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01)
제 402화
chapter 1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조촐한 식탁.
그리고 갓 만들어진 애플파이와 우유.
작게 썰려진 애플파이를 한입 베어 물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맛있다’였다.
그리고 그 이후 든 생각은 내가 먹는 걸 지켜만 보는 스승님에게도 맛보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스승님과 눈이 마주쳤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스승님을 보자마자, 피로가 쫙 풀리는 기분이다.
“허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하군.”
애플파이를 오물거리며 건너편의 에두아르에게 물었다.
“뭐가요?”
“자네, 사람이 맞긴 한가?”
“갑자기 그게 뭔 뜬금없는 소립니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래.”
“뭐가요?”
“나름 대륙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녀 본 내 눈으로 보기에, 자네는…… 환골탈태를 한 것 같아. 맞는가?”
제법이네.
“환골탈태하는 걸 본 적이 있으신가 봅니다?”
“있지.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이 넘었군. 20년 전에 건축을 배우려 툴칸 제국을 돌아다녔었어. 그때 보았지. 엑사일 판테온이라는 툴칸의 근위기사가 대로변에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엑사일 판테온.
몇 달 전에 나한테 깝죽거리다가 죽었던 그놈이 맞다.
목만 잘라서 이스칸다르한테 선물로 보내 줬었지.
그런데 걔가 마스터 되는 걸 직접 봤다고?
“신기한 일이었지. 좀 겉늙었다고 해야 하나? 내 알기로 당시 나이가 30대 중후반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외모만 봐서는 40대로 보이더군. 그런 남자가 빛을 한 번 머금더니 껍질을 까고 나오듯 순식간에 젊어졌었어. 순식간에 20대 초반의 신체로 돌아온 거야. 자네를 보니 딱 그때가 떠오르는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궁금한 게 더 있나 보다.
스스로를 노인이라 칭하는 우리 예술가님께서는 여전히 무게를 잡은 채 나를 바라보고 계셨거든.
어쩔 수 없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정확히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나이가 올해 몇이라고?”
“열넷, 그리고 며칠만 지나면 열다섯 됩니다.”
에두아르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구라치지 말라는, 그런 눈빛.
“열네 살짜리가…… 아니지. 열다섯 살짜리가 마스터가 된다고?”
“거짓말한 거 아닙니다. 열네 살짜리 몸으로 회귀했으니까.”
“……회귀?”
“정신 연령은 열넷이 아니라 서른넷입니다.”
노인은 충격을 먹은 듯했다.
“……자네가 인생 두 번 사는 것 같다는 소문이 퍼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진짜였군.”
오히려 내가 놀랐다.
“의심 안 하십니까?”
“하는 게 이상하지. 회귀, 그래. 그거라면 모든 게 설명이 돼.”
다시 포크를 들어 파이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런 내게 노인이 묻는다.
“그래서 날 찾아온 거였군. 이보시게, 회귀자 양반. 그대가 회귀하기 전 나는 뭐 하고 있었나?”
우물우물 씹는 내 표정에 대답이 그대로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말하기 난감했거든.
내가 전생에 대해 아는 게 많긴 해도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다.
특히 눈앞의 이 예술가 노인은 내가 모르는 쪽에 속했다.
테슬란 왕국을 비롯한 모든 왕국이 불바다가 되었고 멸망했다.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살아남은 이들도 꽤 됐다. 중요한 건 하나, 이스칸다르가 인간들의 땅을 완전히 지배하며 명실상부한 황제, 그 이상의 천황이 되었다는 거. 이후 이스칸다르는 곧바로 천도를 생각했고 건축가를 수소문했다.
테슬란이 멸망할 때 살아남았던 에두아르 잔레그리가 간택되었고 그는 신수도를 계획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죽었다. 왜 죽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대충 짐작해 보자면 보통 귀족들이 그러하듯 각 귀족들의 처소에는 비밀 통로라는 게 존재한다.
피난할 때나 뭐 그럴 때 쓰는 통로. 그런 것도 당시의 에두아르가 설계했을 거고 그래서 죽이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다. 그가 죽은 이유는 이렇게 추측만 할 정도로 자세한 내부 사정을 아는 게 아니기에 입 밖으로 꺼내기엔 애매하다. 그래서 그냥 침묵했다.
