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86)
제 387화
달빛을 등진 둘의 모습은 말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나무 둥치에 기대 숨을 헐떡이고 있는 블랙맨과 그 옆에 있는 빌레아.
둘의 신체를 치료해 주던 다른 오크와 하피들조차 치료를 멈추고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발렌타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잭의 이마를 짚는다.
[혼자 짊어지지 말거라.]제자가 지친 상태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걸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는 스승은 스승이 아니다.
발렌타인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뭉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 기운은 색이 바래지듯 하얗게 변했으며 순식간에 잭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피골이 상접해 있던 잭은 느꼈다.
몸에 활기가 돋았고, 두통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동시에 발렌타인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녀가 말했다.
[같이 짊어지자꾸나.]“스승님…….”
발렌타인은 자신의 선천지기를 잭에게 나눠 주었다.
스스로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잭에게 넘겨준 거다.
[뭘 그리 걱정스럽게 바라보느냐.]발렌타인의 웃음이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내 수명은 네 녀석이 늘려 줄 텐데.]약간의 장난기 어린 그 모습.
발렌타인 스스로는 생소했겠지만 잭에게는 아니었다.
잭이 지금 보이는 반응.
그 반응과 묘한 괴리감.
발렌타인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이제 보니 전생에서도 내가 비슷한 행동을 했었나 보구나.]잭은 답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선천지기를 나눠주는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건 맞았으니까.
전생에서의 발렌타인은 잭과 함께 있을 때 ‘보름달이 뜨는 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라는 제약을 몇 번 무시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의 선천지기를 깎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인간의 모습으로 잭과 함께 했던 그건 분명 지금과 비슷한 행동이었다.
[어쩐지, 30년은 거뜬한 내 수명이 왜 그렇게 줄어들었나 했었는데. 조금은 이해가 가는구나.]발렌타인은 웃었다.
잭은 그 웃음을 바라보며 가슴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웃음.
저건 전생의 발렌타인이 동굴에서 10년 정도를 함께했던 그때의 발렌타인이 보여 주던 그 미소였으니까.
발렌타인의 진짜 모습.
세상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틀에 가두던 ‘네크로맨서 발렌타인 밀로스’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발렌타인 밀로스.
그 모습이었다.
잭이 웃었다.
발렌타인의 저 모습을 보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 그렇게 웃었다.
chapter 3
테슬란 제국력 412년, 12월 16일 08시.
아베이루는 한숨을 터트렸다.
길었던 회의가 끝났다.
잭이 만들려는 세상, 새로운 제도에 대해 귀족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해주었다. 모든 귀족이 놀랐다.
놀랐지만 어쩌겠는가.
아베이루는 그냥 무시했다.
잭은 전에 있던 국가들과는 다른 국가를 만들려고 한다.
그렇기에 체제의 변화가 따라오는 것은 당연했다.
기존의 체제에서 권력을 누리던 이들에게 앞으로는 너희가 가진 권력이 제한 될 거라고, 그 사실을 말해주는데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다.
한 귀족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인간들의 세상에는 왕이 없고, 이종족들의 세상에 왕이 있다면 이건 문제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다.
권력을 가진 귀족들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나왔어야 할 주제였다.
현재의 왕들은 모두 대공으로 격하될 것이고, 이종족들이 사는 마수의 숲은 특별자치구역이 될 것이며 그곳에 이종족들의 수장들도 대공, 그리고 그 대공들을 이끄는 왕.
이건 별거 아닌 변화로도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변화였다. 인간들의 세상을 축소시키는 거니까.
결정적으로 이 제도의 핵심은 귀족들의 권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 어느 국가건 항상 귀족들과 왕들은 서로를 견제했지만 이런 식으로 귀족들의 힘을 짓밟은 적은 없었다.
분명 이 대륙에는 나타난 적이 없는 제도다.
하지만 아베이루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는다면 천년제국이 탄생할거라고.
그리고 지금보다 더, 웃는 이들이 많아질 거라고.
잭이나 아베이루는 미치지 않았기에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그 외 등등.
회의장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베이루였지만.
‘어젯밤, 주군께서 마수의 숲을 통일하셨습니다.’
귀족들이 충격을 먹은 듯 입을 떡, 벌렸지만 무시했다.
‘밀로스 왕국은 지금껏 존재했던 그 어떤 국가와도 다릅니다. 엘프, 오크, 인간, 하피, 트롤 그리고······ 드래곤. 이 모든 종족이 하나로 뭉친 전무후무한 국가.’
테슬란이라는 이름이 왜 그토록 이나 오랫동안 유지되었는가.
간단하다.
모든 드래곤을 죽였다는 신화를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드래곤의 존재가 드러났다.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7마리.
셀까지 포함하면 8마리, 아니지. 8명이다.
이건 율리우스 테슬란이 사기를 쳤다는 명실상부한 증거였다.
그런 율리우스 테슬란과는 다르게 모든 종족을 힘으로 무릎 꿇리고 대륙 전체를 통일시킨 잭은.
모든 이종족을 지배하에 놓고 대륙의 지배자가 된 남자가 만드는 국가는 과연 얼마나 갈까.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베이루는 정말 원했다.
천년 제국이라는 타이틀을.
그건 잭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며 잭을 따르는 아베이루와 주변 인물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는 훈장勳章이다.
