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98)
제 299화
대충 손을 휘저었다.
도관이라는 조직이 나를 데스 나이트로 만들었으니, 그륜힐은 죽었을 거다.
연합군도 와해됐을 거고, 대륙 전체가 그냥 망가졌겠지.
(강하더군요. 오크 로드와 하피 로드가 도관의 전력 중 절반 이상을 썰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둘은 데스 나이트가 되었죠.)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로 내 몸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오른팔이랑 복부 쪽에 있는 이거, 혹시 드래곤 가죽 아니야?”
(예, 맞습니다. 잘 찾아보시면 이무기의 가죽이랑 살덩이도 있을걸요.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두개골이랑 심장 파편만 있으면 데스 나이트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지금 도련님의 몸에 힘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이유는?”
(도련님의 심장 조각의 대부분을 도관의 수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회복이 더디실 겁니다. 그들은 도련님을 데스 나이트로 만들고 힘을 회복하기 전, 그러니까 지금같이 ‘무력한 상태’에서 심령 자체를 제압해 개새끼로 만들려고 했으니까.)
그때였다.
“이놈!!”
“고작 도망친 게 여기란 말이냐!”
수십의 마스터와 고서클 마나 유저들이 도착했다.
하지만, 무시했다.
“그러니까 론은 계속 나를 도우고 있던 거네. 전에는 목숨을 구해 줬고 이번에는 꼭두각시가 될 뻔한 나를 구해 준, 맞지?”
(그런 셈이죠. 그러니까 나중에 진짜 죽게 되시면 은혜 갚으십시오.)
론의 농담 섞인 말에 잭은 웃었다.
“1년이라고 했지?”
(예. 제가 알기로는 1년입니다.)
두 눈이 검은색으로 물든 잭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1년이면 충분하지.”
(뭐가요?)
“소문이 와전되고, 진실이 왜곡되는 데 1년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잖아. 아니야?”
(맞죠.)
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잭.
그가 말을 툭 던졌다.
“육체 붕괴가 시작됐네.”
(…….)
“수명이 10일? 그쯤 남은 거 같은데, 맞지?”
(……그럴 겁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때 주변에 있던 이들이 거리를 좁혀 온다.
동시에 모호했던 감각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정체불명의, 내 것이 아닌 다른 놈들의 마나가 온몸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잭은 생각했다.
이 마나도 거슬리고, 저기서 오는 정체불명의 도관인지 뭔지 하는 새끼들도 거슬린다고.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10초 준다. 며칠 더 살고 싶으면 10초 안에 전부 꺼져.”
비쩍 마른 잭을 바라보던 몇몇 이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악마라 불리던 그때의 잭에 비하면 지금의 잭은 정말…… 볼품없어 보였으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잭은 웃었다.
왜냐면, 웃기잖아.
“말했잖아. 소문이 와전되고 진실이 왜곡되는 데 1년이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10초가 지났다.
나는 평생 살인자로 살 운명인가.
그보다.
“심장 조각? 흑마법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네.”
잭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건 멍청한 이들을 보았을 때, 정말 허무할 정도로 멍청한 놈들을 보았을 때 잭이 짓는 특유의 눈빛이었다.
“의지를 품을 수 있는 ‘중심’만 멀쩡하면 심장을 아무리 쪼개건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그 기본 원리도 모르면서 흑마법? 우리 스승님이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어.”
우선, 가장 먼저 쿠궁- 하는 소리가 울렸다.
진원지는 잭.
그의 심장 부근이었고 놀랍게도 이 주변에 있는 산 전체가 반응했다.
쿠궁 하는 진동 소리는 그런 소리였다.
이어서, 세상의 모든 바람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게 두 번째 변화였고, 세 번째.
모든 마나도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런 세상에서 잭은 움직였다.
한 걸음 내딛자, 잭의 발이 검게 물들었고.
한 걸음 더 내딛자 하반신 전체가 검게 물들었으며, 한 걸음 더 내디뎠을 때 잭의 몸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상상도 못 했네. 초월자를 되살린다고? 하프 블러드 같은 반쪽짜리 새끼들이랑 같은 취급을 했나 본데.”
