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05)
제 306화
* * *
엔젤라 헬은 생각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지.’
황성 복도를 걸으며 엔젤라는 조용히 한숨을 터트렸다.
이스마엘로 갔던 툴칸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오늘 제국으로 모두 복귀했다.
그런 학생들을 치하하기 위해 이스칸다르는 측근들과 함께 아카데미로 간 상황.
그 자리에 엔젤라는 참석하지 않았다.
‘황성에 있는 이스칸다르의 개인 수련장, 알지? 거기 수련장 바닥을 잘 살펴보면 비밀 문 같은 게 있거든. 거기로 한번 가 봐.’
엔젤라는 황성 복도를 지나, 이스칸다르의 개인 수련장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잭의 말대로 바닥을 천천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잭에게 이렇게 물었었지.
그곳에는 뭐가 있죠, 라고.
잭은 이렇게 말했다.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은, 그런 게 있겠지.’
머지않아 엔젤라는 발견했다.
분명, 잭이 말한 그대로 바닥에는 숨겨진 문이 있었고, 그 문이 열린 순간 지하로 가는 계단이 생겼다.
이 아래에는 뭐가 있는 걸까.
엔젤라는 망설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갔고, 머지않아 또 다른 문을 발견했다.
마치 어떤 실험실의 입구처럼 보이는 그 문을 엔젤라가 여는 순간.
“정지.”
이 말과 함께, 목에 서늘한 무언가가 닿았다.
엄밀히 말하면 목에 무언가 닿는 게 먼저였지만, 뭐가 중요할까.
엔젤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이마에 뿔 두 개가 달린 검은 가면을 쓴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의 손에 들린 길쭉한 단도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황제의 개답게 냄새 맡는 재주도 출중하군.”
그 목소리.
엔젤라는 그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놀랐다고 해야 할까.
오래전 현직에서 물러났던 마스터.
등급은 중급이며 한때 툴칸 아카데미에서 검술학부 학부장을 지내며 수많은 군사들을 통솔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분쟁을 깔끔하게 정리했던 남자.
마르셀 프루스트.
툴칸 제국에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대면 아! 그 사람? 혹은, 아 그분 참 대단했었지.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엔젤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학부장님.”
말은 안 했지만 엔젤라도 툴칸 아카데미 출신의 인재였다.
마법을 전공했지만 교양 수업 겸 부전공으로 검술도 배웠던 엔젤라.
그녀의 인사를 받은 프루스트가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엔젤라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그 남자가 한 말이 전부 맞나 보네요.”
“……그 남자?”
“있어요, 그런 남자가.”
“…….”
“현직에서 물러나고 어디서 뭘 하나 궁금했었는데 이런 곳에 계셨어요? 은퇴한 마스터들 중에 학부장님은 실종 상태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신기하네요. 이렇게 되면 이스칸다르의 세력을 다시 평가해야 될 것 같은데.”
여유롭게 너스레를 떠는 엔젤라에게 프루스트가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버르장머리 없는 년.”
“버르장머리라니, 교양 넘치시던 분께서 하시는 말치고는 너무 상스러운데. 어떻게 된 게 변한 게 하나도 없을까. 지금도 저 보면 꼴려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엔젤라는 알 수 있었다.
프루스트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져 있다는 것을.
참고로, 프루스트가 10년 전 학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배경은 헬 가문이 나섰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툴칸에 널리 퍼져 있는 프루스트의 성적 취향.
그는, 엔젤라에게도 눈독을 들였고 그 결과 강제로 은퇴하게 되었다.
이어서 엔젤라가 피식 웃는다.
“됐고요. 이거 안 치우실 거예요?”
손가락으로 단도를 슬쩍 가리키는 엔젤라가 못마땅했던 걸까.
프루스트는 고민했다.
당장, 이 검으로 목을 그어 버릴까.
