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16)
제 317화
이어서 눈앞에 거대한 ‘신전’이 보였다.
플랭크가 그 안으로 들어서려는 그때, 나는 자리에서 멈췄다.
“대답은 하고 가야지.”
그가 몸을 돌린다.
“무슨 답을 듣고 싶은 거지?”
그대로 뒷짐을 지었다.
“무슨 답을 듣고 싶냐고? 모르고 물어본 건 아니지? 그럼 실망인데.”
“……그래, 내가 만들었고 내가 개량했다. 노아가 어떤 자식을 낳았는지, 그 두 자식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든 것을 보고받았다.”
그랬구나.
“이것도 한번 대답해 봐.”
“……궁금한 게 참 많구나. 버릇도 없는 거 같고.”
이번에는 실소가 아니라, 폭소를 터트렸다.
난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 섬에서 일어난 모든 일,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내 모든 행동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과연 무엇을 본 걸까.”
“…….”
“어머니가 숨겨 두신 일기장이 있었어. 거기에 이런 말이 있더라. 그날 보고야 말았다고.”
슬쩍 품에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어머니가 본 내용, 그 내용은 정확히 이러했다.
-4월 14일. 나는 ‘그날’ 절대 봐서는 안 될 성소의 비밀을 보고야 말았다.
그런 비밀이 있었는지, 이게 이토록이나 추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숭고한 희생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역겨워.
역겨워서 구토가 나올 것 같고, 추악해서 머리가 썩는 것 같다.
정말로 구역질이 난다.
이 섬을 떠나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떠나야 한다.
할아버지께 거래를 제안했고 성공했다.
머지않아 나는 이 섬을 떠나게 된다.
이 일기를 남기는 이유는.
나를 그렇게나 괴롭히던 내 하나뿐인 오빠에게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걸 만약 오빠가 보게 된다면 동생으로서 충고 하나 해 줄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무슨 수를 써서든 도망쳐.
그러지 않으면.
너도 ‘그렇게’ 될 테니까.
“왜 이런 말을 남겼을까.”
“…….”
“글에서 공포가 느껴지더라, 정확히는 그 이상이었어. 이 글만 봐도 짐작이 갈 정도로. 그런데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가지 의문이 생겨. 뭔지 알아?”
“흥미롭구나. 말해 보거라.”
못 해줄 것도 없지.
“우선 첫째. 외삼촌한테 어머니가 한 마지막 경고, 너도 그렇게 될 거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플랭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이건 굳이 답을 바라지도 않은 질문이었다.
“두 번째. 왜, ‘할아버지’일까.”
플랭크의 눈매가 꿈틀한다.
말이 두 가지였지, 실질적으로는 한 가지였다.
왜냐면 이 한 가지가 두 가지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이 한 가지가 어머니가 두려워했던 이유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당신은 어머니의 아버지, 즉 나한테는 할아버지야. 그런데 어머니한테 할아버지는 당신이 아니잖아. 당신 위, 그러니까 ‘플랭크 군나르’의 아버지.”
일기장을 손에 들고 가볍게 발화 마법을 펼쳤다.
화르륵 하며 일기장이 타오른다.
나는 가능하면 과거의 진실이나 그런 것들을 숨기지 않는다.
회귀자라는 것을 세상에 떠벌리고 다니는 것? 상관없었다.
왜냐면, 아는 놈들이 생겨도 상관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르다.
이건 ‘우리 가족’의 일.
‘내 핏줄’의 일. 더 나아가 우리 스승님과도 관련되어 있고 우리 누나랑도 관련이 되어 있는, 세상에 떠벌리고 다닐 필요가 없는 이야기.
내가 회귀를 했다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에 퍼트려도 별 상관이 없지만 이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떠버리 새끼여도, 지킬 건 지킨다.
“도관의 주인을 정하는 자리에는 현재의 도주와 미래의 도주가 함께 성소로 향한다고 했지. 그리고 그 성소에서 한 명만 내려온다 했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성소로 들어가고 내려온 ‘현세대의 도주’ 말고는 아무도 몰라.”
일기장은 완전히 타 버렸고, 바닥에는 재가 떨어졌다.
“다시 보자고. 일기장이 작성된 날짜는 4월 14일. 그런데 새로운 도주가 탄생한 날짜는 4월 11일, 즉 4월 11일 이후로 도관의 주인은 바뀌었어. 어머니의 할아버지에서 어머니의 아버지인 당신으로. 그런데 왜 어머니는 ‘할아버지랑 거래’를 했다고 했을까. 4월 14일, 그 날 도관의 주인은 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아버지일 텐데.”
바닥에 떨어진 재가, 바람에 따라 흩어진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플랭크를 무시하고, 신전 앞 거대한 기둥으로 다가갔다.
무슨 말이 하고 싶냐고?
“야.”
“……처음에는 그러려니 해도, 이제는 슬슬 그 반말이 듣기 거북해지는구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연기는 그 정도만 하자. 알 만한 사람끼리.”
그대로 기둥 아래 튀어나와 있는 넓은 돌덩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주저앉았다.
“살면서 많은 놈들을 봐 왔어.”
“많은 놈?”
“귀족 자리에 앉기 위해 동생을 죽이고 형을 죽이는 놈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생판 모르는 이들을 갈아 넣으려는 권력자들. 불로불사라는 인과율을 비트는 실험에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놈들, 그리고 대륙의 모든 마나 유저를 죽이고 스스로 신이 되려는 미친놈까지. 그런데 그 많은 놈들도 개새끼지만 너만 한 개새끼를 나는 본 적이 없어.”
“…….”
다리를 꼰 채로 한쪽 손으로 턱을 짚었다.