상황이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낀 건지, 마스터들을 비롯한 고서클 마나 유저들이 자리를 박찼다.
도망, 치기 위해서.
“그러게 10초 줄 때 꺼졌어야지.”
잭이 손을 들었다.
이어서 하늘이 갈라지고. 그 하늘에서 거대한 마귀가 입을 쩌억 하고 벌린다.
동시에.
그 입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거검이 하늘을 뒤덮었다.
장관이었다.
지켜보던 론이 입을 떡 벌리고, 도망치던 이들조차 자리에서 멈출 그런 장관.
아마 이들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눈치챘을 거다.
진짜, 괴물이 등장했다는걸.
죽었던 괴물이 되살아났다는걸.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하늘을 덮은 거검들이 움직였다.
거검들은 일제히,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땅을 향해 내리꽂혔고.
잭의 적들은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가 박히고.
쿠웅-!
두 개가 박히고.
콰앙-!!
세 개, 네 개, 다섯 개, 여섯 개.
백 개가 넘는 거검들이 땅에 박혔을 때.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잭과 론의 반경 수십km 내의 모든 것이 소멸했다.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마치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소멸한 거다.
깊이만 최소 수십 미터에 달하고 지평선 너머까지 형성되어있는 그 거대한 크레이터 자국을 바라보며, 론이 짧게 감상평을 남겼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와, 진짜 괴물이 여기 있었네요.)
고개를 돌렸다.
“여행이나 하자.”
(예?)
“10일 남았잖아. 그동안 같이 여행하자고.”
잭의 말에 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굉장히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잭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것을 원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제가 나이를 좀 먹어서 걷기가 힘듭니다. 수레에 타도 되죠?)
잭이 웃음을 터트렸다.
“데스 나이트가 되더니 재미있어졌네. 타.”
그렇게 론과 잭은 세상을 여행했고, 10일 뒤.
론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론과 여행하면서 잭은 모르던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초상화로만 보았던 어머니, 노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 뿌리는 어디였는지.
수십 년 전 론이 도관이라는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왜 도망쳤는지.
이 모든 것을 영체 상태인 잭은 지켜보았고, 천천히 영혼에 의념을 보냈다.
이제, 됐다고.
모르는 사실들은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깨야겠다고.
그렇게 잭은 꿈에서 깨어났다.
* * *
눈을 뜬 내게 스승님이 말했다.
[이번에는 꽤 오래 걸렸구나.]“그렇습니까?”
스승님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달력의 어느 한 부분을 툭툭 두드렸다.
“오늘이 11월 30일입니까?”
[그래.]“제가 오래 자긴 했네요.”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잠에 들기 전 모든 일을 끝냈다.
사미트가 베커만에게 진 것은 맞지만 그래도 명실상부한 적색 마스터다.
정치하는 놈들이나 정치병에 걸린 정신병자들이나 그걸 기회로 여긴 거지 실제로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헛짓거리를 한 거다.
적어도 백성들의 대다수, 그 이상은 사미트에게 의존하니까.
그런 사미트가 ‘나’라는 존재에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사미트를 수하로 받아들였다.
강자 위에 강자가 군림하는 형태가 되었고, 혼란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당연히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쩌겠어.
믿게 만들어야지.
밑밥은 이미 다 깔았다. 그 이후 유유자적하게 애들을 데리고 이스마엘을 둘러 다니는 등.
요람 왕국이나 기타 다른 왕국들에서 아카데미 발전 기금 명목으로 기부를 했다거나, 사절단을 보내서 이러저러한 교류를 했다거나.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굳이 두 번 언급할 필요는 없는 일들이었다.
잘 해결됐고, 이득 많이 봤고, 뜻했던 대로 모든 게 흘러갔다.
사미트는 왕으로서 다시 이스마엘을 다스리게 되었고, 위원회에 속해있던 이스마엘의 벌레들도 전부 정리했다.
이 모든 게 끝난 날짜가 11월 25일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잠에 들었다.
