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03)
제 404화
“대가?”
-천 년.
“……뭐?”
셀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너의 천 년을 내가 사겠다.
카르타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미친 꼬맹이 새끼가, 천 년?
-너도 알다시피 나는 실험체였다.
말문이 턱, 막혔다.
-그것도 ‘전 로드 두 마리’에게 버림받은 실험체.
“…….”
-인간들의 세력이 너무 강대하다며 실험체로 나를 던져 주었고 나는 지옥 같은 시간을 겪었다.
셀이 한 번 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시간 동안 네놈은 무엇을 했지?
“……난 그 일에 관련이 없소. 내가 당신을 실험했던 것도 아니지 않소이까.”
-옳은 말이구나. 맞다, 그 말대로 네놈은 나를 고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셀의 입가에 상황에 맞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그 미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분명 카르타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부 맞는 말인 것도 아니었다.
카르타스는.
-방관을 했지.
“…….”
-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전 로드가 동족을 인간들에게 실험체로 넘겨주자고 했을 때 너는 무엇을 했지?
“나는…….”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나? 개체 수가 적은 드래곤을 감싸거나 지킬 생각을 한 적이나 있었나? 그럴 리 없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면 뭐라도 했을 테니까. 그럼 묻겠다. 그런 네놈은 대체 무엇을 했지?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로드였기에 반대할 수 없었나? 그럼 반대를 했던 이들은 대체 무엇이지? 내 기준에서 보이고 느껴지는 건 하나밖에 없다.
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이자 그만한 재능을 물려받았고 그보다 더한 재능을 가진 잭의 곁에서 잭을 보고 배웠던 차세대 세상의 정점.
그녀의 눈빛에 카르타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동족이 동족을 보호하지 않고 버리는 것을 돕거나 방관한 것. 그래, 이 사실 하나 말고는 없어. 내 말이 틀린가?
“난…….”
셀이 고개를 저었다, 변명은 관심 없다는 듯.
-네놈은 그냥 방관을 한 것이다. 대체 무슨 핑곗거리가 그리 많길래 당당한 거지? 네놈이 했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내가 당했던 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대체 뭐가 더 필요한 거지?
“…….”
-마지막으로 제안한다. 너의 천 년을 내게 바쳐라.
“그걸 거절하면?”
거절하면.
이건 너무 간단했다.
-이 자리에서 죽겠지. 네놈의 피는 내 가족의 간식으로 돌아갈 것이며 네놈의 가죽은 내가 입고 다닐 갑옷이 될 것이고 네놈의 뼈는 내가 들고 다닐 무기가 될 것이며 네놈의 두개골은 내가 앉을 왕좌의 장식이 될 것이다.
잭은 마수의 숲에 있는 드래곤들을 죽이고 그 시체들로 갑옷과 무기를 만들라고 했다.
셀은 드래곤이다.
그리고 셀을 따르는 이들도 전부 드래곤이다.
그런데 드래곤의 시체로 만든 갑주?
드래곤인 셀을 가족으로 여기는 잭이 그런 걸 설마 독단으로 처리했을까.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가족에게만큼은 따뜻한 잭이 그럴 리 없다. 그럼에도 잭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사안에 대한 이야기는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셀은 드래곤들의 시체를 재료로 삼는 것에 동의했다.
동족 중에는 동족의 위기를 방관하거나 찬성을 하고, 반대를 했던 이들도 있었다. 물갈이를 한 번쯤은 할 필요가 있었고 본보기로 만들 필요도 있었다.
셀에게 있어서 방관이란 찬성과 같았고 찬성을 한 이들은 지금은 뒤져버린 두 로드와 같은 폐기해야 할 쓰레기에 불과했다.
셀은 쓰레기를 버려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침을 뱉고 불로 지져버린다. 그래야 재활용을 하지 못할 테니까.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시체 자체를 어떤 식으로든 사용하는.
