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09)
제 410화
론의 그 말에 흔들렸던 나는 처음으로, 정말 살면서 처음으로 주도적인 무언가를 했다.
바로 도망.
후작가를 벗어난 거다.
쫓아오는 추격자들, 힘을 숨겼던 론의 본모습.
그리고 공포에 질렸던 나.
세상은 흑백이었으며 지나치게 어두웠다.
구름에 가려진 검은 하늘, 빛 한 점 들지 않는 그런 하늘이 내가 살던 세상이었다.
울면서 바위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났다.
스승님을.
‘왜 그리 슬퍼하는 것이냐.’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때의 내 감정, 내 표정, 내 모습. 그 모든 게 대신 설명해 주고 있었으니까.
‘참으로 불쌍한 아이구나.’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았다.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는 없었다.
그냥 그게 나라는 존재로 굳어졌다.
불쌍하고, 멍청하고, 한심한 놈.
‘평생 그렇게 살려는 것이냐.’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변하고 싶지 않느냐.’
그건 마치 선고와도 같았다.
검게 물들었던 하늘이 열리고, 빛이 내리쬐는 기분.
처음 보는, 사슬에 묶인 인형의 말에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인형이, 지금의 인형이.
그리고 그때의 그녀가, 과거의 그녀가.
지금의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나를 스승이라 부르거라.’
음악의 곡조가 바뀌었다.
그건 환희.
찬란하고도 새로운 미래의, 새로운 그림.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
환희에 찬 곡조는 성악과 합쳐져 회의장 전체를 울렸다.
모두가 집중했다.
분위기가 환해졌다. 세상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스승님과 함께했던 10년.
너무나도 즐거웠다.
나라는 존재를 변화시키고 마음가짐을 바꿨다.
나는 분명 변했다. 어렸을 때의 머저리와는 전혀 다른 그런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스승님에 대해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사시는지, 왜 여기에 갇혀 계신 건지.
아름다운 스승님이 왜 이렇게 외로워하시는지.
남녀가 함께한 10년이라는 세월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나는, 스승님을 통해 여자를 배웠다.
존경했고 존중했으며, 사랑했다.
시간이 흘러 스승님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조금만 더, 너와 함께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스승님의 눈물은 내 심장을 후벼 팠다.
‘너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처음 본 스승님의 눈물이었고 나는 그날 스승님을 만난 이후, 그리고 죽기 전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을 흘렸다.
‘세상으로 나가거라. 내 죽음에 슬퍼하지 말고 더 좋은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거라.’
세상에 스승님보다 좋은 여자는 없다. 그건 단언할 수 있었다.
‘나처럼 불쌍하게 살지 말거라.’
나는 불쌍한 놈이었다. 하지만 스승님은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낀 동질감이, 그 관계가 이제 끊기려 한다.
‘나를 따라 죽으려 하지 말거라. 너는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지 않았느냐.’
그건 유언이었다.
스승님의 생명이 완전히 꺼졌을 때 나는 오열했다.
세상이 무너져라 오열했다.
대회의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곡조는 진혼곡처럼 변했고 추모곡으로 변했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살아갈 의욕을 잃었다.
이대로 죽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스승님은 자기를 따라 죽지 말라고 했다.
필사적으로 일어섰다.
그때 내 머릿속에 누나가 떠올랐다.
후작가에서 지낼 때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주었던 누나.
궁금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그래서 곧바로 발란티에령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국가는 멸망했고 누나는 죽었다.
어떻게 죽었을까.
궁금했기에 알아보았다.
모든 것을 알았을 때, 툴칸의 황제와 황자들이 우리 누나를 어떻게 가지고 놀았는지.
임신을 시키고 어떻게 했는지.
비 오는 날 알몸으로 황성의 하인들과 집사들의 구경거리가 된 누나를, 어떻게 죽였는지.
그 순간 나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했다.
툴칸이라는 이름에 증오했다.
세상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복수.
죽고 싶어 하던 내 삶에,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스승님이 남기신 검, 실라리온을 들고 움직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였다.
군대가 왔고, 하프 블러드라는 반 초월자가 왔고 매 순간 사선을 넘나들며 싸웠다.
팔이 잘리면 이빨로 상대의 목을 물어뜯었다.
다리에 칼이 박히면 그 칼을 뽑아 상대의 목을 찢었다.
무기가 없어지면 양손으로 상대를 갈기갈기 찢었다.
어린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적어도 내 원한을 산 건 애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애들은 죄가 없으니까.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죽였다.
스승님이 남기셨던 장검 실라리온이 부러졌다.
버리지는 않았다. 이 검은 나와 스승님을 이어 주던 고리였으니까.
아공간에 부러진 검을 보관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더 좋은 검이, 필요하다는 거.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피에 취하지 않기 위해 스승님의 행적을 되짚었다.
다시 바위산으로 갔다. 스승님의 장례를 취하며 완전히 무너뜨렸던 바위산에서 며칠을 보냈고, 테슬란 왕국이었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스승님이 만들었던, 스승님의 유지가 잔뜩 담겨 있어야 했던 아카데미로 향했다.
완전히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건물은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아카데미 보고寶庫였다.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보고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가져간다.
아카데미의 전통.
그 보고에 처음 들어갔던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곳 정확히 한중간에 위치한 거대한 석상.
그건 과거 테슬란을 건국했다던 율리우스 테슬란, 그의 석상이었으니까.
과거를 전부 알고 있는 나는 그 석상을 보자마자 부숴 버렸다. 부수고 그곳에서 검을 얻었다.
