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15)
제 416화
전생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인데, 일단 이건 둘째 치고.
“아직 안 죽었어?”
{예. 최근 들어 툴칸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이유가 분명 황제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모두가 틀렸습니다.}
이거 보니까, 우리 아베이루.
“예상도 못 하고 있었나 보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 저는 어떤 식으로든 필리포스 황제는 죽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황태자 이스칸다르가 황제의 자리에 앉으니까요.}
그런데 틀렸다.
“놈이 뭘 또 꾸미고 있는 모양인데, 그냥 내버려둬.”
이 말에는 이쪽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한테 맡기라는 그런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눈치 빠른 아베이루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주군. 조심하십시오.}
거참 신기하긴 하네.
이미 전생의 일과 많은 것들이 바뀌긴 했어도 필리포스 황제까지 볼 줄은 몰랐거든.
어떤 사람이려나.
chapter 4
툴칸의 황성은 마치 빙하기가 온 듯 싸늘했다.
차갑게 스치는 카리스마라는 이름의 바람.
황자들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
입을 다물었고, 황성 근처에 있는 모든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백성들도 입을 다물었다.
툴칸 황성의 거대한 대전.
그곳에서 모든 이들이 한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수척하지만 강인한 인상.
뚜렷한 이목구비와 고집이 센 듯 짙은 눈썹.
다물어져 있는 입.
필리포스 툴칸.
명실상부한 현 툴칸 제국의 황제이자, 과거 모든 정적들을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앉은 남자.
현 대륙에서 툴칸의 위상은 필리포스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태자라는 자식을 낳은 것부터 그는 범상치 않았다.
그런 황제가, 좌중을 훑어본다.
“레드 게이트가 무너질 동안 네놈들은 무엇을 했지?”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정확히는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하지 못한 거다.
왜냐면 레드 게이트가 무너질 동안 권력 싸움을 하고 있었으니까.
황제의 자리에 앉으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황제가 병석에서 일어나는 거? 상상도 못 했다.
그 말인즉,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이야기였다.
필리포스가 노한 얼굴로 대신들에게 묻는다.
“페이스트 공작이 죽어 나가고 성벽이 전부 무너져 내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땅이 적에게 짓밟힐 때 네놈들은 무엇을 했느냔 말이다.”
압도적인 카리스마였다.
스스로가 중급 마스터에 달하는 경지인 것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저 분위기는 마나 유저로서의 분위기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분위기였다.
“이 자리가 탐나는 것이냐. 자격이 없는 이가 이 자리에 앉으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말아먹는 게 이 자리다. 내가 볼 때 지금 대전에 있는 이들 중에 이 자리에 어울리는 이는 없어. 단 한 명도.”
“…….”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각 게이트를 활성화시키고 군대를 집결시켜라. 놈을 막는 자가 황제가 될 것이다.”
파격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주축이 되었다지? 전부 잊어라. 셋째도, 넷째도, 심지어는 저기 있는 공주들까지. 그들 모두에게 황제가 될 기회를 주겠다.”
대전의 모든 신하들이 웅성거렸다.
이건 권력 교체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아니지. 이건 역사의 전환이다.
3황자와 4황자들이 황제의 자리에 욕심내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밖에 없다. 툴칸의 역사상 황제의 자리를 잇는 것은 전통적으로 황태자였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후계자가 바뀐다 해도 둘째가 한계였다. 단 한 순간도 그 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역사가 지금 깨질 수도 있다고 현 황제가 선포했다.
세상에.
“가거라.”
황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황태자 이스칸다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묘하게도, 이스칸다르의 눈은 여유로웠다.
마치 이 모든 일도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는 듯. 혹은 의도했다는 듯. 그도 아니라면 흑막인 것처럼 이스칸다르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직까지 이스칸다르는 툴칸에 있었다.
아직까지는.
* * *
걸음을 옮겼다.
레드 게이트는 무너졌고 다음은 블루 게이트.
지금 저 앞에 보이는 푸른색의 성벽이 바로 블루 게이트다. 흑해로 향하는 거대한 강인 오르딘 강을 끼고 있는 대영지.
내가 알기로 여기가 네 명의 자작 가문과 네 명의 남작 가문, 그리고 세 개의 백작 가문과 하나의 후작 가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각설하고, 200년 전 툴칸의 시조가 테슬란의 병사들을 이 오르딘 강으로 몰아넣었고 강의 댐을 박살내며 수만 대군을 익사시켰다. 그 역사가 담긴 곳.
그러다 순간 웃고 말았다. 왜냐면 저 강이 심상치가 않았거든.
오르딘 강에서 엄청난 마나의 유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강 전체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래, 이래야지.
레드 게이트를 무너뜨렸을 때처럼 시시했으면 되게 실망했을 거거든.
200년 전, 그 누구도 겪어 본 적이 없던 그때 그 역사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강이 나를 향해 뻗어 왔다.
엄청난 양.
거의 도시 두세 개는 거뜬히 덮어 버릴 듯한 그 엄청난 양의 물이 나를 덮는다.
천마신검을 들었다.
물은 형체가 없다. 없지만 베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 벨 수 있어야 진짜 검사다.
그런 걸 할 수 있어야,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거다.
당연히 그냥 베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왼손으로 쥐고 있던 천마신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방향은 대각선.
서걱-
바다가 갈렸다.
갈린 채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형체가 없던 강이 갈라지면 다시 합쳐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건 없었다. 갈려 나간 강은 합쳐지지 않았다. 이건 내 천마신검이 존재의 근원 자체를 베어 버렸다는 뜻이다.