그게 셀의 입장에서 진정한 처벌이었다. 자유로부터의 속박이었고.
-결정해.
카르타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솔직히 말하면, 전대 로드였던 바하무트와 볼리모트는 굉장히 유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미화하거나 색안경에 낀 채로 판단한 게 아니다.
정말 두 로드는 유순했다.
셀을 인간들에게 실험체로 건네주자는 그 일을 진행할 때 다른 드래곤들에게 의견을 물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결정은 번복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의견을 물었던 게 어딘가.
또한 대부분의 드래곤들이 유순했다.
세상에 부족한 것도 없고 힘도 넘쳐 났으며 시간도 넉넉했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이 드래곤은 다르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드래곤.
일반적인 드래곤은 겪지 못할 것을 어릴 적부터 겪은 괴물.
유희를 하며 처박혀 있었다고는 해도 세상일에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초월자였던 두 로드의 핏줄을 이어받았으며 두말할 필요 없는 세상의 정점인 ‘잭 발란티에의 세 명의 제자 중 한 명’.
그중 가장 월등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마티아스 왕국에서 인간 귀족 수백을 학살할 정도로 포악하기까지 한 차세대 로드.
방관을 했으니 천 년을 바쳐라. 그게 아니라면 죽이겠다, 그리고 죽인 뒤 모든 것을 취해 무구로 만들어 버리겠다. 소름이 안 끼치는 게 이상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이해? 대체 무엇이?”
-두 번째로 말하는 건데, 내가 이 말을 만약 세 번 하게 되면 네놈은 무조건 죽는다. 그러니 귀 열고 들어. 진정한 자유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남은 수천 년의 수명을 그대로 버릴 것이냐, 아니면 천 년의 수명을 바치고 나머지 수명만큼 자유롭게 살 것이냐.
너무나도 간단하고 심플한 문제였다.
객관식이었고 보기는 두 개.
-양자택일이 그렇게 어렵나? 조금 도와주지.
셀이 아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지금부터 10초를 세겠다. 10초 안에 결정하거라. 당장 죽을 것인지 아니면 천 년의 수명을 바칠 것인지.
카르타스는 생각했다.
아까 생각했던 것들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고.
앞으로의 미래는 이 작은 드래곤이 지배할 거다.
그제야 카르타스의 눈에 보였다.
셀의 뒤쪽에 있는 네 명의 드래곤은 이 일이 익숙한 듯 거의 구경꾼의 자세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
한두 번이 아니구나.
이런 식으로 따르는 이들을 살리고 아닌 이들은 죽였구나.
-5초 남았다.
셀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방관만 하던 네 명의 드래곤이 마나를 끌어 올린다.
콰과과광-!!
마나가 터져 나가고, 땅이 진동했다.
뿔도 솟아났다.
용인화.
도망 따위는 생각도 못 하게 잡아 쳐 죽이겠다는 그 살기에 카르타스는 온몸이 저릿해졌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일 처리가 되게 깔끔하네, 라고.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고.
그럼 하나밖에 없다.
이제 2초가 남은 상황.
카르타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카르타스 페나 게레로 타츠로트 멘데스는.]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나 그 자체였다.
마나를 속박하고 마나를 지배하는 존재로서의 약속, 그 기운이 카르타스의 몸 주변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심장의 맹세.
그가 다짐했다.
“[내 생의 천 년을 새로운 로드 ‘셀’에게 바치기로 맹세하오.]”
카르타스의 몸을 감싸고 휘몰아치던 마나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더니 이내, 그의 심장으로 흡수되었다.
언령의 맹세는 이토록이나 간단했으며 또 무거웠다.
휘하에 드래곤 한 명을 더 추가시킨 셀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있는 네 명의 드래곤과 아카데미에 있을 블랑, 그 외 다른 드래곤들까지 하면 총 8명이었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드래곤들이 5명, 그들은 초급에서 중급 마스터였다. 그리고 나머지 3명은 비교적 나이가 많았으며 적색 마스터였다.
