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81)
제 382화
* * *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가장 넓은 곳으로 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작센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줄을 움직인 것은 느껴졌다.
로렌초의 걸음은 빨랐다.
빠를 수밖에.
왜냐면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거든.
이건 오크들 마을로 들어섰다는 뜻이고 로렌초가 한낱 애완용 짐승이 되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쪽팔리겠지, 부끄러울 거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눈을 감고, 로렌초의 머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것도 일종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생에서 내가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수많은 싸움을 하며 만든 나만의 휴식 기술.
예컨대 그런 거다.
잠을 자면서도 밥을 먹는다거나.
쓰러진 상황에서도 살기를 감지한다거나.
자는 상태에서도 반경 수십 미터의 모든 움직임을 감지한다거나 하는 그런 거.
이건 단어만 다를 뿐 같은 행동이다.
나는 지금 잠을 자면서 주변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어서 느껴진다.
작센이 가장 먼저 걸음을 멈추고, 곧바로 로렌초도 자리에서 멈춰 섰다는 것을.
그에 맞춰 내 눈도 떠졌다.
시야에 보인다.
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숫자의 오크들이.
숫자로만 따지면 최소, 5만? 모르겠다.
수십 미터 반경에 빼곡하게 차 있었고, 그 뒤쪽으로도 빼곡하게 차 있는 걸 보니 더 많은 거로 추정이 되는데.
어쩐지, 이동할 때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계속 커지더라.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오크들이 뒤를 따라 여기까지 왔나 보다.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울창하게 솟아나 있는 숲.
그 숲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오벨리스크 같은 긴 건축물.
이게 언급은 안 했던 건데, 오크들의 건축 양식은 인간들의 기준으로 보면 되게 특이했다.
저 긴 건축물을 층으로 나누고 그 안에 오크들이 거주하는데, 사실 집이라는 게 그렇다.
그 나라 그 지역의 기후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가장 잘 배어들어 있는 건축 문화.
오크들의 건축 문화는 저 오벨리스크로부터 시작되었다.
저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층으로 나누고 층마다 오크 세대가 들어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혁신적인 구조.
그 오벨리스크가 수도 없이 박혀 있는 이곳은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 오크들의 수도에서 꽤나 떨어진 도시.
이름이 아마 ‘오스쿠로스’ 였던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 이곳은 오크들의 영토 중에서 단일 영지로는 가장 큰 넓이를 자랑하지만 대부분이 황무지였고 근처에 산맥을 두 개나 끼고 있는 굉장히 척박한 지형이어서 이곳 오스쿠로스는 오크들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지역이다.
고개를 들었다.
저물어 가는 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달.
나를 올려다보는 수만이 넘는 오크.
천천히 몸 내부를 점검했다.
두통은 일단 사라졌고.
심장은 적당한 주기로 뛰고 있었으며, 팔다리는 멀쩡했다.
그리고 영혼.
살짝 건드려 보자 반항하듯, 찌릿하고 통증이 올라온다.
주객이 전도된 게 이런 경우가 아닐까.
내 영혼이 말하고 있었다.
혼기는 끌어다 쓰지 말라고.
속으로 웃고 말았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이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이걸 잊고 있었다.
전생에서 나는 항상 이랬는데, 이 감각을 잊고 있었다니.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경고를 무시하고, 영혼의 문을 열었다.
쿠궁-!!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죽인다.
이 자리에서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챈 사람은 정확히 두 명이었다.
작센과 스승님.
감각을 확장시켰다.
가장 먼저 오크가 느껴진다.
이 마수의 숲 전체에 거주하는 수백만의 오크.
정확한 숫자는 298만 4천 828.
그다음 느껴지는 것은 하피였다.
숫자는 138만 5천 821.
그다음으로는 엘프가 느껴진다.
249만 3천 229.
드워프 20만 4천 920. 뱀파이어 3만 2천.
트롤은 제외했다.
그리고 샬롯도 제외했다.
그 외의 모든 존재.
마수의 숲 외곽에서 숨죽인 채 숨어 있는 두 마리의 드래곤까지. 그 모두를 대상으로 삼았다.
천천히 오른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그에 맞춰 마수의 숲 전체가 우웅하고 떨리기 시작했다.
땅이 울린 게 아니라 그곳을 지나는 마나가 울고 있는 거다.
의념을 보냈다.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데려오라고.
“[매스 텔레포트].”
엄청난 양의 빛무리가 사방을 덮었다.
* * *
귀도를 비롯한 그의 친위대는 숲속에서 자리를 잡은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확히는 귀도와 그의 친위대장인 퀸투스 단둘이 마시고 있었고 나머지는 주변을 경계하는 그런 상황.
둘 사이의 알 수 없는 침묵은 머지않아 귀도에 의해 깨졌다.
“그동안 즐거웠네.”
“……예?”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의 죄는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어.”
굉장히 뜬금없어 보이는 말이었고, 그걸 듣는 퀸투스는 보통의 엘프가 보일 법한 반응을 보였다.
매우 당황한 표정,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주변에 누가 있건 완전하게 전해질 의문이라는 감정전달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고 완벽했다.
퀸투스가 물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전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네.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어 온다든지, 드래곤의 동선을 지나치게 잘 아는 것부터 시작해서 묘하게 우리 엘프를 드래곤의 지배 아래에 스며들게 만든…… 생각하면 할수록 자네밖에 없어.”
