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32)
제 333화
악수를 건네려다 힘겹다는 듯 그냥 팔을 내려 버린 잭을 안토니오는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잭의 저 말은, 이미 사용하고 싶은 ‘성’이 마음속에는 있다는 것처럼 보였거든.
마치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듯.
사용하고 싶은데 아직은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뉘앙스의 말.
분명 안토니오는 그렇게 느꼈다.
‘이 남자, 확실히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개차반은 아니야.’
개인의 힘이나 개인의 입지, 분위기 같은 것은 이미 정상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지만 어렸다.
선입견 같은 그런데 아니라, 그냥 어렸다.
이게 그렇게 보면 안 되는데 조금은 어리숙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롬멜 총장이 느꼈듯, 안토니오도 느꼈다.
이 남자는, 더 성장하겠구나.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겠구나.
분명 안토니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낚는 물고기마다 다 놓아주면 무슨 맛으로 낚시를 합니까?”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묻는 잭이었다.
안토니오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게 낚시의 맛이지요.”
“……?”
“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쉽지 않은, 실제로 낚아도 결과물을 보고 싶지 않은, 어떤 결과물일지 알고 있지만 굳이 꺼내서 확인하고 싶지는 않은, 다시 전과 같은 기다림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런 거요.”
잭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몰랐네요. 낚시의 세계가 이렇게 오묘할지.”
“어리셔서 그런 겁니다.”
한 방 먹었다는 듯 잭은 박장대소했고, 잭의 어깨에 앉아 있던 발렌타인도 희미하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 * *
그날 저녁, 요람 왕성에서 연회가 열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지만, 연회를, 그것도 국왕이 주최한 연회다.
심지어 안토스 요람이라는 대공 가문의 적장자가 살아 돌아왔다는 소문도 퍼진 상태다.
요람 왕국의 모든 귀족이 왕성으로 모이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연회의 시작은 18시.
현재 시각은 17시 20분.
엘리자베스는 국왕 데이다미아와 독대 중이었다.
데이다미아는 사족을 붙이고 시작했다.
“왕국 연합의 수장으로 잭 발란티에가 취임하는 것을 나는 반대하지 않아. 사실 반대하는 게 이상하지. 그는 정말로 대단한 남자니까.”
잭의 녹화 수정구를 본 이들이라면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다만, 그것과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요람 왕국이 대륙 지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2면으로는 바다, 1면으로는 툴칸, 1면으로는 가나안과 마주하고 있어. 작긴 하지만 마수의 숲과도 닿아있지. 참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 그러니 ‘좋은 명목’으로 ‘병력’을 국토 부근에 배치시키는 게 어떻겠는가. 당연히 연합의 이름으로.”
“그리고 대륙전장과 밀접한 관계라는 이야기는 들었네. 다만 이 대륙전장의 수수료라는 게, 국가의 재정상 줄여야 하지 않나 싶어. 우리는 견제해야 할 세력이 많으니까.”
“앞서 말한 것의 연장선인데, 왕국 연합이 하나로 묶이려면 일단 기존에 생겼던 작은 분쟁 같은 것을 미리 정리해야 하지 않겠나? 가나안과 국경 부근에서 지속적으로 마찰이 일어나고 있어. 이 부분을 중재해 주었으면 하는데.”
등등.
데이다미아는 요구사항이 많았다.
사절단인 엘리자베스가 수용할 수 없을, 그런 요구사항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엘리자베스의 태도였다.
“좋아요.”
“좋습니다.”
“괜찮네요.”
“아, 그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이게 오히려 ‘요람 왕국’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 같은데요.”
다른 이가 보았다면 엘리자베스는 요람의 사람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독대하는 데이다미아는 숨기지 못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호탕하게.
정말 행복하게 웃었다.
좋구나.
‘이렇게 요람이 한 번 더 비상하겠구나.’
참고로 나쁜 정치인의 첫 번째 소양은 공수표를 남발한다는 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공수표를 남발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말이네. 내 한 가지 궁금했던 게 하나 있어.”
“말씀하시지요.”
“자네, 혼처는 정해졌는가?”
엘리자베스의 입가가 슬며시 호선을 그린다.
“아직입니다.”
“그래? 그거 참 아쉽군. 내 국왕이 아닌 아비의 입장에서 말하면 여자는 자고로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해. 아니 그런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때였다.
마치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밖에서 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데이다미아는.
“내, 주변을 무르라 하지 않았느냐!”
왕성이 떠나갈 정도의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데이다미아에게는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지금 눈앞의 일이 가장 중요한 듯 보였다.
그 정도로 엘리자베스의 목소리에는 흡입력이 있었고 데이다미아는 그 대화에 푹 빠져든 것이다.
결국 문을 두드렸던 남자는 물러났다.
그건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환기로 이어졌고, 데이다미아는 자애롭게 웃으며 물었다.
“혹, 우리 왕세자는 어떤가?”
오리온 요람, 데이다미아의 첫째이자 정통한 왕위 계승자라 불리며 방탕하기가 대륙 전체에 소문이 난.
명실상부한 망나니였다.
이번에도 엘리자베스는 뜻밖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오리온 왕세자라면, 결단력이 있고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을 보는 굉장히 대단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자고로 자식 칭찬하는데 싫어할 아비는 없다.
데이다미아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이 망나니짓을 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는, 그냥 그런 아버지였다.
“그렇지. 잘 알고 계시는구만.”
“아무렴요. 그런데 그런 분에게 고작 저따위가 잘 어울릴지…… 폐하, 저는 오히려 걱정이 앞섭니다.”
