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31)
제 432화
공간을 이동한 거다. 꽤나 먼 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이 숨을 헐떡인다. 하얀색을 띠고 있는 혼기가 놈의 몸을 덮는다.
놈이 말했다.
“따라가지 않는군.”
“굳이? 난 저거보다 너랑 시간 보내는 게 더 좋은데.”
의미심장하게 웃자 놈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몇 대 처맞아서 꼴이 꽤 가관이었거든. 저 꼴로 인상을 찌푸리니 웃길 수밖에.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로는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웬만하면 쟤네 가기 전에 죽을걸.”
“…….”
“운 좋으면 살겠지. 그런데 확률이 높지는 않아.”
흑해의 바다가 쉬웠으면 영광의 시대 때 원정 나가는 애들이 있었을 거다. 그런데 없잖아.
아마 베커만은, 한 80프로 확률로 가다가 죽을 거다. 살면 운이 좋은 거지.
무엇보다, 난 굳이 베커만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가 않다.
우리 셀한테 양보해 주고 싶거든.
저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런데.
“뉘앙스가 묘하네. 설마 저쪽으로 시선 돌린 사이에 도망치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이스칸다르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생각까지는 했나 보네?”
“…….”
“히야, 어떻게 된 게 너는 달라진 게 없냐. 베커만은 아냐? 네가 이런 새끼인 거?”
그러다 깨달았다. 사실 베커만은 알았어도 별 상관 하지 않았을 거다. 다만 지금 이야기하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전생에서 내가 베커만이랑 싸우는 사이에 너, 도망쳤잖아.”
“…….”
“그때 베커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아냐?”
“알아야 하나?”
자연스럽게 재생이 끝난 오른손으로 턱을 긁적였다.
“그래도 아는 게 낫지. 그때 쟤, 되게 절망했거든.”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직감했다고 하더라, 너랑 함께 싸우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더라, 도망가는 네 모습을 보고 자기 눈을 뽑아 버리더라, 자기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면서.”
“그러니까,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난 이해가 안 가.”
놈이 움찔 몸을 떤다. 반사적으로 그러니까, 혹은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 말을 하려던 게 뻔했다.
그런데 하지 못했다. 내 말에 뉘앙스를 놈은 느꼈으니까.
“왜 네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걸까. 왜 고작 너 따위가 기억을 되찾은 걸까.”
“……개새끼.”
천마신검을 고쳐 쥐었다.
“그때 베커만, 한 단계 더 성장했던 건 아냐?”
몸을 회복시키던 놈이 움찔한다.
“……성장?”
“아이러니하지. 황제의 검을 자처하며 검으로 살던 하프 블러드가 두 눈을 잃고 나서야 벽을 깨고 진짜 초월자가 된다…… 꽤 낭만적이더라. 가진 힘으로만 따지면 너랑 싸우던 그때의 나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준이었어. 나름 힘겹게 이겼거든.”
이스칸다르는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모르는 게 맞지. 그때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거든.
공간을 격하며 텔레포트도 곁들이고 아주, 대륙에서 대륙 끝까지 도망가더라.
“내가 왜 베커만을 높게 사는지 알아?”
다리가 검게 물든다. 마나를 넣은 것과는 달랐다. 내 몸이 뻗어 나갔다.
한 점의 빛, 그런 게 아니라 공간을 격隔했다.
이스칸다르가 쓰는 축지와 지금 내가 한 것은 같은 기술이다.
어느새 나는 이스칸다르의 옆으로 와 있었다. 놈은 반응하지 못했다. 늦게 눈치챘다.
서걱-!
재생되었던 이스칸다르의 오른팔이 다시 하늘 위로 솟구친다.
놈이 고개를 돌렸다.
푸욱.
다시 한 번 천마신검이 놈의 명치를 뚫는다.
“쿨럭-!”
마저 말하면.
“쟤는 단순할 정도로 앞만 보는 놈이었거든. 내가 사람을 보면서 감탄했던 적이 몇 번 없어. 그런데 베커만은 보고 있으면 감탄하게 되더라. 그 정도로 성장했고 그 정도가 되었어. 고작 너 같은 놈 밑에 있기엔 아쉬울 정도로.”
