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20)
제 421화
chapter 6
이종족들의 수장들이 모여 있었다.
이제는 왕이 아닌 대공이라는 직위를 받게 된 오크 대공 톤 그륜힐, 하피 대공 빌레아, 엘프 대공 바르바라 귀도, 트롤 대공 넬슨 푸코. 드워프 대공 메나마-아무르.
그들은 성벽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청난 수의 인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쟁을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저건 피난민, 툴칸 제국에서 일어난 그 여파로 인해 도망쳐 온 이들이다.
“……엄청나군.”
귀도의 말에 나머지 대공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에서 대공으로 직위가 바뀐 것, 전부 수용했다. 지배자가, 진짜 황제가 그렇게 하라고 하잖아. 그럼 해야지.
불만? 없었다. 가지는 게 이상했다. 가졌으면 그날로 뒤졌을 테니까. 또다시 혼란이 종족을 덮칠 테니까.
종족의 운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바로 이 다섯 대공이다.
뭐가 중요한지 이들은 다 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일들은 또 다른 의미로 충격이었다.
“혼자서 전쟁을 한다……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전쟁을 한다. 저기에 앉아 담배를 뻐끔뻐끔 피어 대는 그린 드래곤 블랑도 혼자 전쟁을 할 수 있고 이 자리에 있는 다섯 대공들도 전부 혼자서 전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혼자서. 지금 마수의 숲보다 거대하고, 기존의 인간들의 왕국보다 더 거대한 국가를 상대하고 있다.
그냥 국가도 아니다. 단일 세력으로는 이 대륙에서 가장 큰 국가를 혼자서 썰어 대고 있는 거다.
“그때 숲에서 보여 주었던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군.”
혼잣말을 하던 귀도에게 그륜힐이 묻는다.
“상상도 못 했는데.”
귀도의 시선이 그륜힐에게 옮겨진다.
대수로울 것도 없이 그륜힐과 바르바라 귀도의 사이는 좋지 않다. 정말 좋지 않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이나 다름없다.
“툴칸 제국의 피난민을 엘더림에서 받아 주겠다고 했다지?”
귀도가 어깨를 으쓱했다.
따르기로 맹세했다. 종족의 운명을 걸었다. 잭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귀도는 생각했고 결론 내린 거다.
“워낙 피난민들이 많아야지. 인간들 도시들로는 전부 수용이 안 될 정도라고 하더군.”
그래서 툴칸 제국과 그나마 가까운 엘더림에 피난민들을 위한 수용소를 설치했다.
당연히 신신당부도 해 놨다. 피난민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건드리지 말라고. 총사령관인 그레이 시어런에게도 말해 놨고, 그 정도면 다 알아서 처리할 거다.
그런 일을 한 것은 귀도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는 네놈도 빌헬름에 피난민들을 위한 수용소를 만들지 않았나.”
“그랬지.”
그게 끝이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다른 데로 시선을 옮겼다.
보통 누군가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이런 흐름은 정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아직 쌓여 있는 게 풀리지 않았으니까.
적색 마스터가 된 톤 그륜힐, 여전히 중급 마스터인 바르바라 귀도. 둘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이런 관계로 남을 거다.
수십 년 이상 쌓여 온 감정이니까.
조용히 뒤에서 관망하던 트롤 대족장, 정확히는 트롤 대공 넬슨 푸코가 말했다.
“우린 지금 역사의 순간에 서 있는 거라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간다.
“대륙이 통일되는 그 역사의 순간, 대륙이 한 남자의 손에 떨어지는 그 순간을 우린 지켜보고 있어.”
어찌 보면 잭의 체제하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것은 트롤들일지도 모른다.
정당한 피에는 정당한 대가.
그 슬로건은 넬슨 푸코와 모든 트롤들의 심장을 울렸다.
“참으로 대단한 남자야.”
그냥 모든 감정이 그 말에 다 들어 있었다.
잭은 정말, 대단한 남자였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진짜 지배자이자, 세상의 정점은 저래야 한다.
모두가 상상 속으로만 그렸던 신의 모습. 그걸 잭이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이종족들의 다섯 대공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 * *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눈앞에 보이는 골드 게이트.
이렇게 말하긴 좀 그런데, 꽤 익숙한 모습이다.
어센블 영지의 밀로스 아카데미의 성벽이 딱 저런 모습이거든.
빛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변하는 성벽.
한 번 더, 심호흡했다.
후우.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죽인 건지 기억도 안 난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 그게 수십 번, 수천 번, 수만 번, 수십만 번을 넘어서면 보통 정신이 나가는 게 맞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다.
내가 지금 그러지 않은 이유는 이미 한 번 겪었기 때문이다.
감각을 넓혔다.
골드 게이트, 그곳에 있는 병사의 수는 어림잡아 최소 백만, 아니 그 이상.
그리고 20명의 마스터와 약 2천 정도에 달하는 고서클 마나 유저들이 느껴진다.
이것 봐라.
이 정도의 전력이면 툴칸 전체 전력의 절반 정도는 되는 수준인데 이 병력이 여기 골드 게이트에 있다고?