“자신 있으신가 봐요? 현역에서 은퇴한 지 꽤 되셔서 마나 쓰기도 버거우실 텐데. 무리하지 마세요. 지금 지팡이 들고 다니셔야 할 나이에 무리하면 허리 아작나요.”
엔젤라의 웃음을 비웃음으로 받아들인 프루스트가 손에 힘을 주려던 그때였다.
화아악-!
콰광-!!
쿠궁-!!
엔젤라의 몸에서 거대한 살기가 터져 나오고, 프루스트가 날아가고, 이어서 벽에 박힌 채 꿈틀 떠는.
이 세 가지의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알 만한 사람들이 이렇게 멍청하게 행동할까.
초급 마스터는 9서클 마나 유저 열 명 이상을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고.
중급 마스터는 초급 마스터 다섯 이상을 가지고 놀 수 있으며 상급 마스터는.
편차가 크긴 하지만 최소.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상태일 때도 중급 마스터 두 명 이상을 가지고 놀 수 있다.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대륙의 상식.
“쯧.”
가볍게 혀를 찬 엔젤라는 기절해 있는 프루스트를 뒤로하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기운을 끌어 올렸고, 살기마저 담았다.
아카데미에서 황성까지의 거리가 꽤 되긴 하지만 거리는 의미 없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엔젤라는 여러 개의 방을 거쳤고, 머지않아 수정관으로 가득 찬 비밀스러운 방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왜냐면 멀지 않은 거리에 한 남자가 서 있었으니까.
후드를 뒤집어쓴.
그 후드로 보이는 얼굴은 검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프루스트가 쓴 가면과 흡사하지만 조금 다른.
뿔이 이마부터 위로 나선형으로 한 개가 솟아나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엔젤라는 직감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구나.
살이 조금 빠진 것 같긴 하지만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엔젤라?”
“……오빠?”
오랜만에 들어 보는 목소리.
근 몇 년 만에 들어 보는 오빠의 목소리가 맞는데 뭔가 이상하다.
위화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위화감.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엔젤라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숨겨진 장소.
실험실 입구처럼 보이던 문.
수없이 많은 문.
입구를 지키던 경비.
그리고 주변에 있는 수없이 많은 수정관.
그 안에 들어 있는 생명체.
엘프도 있었고, 오크도 있었으며, 인간도 있었고, 하피도 있었다.
그냥, 온갖 이종족이란 이종족은 다 있었다.
뿐일까.
드래곤의 피부로 추정되는 것들부터, 살들까지.
엄청난 양이 수정관에 들어 있는 채로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상황.
엔젤라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뭐 해?”
“…….”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듀크는 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후드를 뒤로 넘기고, 가면을 벗으려던 그때.
“불로불사. 그걸 아직도 포기 못 했어?”
듀크의 손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이어서 가면을 벗은 듀크 헬.
그의 얼굴을 본 엔젤라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너무, 추악했으니까.
“……그거야? 충성의 대가가 그거냐고.”
“보기 나름이지.”
“마나 서클은 죄다 부서졌고, 인간의 몸이 아닌 그런 상태에서.”
잠시 말을 멈춘 엔젤라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이런 밀실에 처박혀 이상한 실험이나 하는…… 그딴 걸 하려고 엄마 아빠를 죽였어?”
“……두 분은 내가 가려는 길에 방해가 됐을 뿐이다.”
엔젤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조절이 되지 않았다.
분노가 정신을 장악하고, 마나를 끌어 올려 이곳을 당장이라도 초토화시키고 싶었던 엔젤라는.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듀크 헬이.
그 앙상한 몸으로.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그 흉측한 몸으로 코앞에 있던 수정관을 감싸 안았으니까.
마치 그걸 지키고 싶다는 것처럼.
그 모습에 엔젤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오빠인 듀크 헬에게는 황태자가 전부인 걸까.
이스칸다르가 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길래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걸까.
그 순간이었다.
오싹 하고, 엔젤라의 등골이 울린다.