검을 왼쪽으로 쭉, 그었다.
서걱 하며 놈의 폐가 갈라지고 살이 찢어진다. 곧바로 손을 뻗어 놈의 목을 움켜쥐었다.
“솔직히 조금 궁금하긴 해. 지금 녀석의 모습은 내 기억 속의 모습이 맞긴 한데 조금 모자라거든. 과연 녀석은 동대륙으로 가면서 성장을 할까 아니면 죽음을 맞이할까.”
작게 웃었다.
“그걸 넌 모를걸. 왜냐면 뒤질 테니까.”
이스칸다르가 괴성을 내질렀다. 놈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눈을 감지는 않았다. 하얀색의 혼기가 놈의 몸을 덮는다.
폐가 복구되고 팔이 재생되고 상처가 재생되었다.
하얗게 변해 버린 놈의 눈과 하얀 머리, 진정한 의미의 백인이었다.
놈이 그 상태로 손을 뻗는다. 자기 목을 움켜쥐고 있던 내 팔을 붙잡았다.
우두둑.
살이 짓눌리고 뼈가 뒤틀린다. 그냥, 거기까지였다.
놈이 혼기로 만든 마지막 기술.
아서 군나르가 그러했던 것처럼 일종의 변신이었다. 온몸에 혼기를 담고 혼기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기술.
지금 상황은 간단하다.
놈이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와의 격차가 벌어졌다는 거.
내가 지쳤건 지치지 않았건 그건 의미가 없었다.
꽈아악-!!
“켁…… 켁.”
놈이 발광한다. 천마신검을 휘둘렀다. 서걱, 놈의 팔이 다시 잘려 나간다. 한 번 더 서걱. 놈의 나머지 팔도 어깨 아래로 잘려 나갔다.
놈이 발을 들어 올린다. 검을 들어 베었다.
서걱.
남은 발로 나를 걷어차려 했다. 한 번 더 휘둘렀다.
서걱.
번개 치는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는 바다에서, 나는 최종 승자가 되었다.
놈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을 통로로 삼아 혼기를 집어넣었다. 놈의 목이 검게 물든다. 검은 기운이 놈의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놈의 심장 부근으로 내려갔다.
“안…… 돼…… 안…… 돼-!!”
놈의 심장에 자리하고 있는 열 개의 서클.
그중 하나를 덮었다.
파스스.
“께엑-!”
하나 더.
파스스.
“그만…… 그만…….”
계속 놈의 서클이 부서져 갔다.
7개, 6개, 5개.
장관이었다. 마치 예술 작품을 붓으로 그리듯, 완성 되어지는 예술품에 마지막 붓질을 하듯 허공으로 터져 나가는 놈의 마나 하트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제발…… 그만…….”
무시했다.
4개가 되고, 3개가 되었다.
2개가 되었고 1개가 남았을 때.
놈은 도저히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으로는 말하고 있었다. 살려 달라고.
쥐 죽은 듯이 살겠다고.
무시했다.
아, 이쯤 됐으니 말해 줘야겠네.
“툴칸이 사실은 ‘군나르’의 핏줄이더라.”
“쿨럭-!”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사실 내 이름이 원래 잭 군나르였대. 너는 이스칸다르 군나르고. 얄궂지?”
머나먼 친척, 대충 그런 건데…….
이스칸다르에게는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네 말대로 이 질긴 인연, 이제 끝내자. 정말 지겨웠다.”
손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놈의 나머지 서클도. 퍼걱, 터져 나갔다.
쩌어어어엉-!!
놈의 마지막 서클이 파괴된 순간 사방으로 엄청난 마나가 퍼져 나갔다.
정말로 엄청났다.
이제 이스칸다르는 일반인이 되었다. 영혼에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니 이제는 숨만 쉬는 시체나 다름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을 깜빡했네.”
놈이 힘겹게 눈을 뜬다. 덜덜 떨리는 몸과 눈,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만 그냥 무시했다.