마치 사활을 건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계속 해 왔던 것처럼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 * *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
역대 존재한 적도 없던 진짜 괴물.
이런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천마.
하늘의 악마.
다가오고 있는 잭을 바라보며 타마르 툴칸은 생각했다.
하늘에 있어야 할 악마가 땅에 존재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일 거라고.
그래서 저렇게 이상한 거라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항상 권력의 최상층을 좇았고, 전쟁보다는 평화를 더 좋아했던 툴칸의 계승 서열 2위의 황자.
저거다. 가지고 싶었고 항상 상상 속으로만 그렸던 것. 바로 제왕의 분위기.
“내려 주십시오. 명령을.”
근위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황태자가 아닌 자신을 따르는 남자. 크루즈 브란트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문득, 타마르는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축축했다.
긴장으로 젖어 있는 손을 강하게 꽈악, 쥐었다.
물러설 곳? 없다.
어차피 저 남자를 막지 못하면 툴칸은 망한다. 망한 국가의 황자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이스칸다르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죄송합니다.”
모른다는 뜻이었다. 사실 별 기대도 안 했다. 이스칸다르가 어떤 놈인지 타마르는 안다.
평상시 웃음기와 여유가 가득한 놈 특유의 표정은 그저 가면일 뿐, 놈은 그 누구보다 추악한 본성을 숨기고 있다.
그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몰랐지만 적어도 그의 성격이 음침하고 아주 역겹기 그지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진퇴양난이군.”
상황이 그냥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피할 생각은 없었다. 한 국가의 황자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건 원했건 황자라는 것만으로 상징성이 생긴다. 그런 상징성을 등에 업고 도망? 그런 건 생각도 안 했다.
타마르가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죽을 거다.”
모두가 타마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 줄 수 있다는 그런 거짓된 약속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 자리에 죽는 이들 중에는 나도 있을 테니까. 보살펴 준다는 것은 지키지 못할 거짓된 약속이니까.”
“…….”
“가족이 걱정되는 이들은 가라. 도망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가라. 잡지 않는다.”
“황자님-!”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타마르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외면하고 있을 뿐 진짜 진실은 하나다.
이미, 전쟁을 패배했다는 거.
잭 발란티에 놈을 죽인다…… 그 이후에는?
그의 뒤에서 나서지 않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
이종족들은 물론 기존의 왕국의 병사들은 대체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이미 저놈에게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잃었다.
필연적으로 전쟁은 패배했고 툴칸의 이름은 머지않아 사라진다. 그게 팩트였고 그게 미래였다. 변하지 않을 불변의 미래.
타마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툴칸 제국을 지키고 싶은 이들은 남아라.”
그건 연설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연설.
“나는 지키는 자들과 함께 싸우겠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리는 그 순간까지 함께 싸울 것이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마나를 담은 목소리였기에 널리 퍼져 나갔다.
타마르는 지도자였다.
이스칸다르에게 가려진 지도자.
그가 황가가 아닌 다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괜찮은 귀족이 되었을 거다.
타마르의 연설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수백만이 넘는 이들이 전부 광전사였다는 거.
이미 툴칸을 신으로 받드는 신도들이다.
타마르의 진심은 그저 곡해되고 왜곡되어 전해질 뿐이었다.
“와아아아아아-!!”
그들은 그저 함성만을 내뱉었다.
자리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툴칸이라는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고 툴칸을 신격화하는 이들에게 툴칸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의 말은 곧 법.
이 자리에서 도망은 없다.
함께 싸우겠다.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 이들만 모아 놨고 그런 이들이 모인 거다. 타마르가 의도한 게 아니라 이스칸다르가 의도한 거다. 애초에 권력 싸움에서 최종 승자는 이스칸다르였다. 그가 괜히 황태자였겠는가. 온건파의 수장, 이런 건 의미 없었다. 그리고 광전사가 아닌 이들은 진작에 도망쳤다. 피난민이 되어 각 국가의 급조된 수용소에 박혀 있다.
타마르는 툴칸을 지키고자 하는 맹목적인 믿음에 보답했다.
물러설 곳이 없던 타마르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진격하라-!!”
“추우우웅-!!”
* * *
느껴진다.
죽음을 각오한 전사의 각오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본다.
내 눈에는 마나가 얽히고 얽힌 그 모든 흐름과 결이 보인다.
그건 곧 통찰력이 되었고 감각의 발달이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마나를 보는 것에서 만족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나는 내 능력을 거기서 한 단계 더 진화시켰다.
그건 경험과 각오, 그리고 재능이 어우러진 결과.
나는 누군가와 싸움을 할 때 상대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해 낸다. 분위기를 읽고 전장에 흐르는 모든 것을 느낀다.
이곳으로 오면서 싸웠던 수많은 광전사들에게는 맹목적인 믿음 말고는 없었다. 두려움도 있긴 했지만 그거랑은 다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빛이, 나고 있었으니까.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그런 각오.
순수한 각오.
일반 병사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런 각오에는 마땅히 대우해 주어야 함이 마땅하다. 여기서 대우라 함은 하나밖에 없다.
들고 있던 천마신검을 바닥에 푹, 꽂았다.
눈앞에 보이는 수백만의 광전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