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399)
제 400화
성문 앞에 서자 경비병이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번에도 내 얼굴에 금칠하는 거 같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나, 되게 유명하다.
적어도 이 밀로스 왕국 안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최근 들어 내가 급성장을 했다는 거다.
이스마엘 왕국에서는 키가 6cm? 그쯤 자랐고 젖살도 빠졌다.
그리고 마수의 숲에서 세계수의 겉에 떠돌던 자연 기운과 스승님이 남긴 잔재를 자양분 삼아 마스터로 발돋움했다.
신체의 재구성도 그때 일어났기에 지금 내 모습은 거의 청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20살이 되었을 때의 모습.
키는 184cm.
팔다리는 당연히 더 길어졌고 신체 내부의 장기도 자랄 만큼 자랐으며 힘도 넘쳐 난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14살의 꼬마를 떠올리는 이는 없다.
“우선 가면을 좀 치워 주시겠습니까.”
재미 삼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하얀 가면을 슬쩍 치웠다.
그런 내 얼굴을 경비병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익숙한데, 어디서 본 얼굴인데, 그런 생각이 얼굴에 드러난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내 어깨에 있는 인형 모습의 스승님까지 바라보았지만, 표정은 여전했다.
원래라면 용아병으로 신분증명이 끝났겠지만 지금 나는 용아병들과 함께 오지 않았다.
누나한테 맡겨놨거든.
말이 500이지 그거, 데리고 다니는 거 엄청 거슬린다.
그런 내게 경비병이 말했다.
“우선 양해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잠자코 있자, 경비병이 말을 잇는다.
“최근 들어 ‘유명인’을 따라 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흔한 검은색 면바지에 가볍게 입을 만한 검은색 면티 그리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겉에 코트를 입은 채로 어깨에.”
경비병의 눈이 우리 스승님을 바라본다.
“인형을 올려놓는, 그게 유행이라 검문이 조금 강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신분을 증명해 줄 만한 무언가가 있느냐, 그런 거죠?”
“예, 그렇습니다. 용병이라면 용병패를, 아니라면 가문의 명패를 보여 주시면…….”
경비병은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깨에 앉아 있던 우리 스승님이.
[이번이 세 번째구나.]이렇게 말했으니까.
경비병이 경악한 얼굴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진짜군요.”
여기서 중요한 게 우리 스승님이 말한 세 번째라는 부분이다.
나를 사칭하는 거, 아니지. 사칭은 단어가 조금 세니까, 좀 바꾸자. 사실, 원래 셀럽이라는 게 그렇잖아.
셀럽이 유행을 만들면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나 닮고자 하는 이들은 그 유행을 따르고. 그렇게 흐름이 생기는 거.
이건 그냥 흐름이 생겨났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건 유행을 따라가는 이들이 아무리 나를 따라 해도 진짜 말하는 인형을 가질 수는 없다는 거.
여담인데 검문에 걸렸던 세 번 다 우리 스승님이 입을 열어 신분을 증명해 주었다.
이럴 거면 그냥 용아병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여하튼, 그렇게 나는 레오폴드 후작령 안으로 들어왔다.
걷고 걸었다.
이곳에 온 목적을 잊으면 안 되지.
에두아르 잔레그리.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레오폴드 후작령 외곽 쪽에 일반적이지 않은 건축 모형들이 보이기 시작했거든.
첨탑 형식으로 건물을 올리거나 돔 형식으로 올리는 그런 일반적인 건축물들은 그 시대의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첨탑은 대부분 툴칸에서, 돔 형식은 다른 기타의 국가들에서.
그리고 그중 현대적이라고 모두가 느끼는 건 첨탑 형식의 건물이다.
고딕 양식이라고도 하는데, 눈앞에 있는 이 작은 건축물들은 조금 달랐다.
아래에는 기둥 같은 걸로 다 뚫려 있었으며 옆에 있는 계단으로 진입하는 3층짜리 건물.
눈으로 보기에는 대충 50cm쯤 되는 모형이었지만 이거, 내 기억 속에 있는 거다.
