 있는 호랑이 가죽옷이 어울린다는 건지.
자세하게는 몰랐지만 그냥 묻지 않았다.
잘 어울린다잖아.
그냥 좋게 생각하자고.
* * *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다.
대화는 없었다.
왜냐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거든.
“외모를 보아하니 베커만이 말했던 검은 머리의 여인이 그쪽이었나 보군.”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나 했는데 아까 그 ‘인형’이 그쪽…….”
차마 다 듣지 못하고 그냥 끼어들었다.
“사미트야.”
“왜 그러지?”
“내가 역사 강의할 생각은 없거든, 그러니 그냥 딱 한 번만 말할게. 이분은 내 스승님이고 전에 마차에서 이야기했던 ‘세상의 군주’가 이분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그쪽이니 뭐니, 그렇게 반말 찍찍 싸지 말고 이렇게 불러. 발렌타인 님, 이렇게.”
사미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스승님은 아까부터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고.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미트가 한마디 툭 던진다.
“둘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나?”
응?
“내 직감이 말하는군. 그대는 지금 내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