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27)
제 428화
베커만은 감정을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그런 감정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다.
베커만의 고개가 정면으로 향한다. 드넓은 바다.
검은색의 소용돌이가 곳곳에 휘몰아치고 있는 이곳은 흑해다.
한번 나갔다 하면 배의 등급에 상관없이 침몰하고, 100% 이상이 실종된다는 그 흑해.
근 400년간, 아니 아마 그 이전까지 포함해서 흑해 너머까지 갔던 배는 없다. 배도 없기에 사람도 없다.
지금 그곳을 베커만은 지나가고 있다.
덜컹, 덜컹.
배가 심하게 요동친다.
마나를 끌어 올렸다. 적색 마나가 함선 전체를 덮는다. 그럼에도 요동치는 것은 여전했다.
아마 모르는 이였다면 이런 의견을 제시했을 거다.
날아서, 가면 되지 않겠냐고.
배 전체를 띄워서 전진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플라이 마법은 그럴 때 쓰려고 만든 게 아니냐고.
그건 모르는 소리다.
흑해의 소용돌이는 흑해의 위험성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늘에는, 보통 영공이라 불리는 그곳에는 마나의 흐름을 뒤엉키게 하는 기류가 조성되어 있다.
소용돌이를 피하고자 배를 하늘에 띄우면 그 기류에 의해 배는 공격당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게 되고 그걸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배는 그대로 흑해로 추락한다.
추락한 이후 소용돌이와도 싸워야 한다. 뿐일까.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리고 번개가 치며 비가 오는 게 흑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우르릉-!!
멀쩡한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꽤나 먼 거리의 망망대해 쪽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기상이류, 마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괴상한,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 물리 법칙은 개나 줘 버린 말 같지도 않은 바다.
수백 년간 흑해 원정을 시도했던 이가 없는 진짜 이유였다.
베커만의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조절하기 힘들다. 정말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쿠궁-!
순식간에 배가 안정을 찾았다.
베커만의 시선이 뒤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 손을 뻗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뻗고 있는 손끝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새하얀 아지랑이, 베커만은 저게 무엇인지 안다.
잭 발란티에가 사용하는 영혼의 힘, 그것과 비슷한 종류의 힘이다.
“괜찮으신 겁니까?”
베커만의 질문에 이스칸다르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리가 있겠나.”
“…….”
“놈은 내 기운을 알아. 그런 놈을 속이려면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어, 후우.”
평소답지 않게 이스칸다르는 제대로 말을 끝마치지도 못했다. 그냥 그 이상 말하기 싫었다. 지금 상황이, 그러했으니까.
뻗은 손을 거두지 않은 채 걸어오던 이스칸다르가 자연스럽게 베커만의 옆에 선다.
주제를 바꿔야 했다.
“황성에 있었을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시는가?”
한다.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행동은 자네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행동일 수도 있다고, 그걸 감내할 수 있냐고 물었었지.”
“예, 폐하.”
“자넨 감내할 수 있다고 대답했어. 아니신가?”
“맞습니다. 감내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분명 베커만의 표정에는 이스칸다르가 내린 결정에 대한 불만 같은 게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스칸다르는 무언가를 느꼈나 보다. 이스칸다르의 팔이 베커만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
“……죄송합니다.”
꽈악, 베커만의 어깨를 쥐고 있던 이스칸다르는 조금 더 팔에 힘을 주었다.
“놈과 제대로 싸워 보고, 놈이 어떤 놈인지 수년 동안 겪었던 나였기에 이 정도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라네. 지금 상황에서 놈을 죽인다? 불가능해. 그래도 싸워 봐야 하지 않겠냐, 그건 개소리에 불과하지. 그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아.”
놈이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고 도청을 하든 뭘 하든 그딴 건 관심 없다. 솔직히 없는 게 당연하다. 왜냐면 이스칸다르는 잭을 죽일 생각이니까.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새로운 국가가 건국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잭 발란티에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 체제가 등장할 수 있던 배경은 무엇인가. 잭 발란티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놈을 죽이면, 어떻게든 놈을 죽이면 그 모든 걸 무위로 돌릴 수 있다.
이스칸다르는 평소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자네 말고 누구를 믿겠나.”
그 웃음을 바라보며 베커만은 생각했다. 확실히 전에도 느낀 거지만 잭, 그 남자의 웃음과 묘하게 닮았다고.
처음에는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항상 여유롭고 항상 부드럽게 웃는 그 모습.
베커만은 그걸 제왕의 분위기라고 보았다. 그건 분명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제왕의 분위기가 비슷하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외모가 닮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후광이 사라진 느낌. 그래, 딱 그런 느낌이다.
그런 베커만에게 이스칸다르가 말한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말했지. 흑해 너머에 또 다른 대륙이 있다고.”
“…….”
“그리고 내가 보았던 기억의 파편에 의하면 분명 또 다른 대륙은 존재해. 방향도 이쪽이 분명하고.”
단순히 그거 때문에 흑해를 넘는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이스칸다르는 정말 오랫동안 생각했다.
회귀. 이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솔직히 말하면 회귀라는 그 현상을 이스칸다르는 가지고 싶었다. 소유하고 싶었다. 그 권능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잭 발란티에보다 먼저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다면 어땠을까.
이스칸다르는 망설이지 않고 발란티에 후작령으로 찾아가 어린 잭 발란티에를 죽였을 것이다. 아주 난도질해서 죽였을 거다.