“대답하기 난감하다는 표정이군.”
“티 많이 납니까?”
노인이 피식 웃는다.
“나도 감은 있어. 미래에서는 내가 죽나 보지?”
“예.”
“천수를 누렸을 리는 없고, 살해당했나?”
“정황상. 예.”
그러자 에두아르가 희미하게 웃는다.
“혹시, 내가 희대의 역작을 만들었나?”
이것도 대답하기 난감한데.
그 희대의 역작을 내가 지워 버렸거든.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답은 충분했는지 에두아르는 내 표정을 예스로 받아들였다.
“그래, 그랬겠지. 희대의 역작을 만들었으니 자네가 날 찾아왔겠지. 흐흐.”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계속 웃던 에두아르는 거짓말처럼 웃음을 뚝, 멈췄다.
우리 사이에 내려앉는 침묵.
그가 말했다.
“레오폴드 그 녀석이 분수에 맞지 않게 욕심을 부렸어.”
아무래도 노인은 레오폴드 후작과 아베이루 사이에 생겨난 마찰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아까 말했지 않은가. 녀석은 욕심을 부릴 줄 모르는 녀석이라고.”
“그래서요?”
“착한 녀석이야. 괜찮은 녀석이고. 많은 국가를 돌아다녀 봤지만 적어도 내 눈에 요리스 녀석만큼 괜찮은 귀족은 없었어.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 거지만 녀석이 나를 거두어들인 건 녀석에게 있어서 그 어떤 이득도 없었어. 오히려 손해만 있었지.”
“그렇습니까?”
“왕과 왕세자가 나를 싫어하고 웬만한 귀족들도 전부 나를 싫어하는 그런 상황에서 녀석은 내 우산이 되어 주었어. 그 일로 녀석은 많은 견제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해 준 게 없어.”
에두아르 잔레그리.
이 노인은 진심인 것 같았다.
“행정관들이 나를 따른다…… 건축가들이 나를 따른다…… 다 의미 없어. 나를 따른다고 했던 놈들 중에 내 곁에 남은 놈이 단 한 명도 없거든. 자네가 말했지. 보수는 두둑하게 주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건 간에 달라는 만큼 줄 수 있다.
전생에서 내가 보았던 그 도시는 정말 괜찮았거든.
흔해 빠진 첨탑이나 성 같은 건 하찮아 보일 정도였는데, 그런 걸 보고 미래 지향적이라고 하지.
난 에두아르의 능력을 안다.
지금 이 시기를 기준으로 툴칸의 새로운 수도가 건국되는 것은 약 14년 후.
그 시간이 어떤 차이를 만들지는 모르겠으나 정원에 놓인 건물들과 배치도를 보면서 깨달았다.
비슷, 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에두아르가 내게 말했다.
“보수는 필요 없어. 돈 한 푼 안 줘도 돼. 그러니 레오폴드, 그 녀석을 용서해 주게.”
“…….”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하지만 자네가 하려는 일에 딴지를 걸었던 것은 확실해. 그 이후 아베이루라는 남자와 개인적으로 화해를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늙어서인지 몰라도 불안해.”
에두아르가 손을 뻗어 내 팔을 붙잡았다.
굳은살이 가득한, 무언가를 만드는 장인의 손.
그리고 예술가의 눈.
“자네가 자네 입으로 말해 주게. 레오폴드 그 녀석이 했던 일을 그냥 넘어가 주겠다고. 그 어떤 처벌도 없을 거라고, 그렇게만 해 주면 무보수로 개처럼 일하겠네.”
식사를 했냐고 물어본 이유가 이래서였구나.
사실 처음에 애플파이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먹다 남은 파이가 에두아르의 거실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애플파이를 새로 만들더라.
그러니까 에두아르는 나한테 어떤 부탁을 하려고 애플파이를 권했던 거다.
음.
“나이 먹어서 굽히기 힘들긴 한데, 내 무릎이라도 꿇으면 부탁을 들어주겠는가?”
말없이 에두아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시선을 다르게 해석한 걸까.