미래 툴칸 제국의 신수도 메가스에서 이런 건물이 꽤나 많았거든.
확실히 잘 찾아왔네.
내가 흥미를 느낀 것만큼 우리 스승님도 흥미를 느끼셨다.
[아름답구나.]한 곳에 밀집되어 있는 형이상학적인 건축물들. 그리고 그 주변에 퍼져 있는 잔디.
내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건 분명 도시였다.
모형으로 만들어진 도시.
[인구를 밀집시키고, 그 주변을 녹지로 채우는 게 핵심인 것 같은데,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스승님의 눈이 나를 향했다.
[이스칸다르 툴칸, 그 아이가 미래 마나 유저들을 전부 죽이려고 했다지?]“예.”
[보통 천도라는 것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아이도 다를 바 없었겠지. 중요한 건 그 천도하는 수도에 누가 사냐는 거다. 아니더냐?]거봐. 우리 스승님 진짜 똑똑하다니까.
[그 아이는 선택받은 자들의 도시를 만들려 했던 거구나.]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말씀이 전부 맞습니다. 전생에서 제가 본 도시 메가스는 이스칸다르의 최측근들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스승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감상했다.
나도 그랬고.
그러다 스승님이 묻는다.
[여기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설마 지금 찾아가려는 것이냐?]어깨를 으쓱했다.
충분히 맞는 말씀이셔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고개만 끄덕였다.
“예술가잖습니까. 대부분의 예술가는 변덕스럽다던데 혹시 모르지요. 야밤에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피식 웃으신 스승님이 네 마음대로 하라는 듯 내 머리를 툭 치셨다.
그렇게 나는 잔레그리 가문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에서 인기척이 있긴 한데 별 반응이 없다.
음.
다시 한 번 똑똑.
또 없어서 계속 두드렸다.
똑똑, 똑똑똑, 똑똑똑똑, 똑똑.
리듬을 타며 문을 두드리자 결국.
벌컥 문이 열리고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리고는 대뜸 물었다.
“당신 뭐요?”
뭐라고 해야 하나.
설명하는 건 이제 조금 지겨운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도시 하나만 계획해 주쇼.”
“미친놈.”
콰앙-!
문이 닫혔다.
* * *
문 건너편의 에두아르가 중얼거렸다.
이젠 별 웃기지도 않는 잡상인 새끼가 야밤에도 지랄을 하는구나.
마스터가 되면서 귀가 훨씬 좋아졌기에 아주 생생하게 들렸다.
[어떻게, 이번에도 신분 증명해 주랴?]스승님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도 한두 번이지.
그렇데 다시 문을 두드리려던 그때.
정원 건너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렷다.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보인다.
숫자는 하나…… 둘…… 열…… 열다섯.
그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남자.
꽤나 낯이 익은 그 남자가 냉큼 외쳤다.
“잭 발란티에 님!”
저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요리스였었나? 아마 맞을 거다.
요리스 레오폴드.
이 후작령의 주인이자 이 후작령과 인근에 있는 약 다섯 개의 영지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귀족.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냥 영주보다는 크고, 대영주라고 하기엔 좀 작은.
그런 귀족이다.
전에 테슬란의 귀족들을 정리하면서 안면을 익혔었는데, 이상하게 되게 다급해 보이네.
가볍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입니다.”
“아…… 예, 오랜만입니다. 그보다 연락도 없이 어찌 이 영지에…….”
왠지 모르게 레오폴드 후작의 얼굴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분명 착각이 아니었거든.
허어.
“무슨 사고라도 치셨습니까?”
“……예?”
“손에 땀이 가득하시고, 긴장한 듯 이마에도 땀이 흐르시는데.”
악수했던 손을 슬쩍 빼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디 아프신 게 아니면 뭐 찔리는 게 있으신가 봅니다.”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레오폴드 후작이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베이루 재상에게 듣지 못하신 겁니까?”
“뭘요?”
“…….”
이것 봐라.
우리 아베이루, 능력이 뛰어난 건 맞다.