긴 장검이었으며 자루는 길었고 고동古銅은 자루만큼이나 좌우로 쭉 뻗어 있었다.
길이만 거의 40cm에 육박한 그 고동古銅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율리우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질투는 아니었다. 혐오였지.
그 검을 얻은 이후 마수의 숲으로 향했다.
드워프들을 만나 고동古銅을 개박살 내고 실라리온의 형태로 검을 바꿨다.
다시 살육의 길을 걸었다.
음악의 흐름이 변했다.
복수는 끝났다.
죽은 이스칸다르의 시체를 의자 삼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스승님이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눈이 시큰해졌다.
이제 살아갈 이유가 없다.
정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가족도 없다.
이성의 유혹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자기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라고.
내 생각이 맞았다.
이 넓은 세상을 전부 돌아다녀 봤다. 그 많고 많은 여자들 중에 스승님보다 좋은 여자는 없었다.
관계를 맺어 보면 알 수 있다는 어떤 음유시인의 말은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관계를 맺기 전에도 좋은 여자인지 아닌 여자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내 삶에서 관계를 맺은 여자는 스승님 하나밖에 없다.
그건 나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 삶을 연명하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의 곁으로.
죽은 스승님의 곁으로 가고 싶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보고, 싶다.
천국과 지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존재한다면.
같은 곳에 갈 수 없어도 스쳐 지나가듯 한 번만.
딱 한 번만 웃고 있는 스승님을 보고 싶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회귀했다.
어리둥절한 상황.
이게 꿈인지 아닌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스승님을 보고 싶었다.
동굴로 향했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처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그 순간의 그 모습 그대로의 스승님.
그때의 내 감정.
무감각하게 표현했지만 속으로는 아니었다.
그건 환희. 진정한 환희 그 자체였다.
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스승님을 다시 만났다.
살아갈 이유가, 다시 생겼다.
다시 스승님과 함께할 수 있다.
대회의장에 또다시 환희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주변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던 술잔과 물.
전부 입에서 떼고 마에스트로의 손짓과 음악의 선율에 모든 감각을 맡겼다.
성악가들의 목소리와 현악기들의 조화가 연주가 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대회의장을 전부 덮고 아카데미 전체를 덮었다.
모두의 눈이 젖는다.
내가 느꼈을 그 감정을 모두가 느낀 거다.
음악으로 그걸 표현한 거다.
모두가 입을 벌리고, 붉어진 눈으로 노래가 울리는 감동을 가슴속으로 받아들인다.
인간, 이종족, 드래곤. 의미 없었다.
그 감동의 선율에서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다.
뚝- 하고. 음악이 끝났다.
정적이 흐른다.
1초.
2초.
3초.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짝짝짝짝!!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 소리.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주요 요직의 이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울면서.
그중 유일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나와, 내 어깨에 있는 스승님이었다.
모두가 울고 박수를 칠 때 나는 웃고 있었다.
대단하네.
그렇게 감탄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떠셨냐고.
노래 괜찮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스승님도 울고 있었거든.
하려던 말은 그냥 집어넣고 손을 뻗어 우리 스승님의 작은 손을 붙잡았다.
따뜻한 체온.
좋은 분위기.
스승님도 천천히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관객석에서 조용히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최고의 하루였다.
* * *
대수로울 것도 없이 대륙에 잭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미친놈으로, 누군가에게는 혁명가로 등등.
불리는 이름은 많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의 존재는 이미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는 거다.
바로 강함의 상징.
진짜 힘을 가진 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완벽한 표본.
그의 걸음 하나하나는 역사가 되었고, 세상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그의 전기가 만들어져서 팔리기 시작했다.
잭의 걸음을 한 번이라도 자기 쪽으로 돌리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구애를 했다.
흔한 말로는 청탁.
정작 잭에게 닿기도 전에 주변인들에 의해 차단당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잭의 존재감은 대륙 전체를 집어삼킨 상황이다.
그런 잭이었기에, 건국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의 체제와 다른, 그것도 왕이 없는 왕국을 만든다 해도 전부 나름의 상식선에서 수긍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건 상식선을 뛰어넘었다.
시어런 후작령의 분수대가 있는 광장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그곳에 후드가 없는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잭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마법이다.
수백, 수천 개가 넘는 수정구를 대륙 각지에 있는 대륙전장으로 뿌려 대륙의 모든 이들이 지켜보게 만든 말 그대로 마법.
되게 혁신적이고 놀라웠지만, 진짜 놀라웠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잭의 말.
그가 말했다.
[대륙에 왕이나 황제는 한 명이면 족하다.]평소의 잭을 아는 이들이라면 조금 다르게 생각했을 정도로, 잭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굉장한 위압감.
분명 아카데미에 있는 걸로 아는데 이 먼 거리까지 전해지는 저 위압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말에, 대륙의 모든 이들이 집중했다.
왕이나 황제는 한 명이면 족하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요람, 마티아스, 가나안, 이스마엘. 그리고 엘프들의 엘더림, 트롤들의 벤하이젠, 드워프들의 브란델, 오크들의 빌헬름, 하피들의 왕국. 그 모든 국가들은 ‘공국’이 될 것이며 공국을 다스릴 자의 호칭은 앞으로 ‘대공’으로 통일한다. 그리고, ‘밀로스 제국’은 그 모든 국가를 소유한다.]이미 모든 이야기가 끝났고, 반대를 내비치는 이는 없었다. 사실 반대하는 게 이상한 거다. 전부 잃은 채로 뒤지기 싫은 게 아니고서야 누가 반대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