“조금은 섭섭하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엔젤라와 듀크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듀크의 표정은 밝아졌고, 엔젤라의 표정은 굳어졌다.
“원정을 떠났던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가지 못했던 학생 모두를 격려하는 자리였네. 자네와 내가 가는 길이 다르긴 해도 툴칸을 위한다는 그 일념만큼은 같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던 것처럼.
이스칸다르의 모습은 그냥 그 자체로 위화감이 들었다.
이스칸다르가 웃으며 말한다.
“이런 곳에 있었군.”
찌릿하고, 온몸에 전기가 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엔젤라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그가 주변에 있는 수정관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간다.
어느 때는 웃으면서, 어느 때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러다 마지막, 수정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 실험했던 그 드래곤을 아시는가?”
“……알죠.”
“이 수정관에 있는 것은 그 드래곤의 신체 중 남은 부분들이네.”
정확한 부위는 오른쪽 눈, 뿔 세 개, 왼쪽 다리, 오른쪽 팔.
이렇게 네 종류였다.
한동안 잡담을 이어 가던 이스칸다르가 주변을 여유롭게 걸어 다니며 마치 지나가듯, 툭 던지듯 말했다.
“녹화 수정구라고 하더군. 혹시 보셨는가?”
“……봤으면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 그거, 굉장히 나쁜 버릇이야.”
뜬금없는 말에 엔젤라의 눈이 꿈틀한다.
여하튼.
“연합의 대표로 다섯 왕국의 머리가 되겠다…… 그것도 힘으로 되겠다고 하더군. 잭 발란티에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는가?”
“제가 알아야 하나요?”
이스칸다르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이지.”
“들어나 보죠.”
이스칸다르가, 비어 있는 책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는가?”
정말 지나가듯 던진 그런 말이었다.
“귀족들을 선동해 나를 따르는 몇몇 귀족들과 상잔시키려는 그대의 계획을 나는 안다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왜 가만히 두었는지 알고 있는가?”
“글쎄요.”
“듀크 헬이 저런 모습이 된 이유는 내 잘못이 커. 그걸 다른 이도 아닌 ‘그대’가 짚고 넘어간다면 나는 그게 무엇이든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했네. 그래서 가만히 두었어.”
이스칸다르가 특유의 자애로운 웃음을 짓는다.
“내가 듀크를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헬 공작과 공작 부인이 죽음을 맞이한 것. 그래, 분명 그건 내 잘못이야.”
이번에는 슬픈 듯한 어조였다.
마치 무지갯빛을 내는 공작새의 깃털처럼, 어조를 이리저리 바꾸고 분위기도 이리저리 바꾸는.
이스칸다르는 진정한 의미의 마법사와도 같았다.
“사과를 하라면 하겠네. 그대가 하려던 일 전부,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네.”
“…….”
“여기에 있는 이 수정관들이 ‘불로불사’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야.”
“……그럼 뭐죠?”
“듀크의 몸을 자세히 보았는가?”
힐끗 뒤쪽을 바라본 엔젤라가 다시 이스칸다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불로불사? 전에는 관심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 왜냐면 이런 실험으로 마나 유저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 수정관과 이 실험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간단하네. 듀크의 몸을 원상복구 시키기 위해서. 그게 전부네.”
이스칸다르는 연기를 잘한다.
정말, 연기를 잘한다.
진실 속에 거짓을 섞으면, 거짓도 진실이 되기 마련.
이스칸다르는 그것을 잘했다.
엔젤라를 원래라면 죽여야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의 힘이 필요했으니까.
잭이 이스마엘 왕국에서 거대한 마귀를 소환하고 수십 개의 거검을 땅에 꽂아 버리는 그 말도 안 되는 모습을 지켜본 이가 있다면.
이런 반응은 적절한 반응이었다.
엔젤라에게 이스칸다르가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는가.”
이스칸다르의 웃음이, 엔젤라의 머리에 각인된다.
“엔젤라. 나는 자네가 필요해. 내 사람이 되어 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