에두아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무릎을 꿇…….
어흐.
손을 휘저어 마나를 퍼트렸다.
마나에 묶여 어중간한 자세로 옴짝달싹 못하는 에두아르에게, 말해 주었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다시 손을 휘젓자 에두아르를 속박하고 있던 마나가 그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무릎을 꿇긴 왜 꿇습니까. 애초에 부탁이라는 범주에 속할 일도 아닌데.”
“……속할 일이 아니다? 레오폴드는 결국 죽어야 한다?”
또, 또 다르게 해석하시네.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예컨대 이런 겁니다. 안타까운 소리지만 만약 레오폴드 후작이 선을 넘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거라는 거죠.”
“……무슨 말인가, 그게?”
“저는 아베이루, 그러니까 재상한테 모든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재상과 마찰이 생겼고 마찰이 생긴 이후 서로가 화해를 했다…… 결과만 보세요, 결과만. 레오폴드가 지금 살아 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에두아르는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표정이 말이 아니었거든.
“죽일 일도 아니었고 선을 넘은 게 아니어서 살아 있는 겁니다. 제가 전권을 위임한 아베이루가 그렇게 판단을 한 거죠. 대충 상황 보니까 아실 거 같은데, 아베이루는 저한테 레오폴드 후작과 자기 사이에 있었던 마찰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두 번쯤 언급하는 거 같은데, 난 정말 아베이루한테 듣지 못했다.
즉.
“아베이루는 저한테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던 거죠. 그래서 굳이 제 입으로 말할 일도 아니고, 에두아르 님께서도 저한테 부탁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레오폴드 후작은 죽지 않을 테니까.”
어떤 의미인지, 내 말에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지 에두아르는 금방 파악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내게 물었다.
“약점이라도 잡혔나?”
“제가요?”
“어. 자네가, 아베이루 재상한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우리 예술가님 진짜 재미있는 사람이셨네.
재미있는 예술가님이 말을 이으셨다.
“내 수십 년간 살면서 권력을 가진 힘 있는 놈들을 많이 봐 왔어. 귀족을 넘어서 마나 유저, 그리고 상인들까지. 그들 중 거의 99프로 이상은 그 힘을 절대 나누고자 하지 않았지.”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자네는 그걸 나누고자 하는군. 서른네 살에 회귀를 했다고 했지. 자네가 어떤 세상을 살았건 그 나이는 절대 많은 나이가 아니야. 이종족들만 봐도 백 년 이백 년을 살아가는데 삼십사 년? 적지. 신뢰 하나로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기면 그건 후에 부메랑이 되어 자네에게 날아…….”
고개를 저으며 에두아르의 말을 끊었다.
“신뢰라는 게 그런 거 아닙니까?”
“……응?”
“믿는 이에게 모든 걸 주는 것.”
아베이루가 반란을 꿈꾸고, 아베이루가 내 뒤를 치고 모든 권력을 먹으려고 다짐해도 상관없다. 왜냐면 그럴 일 없으니까.
어떻게 사람을 믿냐고, 아베이루를 정말 믿을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거다.
믿을 만하니까 믿는다고.
“제가 모든 걸 보여 주고 저에게 모든 걸 보여 준 사람, 그게 제 사람입니다. 저는 제 사람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줍니다. 부메랑, 그것도 조심해야 하긴 하겠지만 애초에 부메랑을 날리지 않을 녀석에게만 저는 제 모든 걸 보여 줍니다.”
만약의 경우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그런 거 없다.
흑마법이라는 게 괜히 존재하겠어?
그런데 우리 예술가님은 또 다르게 해석하셨나 보다.
“그릇인가?”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넓군. 자네,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람이야.”
이래서 예술가들은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구나.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네.
“영감님도 꽤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영감은 무슨, 57살밖에 안 됐는데.”
“아까는 노인이라면서요?”
“정확히는 늙은이라고 했지. 노인이라고는 안 했어.”
그게 그거 아닌가.
“그래도 영감님이라는 소리는, 꽤 들을 만하군.”
그냥 웃으면서 파이를 먹었다.
아무리 봐도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야.
이게 진짜 예술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