내 뒤처리를 해 주는 것부터 내가 원하는 것까지 전부 준비하고 알아서 처리해 주니까.
그런 녀석이기에 당연히 내게도 말 못할 애로사항 같은 게 존재할 수도 있다.
아베이루는 그걸 스스로 해결하는 남자였으며, 자기 개인적인 일을 내게 고자질하는 녀석도 아니다.
대충 보니까.
우리 아베이루랑 여기 있는 레오폴드 후작님이 의견 마찰 같은 걸로 다퉜고 아베이루는 그걸 해결한 걸로 보인다.
높은 확률로 둘이 빚은 그 의견 마찰은 내가 하려는 일과 관련되었을 거고.
나한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지 않았을 텐데.
음.
잠시 레오폴드 후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다시 벌컥, 문이 열린다.
“야, 이 새끼들아. 왜 야밤에 남의 집 앞에서 지…… 어?”
50대 중년, 아까 나한테 미친놈이라고 했던 그 아저씨가 레오폴드 후작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요리스? 네놈이 여긴 웬일이냐? 병사들까지 대동하고?”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평안이야 했지. 웬 잡상인이 오지만 않았으면.”
그러면서 나를 힐끗 쳐다본다.
그 시선을 눈치챈 요리스 레오폴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50대 중년, 그러니까 에두아르 잔레그리를 막아섰다.
“잡상인이라니요? 이분은…….”
에두아르가 손을 휘젓는다, 대충 거기까지만 하라는 듯.
“내가 바보 등신도 아니고 이쯤 되니 모를 리가 없지. 흰색 면티, 검은색 면바지. 그리고 검은색 단화, 금빛 장식이 되어 있는 코트는 없지만, 후드가 없는 희한한 재질의 검은색 로브. 패션을 바꿨나 보군. 그리고 어깨에 인형.”
눈으로 내 옷차림을 하나하나 바라보던 에두아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유행을 따라 하는 머저리가 아니라 진짜였군.”
어깨를 으쓱했다.
에두아르 잔레그리. 전 테슬란 왕국의 명예 백작.
그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소문대로 잘생겼군. 그런데 내 듣기로 10대 초반으로 알고 있는데 10대 후반 내지 20대 초반쯤으로 보여. 키도 180은 훌쩍 넘는 거 같고.”
작게 웃고 말았다.
“모르셨습니까? 요즘 애들은 발육이 빠르거든요.”
이 에두아르라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했다.
“잭입니다.”
그가 내 손을 붙잡는다.
“에두아르 잔레그리, 은퇴한 건축가일세.”
나름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왜 왔나? 은퇴한 늙은이한테 무슨 볼일이 있어서?”
“50대가 늙은이 소리 들을 정도의 나이는 아니죠.”
“그거야 보기 나름이지. 난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거든.”
이번에도 웃고 말았다.
본인이 그렇다면 어쩌겠어, 노인이라고 불러 줘야지.
그런데 온 목적은 아까 말했는데, 다시 묻는 걸 보니 잘못 들은 거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 다시 해 줘야지.
“도시 하나만 설계해 주십시오.”
손을 뻗어 정원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정원을 빙자한 작은 도시 모형을 가리켰다.
“저거보다 더 좋게, 당신의 진짜 철학이 듬뿍 담겨 있는 새로운 도시.”
에두아르가 미간을 와락, 찌푸린다.
“젠장, 아까 말한 게 진짜였어?”
“예. 진짜였습니다.”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듯 허허허 웃는다.
“저거랑 비슷한 거면 그냥 보고 만들면 되잖아?”
“보고 만드는 거랑 저거 설계한 사람이 직접 움직여 주는 거랑 같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잠시 침묵하던 에두아르가 양손으로 자기 몸을 가리켰다.
“그런데, 난 은퇴한 지 오래된 늙은이야. 이미 열망 같은 건 다 사라진 지 오래라고. 새로 건국도 할 거라면서? 그냥 기존에 있는 거 가져다가 써, 굳이 늙은이 손을 탈 필요가 있나. 부족한 것도 없잖아? 세상에 도시 설계사가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