“…….”
“자네 덕분에 얻게 된 것도 있지만 잃은 게 더 많아. 자네는 드래곤의 측근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족을 희생시켰나?”
“…….”
“대답하지 않겠다? 좋아. 사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귀도는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을 터트렸다.
왕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미심쩍었던 게 확실하게 와 닿았다.
드래곤들이 외부의 소문에 어두웠던 이유는 그만큼 내부에 신경 쓸 게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 손에 죽은 이들이 많은가. 아니면 엘프와 오크의 대립 구도를 만들기 위해 마찰을 가장해 희생시킨 이들이 더 많은가? 이것도 대답하기 어려운가?”
퀸투스는 답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약 10초.
그 정도 눈을 감고 있던 그가 피식 웃으며 눈을 뜬다.
“어쩐지, 대낮부터 술이나 처마시자고 하더니 이런 꿍꿍이였습니까?”
귀도는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꼰 채로.
그런 귀도를 바라보던 퀸투스는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
에휴.
“예. 제가 드래곤의 첩자였습니다. 저 말고 당신의 친위대 중 궁내관을 제외한 모두가 첩자입니다. 당신의 지배력, 당신의 영향력, 당신의 그 카리스마. 제가 없었어도 언젠가 당신은 엘프들의 중심이 되어 엘프들을 이끌었을 겁니다. 그런 당신을, 저는 더 빠르게 왕으로 만들어 준 겁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귀도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아니라 드래곤이 만든 거지.”
“그게 중요합니까?”
면상에 쓰고 있던 가면을 집어치운 퀸투스.
그의 얼굴에는 욕심이 서려 있었다.
차마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그런 욕심.
그런 퀸투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귀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내 나름 자네에게 어울리는 벌을 생각해 봤어.”
피식.
“미쳤군. 설마 그 인간이 정말로 모든 드래곤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사형은 확실한데 어떻게 죽여야 할까. 그걸 고민했는데 마침 답이 나오더군.”
“발렌타인 밀로스? 과거의 영웅? 개소리지. 과거는 미화되고 조작되기 마련. 하물며 한낱 인형 따위가 된 그년이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나. 두 로드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 순간 잭이라는 그 인간은 그 즉시 소멸할 터.”
둘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는 듯했다.
서로가 서로의 할 말만 하는.
상대의 말은 전혀 듣지도 않는.
퀸투스는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귀도를 여기서 죽여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비는 해왔다.
귀도의 주변에 있는 모든 친위대들은 귀도의 사람이 아닌 내 사람이니까.
퀸투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엘프가.
고서클 마나 유저를 비롯해 초급 마스터가 한 명 포함되어있는 그 모든 엘프가 기운을 끌어올렸고 활을 겨눴다.
엘프 로드, 바르바라 귀도를 향해.
귀도가 아무리 중급 마스터여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9서클 마나 유저가 20명, 초급 마스터가 한 명 그리고 중급을 눈앞에 둔 중급(진) 마스터인 본인까지 이 정도의 전력이면 충분히 귀도를 죽일 수 있다.
이 이후에는 어찌할까.
미리 계획했던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족은 다 떼고.
나 퀸투스는, 오늘부터 새로운 엘프 로드가 되어 통치를 한다.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오르고 자연스럽게 귀도를 제외한 모든 엘프들의 찐득한 살기가 숲을 덮었다.
그 중심에서 여전히 여유롭게 앉아있던 귀도가 작게 읊조린다.
“드래곤 우상 주의자…… 전부터 느낀 거지만 확실히 그건 정신병에 가깝군.”
귀도는 여유로웠다.
하나하나가 전부 9서클 마나 유저에, 눈앞에 있는 퀸투스까지 총 두 명의 초급 마스터가 있었음에도 여유로웠다.
귀도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퀸투스가 방금 전까지 마시던 잔을 가리켰다.
그걸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린 퀸투스는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쿨럭-!!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뭔가.
이상하다.
잘못됐다.
“자네도 모르던 사실 하나를 알려 주겠네. 어렸을 때 자네를 만나기 전의 나는 이무기와 싸웠던 적이 있었어.”
“……쿨럭”
“이무기의 뇌 그 안쪽 깊은 곳에 ‘핵’이 있는데, 이 핵을 섭씨 2500도가 넘는 용암 같은 곳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뭐냐,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쿨럭.”
귀도는 고개를 저으며 할 말만 했다.
“손톱 크기만 한 핵은 분해되고 또 분해되어 액체가 된다네. 아이러니하겠지만 정말이야. 여기서 재미있는 게 뭔지 아나?”
알 턱이 없다.
하지만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귀도가 느긋하게 말을 잇는다.
“그 액체는 말이네, 만약 마나 유저가 먹게 되면 참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
“안타까운, 일?”
“딱 두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냥 마저 말해주겠네. 마나 유저가 그 액체를 마신다면 그 액체는 머지않아 마나 유저의 신체 내부에 있는 모든 마나 회로와 장기를 녹여버리고 마지막으로 폭발, 하더군.”
“……설마.”
귀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륙에 아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최초 발견자’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방금 자네가 먹은 그 술에 그 핵이 통째로 들어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