세상이 너무 시시해서 ‘적’을 원하긴 했지만 놈은 적이 아니다. 놈은 재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상황은 바뀌게 된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돌릴 수 있을까.
회귀라는 현상에 대해 여러 가정을 생각했던 이스칸다르는 확언할 수 있었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회귀라는 현상도 일종의 재해였을 것이다.
전생에서는 하프 블러드들이 많았다. 반 초월자이긴 해도 분명 그들은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죽으면서 그들이 가진 영혼의 힘이 세상에 퍼졌고 그게 엉키고 엉켜 시간을 되돌려 버린 것.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자, 그럼 지금 세상에 하프 블러드가 있는가.
없다.
초월자는 어떠한가. 극소수다.
그 가정이 맞는다면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데스 나이트가 되었던 잭 발란티에. 놈은 어찌 되었을까.
신격의 뒤엉킴이 일어나 시간이 돌아갔다면 놈이 죽었다는 이야긴데 왜 죽었을까.
그런 힘을 가진 괴물이 대체 왜, 죽었을까.
자살? 글쎄.
그거라면 지금 하는 행동들은 답이 없어진다. 하지만 만약 놈이 누군가에게 죽었다면?
근거는 여러 개 있었다. 우선 이 서대륙을 침공했던 기이한 형체의 생명체.
온몸에 가시가 돋아 있었고 가진 힘이 일반적인 마스터들보다 우월한 그 수많은 생명체.
그건 하프 블러드 실험을 주도했던 이스칸다르의 눈에 ‘키메라’처럼 보였다.
그 키메라는 분명 이 대륙, 그러니까 서대륙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왔다는 뜻이고 그건 또 다른 대륙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곳에 있는 ‘어떤 것’이 잭 발란티에를 죽인 게 아닐까.
혹은 같이 죽은 게 아닐까.
그건 퍼즐 조각이었다.
잭 발란티에 정도의 괴물과 그 힘에 비견되는 괴물이 동귀어진을 해서 죽었다.
그리고 그 두 놈이 가진 영혼의 힘이 엉키고 세상 전체와 엉켜서 회귀라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게 이스칸다르의 판단이었다. 적어도 이스칸다르가 보기에 이 가정은 합리적이었다.
마치 운명처럼 이 가설에 꽂혔다.
이 가설 덕에 해결책을 떠올렸다.
잭 발란티에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그건 바로 전생에서 놈을 죽인 놈과 손을 잡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동대륙으로 가야 한다는 것.
이스칸다르는 강력한 운명을 느꼈다. 그건 분명 사실이었다.
베커만의 어깨를 쥐고 있던 이스칸다르가 팔을 치우자 둘 사이에 침묵이 자리한다.
이스칸다르도 안다.
이 모든 건 가능성의 일이라는 거. 어디까지나 자신의 추측에 기반한 일이라는 거. 운명, 필연, 그 이끌림이 전부라는 거.
하지만 이거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이스칸다르에게 베커만이 말했다.
“저는 그저 폐하를 따를 뿐입니다.”
단호한 어조,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눈.
베커만의 충성심은 여전했다. 정확히는 전보다 더 굳건해졌다. 이스칸다르가 원하는 충신의 가장 완벽한 형태.
생각하지 않는 검.
생각을 해도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는 검. 오직 명령에만 따르는 검.
전생에서도 이랬다. 그 흐름이 굉장히 흡사했다.
처음에는 흔들리며 중심을 못 잡다가 이제 제대로 된 중심을 잡게 된 베커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워서 이스칸다르는 웃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정확히는 베커만의 첫 번째 제자인 ‘메렝게스’와 두 번째 제자인 ‘로만 스튜어트’는 배를 타고 흑해를 항해 중이었다.
항해 6일 차, 잭이 툴칸의 황성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대화였다.
* * *
세상에.
일단 놀라웠다.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
“내 눈과 감각을 속일 정도의 기운을 이스칸다르가 너한테 주입해 주었고 그걸 바탕으로 넌 여기서 필리포스 황제의 노릇을 했다…… 그러니까, 일단 필리포스 황제는 진작에 세상 하직한 거네?”
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끄르륵- 하며 괴상한 소리를 낼 뿐. 조금 아쉽기도 하다.
필리포스 황제의 위명은 꽤 대단했거든.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젠 못 만나겠네.
혹시 필리포스는 툴칸의 핏줄과 내 핏줄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혹은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군나르의 핏줄을 말해준 순간 그가 짓는 표정은 과연 어떤 표정일까.
그런 게 궁금했는데 의미가 없어졌다. 그냥 그 정도가 전부였다.
결정적으로.
“이스칸다르는 도망을 갔다, 이건데.”
“끄륵.”
“세상에, 그 이스칸다르가 도망을 갔다? 국가를 버리고 자기의 지지기반이 될 툴칸의 광전사들을 전부 미끼로 삼아서 도망을 쳤다? 놈의 사조직인 야차들도 전부 미끼로 사용해서 도망을 쳤다? 세상에. 몇 개월이라는 그 시간 동안 놈이 고작 생각해 낸 게 이거라고? 지 혼자 살자고 도망치는 거?”
웃기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허무하기도 했다.
나는 전생에서 이스칸다르의 밑바닥을 보았다. 그 이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있었다.
놈은 지금 밑바닥 그 밑의 지하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