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0)
제 31화
쩌적-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샬롯의 몸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푸석했던 머리는 마치 방금 샤워라도 한 것처럼 찰랑이기 시작했고, 메마른 논밭처럼 갈라져 있던 피부도 마찬가지로 생생해졌으며 온몸에 가득했던 타박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앙상했던 피부는 조금씩 부풀어 올랐으며, 움푹 파인 볼과 퀭했던 눈동자가 평범한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변했다.
당연하게도 이 현상을 뜻하는 단어는 하나다.
회복.
샬롯은 회복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뱀파이어는 피를 추구하는 종족이며 과거 드래곤들과 쌍벽을 이루던 종족이었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힘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처럼 ‘제대로 된’ 피를 마시면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말도 안 되는 특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건 싸움 도중이건 아니건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뱀파이어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새끼가, 눈깔은 장식인가.
“보면 모르냐? 밥 먹이는 중이잖아.”
드래곤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오른다.
“발렌타인 밀로스, 꽤나 재미있는 종자를 데리고 다니는군.”
스승님은 웃지 않았다.
그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이어서 조연이 되어 버린 드래곤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할 게 있는 모양인데. 사실 그 고민은 뻔했다.
지금, 과거에 죽었다고 알려진 존재가 살아 돌아왔다.
처음엔 의구심이었다고 쳐도 로드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과 언약을 언급하는 것.
그리고 이어진 대화로 도마뱀은 확신했을 것이다.
아, 내 눈앞에 있는 저 인형이 정말로 ‘그’ 발렌타인이구나 하고.
놈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과거 스승님의 위명은 상상 이상이다.
지금 발락투스의 머릿속에 아마 이런 결론이 내려지고 있지 않을까.
발렌타인 밀로스라는 과거의 망령이 돌아왔다.
이 사실을 당장이라도 다른 드래곤들에게 알려야 한다, 등등.
결국 놈이 어깨를 으쓱한다.
“좋아. 그냥 가 달라는 그대의 ‘부탁’. 내 넓은 아량으로 들어주도록 하지. 하지만 나는 ‘감시자’다. 언젠가는 저 아이를 죽이긴 해야 할 터이니, 음…….”
드래곤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한다.
“그래, 그게 좋겠군. 정확히 8년 뒤, 저 아이가 인간의 나이로 성인이 된다면 그때 죽여야겠어. 그것도 나름 재미있는 유희가 될 것 같아.”
그러면서 경박하게 웃기 시작했다.
놈의 그런 모습에도 스승님은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이다.
드래곤은 여전히 스승님을 바라보았고 스승님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침묵한다.
호응 없는 연극.
그 최후는 깔끔하다.
배우의 퇴장.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이건 발렌타인 밀로스, 그대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을 축하하는 나의 기념 선물일 뿐. 그래, 이런 것을 ‘자비’라고 하지. 과거의 허명으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인형 따위는 절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진정한 자비. 그러니, 8년 후를 기대하도록.”
또다시 껄껄껄 웃던 발락투스가 이제 대화는 끝이라는 듯 그대로 몸을 돌린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나라는 관객은 아직 퇴장하지 않았다.
“야. 도마뱀.”
멈칫!
그의 몸이 천천히 돌려진다.
한쪽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놈이 되묻는다.
“……도마뱀?”
“그래, 도마뱀. 내가 예의가 꽤 바른 놈이라 우리 스승님이 말씀하시는 거랑 네가 주제도 모르고 주둥이 털어 대는 거,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거든. 그런데 참 보기 거슬리네.”
“……주둥이? 스승님? 거슬려?”
의문을 내비치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스승님의 대화는 끝났다.
이어질 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쯤에서 끝내려 한다.
잠깐 스승님을 바라본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부터는 스승님의 시간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이다.
“다음부터, 아니 지금 이 순간부터 스승님한테 말할 때는 무조건 말 높여라.”
드래곤의 미간에 힘줄이 수십 개 돋아난다.
“명령조로 들리는데, 내 착각인가?”
“착각일 리가. 명령 맞아. 그리고 이건 좀 개인적인 생각인데.”
살면서 이런 대우는 받아 본 적이 없다는 듯, 분노, 당황, 그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도마뱀의 모습이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아니, 생각할수록 웃기잖아.
“네발로 걸어 다니는 짐승 새끼가 왜 사람 흉내를 내고 있냐. 구역질 나게.”
도마뱀의 몸에서 점점 기세가 뿜어져 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날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놈에게 나는 피가 되고 살이 될 말을 건넸다.
“어쭙잖은 개 짓거리하지 말고 눈깔아, X발놈아. 쳐 죽여 버리기 전에.”
Chapter 2
발락투스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사고가 꼬였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솔직히,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할 수는 있었다.
인간 세상에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과거에 모두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저 인간 꼬마는 자기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걸 안다.
이어지는 대화를 들었으니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저런 삼류 악당 같은 대사라니.
충격은 잠시였다.
발락투스가 피식 하고 실소를 터트린다.
“하찮은 미물이 발렌타인 밀로스라는 괴물의 뒤에 숨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군. 역시, 세상은 넓고도 넓어.”
발락투스의 비웃음에 잭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피를 마시고 정신까지 회복된 샬롯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을 뿐.
