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90)
제 291화
적색 마스터, 그러니까 상급 마스터 한 명이면 중급 마스터 다섯 명 정도는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다.
즉, 원래라면 적색 마스터 한 명이 포함된 사미트 쪽이 이기는 게 맞는데, 나는 방금 사미트의 내면 세계를 엿봤다.
그걸 봤고, 녀석이 어떤 남자인지 알기에 나는 이 ‘전쟁’에서 어느 쪽이 이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상대편이 이기겠네. 정확히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겠어.”
둔-시엘과 사미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담인데, 상대 지휘관 중에는 사미트가 어떤 남자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놈이 포함되어 있을 거다.
국가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남자, 백성을 끔찍이도 소중히 여기기에 백성들에게 피해가 갈 일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 남자.
국가에 혼란이 내려앉는 것을 원하지 않아 하는 남자.
사미트는 그런 남자다.
아마 내전이 벌어진다면 사미트는 순순히 왕위에서 내려올 거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걸겠지.
백성들을 위험에 빠트리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게 되면 돌아와서 관계자들을 전부 죽일 거라고.
이 정도는 굳이 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였다.
그래서.
“누구냐? 그쪽 지휘관이.”
내 질문에 짐작이 가는 게 있다는 듯, 사미트가 답했다.
“내 동생, 템-아주리.”
허어.
여기도 가족이 문제였네.
“그런데 걔가 왕이 되면 뭐가 달라지나? 너보다 약했으니까 왕에서 밀렸을 거 아니야.”
사미트가 피식 웃는다.
“그 녀석은 ‘귀족정’을 추구하거든.”
“귀족정?”
“왕이라는 상징 없이 오직 귀족들이 통치를 하는 형태. 강자존이라는 사상을 없애고 귀족들끼리 대표를 뽑아 그 대표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그런 제도를 추구하던 녀석이지.”
“재미있네.”
“계속 밑에서 문제를 일으키더군. 중급 마스터라는 유용한 자원이었음에도 7년 전에 하늘 산맥으로 보냈지. 그런데 지금 냄새를 제대로 맡은 모양이야.”
난 또, 나를 왕으로 추대한다고 깝죽대길래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보니까 아니었네.
이쪽 귀족들도 나름 파벌이 있었고 대립점에 선 이들이 많았나 보다.
그럼 파나메로 그 양반은 이 귀족정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데, 방패막이가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아 한 건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죄다 시체가 될 텐데 신경 써서 뭐 해.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언젠가처럼 테라스 난간에 몸을 기댔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난 그딴 거보다 더 관심 있는 게 있어.”
“그게 뭐지?”
사미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그리 아름다운 여인이 곁에 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취향을 지니고 있었군.”
“그거 말고.”
과거 이야기는 지겹도록 했으니 패스.
지금 해야 할 말은 이거다.
“내가 만들려는 세상은 일종의 선물 같은 거거든.”
“선물?”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400년 전의 누군가가 만들고 싶어 했지만 만들지 못했던 세상, 더 발전할 수 있었음에도 발전하지 못한 그런 세상을 더 크게 만드는. 이 정도면 선물 맞잖아.”
“…….”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런 말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놈한테는 의미가 없어. 난 그런 놈이야.”
난간에서 등을 뗐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좋은 사람들이 필요해. 나 같은 생양아치 말고 진짜 좋은 사람.”
사미트를 보면 오크 족장이 떠올랐었는데, 확실히 둘은 닮았다.
좋은 사람…… 아니지, 둘 다 좋은 남자라는 점이.
“왕? 내려올 필요 없어. 내가 볼 때 이 국가에서 왕이라는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사미트, 너밖에 없으니까.”
“…….”
“그 증거라고 하기엔 그런데, 이 왕성을 지키는 네 명의 마스터들은 네가 어떤 놈인지 알면서도 너의 곁에 남았잖아.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머물기 마련이지.”
마지막 말은 작게 중얼거린 건데 들었는지 둔-시엘과 사미트의 귓가가 쫑긋한다.
“난 내 사람의 일이 아니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아. 이스마엘에서 내전이 벌어지건 뭘 하건 사실 관심 없어. 그런데. 그거 알아?”
고개를 들어 사미트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 사람을 위해서라면 스케일이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상관없이 무엇이든 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나랑 같이 가자.”
“…….”
“내 사람이 돼라. 템-사미트 이스마엘.”
* * *
템-사미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상황이 말해 주듯, 지금 사미트는 자존감이 굉장히 하락한 상태였다.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고, 그간의 정이 있어서 조용히 자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이들이 다른 이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청한 상황.
이건 사미트가 아닌 그 누구라도 자존감이 하락했을 거다.
이게 이렇게 말하면 웃길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사미트는 복잡한 마음속에서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오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
스스로 회귀를 했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수많은 근거들을 보여 주는 그 남자가, 벌어지지 않은 시간 속에서 이 대륙 전체를 지배했던 그 괴물이, 왕이라는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사미트 너라고 말해 주는데 그 이상 뭐가 필요할까.
이건 인정이었고, 보답이었다.
이 세상에서 받는 그 어떤 찬사보다 더한 무게감이 있었고 더 의미가 있는.
진정한 의미의 인정.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둔-시엘.
어릴 적 동네 친구였고, 시간이 지나 최측근이 된 남자.
그는 자신이 무슨 선택을 하든 따를 것이다.
그런 남자니까.
그리고.
열린 문으로 세 명의 남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왕성을 지키던 세 명의 마스터였다.
