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87)
제 288화
* * *
“부와 명예, 여자,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눈앞에 있던 남자.
콧수염이 꽤 인상적이고, 젊었을 적 여자 꽤 울리고 다녔을 법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음.
이 양반 이거 자세히 보니까 뭔가 낯이 익은데.
내가 뚱한 표정을 거두지 않아서일까.
그가 입에 침이 튀어나올 정도로 열변을 토해 낸다.
“건물이 필요하시다면 드리겠습니다. 마나 유저가 필요하시다면 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국가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내가 당신들의 왕이 되어야 하지?”
“……그건, 당신이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강자존이라는 사상에 가장 걸맞은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얼핏 맞는 말처럼 보인다.
이스마엘의 정신은 강자존.
가장 강한 남자가 왕이 된다, 이게 이스마엘이라는 국가인데 전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이스마엘 왕국에서’라는 전제.
이스마엘 왕국의 정신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스마엘 왕국에서 이스마엘 국적을 가진 이들 중 가장 강한 남자가 왕이 된다.
이스마엘 왕국은 그런 강자에게 복종한다.
이스마엘 국적에, 이스마엘에서 나고 자란 이들 중 가장 강한 남자가 왕이 되는 게 이스마엘의 강자존 정신이다.
그러니까.
“난 이스마엘에서 태어난 놈이 아닌데?”
“그건 상관없습니다.”
그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린다.
마치, 이게 본론이었다는 듯.
이걸 반드시 말하고 싶었다는 듯.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이중 국적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당신은 말 그대로 상징만 되어 주시면 됩니다. 왕이 되어 통치를 하고 싶으시면 하시면 됩니다. 하기 싫으시다면 대리를 맡기셔도 됩니다. 그래도 결국 이스마엘 왕국은 당신의 것이 될 테니까요.”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아, 얘네도 진짜 웃기는 애들이네.
“네가 걔지?”
“……예?”
제도 바꾸는 것을 쉽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방향성, 그리고 저 면상.
분명 이스마엘 왕성에서 보았던 ‘왕비’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마치 부녀지간처럼.
그럼 뭐 뻔하지.
“파나메로 공작. 맞지?”
“아, 맞습니다. 제가 제 소개를 깜빡했군요. 죄송합니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걸 보니까, 확실히 능력은 있는 것 같다.
저 표정 하나 안 변하는 거 봐.
저런 게 정치인들의 기본 소양이지.
이런 양반이 왜 그런 실수를 했대.
그리고 지금 꽤 필사적으로 보이는데.
뜬금없이 이런 게 궁금해졌다.
파나메로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떨까.
아마, 굉장히 음흉하게 웃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 * *
파나메로는 분명 똑똑했다.
이스마엘이라는 국가가 근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파나메로의 덕이 컸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저 스스로도 몰랐을 뿐이다.
원래라면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판단내리지 못했다.
그간의 경험을 맹신했다.
탐욕에 눈이 멀었다.
그동안 보아 왔던 롬멜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의 생각을 읽었고,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짰다.
그 시나리오가 매우 합리적이었고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기에 일을 진행했는데 맙소사.
잭 발란티에가 진짜 괴물이었다니.
“이스마엘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파나메로는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파나메로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행동은 성공 확률이 높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저 동아줄이라도 잡아 보고 싶은 그런 마음.
파나메로는 분명 똑똑했다.
한 나라의 재상이 될 정도로 분명 머리는 비상했다.
그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한 번의 실수를 메꾸려면 이거 말고는 답이 없다고.
정말 이게 전부라고.
이게 마지막 기회고 이 이상의 기회는 없다고.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불로불사, 그딴 게 다 뭐라고.
* *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아깝다는 그런 생각.
앞에서 애걸복걸하는 파나메로를 잠시 바라보다, 그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숙소 뒤편 담장.
그곳에 기척을 숨기고 있는 남자.
“야, 나와 봐.”
말하기 무섭게 모습을 드러낸다.
사미트를 호위하는 네 명의 마스터 중 한 명.
전에 가볍게 소개를 하긴 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그냥 물었다.
“이름이 뭐였지?”
“둔-마테오입니다.”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거기서 뭐 하고 있었는데?”
“……이 귀족들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감시?”
“폐하께서 내린 명령이었습니다.”
뭔지 물어보려 했지만 묻지 않았다.
왜냐면 바로 설명해 줬거든.
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핵심은 그거잖아.
“사미트는 얘네보고 조용히 자살할 기회를 주었는데 지금 그러고 싶지 않아서 ‘또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거. 맞지?”
“예.”
거참.
“사미트는 너희들한테 자의적으로 판단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가만히 두고 있냐?”
“……그건 저 귀족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뭔지는 굳이 안 물어봤다.
정확히는 물을 새도 없었다는 게 정확하겠지.
왜냐면 가만히 듣고만 있던 파나메로가 굉장히 놀란 어조로 이렇게 말했거든.
“또 한 번의 실수라니요?”
이건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일들을 만약 사미트가 알게 된다면 녀석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다.
우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운과 함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겠지. 그리고 곧바로 눈을 감고 느낄 거다.
부끄러움, 분노, 모욕, 모멸감.
거구의 남자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 이후에, 마지막으로 굉장히 큰 회의감을 느끼겠지.
“한 국가의 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이건 사미트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잖아.”
“……어……어?”
둔-마테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기가 모시는 폐하가 재상으로 임명했고 그 폐하는 재상의 딸과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그 재상은 큰 실수를 저질렀고 폐하는 그런 상황에서도 기회를 주었다.