왜냐면 뻔했거든.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그런 거겠지.
“툴칸 황성에서 너 기다리고 있는 애들이 있어.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되잖아. 그건 지성인으로서 안 될 일이잖아.”
웃었다.
그러니까.
“바로 가자.”
곧바로 텔레포트했다.
순식간에 툴칸 황성에 도착한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놈의 시체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다행스럽게도 사 황자 바르토메우 툴칸과 공주 미셸 툴칸, 그리고 듀크 헬은 도망가지 않았다.
사실 도망가는 게 웃기지. 왜냐면 가기 전에 다리를 전부 박살 내 놨거든.
그들은 처참한 이스칸다르의 모습을 보더니 경악했다.
“아…… 아아아아…….”
“이…… 이스칸다르?”
“으…… 으힉.”
통곡을 하는 놈은 듀크 헬이고, 저기서 바지에 오줌을 싸고 별짓을 다 하는 건 바르토메우 툴칸, 그리고 그 옆에서 마임 하듯 손짓 발짓을 하는 저 여자애는 미셸 툴칸.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말일 거다. 힘들어 뒤질 것 같다.
바닥까지 끌어내려진 이스칸다르, 놈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더 추잡하고 역겨웠던 놈.
앞서 말했듯 질긴 인연은 이걸로 끝이다.
그냥 죽일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딱 하루 정도만 고문하고 죽이려 한다.
어디 보자.
오늘이 밀로스력 1년 1월 8일. 시간은…… 16시.
단상을 내려갔다.
“우리 깊은 대화를 좀 나눠야지.”
사지가 잘린 이스칸다르를 제외한 세 연놈들이 뒷걸음질 친다. 무시하고 천마신검을 고쳐 쥐었다.
“죽여 달라고 애원은 하지 마. 그냥 내가 죽이고 싶을 때 죽일 거니까.”
그 전에.
일단 사 황자 바르토메우와 공주 미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놈들의 머릿속으로 내가 아는 과거의 기억이 흡수된다.
엘프 궁내관 루트비히가 그러했던 것처럼 기절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이 연놈들이 죽는 이유, 왜 죽어야 하는지,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지.
그 대략적인 걸 알게 해 줬다.
약 10초가 지났을 때, 두 연놈의 눈이 크게 떠진다.
덜덜, 몸을 떤다.
살려 달라고 외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의미는 없었다.
천마신검을 들어 올렸다.
서걱-
* * *
하루가 지났다.
밀로스력 1년 1월 9일. 오전 07시.
아베이루가 툴칸의 수도에 도착했다.
아베이루는 혼자가 아니었다. 밀로스 제국의 모든 대공들과 잭의 최측근인 이들, 그들의 숫자가 최소 100명이 넘어간다.
그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면서 모든 것을 보았다.
무너진 다섯 개의 게이트를 보며 아베이루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이 후대에 분명 한 번쯤은 나올 거라는 생각.
지금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올 정도다.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죽었다.
시체를 일일이 세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일일이 세기도 힘들었다. 신체가 조각조각난 이들도 있었고 완전히 사라져 핏물 한 방울 남기지 못한 이들도 많았으니까.
뿐일까.
상황 보고는 시시각각 받았다.
영지 전체를 폭발시킨 툴칸의 책략으로 최소 수백만이 죽었다. 잭이 죽인 게 아닐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잭이 죽였다고 포장될 거다. 그 정도의 업적이니까.
죽은 이들은 최소 800만. 기록상으로 최소 800만이다.
밀로스 제국이 건국되기 전 테슬란 왕국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인구의 숫자가 많아야 340만이었다.
모든 인구수, 갓 태어난 아이들까지 전부 포함한 숫자가 그 정도다.
그렇게 비교해 보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숫자인지 감이 올 거다.
툴칸 제국.
그 이름으로 통치하던 모든 땅에 시체가 있었다.
피가 들끓었고 구더기가 사방을 나돌아다니는 그런 땅.
툴칸은 죽음의 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