“어허. 뭐 그런 말을 하시는가. 그러면 정식으로 혼담을 넣으면 긍정적인 대답이 올 거라 내 생각해도 되겠는가?”
엘리자베스가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나쁜 정치인의 기본적인 소양 두 번째. 남발한 공수표는 지키지 않는다.
뭐든 오케이라며 이야기를 하는 엘리자베스는 평상시와 매우 달랐다.
하지만 데이다미아는 생각해야 했다.
독대를 하는 자신에게 급한 듯 다가온 남자는 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혹여, 그 남자가 가지고 올 소식이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일’ 때문이 아닐까.
연회가 시작되기 전 이미 수도로 도착한 수많은 귀족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데이다미아는 분명 생각해야 했다.
눈앞의 엘리자베스에게 정신이 팔리기 전.
반드시 생각했어야 했다.
* * *
인간은 어리석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그런 생물이니까.
17시 30분.
엘리자베스가 데이다미아 국왕과 독대를 하고 있을 때, 안토스는 수많은 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대공 가문과 관련이 있는 이들.
어릴 적 안토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선물을 주고, 덕담을 건넸던 이들.
왕의 권력이 강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추에서 밀려났던 이들.
대공 가문의 참사를 개인적으로라도 조사하려 했지만 왕에 의해 조사 자체가 막혔던 이들.
좌천되었던 이들.
그들의 수는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우선 왕성 내부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을 정도의 귀족은 총 19명.
즉 19개의 영지.
그리고 왕성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수백이 넘는 기사와 그와 비슷한 숫자의 마법사들.
그들은 과거 제라스 대공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이었다.
그들뿐일까.
대공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젊은 상인을 비롯한 행정가들. 그리고 구경꾼들까지.
그들의 숫자는 무려 수천에 달했다.
제라스 대공이 일반적인 귀족이었다면 절대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진짜 귀족.
귀족임에도 왕다웠고 평민다웠으며 공평했던 인물.
제라스는 그런 남자였고, 그렇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 정도의 인파가 왕성 주변으로 몰린 상황에서, 그 주인공인 안토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엘리자베스와의 대화였다.
요람으로 오기 전 배에서 엘리자베스와 나눴던 대화.
‘결정했니?’
‘예, 결정했습니다. 안토스 요람, 그 이름을 사용하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 주면 될까?’
‘연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데이다미아를 한 곳에 묶어 주십시오.’
‘그거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 안토스가 조금 무리하는 듯해 보였을까.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곁을 지키던 세 명의 마스터를 안토스에게 붙여 주었다.
그리고 지금 데이다미아를 무리 없이 묶어 두는 중이다.
안토스는 고개를 들었다.
요람 왕국의 근위기사단장 릭스비.
요람의 남부 지역을 다스리는 도노반 백작.
요람의 가장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동쪽 지역 툴칸과의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미스트 후작.
그리고, 요람의 해군 병력을 통솔하는 다르미안 공작.
그 외 등등.
그들 모두를 바라보며 안토스가 말했다.
“대공 가문이 왜 멸문했는지. 그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아직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을 시각이지만 시종들은 없었다.
정말 귀족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런 연회장.
“직접 들으십시오.”
안토스가 고개를 들어 근위기사단장 릭스비를 바라보았다.
20분 전, 안토스는 그에게 말했다.
‘한 남자가 올 겁니다. 제가 신호하면 그 남자를 안으로 데려와주십시오.’
지금 안토스는 그 신호를 보냈을 뿐이다.
릭스비가 고개를 돌려 근위기사단에게 손짓했다.
한쪽 문이 벌컥 열리고.
그곳에서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짧은 수염. 굵은 눈썹과 구릿빛 피부.
그는 용병처럼 보였다.
그를 알아본 몇몇 이들이, 작게 중얼거린다.
“……누구지……?”
“……낯이 익은데…….”
잭은 회귀를 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발란티에 후작가를 떠났다.
발렌타인을 만나러 가던 중 만났던 용병단.
불개미 용병단의 단장 존 도.
그는 헤어지기 전 잭에게 스스로의 본명을 밝혔다.
디나스티스모.
그는 대공 가문을 몰살시킨 주범으로 지목된 상황.
그런 그를,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은데, 역시 못 알아보시는군요.”
변조 없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몇몇 이들이 아! 하는 표정을 짓는다.
“디나스티스모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자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완전한 침묵.
안토스는 오래전 다짐했다.
원수를 갚겠다고.
가족을 죽인 이들과 관련이 있는 이들을 찾아서 전부 죽이겠다고.
그것을 위해 검을 단련했고 자연스럽게 대륙최강의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옳은 걸까.
혹시 나는 사실 시간이라는 것에 숨어 현실을 외면했던 게 아닐까.
잭은 남들이 못 하는 일, 감히 생각지도 못 하는 일을 손쉽게 벌이고 해낸다.
신체의 나이는 어리고 강한 힘을 쓸 때마다 쓰러지는 그 모습은 단순히 강하다는 단어 하나로 정리될 게 아니었다.
그것은 숨지 않는 자의 모습이다.
시간에 숨어 미래를 기약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정반대되는 모습.
안토스는 그걸 깨달은 거다.
요람 왕국에서의 안토스는 잭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먹기에 따라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잃는 것이 있을지라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시간이라는 것에 숨지만 않는다면.
안토스의 검은, 지금이라도 요람 왕국 그 누구에게든 겨눠질 수 있다.
대공 가문의 적장자니까.
안토스는 그저,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할 뿐이었다.
잭에게 그렇게 배웠으니까.
“오늘, 요람의 많은 역사가 바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