혼자만 죽을 수 있는 기회.
그런데 그런 기회를 받은 이가 이제는 공개적으로 폐하를 개무시하고 있었다.
“사미트는 뭐 하냐 지금?”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폐랑 팔은?”
“치료는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혼수상태이신데, 오늘 깨어나실 수도 며칠 걸릴 수도, 몇 주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충 팔을 휘저었다.
“이따 밤에 찾아가서 깨워 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자기가 무슨 실수를 한 건지 완전히 눈치챈 파나메로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주, 창백했다.
마치 밀랍인형처럼.
그들을 향해 가볍게 팔을 휘저어 주자.
털썩- 털썩-
모두가 쓰러진다.
“일단 얘네 다 데리고 가.”
“……어디로 말씀이십니까.”
“지옥……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냥 왕성에 박아 놔. 쓸모가 있다며? 이따 밤에 들를 때 한꺼번에 처리하자고.”
둔-마테오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게 고개를 깊게 숙이더니 귀족들 전부를 데리고 사라졌다.
어쩐지.
쟤는 전사답지 않게 몸이 좀 왜소하다 싶었는데 마법사였구나.
텔레포트가 참 능숙하네.
[신기하게 너랑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일이 터지는구나.]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다 인기 있는 남자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농담도 잘하는구나.]음.
농담 아닌데.
* * *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보다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
나도 파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데.
그 100%의 감정을 전부 느끼고 싶은데, 왜 이리 초를 치는 놈들이 많은 걸까.
“밀로스 아카데미의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요람 왕국의 브랜뉴 후작…….”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마티아스 아카데미의 마법학부 교관이자 징계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로써 밀로스 아카데미는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가 되었군요. 정말 감축드립니다. 아, 저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말았다.
밖에서 이스마엘 귀족들이 대기하고 있을 때부터 혹시나 했는데 진짜일 줄이야.
밀로스 아카데미의 애들이 머무는 휴식처.
그러니까 이 큰 건물을 ‘호텔’이라고 부르는데, 그곳 파티장에는 꽤나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우승을 한 건 맞긴 한데, 축하를 해 주는 것도 맞긴 한데, 이건 우리끼리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 사람들은 뭔데 왜 여기 와 있는 거지.
등등.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못 읽고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이놈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네.
“니들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
“……예?”
“그거야 그냥…….”
내 기준에서는 조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 숙소는 생각보다 보안이 좋다.
쉽게 말하면 이 숙소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무조건 교관 서너 명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해야 할까.
그때, 파티장으로 들어서는 베네딕트가 보인다.
그의 옆에는 몇몇 교관들이 있었는데, 꽤나 바쁜 건지 베네딕트는 파티장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파티장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다.
자기가 봐도 다른 국가의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이 떡하니 서 있는 게 보이니 눈치챌 수밖에.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옆에 있던 교관과 함께 내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 공자님이 따로 초청하신 분들이시군요.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반갑습니다. 밀로스 아카데미의 궁술학부 학부장인 베네딕트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악수를 하는데 그걸로 확신했다.
얘도 모르고 있었구나.
그런데 베네딕트의 옆에 있던 교관은 아니었나 보다.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였지?”
“……마법학부 교관 모르톤입니다.”
모르톤.
마탑주 밑에 있던 교관 중 하나가 저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
“얘들 들어오는 거 네가 허락한 거냐?”
무거운 어조에 모르톤 교관이 흠칫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로 베네딕트는 벙찐 표정을 지었는데…… 와, 이거 지휘체계가 너무 엉망인 거 아니야?
“지금 분위기 보이지? 애들 다 어색해하잖아.”
“……죄송합니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일단.
“10초 준다. 우리 아카데미랑 관계없는 새끼들은 10초 안에 전부 꺼져.”
“예?”
“저희는 아무런 잘못도…….”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내가 아카데미 애들을 데리고 파티를 하자고 한 건 무슨 귀족들 간의 사교 파티 같은 그런 걸 하고자 한 게 아니라 그냥 애들끼리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같이하는, 그런 걸 말하는 거였는데 웬 이상한 놈들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이걸 정치적인 판으로 만들려고 하네.
이딴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거든.
“10초 안에 안 나가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죽일 거니까 죽고 싶으면 계속 개소리해.”
카운트를 셌다.
“10.”
“아니, 잠시만요. 잭 발란티에 님, 저희는 그저 축하를 드리기 위해…….”
“9.”
“어…… 어어?”
“8.”
타닥타닥-
점점 발소리가 빨라지더니.
두두두두두-
“7.”
“6.”
그쯤 셋을 때 조용히 눈을 떴다.
코앞에 있던 교관들은 전부 사라진 상황.
하지만 한 명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옮겨진다.
구석진 곳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후드를 쓴 인영.
“전에 말했지. 염탐할 생각 하지 말라고.”
인영이 천천히 후드를 뒤로 걷었다.
그러자 드러난다.
적색빛이 감도는 흑발, 그리고 오밀조밀한 얼굴.
적색 마스터이자, 현 툴칸의 황제인 필리포스의 측근인 엔젤라 헬.
그녀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묻는다.
“저 정말 가요? 하고 싶은 말 하나 있는데.”
“관심 없으니까 꺼져. 베커만처럼 팔 하나 토막 치기 전에.”
진심을 읽은 엔젤라는 조용히 후드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이 파티장에 다른 국가의 사람은 없었다.
파티장 분위기는 어색함을 넘어 이제는 완전히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