그걸 아베이루는 정말 원했다.
아베이루는 모든 귀족들에게 말했다.
‘툴칸 제국도 머지않아 지워질 겁니다. 그건 변수 따위는 없는 진실입니다. 무조건 일어날 필연. 여러분, 모르시겠습니까?’
‘지금, 역사상 존재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 겁니다. 대륙 전체를 통일한 국가. 그 통일을 이끈 남자. 그런 남자가 만들려는 세상.’
‘세상에 군림하려는 주군의 진의眞意를 주민들이 깨닫는다면, 주군의 뜻을 모두가 알게 되면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그건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잭을 향한 무한한 충성.
그의 꿈이, 그의 혁명이, 그의 몽상을 무조건 성공시키겠다는 의지.
아베이루는 모든 일념을 담아 말했다.
‘새로운 인류人類의 역사가 쓰이게 될 겁니다.’
그러니 같이 힘내자고.
같이 해보자고.
율리우스 테슬란을 따랐던 간신 새끼들처럼 멍청하게 행동하지 말자고.
그놈들과는 다르게 역사에 이름을 새겨보자고.
세상에 흔적을 남겨보자고.
‘여러분들은 이미 한 번 변화에 적응하셨습니다. 주군께서 주신 기회를 저버리지 말고 이번에도 적응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귀족들은 아베이루에게 설득 당했고, 욕심을 버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눈을 감고 있던 아베이루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래, 다시 한 번 말하면 회의는 끝났다.
정말 긴 회의였다.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느낀 게 많았는지 철도 문제로 얼굴을 붉혔던 레오폴드 후작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더라.
그 귀족은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욕심을 부리는 법을 모르는 남자였을 뿐.
진짜 욕심 많은 귀족들이었다면 숨죽이고 있다가 조용히 뒤에서 비수를 꽂았을 거다.
레오폴드 후작은 적어도 그런 남자는 아니었다.
그가 해왔던 일도 있고, 조사하며 알게 된 개인적인 그의 일까지.
아베이루는 판단했다.
레오폴드 후작은 괜찮은 남자라고.
그렇게 아베이루는 후작과 화해했다.
모든 귀족은 돌아갔고, 회의장에 홀로 남은 아베이루는 한 손으로 양쪽 눈가를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찌뿌둥했다.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눈에는 핏발이 서 있을 거고, 지금 눈을 짚은 손은 평소보다 많이 부어있었다.
뿐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전체적으로 살도 빠졌다.
원래는 벨트 같은 것도 안 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꼭 해야 하고 다닐 정도다.
아베이루는 필사적이었다. 그 정도로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러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손을 치우고 고개를 들었다.
큰 키의 상당히 정정한 모습의 노인이 눈앞에 서 있었다.
아, 아직 안 가셨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시는가.”
양손에 홍차를 한 잔씩 들고 있던 롬멜 총장이 홍차를 아베이루의 앞 책상에 내려놓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할 말이 있는 듯한 그 모습에 아베이루는 가볍게 관자놀이도 한 번 눌러 주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네.
고개를 들어 롬멜을 바라보았다.
미처 나누지 못한 대화가 있었나 보다.
“피곤한 건 알지만 잠깐 시간 괜찮겠는가?”
“예.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네. 아무리 생각해도 변하는 건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
“변하는 게 없다……?”
“자네는 국가의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어. 그것도 모든 종족의 통일, 정확히는 통합이라고 봐야겠지. 음, 진정한 의미의 판타지아를 원하시는가?”
아베이루는 말없이 롬멜을 바라보았다.
“작은 예시를 하나 들어 보겠네. 힘이 없으면 도태가 돼. 그렇기에 과거 노예라는 계급이 생겨났지. 그리고 지금 이 대륙에 노예제는 폐지되었어. 하지만 그거 아는가?”
“무엇을요?”
“이 대륙에는 노예가 없던 시간보다 존재했던 시간이 더 길어. 잭, 그 아이가 노예제를 폐지했다고 해도 그게 의미가 있나? 스스로가 노예인 것을 모르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아베이루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롬멜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당연하게도 이미 깨달은 지 오래다.
그냥 포장된 모습만 달라졌을 뿐 내용물은 같은 게 아니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거다.
거참.
“총장님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셨나 봅니다.”
“…….”
“눈속임 정도라면 가능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세상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실 만큼 아시는 분이잖습니까. 그런 세상의 미래는 멸망 말고는 없습니다. 무의미한 세상이죠.”
“나도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네가 말한 제도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노예가 스스로 노예인 것을 모르는 것처럼 위장을 강요한 일종의 사기지.”
말없이 차를 홀짝이던 아베이루가 슬며시 차를 내려놓는다.
사기詐欺.
그냥 지나치기에는 굉장히 거슬리는 말이다. 하지만 아베이루는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을 좋아한다.
어쩌면 존중한다고 봐도 좋다. 천천히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보이겠죠.”
“…….”
“권력을 나누는 일입니다. 제도를 바꾸는 일이고요. 수백 년이 넘도록 자리 잡았던 체계를 바꾸는 게 그렇게 쉬울 줄 아셨습니까?”
롬멜도 차를 마셨다.
그냥 마신 게 아니라 답답하다는 듯 한 번에 들이마신 그에게, 아베이루가 말했다.
“그래도 확실하게 달라진 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희망이죠.”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