샬롯의 푸석푸석했던 머리는 이제 윤기가 가득했고 상처로 가득했던 무릎은 말끔하게 재생된 상태다.
하지만, 잭의 눈에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외적인 상처는 뱀파이어의 특성으로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정신적으로는 매우 취약해진 상황.
그 잔재를 털어 버리지 않는다면 꼬맹이의 정신은 머지않아 또다시 무너질 것이다.
잭은 결국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는 샬롯을 끌어안았다.
“꼬마야. 많이 힘드냐?”
잭의 품에 안겨 벌벌 떨던 샬롯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 쪽이 축축하게 젖는 것을 느낀 잭은 ‘아, 이 꼬맹이가 눈물 콧물 질질 짜고 있구나…….’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참, 안타깝고도 불쌍한 존재가 아닌가.
손으로 샬롯의 등을 쓰다듬어 주던 잭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샬롯을 바라보는 잭의 눈빛은 따뜻했다.
잠시였지만 분명, 따뜻했다.
* * *
역시, 예상대로 꼴이 말이 아니다.
꽤 귀엽다고 생각되던 얼굴이 이렇게 엉망으로 변해 있을 줄이야.
옷소매로 꼬마의 얼굴을 다시 한번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샬롯의 고개를 발락투스 쪽으로 돌려주며 말했다.
“저놈 잘 봐. 저놈이야.”
“……네?”
“저놈이 네 동족을 죽이고 이름 모를 네 아버지를 죽이고, 네 어머니를 가지고 논 놈이라고.”
샬롯이 다시 몸을 벌벌 떤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뱀파이어의 회복력은 외상만 치유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모자라다.
샬롯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나는 빠르게 샬롯의 머리를 붙잡았다.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 저놈은 네 가족을 죽이고 이제는 너를 죽이려 하고 있어. 그런데 이렇게 계속 피하려고? 저기 침대에서 죽은 너희 어머니는 너를 어떻게 생각할까? 설마, 도망치려고? 평생?”
“저…… 전…….”
이 상황을 도마뱀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바라보고 있었고 스승님은 물끄러미, 아까처럼 그저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알아. 당장 네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걸. 그러니까 지금부터 벌어질 상황, 잘 지켜봐.”
“……네?”
“내가 널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너희 어머니만 허락했을 뿐 아직 네 대답은 듣지 못했거든. 그래서 보여 주려고. 널 책임지려는 사람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샬롯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저 글썽글썽한 눈동자에 무지개 같은 작은 빛이 스며드는 걸 보아하니, 나를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백마 탄 왕자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거참, 뭐라 설명할 길이 없네.
난 왕자가 아닌데.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도마뱀이 이 분위기에 초를 치기 시작했다.
“푸…… 푸하하하하!! 발렌타인 밀로스! 네년도 정신이 나갔구나! 저런 한심한 종자를 데리고 다니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전설이란 말인가. 이…… 이게…… 푸…… 푸하하…… 프흐하하하!!”
드래곤이 미친 듯이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라 웃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시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참고로 이 검의 역사를 말하자면, 어센블 영지로 오기 전 들렀던 조막만 한 영지의 대장간에서 무려 1골드를 주고 산 싸구려 철검이다.
딱 봐도 시가로 30실링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 거의 세 배나 바가지를 썼다.
알고도 당해 준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는 검이다.
“경고했지. 스승님한테 말할 때는 무조건 말 높이라고.”
“안 높이면 네놈이 어찌할…….”
콰앙-!
순식간에 자리를 박찬 나는 드래곤의 코앞에 서 있었다.
이어서 오른쪽 어깨가 꿈틀한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시선에 한해서였을 뿐. 드래곤에게는 아니었다.
말을 멈춘 발락투스가, 휘둘러지는 내 검을 단순히 고개를 살짝 트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회피했으니까.
“제법이구…….”
놈이 슬며시 고개를 돌린 그 순간, 나는 오른 다리에 집중시킨 2서클의 모든 마나를 오른팔로 옮겼다.
이어서 오른손에 쥐인 싸구려 철검이 허공에서 방향을 바꿨고, 순식간에 놈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진다.
스아악-!
방금 전의 일검의 속도보다 거의 다섯 배 이상 빠른 속도.
눈을 휘둥그레 뜬 발락투스가 빠르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자기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장발 머리를 지키지는 못했다.
후두둑-!
“꼴 보기 싫었는데 이제야 좀 마음에 드네.”
“이 건방진 새끼가…….”
발락투스가 황급히 손을 들고는 외친다.
“[윈드 커터]!”
5서클 마법이지만 사용자가 10개의 서클을 지닌 드래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위력은 수백, 수천 이상의 다수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준.
심지어 그 마법이 나라는 한 개체에 집중되었다.
내 몸을 아주 난도질하겠다는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다.
나는, 여유롭게 왼손을 들어 올렸다.
내 시선은 놈의 마법. 그 공식을 바라보고 있었고.
내 감각은 그 공식을 눈으로 해체하고 있었으며.
내 마나는, 그 공식을 향해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윈드 커터가 발현되려는 그 찰나의 순간.
내 주먹이, 강하게 쥐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