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07)
제 408화
“지금 아카데미의 마탑 지하에서 연습, 하고 있답니다.”
“그래?”
“예. 지키던 마법사들부터 기숙사에 머물던 모든 학생들도 반경 50미터 이내로는 접근도 못 하게 해 달라고 하던데,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내가 겪었던 과거의 일들 중 핵심들만 짚어서 그의 머리에 집어넣어 주었는데, 보니까 엄청난 게 하나 나왔나 보다.
굉장히 비밀스럽게 연습하는 거 보면 이거, 확실히 기대해 볼 만한 듯.
“기다려지네. 건국식이.”
* * *
12월 30일 21시.
프란츠 왕국 헨드릭스 공작령과 터커 후작령 사이에 호마라는 이름의 산이 하나 있었다.
호마산은 사람들이 산하면 떠올리는 흔한 이미지의 산이었고, 영지 사이에 있다 뿐이지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마차가 가는 길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창 철도 계획이 수립되는 지금도 그 계획에 이 호마산은 배제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산.
그 산으로 로브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지리를 아는 것처럼 익숙하게 걷던 그가 산 중턱에서 멈춰 선다.
분명 인기 없는 산인데, 이 산에는 경비병들이 있었다.
두 명의 경비와 그 뒤쪽으로 네 명의 경비. 총 여섯 명의 경비.
그들 중 앞에 있던 두 명이 남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질문했다.
“무슨 일이기에 이 산까지 오셨소이까.”
보통 사람들은 암어하면 무슨 복잡한 부호나 해독해야 할 문서나 그런 걸 생각하는데 사실 암어라는 건 별 게 아니다.
약속한 대화문. 특정인만 알도록 꾸민 암호.
그게 암어다.
지금 경비가 남자에게 질문한 저 간단한 대사도 암어였다.
무슨 일이기에 이 산까지 왔냐,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말했을 거다. 산을 타려고 했다거나 고립되었다거나 등등.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 이들은 이 약속된 질문에 약속된 답을 내놓는다. 그 약속된 답이란 간단하다. 바로 이름.
“그레이 시어런.”
질문을 건넨 경비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 이름이 있었던가.
옆에 있는 이에게 턱짓하자 그가 품에서 수첩 같은걸 꺼내 들고는 휘리릭 넘기기 시작했다.
앞서 로브를 입은 남자에게 질문했던 경비가 다시 질문한다.
“좋은 이름이군요. 그런데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습니까?”
이것도 암어였다.
두 번째 암어. 이 암어에 해당하는 답은 바로 ‘직책’이었다.
보통 귀족들이라 하면 영지에 처박혀 영지일만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큰 오산이다.
귀족들 대부분은 형식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국가적인 일을 한다. 수도로 올라와서 귀족 회의도 하고, 나름 한 자리도 차지해서 도시 계획이나 세금을 어디다 쓰는지 그런 이야기도 나누고 의견도 제시하고, 행정관들을 부리면서 이것저것 만들거나 제도도 시행하는 그런 거.
두 번째 암어에 남자는 침묵했다. 이어서 수첩을 뒤지던 나머지 경비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수첩을 뒤졌다.
없었, 으니까.
그레이 시어런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어런.
시어런.
굉장히 익숙한 이름이다. 그러다 떠올랐나 보다.
경악한 얼굴로 불청객을 바라보던 경비, 그리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챈 또 다른 경비.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짐작한 듯 멀리 있던 네 명의 또 다른 경비병들까지.
분위기가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분위기의 중심에서 남자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천천히 걷었다.
여러 곳에 상처와 흉터가 새겨진 중년 남성.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정말 차가웠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 암어.
직책을 물었지.
세상에 내세울 직책은 몇 가지 있다. 아카데미 군사학부 학부장, 시어런 후작가의 후계. 등등등.
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직책과 직업은 딱 하나다.
“군인.”
그레이 시어런.
잭이 도관의 아서 군나르를 쳐 죽이러 가기 전 많은 대화를 나눴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 그레이는 시어런 후작가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병사도 흡수했고 지식도 흡수했다. 그런 걸 보통 이렇게 말한다.
발전했다고. 성장했다고.
이렇게 두 번째 암어까지 대답한 지금 상황에서 원래라면 세 번째 암어까지 나왔어야 했다. 그 암어에는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하면 된다.
세 번째 암어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레이는 말했다. 이곳에 온 목적을.
“노예 시장을 폐쇄하고 관련된 모든 이들을 찢어 죽이기 위해 왔다.”
동시에 뒤쪽에 있던 네 명의 경비가 통신구를 켰다.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서걱하며 네 남자의 목이 일시에 잘려나간다.
은밀하게 뒤쪽으로 잠입해 있던 두 명의 군인이 일시에 네 명의 목을 날려 버린 거다.
이어서 그레이의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남자는 털썩,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왜냐면 봤거든.
이 산을 올라오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단순히 인간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온갖 이종족들이 모여 있었다. 뿐일까. 지금 이 산 전체를 가리는 듯한 거대한 그림자.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었다. 날개를 펼친 채 하늘을 날아다니는 두 마리의 드래곤.
두 경비병은 직감했다.
끝났, 다고.
이제 주머니에 돈 들어올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이제 죽게 될 거라고.
그건 분명 사실이었다.
그 날, 호마산에서 24명이 죽었고 354명이 생포되었으며 1,821명의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그리고 그 일에 관련되어 있는 이들 모두가 색출되었다.
그 숫자가 생포된 354명을 포함해 무려 1,127명이었다.
그리고 그건 또 하나의 역사였다.
밀로스 제국의 총사령관, 그레이 시어런이 ‘연합군’을 구성해 출전했던 최초의 전투.