저들 모두가 둔-시엘과 같은 경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슷한 경우로 얻게 된 인재들이다.
저 세 명이 이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명확했다.
난간에 등을 기대고 있던 잭 발란티에.
그가 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네 명의 마스터가 주목한다.
어떤 답이 나오건 따르겠다는 그들의 의지.
그것을 사미트는 느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
진정,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스스로 고찰하고 결정 내리는 것.
사미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네 명의 마스터가 사미트의 뒤로 가더니 똑같이 무릎을 꿇는다.
사미트가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이어서 그 뒤에 있던 네 명의 마스터도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잭은 이날 5명의 마스터를 얻었다.
* * *
내 수하가 된 사미트가 내게 묻는다.
“앞서 들으셨던 대로 이스마엘 왕국의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찌, 하실 겁니까?”
듣자마자 소름이 쫙 올라온다고 해야 하나.
“그냥 평소 하던 거처럼 해. 왜 갑자기 예의 차리고 그래.”
“그래도 되겠습니까?”
타노스한테 그랬던 것처럼 닭살 올라온 걸 보여 주니까, 그제야 사미트가 웃는다.
되게 편안해 보이는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사미트를 포함한 다섯 명의 마스터가 기대 어린 눈으로 내 입을 바라본다.
그런데. 얘네는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난 머리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무슨 엄청난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기대를 하네.
간단하잖아.
“그냥, 죽을 놈들이 하나로 모이고 있다는 이야기잖아.”
“……응?”
“그럼 뭐 별거 있나. 제발 좀 죽여 달라는 놈들 원대로 죽여 주면 끝이잖아. 봐. 진짜 별거 없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스마엘의 강자존이라는 정신은…….”
피식- 웃고 말았다.
“왕이 희생을 해서 백성들이 안정을 얻는 형태, 취지는 좋아. 분명 좋은데, 그거 오래는 못 가.”
“…….”
“너 같은 왕이 얼마나 존재하겠어. 네 후대, 혹은 그다음 대. 분명 빠른 시일 내에 이 강자존이라는 사상은 사라질 거다. 이유는 너도 잘 알지?”
“세상에 강자는 많으니까?”
“그렇지. 세상에 강자는 많아. 그 허점을 제대로 파고들면 이스마엘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지. 지금껏 이스마엘이 살아남았던 것도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어. 지금 봐 봐, 아주 별의별 놈들이 미쳐 날뛰고 있잖아.”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왕이라는 자리에 있는 이가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면 이런 문제가 터지지. 결국 모든 것은 상호 작용이 필요한 법인데 이 왕국은 그게 너무 기형적이야.”
내가 이런 상황을 설계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신기하게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지네.
“그래서 물갈이라는 걸 주기적으로 해 줘야 하는데, 지들이 알아서 죽여 달라고 하잖아. 이건 어찌 보면 기회지.”
“……직접 볼 수 있겠군.”
“뭐가?”
내 질문에 사미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문 쪽을 바라보더니.
그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굉음이 터지며 문이 터져 나간다.
먼지가 솟구친 그곳에서 누군가 기침을 하며 걸어 나왔다.
“쿨럭, 말로 하면 되지 왜 폭력을 쓰고 그래요.”
엔젤라 헬.
진짜 쟤는 안 끼는 데가 없네.
“많이 한가하냐?”
“콜록콜록, 네?”
“한가하냐고, 스토커도 아니고 내 주변에서 왜 이렇게 얼쩡거리냐. 짜증 나게.”
내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느낀 건지 엔젤라가 황급히 양손을 펼치더니 말했다.
“이번에는 용건이 있어서 온 거예요.”
“용건?”
“정확히는 알려 드리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어서요.”
조금 궁금해진다.
“뭔데 그게?”
엔젤라가 슬쩍 사미트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중급 마스터던데, 그쪽 동생이었나? 걔가 베커만을 찾아갔거든요.”
사미트의 눈썹이 꿈틀했다.
“대충 들었는데, 이런 말 하고 있던데요. 베커만보고 이스마엘 왕국의 왕이 될 생각 없냐고.”
* * *
베커만은 정신을 차리고 정확히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로 놀란 이유는 일단 한쪽 팔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두 번째 놀란 이유는 이질적인 어떤 ‘기운’이 단면을 완전히 감싸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기운이 익숙해서 한 번 더 놀랐지만 그거까지는 내색하지 않았다.
세 번 놀라는 건 식상하니까.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베커만은 결국 세 번째로 놀라고 말았다.
“뭐가, 되어 달라고?”
“이스마엘의 새로운 국왕이 되어 주십시오.”
푸하하-!
베커만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개소리를 하는군. 내가 왜?”
베커만이 폭소를 터트리며 무시했지만 그의 앞에 있던 남자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가 말한다.
“당신이 대륙 최강의 검사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타임 슬립 마법을 쓴 것처럼 베커만의 웃음이 그대로 멈췄다.
“알고도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 모르고 그러는 것인가.”
베커만은 왼팔을 들어 휑해 있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가리켰다.
“이 팔, 안 보이시는가?”
“…….”
“내가 대륙 최강의 검사라면 이 팔을 자른 이는 대체 뭐지?”
“……잭 발란티에, 그 ‘아이’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안타깝지만 ‘저희 기준’에서는 탈락입니다.”
베커만은 저도 모르게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듣다 보니 참 재미있다.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이거 참 신기한 기분이다.
이게, 진짜 개소리라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