드래곤으로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세력을 셀은 손에 넣었다.
그녀가, 아니, 천년 로드가 말했다.
-그럼, 가서 짐 챙겨 와요.
말투가 바뀌었지만 카르타스는 안심하지 못했다.
방금 보고 느낀 건 진짜였으니까.
긴장한 기색으로 카르타스는 집 안으로 들어섰고 다른 두 명의 드래곤이 그를 따라갔다.
짐 챙기는 것을 도와주려는 따뜻한 동족의 우애.
그 셋을 바라보던 셀이 흠칫, 몸을 떤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구석.
허공.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 허공에 무언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셀은 마나를 퍼트렸다.
주변 공기와 허공의 흐름.
바람의 결.
모든 걸 읽었지만 이상하게 문제는 없었다.
정말 이상 없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셀의 눈매가 좁혀진다.
묘한 위화감.
그 위화감이 점차 커지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순식간에 그 위화감이 사라졌다.
분명하다.
방금 저기 허공에 ‘어떤 것’이 있었다.
셀은 물끄러미 허공을 응시했다.
한동안.
쭉.
* * *
침대에 앉아 오른손으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던 이스칸다르가 미간을 와락 찌푸린다.
천천히 손을 치웠다.
그의 오른쪽 눈에 새하얀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건 머지않아 사라졌다.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눈치를 챘다? 혼기를, 그것도 내 천리안千里眼을 10살 남짓한 꼬마 드래곤이?”
방금 전까지 이스칸다르는 셀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허공에 생성된 제3의 눈.
이스칸다르의 말대로 그건 천리안이었다.
잭이 혼기로 마법 검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이스칸다르도 비슷한 것을 만들어 냈다.
이건 천 리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이스칸다르 나름의 기술.
전생에서 이스카다르를 황제로서 군림하게 한 다섯 가지의 기술 중 하나인 그걸 10살 남짓한 꼬마가 눈치챈다?
“어처구니가 없군.”
침상에 앉아 있던 이스칸다르,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주변을 경계하는 한 남자.
대륙 최강의 검사인 하인케스 베커만이 이스칸다르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이스칸다르는 답하지 않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들어 꾸었던 꿈.
벌어지지 않은,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해서 현실 같았던 그 꿈이 이제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이스칸다르는 안다.
잭 발란티에.
검황, 검귀, 마나의 지배자, 온갖 낯부끄러운 별명이 붙어 있던 그는 회귀자다.
“내 생각이 맞았어.”
잭, 그 남자와 마찰을 빚은 순간부터 이스칸다르는 생각했었다.
세상이 너무 쉬워서 조금 어려워지게 그나마 방해물 비슷한 게 생긴 게 아닐까.
잭의 힘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때, 한 번 더 느꼈다.
저놈은 내 운명의 상대구나.
내 운명의 적이구나.
그가 회귀를 하기 전, 그 세상에서 엮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이건 진정한 의미의 운명. 아니다. 그 이상, 이건 필연이다.
이스칸다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도통 모르겠군.”
그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대체 기준이 어떻게 되는 거지? 왜 나는 전생의 기억을 볼 수 있는 것인가.’
아베이루가 깊은 생각을 할 때 탁자를 두드리고 잭도 탁자를 두드리듯, 이스칸다르에게도 버릇은 있었다.
손을 쥐었다가 펴는 것을 반복하는, 굉장히 특이한 버릇.
‘회귀자, 전생을 기억하기에 회귀자라 부르긴 하지만 이걸 정말 회귀자라고 불러야 할까. 놈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8월. 그때부터 놈은 미래의, 아니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놈의 몸뚱이는 비루한 몸뚱이였다. 왜 놈은 그런 몸으로 전생의 기억을 되찾고 나는 지금에서야 전생을 기억할까.’
본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스칸다르는 이 부분에서 엄청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창밖을 바라보는 베커만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