거의 며칠 일부러 잠을 안 자고 쭉 버티고 버티다 잠든 건데, 11월 30일이면 거의 5일을 내리 자 버렸네.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아우.
커튼을 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 여명이 밝아 오는 그 하늘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방금 전 꿈에서 보았던 전생의 일들.
‘과거, 론은 도관이라는 곳에 우리 어머니랑 함께 속해 있었고, 거기를 벗어났다. 그 도관이라는 곳의 전력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그 조직이 시체가 된 나를 되살렸다. 명목상으로는 동대륙에서 넘어온 괴물을 막기 위해서 데스 나이트로 만든다는 거였겠지만 시간순으로 보면 맞지가 않아. 나를 이용해 대륙을 지배하고 싶었나? 이상한데. 그 정도 전력이면 지금 나와도 대륙은 지배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와, 세상에.
이 대륙에 그 누구도 모르는 제3의 조직이, 진짜로 존재했었네.
‘재미있네.’
말은 안 했는데, 어떻게 내가 이걸 모를 수가 있지?
나는 몰랐어도 대륙을 지배하던 툴칸 제국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툴칸에 대해 모든 것을 조사했던 나조차도 도관의 도 자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이건 툴칸 제국조차도 몰랐다는 뜻이다.
대체 얼마나 거대한 조직이길래?
그런데 왜 그런 조직이 계속 음지에만 숨어 있는 건데?
생겨나는 의문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생각이 깊어 보이는구나.]스승님의 말씀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두 번입니까.”
[그래, 오늘도 저녁에는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냐.]음.
“그렇다고 치는 게 낫겠죠?”
[허허.]지금 생각해 봐야 뭐 하나. 어차피 곧 테슬란으로 넘어갈 텐데, 가서 론이랑 찐하게 이야기해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우우웅 하며, 책상 위에 올려 둔 작은 통신구가 울리기 시작했다.
들자마자, 꽤나 오랜만에 보는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구릿빛 피부에 중후한 인상.
각진 턱에 균형 잡혀 있는 체격.
아카데미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관이라기보다는 마치 군인.
흡사 장군처럼 보이는 이 남자의 이름은 그레이 시어런.
전에 토벌대를 전멸시킨 일로 인해 내게 여론 조작을 하자고 이야기했던 그 그레이가 맞다.
고향으로 휴가 보냈었는데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되게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공자님.}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그런데.”
잠시 말끝을 흐렸다.
왜냐면.
그레이의 표정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거든.
“무슨 일 있냐?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데.”
잠시 말이 없던 그레이가 말했다.
{공자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회가 끝났을 때도 그레이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었다.
솔직히 조금 섭섭하긴 했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어차피 휴가 보낸 건데, 쉴 땐 쉬어야지.
그런데 뭘 물어보려는 걸까.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까 뭔가 일이 생긴 거 같긴 한데.
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어, 물어봐. 뭔데?”
이후 그레이는 내가,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내 들었다.
{공자님은, 아버지였던 클라크 발란티에를 죽이실 때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이것도 굳이 두 번 언급을 안 하려고 했는데.
테슬란의 영지를 통합했을 때, 나는 나름 믿을 만한 이들에게 영지를 맡겼다.
우리 누나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그레이의 가문인 시어런 후작가다.
시어런 후작가는 두어 개의 후작령과 여러 개의 백장령, 그리고 남작령까지 흡수한 대영지가 되었는데, 이 영지가 툴칸의 국경과 맞닿아 있다는 거.
이게 진짜 중요하다.
그런 중추를 다스리는 귀족에게 다른 왕국의 이들이 접근하지 않는다?
그건 직무 유기다.
어떤 식으로든 접근했을 거고 그 횟수가 최소 열 번은 넘을 거다.
그런 곳으로 나는 그레이를 휴가 보냈다.
상황을 파악하고 심신도 좀 안정을 찾고, 군사도 좀 돌보고. 그렇게 쉬라고 보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다고?
내가 내 아버지인 클라크 발란티에를 죽일 때 어떤 기분이었냐고 묻는 지금의 상황.
웃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웃을 수가 없었다.
답을 기다리는 그레이의 표정에, 작게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