공간을 베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비어 버린 강, 그곳에 서 있던 수십 명의 고서클 마나 유저와 약 여섯 명의 마스터가 눈을 껌뻑인다.
이런 게 아닌데.
이런 걸 생각했던 게 아닌데.
그런 표정이다.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다시 하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하늘을 보통의 하늘과 달랐다.
거대한 통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내가 있는 평원 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거든.
전에 트롤들의 목을 베며 피를 담았던 오크통과 흡사한 모습인데, 그게 무려 수백 개나 된다.
과연 저기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코에 마나를 담아 냄새를 맡았다. 킁킁.
쌉싸름한, 마치…… 기름.
기름 냄새.
이어서.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수백 개의 오크통은 내 주변을 넘어 내가 있는 이 평원을 전부 기름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안 그래도 젖어서 누워있던 갈대들이 이제는 기름의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보니까 그냥 기름이 아닌 것 같다.
일종의 강화 작용이 되어 있는 기름.
이어서 파바바박-!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불화살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게 땅에 닿고 머지않아 화르륵.
평원이 전부 불탔다.
그 모습이 되게 익숙했다. 이건 데자뷔다.
전생에서 분명 이런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 기름 바다로 만들어 버리고 불을 붙여서 태워 죽이려는 그런 거.
무시하고 걸었다.
불바다를 헤치며 걸었다.
다시 한 번 하늘에서 화살이 쏟아진다.
감각만 넓히고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전부 피했다.
나는 원래 강이 있었던 그 메마른 곳으로 향했다.
여섯 명의 마스터는 이미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고 주변에 있는 수십의 고서클 마나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달려든다.
검을 휘둘렀다.
서걱-
한 명의 목이 날아간다. 고개를 숙이고 다리에 마나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툭.
몸이 뻗어 나간다.
순식간에 나를 놓친 적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딱 한 명.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루이스 콜먼, 맞지?”
“……나를…… 네놈이 어찌……?”
상당히 날렵한 형체의 이 남자가 내 기억 속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얘는 하프 블러드였거든.
내가 알기로 얘가 이스칸다르한테 충성을 맹세한 그 뭐야, 놈의 사조직인 야차였나? 거기에서 꽤 높은 자리에 앉아 있고 지금 이 시기면 삼 황자였나? 걔 밑에서 첩자 짓 하고 있을 땐데.
혹시.
“여기 삼 황자도 있냐?”
움찔하고, 녀석이 몸을 떤다.
그건 대답이었고 확인이었다.
“그럼 됐다.”
검을 휘둘렀다.
서걱-!
루이스 콜먼의 목이 하늘을 수놓는다.
몸을 돌리며 그대로 검을 한 번 더 휘둘렀다.
서걱-
뒤에서 기습을 하던 또 다른 마스터의 목이 솟구친다.
자리를 박찼다.
콰앙- 콰직!
멀리 있던 고서클 마나 유저의 목을 그대로 짓밟아 땅에 처박고, 검을 고쳐 쥐었다.
놈들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지금 위치가 매우 묘하다는 거.
내가 선 채로 바라보고 있는 방향,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방향에 놈들이 모두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건 정말 묘한 위치였다. 다르게 말하면 나한테는 환상적인 위치라고도 할 수 있었다.
불바다가 되어 버린 그 땅에서 나는 천마신검에 혼기를 집어넣었다.
검은 기운을 줄기차게 뻗어 내던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쩌어엉-!!
그들 중 감각이 꽤 괜찮은 마스터가 하나 있었다.
그 마스터는 전력을 다해 몸을 뒤로 숙였다.
그래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지금 몸 자체가 뒤로 젖혀진 상황이어서 저 마스터가 짓고 있을 표정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볼 필요도 없었다. 아마 공포에 질려 있겠지.
내가 검을 벤 궤적.
그 궤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반 토막이 되었으니까.
나머지 마스터들과 고서클 마나 유저들, 그리고 그들 위쪽에 있던 나무와 돌멩이들, 그리고 산, 그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것은 초소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쩌어엉 하는 거울 깨지는 소리는 내가 휘두른 궤적의 모든 것들이 반으로 깨진 소리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털썩 쓰러져 있는 그 남자의 옆에 섰다.
주위로 피어오르는 불.
그리고 그 불바다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내가, 고개를 아래로 내려 놈을 바라본다.
놈도 나를 바라본다.
경악한, 공포에 질린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덜덜덜 떨며 무언가를 말한다.
“사…… 살……려…….”
그 이상 듣지 않았다.
천마신검을 역수로 고쳐 쥐고 푸욱, 그의 심장을 찔렀다.
숨이 멎어 가는 것을 온전히 느낀 이후 검을 뽑았다.
블루 게이트에 삼 황자가 있다? 관짝을 짜 달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자신감이지.
당연한 소리지만 놈은 엑스트라다.
길거리에 흔한 엑스트라 1, 2, 3 같은 존재. 하지만 무조건 죽일 거다.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어서 성벽이 열리고, 그 성벽으로 수많은 이들이 뛰쳐나왔다.
마나 유저들도 있었고 일반인도 있었으며 마법사도 있었다.
그 숫자는 무려 2만, 아니지. 그 뒤쪽에서 더 몰려오는 거 보니까 최소 5만? 그 정도는 넘는 것 같다.
툴칸을 버리면 산다고 했는데, 믿음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내가 만만해 보인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걸었다.
진조들의 태상이 입었다던 태상의 로브는 워낙 잘 만들어져서 이 불바다 속에서도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고 불타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그을음도 없었다.
펄럭.
검은 로브가 바람에 흩날리고, 나는 자리를 박찼다.
검은 줄기가 되어 앞으로 뻗어 나간 나와 수만의 대군이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