“처음 심상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고 네가 뭐라고 했었더라.”
“…….”
“플랭크 군나르라고, 소개했었지.”
분명 그렇게 스스로를 소개했었다.
“제대로 소개하는 게 어때?”
플랭크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누군가 그러더군. 남에게 이름을 물을 때는 스스로의 이름부터 밝히는 게 예의라고.”
“맞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럼 나부터 소개할까. 난 잭,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후의 미래에서 회귀했어.”
“……회귀?”
“어, 회귀.”
이제 너도 주둥이 털어 보라며 다리를 까딱였다.
아, 잠깐만. 그 전에.
“나한테 소개하지 말고, 우리 스승님한테 말해.”
“…….”
“왜, 하기 겁나? 대신 해 줄까?”
플랭크 군나르의 입꼬리가 꿈틀, 떨려 온다.
보니까 조금 화가 난 듯.
그런데 왜 이런 걸로 화를 내고 그래.
그냥 내가 해 줄게.
“400년 전에 사라졌던 영웅이 후손의 몸을 빼앗으며 오래도록 살아 있었구나. 만나서 반갑다. 아서 군나르.”
* * *
400년 전.
모든 게 끝났던 그때 발렌타인은 한 남자에게 물었다.
“어디로 간다고요?”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
“왜 가려고 하는 건데요. 군나르 제국은 멸망하지 않았어요. 오빠가 중심이 되어 주시면 되는 거잖아요.”
말투만 보면 되게 어색해 보였겠지만 아니었다.
당시 발렌타인의 나이는 고작 29살.
눈앞의 아서 군나르는 37살.
둘은 의남매였다.
“율리우스가 있잖아.”
“율리우스는 왕의 그릇이 아니에요. 보기와는 다르게 욕심이 많으니까.”
아서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너의 말이라면 듣겠지. 녀석은 너를 아주 끔찍이도 사랑하니까.”
“…….”
하늘에는 구름이 보이고, 그 아래에도 구름이 보이는 엄청난 높이의 산맥.
이곳을 사람들은 강철 산맥이라 부른다.
그 산맥에서 아서는 말했다.
“군나르는 영광의 시대 이전에 존재한 국가, 인간들만의 세상이 새롭게 도래했는데 과거의 유물이 자리 잡아서야 쓰나.”
“…….”
“도관의 이들을 데리고 사라질 거야. 그 누구도 모르는 곳, 그런 곳에서 정착하고 그렇게 살아가다 죽으려고.”
“정말요?”
아서가 슬쩍 웃는다.
“글쎄, 가능하면 인간으로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그런 걸 한번 이뤄 보고 싶은데, 될지는 모르겠네.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그냥 죽는 거고. 너는?”
“잘 모르겠어요.”
아서는 알고 있었다.
발렌타인이, 율리우스 테슬란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한두 번쯤은 기회를 줘 봐. 혹시 모르지, 너도 율리우스를 좋아하게 될 수도.”
발렌타인은 회의적이었다.
“전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게 서툴러요. 어릴 적 트라우마라고 해야 하나. 오빠도 아시잖아요.”
“알지. 버림받은 과거, 그런데 너만 버림받은 게 아니잖아. 나도 군나르 황실에서 버림받았는데.”
발렌타인이 싱겁게 웃었다.
“오빠는 뛰쳐나오신 거고요.”
아서가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난 떠날 거다.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이것만 알아 둬. 난 후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려고. 대륙과 관계를 맺지 마라, 하지만 대륙에 그 누구도 막지 못할 재앙이 닥친다면 그때 도관은 선봉에 서서 대륙을 구하라…… 뭐 이렇게.”
아서는 웃고 있었다.
“최악의 장치는 내가 마련할게. 좋은 세상은 남은 이들이 만들어 주겠지. 너도 그렇게 해 줄 거라고 믿어. 왜 그렇게 쳐다봐?”
“…….”
“나도 알아. 나 잘생긴 거. 그럼, 잘 살아라.”
그게 마지막이었다.
발렌타인의 기억 속 아서는 그런 남자였다.
믿음직했고, 책임감이 확실했으며 의지마저 뛰어난.
그 이후 발렌타인은 율리우스 테슬란과 함께 테슬란 제국을 건국했고, 계속해서 구애하는 테슬란에게 결국 마음을 열게 되었다.
거기까지였다.
마음만, 열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오히려 율리우스가 발렌타인을 배신했으니까.
전우이자 친우가 권력에 눈이 멀고 탐욕에 눈이 멀어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발렌타인이다.
그렇게, 발렌타인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잭이 나타나기 전까지.
* * *
[아서, 정말 아서인 것이냐?]“이젠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는구나.”
스승님의 눈은 슬퍼 보였다.
진심으로 슬퍼 보였다.
차마 그 이상의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여전히 눈썰미가 좋더구나. 이런 모습이 되었는데도 알아보고.”
플랭크 군나르, 아니 아서 군나르는 달라졌다.
분명 아까까지의 해탈한 노인 같아 보이던 모습이 아니었다.
이건 마치 여유.
그 이상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후손의 몸을 빼앗은 것이냐.]“그래.”
[흑마법으로?]“글쎄. 영감은 흑마법에서 따왔지만 본질로 따지면 ‘혼기’라고 해야겠지. 너도 알다시피 혼기는 쓰는 이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지니까.”
스승님이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도관에 마스터들이 많았던 이유는 너의 그릇을 담을 수 있는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느냐. 대전사라는 직책과 후손의 피를 이용해 마치 말들을 교배시키듯, 더 나은 재능을 만들어서 너의 그릇으로 삼는…… 그렇게 살아온 것이냐.]아서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잡종 새끼가 뭐라 하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야.
하지만 스승님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