이게 건국식 이틀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12월 31일.
셀과 샬롯은 아카데미 주변을 걷고 있었다.
호위를 하는 건지 둘의 뒤쪽에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약 다섯 명의 드래곤과 이십여 명의 뱀파이어 전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걸음은 굉장히 느릿느릿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아직 샬롯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었으니까.
샬롯의 옆에서 샬롯을 부축해 주고 있는 셀은 그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다리에 아직도 힘이 잘 안 들어가?]샬롯이 땀을 삐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재활 치료라고 해야 할까.
피안화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을 터트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샬롯은 이 기회로 확실하게 느꼈다.
[피, 다시 뽑아 줄까?]셀의 말에 샬롯은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의 피를 마시면 회복이 빨라지긴 할 거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무슨 가족의 피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이 순간을 샬롯은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만용의 대가가 무엇인지 죽음을 각오하면 어떤 리스크가 따르는지.
이건 정신적인 문제였다.
지금보다 더 정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샬롯은 고통을 감내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드래곤의 피를 흡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건지 셀이 샬롯의 몸을 가볍게 부축해 주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런 둘의 걸음은 얼마 못 가 멈추고 말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오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까.
거대한 덩치.
등에 메고 있는 검은 아카데미 대전 제1회 검술 부문 우승자로서의 증거였다.
그는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갑옷으로도 그의 근육은 숨길 수 없었다.
타노스라는 이름을 쓰던 요람 왕국 대공가의 핏줄 안토스 요람.
그가 도관의 대전사들과 요람의 마스터들을 데리고 오고 있던 거다.
샬롯의 표정이 환해졌다.
“오랜만이에요. 오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 세 명은 누군가를 거느린다거나 하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게 달라졌다.
타노스는 요람의 왕이 되어 있었고, 샬롯은 뱀파이어의 왕이 되어 있었으며 셀은 드래곤들을 언령으로 거느리는, 진정한 의미의 드래곤 로드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 셋의 행동에는 위화감 같은 게 없었다.
적응, 했으니까.
지성체는 욕망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다.
그냥 이 셋은 적응한 거다. 세상 전체를 발아래에 둘 잭의 가족이라면 그런 변화는 당연해야 했고 적응은 더더욱 당연해야 했다.
잭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이 셋의 머리에 아주 깊게, 각인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셋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타노스가 손을 내밀어 옆에 있던 남자를 가리켰다.
“이쪽은 다르미안 메델 공작님, 내가 요람의 국정 전반을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계신 분이고, 저쪽은.”
도관의 대전사이자, 수석 대전사인 안토니오 세나의 명에 따라 타노스에게 무신류를 가르치던 라이언 아인츠.
그가 작게 웃는다.
“도관의 대전사, 라이언 아인츠. 그런데 말을 높여야 할지 낮춰야 할지 모르겠네. 높여야겠지?”
뒤에 따르는 드래곤들이 없었다면 셀은 낮추라고 했을 수도 있다. 샬롯도 마찬가지였다. 뱀파이어가 따르지 않았다면 낮추라고 했을 거다.
하지만 이미 상징이 되었고 중심이 되었다. 그 무게는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게 책임이라는 거니까.
말을 높이라는 셀과 샬롯의 눈빛에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보니 색다르군요. 도관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나름 대전사로서 무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차례대로 악수했다.
물론 다르미안 메델 공작도 마찬가지.
자연스럽게 샬롯과 셀이 뒤쪽으로 손짓했다.
그에 따라 뒤쪽에 있던 한 명의 드래곤과 한 명의 뱀파이어가 다가왔다.
화이트 드래곤 댄 브라운과 뱀파이어 백작 데바 리오넬이 그들이었다.
원래 지휘체계라는 건 명령을 내리는 최상위 명령권자가 있고 그 밑에 또 다른 명령권자가 있으며, 그 밑에 또 다른 명령권자가 있는 피라미드 형태다.
그 피라미드 형태에서 셀과 샬롯은 한 명씩의 ‘장군’을 두었고 이 둘은 셀과 샬롯 다음으로 각 세력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이들을 뜻했다.
“댄 브라운이오. 앞으로 잘해 봅시다.”
기세를 숨길 생각도 없는 듯, 화이트 드래곤 댄 브라운의 기세가 사방을 울렸다.
새삼스럽지만 그는 드래곤이다.
싸우는 모습을 본 이들은 적지만 그는 적색 마스터의 힘을 지니고 있는 나름의 괴물.
다르미안 메델 공작은 침을 꿀꺽 삼켰고 도관의 대전사 라이언 아인츠는 흥분되는 듯 혀로 입술을 날름 핥았다.
문헌상으로만 접했던 드래곤이다.
이거, 피가 안 끓어오르면 도관의 대전사라고 할 수 없지.
냉큼 라이언은 손을 내밀었고, 댄 브라운은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악수였지만 가볍지는 않았고 오히려 무거웠다.
콰드득-!! 콰득-!!
전력을 다해 손에 힘을 주는 라이언 아인츠, 그리고 인상을 구긴 채 나름 힘을 주고 있는 댄 브라운.
참으로 흥미롭게도 라이언이 댄 브라운을 압도하는 모양새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지금 댄 브라운은 폴리모프 상태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전력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거의 초급 마스터급의 힘, 딱 그 정도밖에 낼 수가 없었다.
“……힘이 조금, 많이 들어간 것 같소이다.”
“아, 그렇습니까?”
모르겠다는 듯 웃고 있는 라이언 아인츠의 표정에 댄 브라운은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이 새끼가.
용인화 형태였으면 죽어도 진작에 죽었을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