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39)
제 440화
내 웃음에 누나도 웃는다.
“신기한 기분이야.”
“뭐가?”
“내 동생이 헛소리를 하면 이런 느낌이구나.”
그대로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런 내게 누나가 쏘아붙였다.
“세상의 정점이라며? 고금 제일의 정점이라며? 회귀를 했다며, 혼자서 국가도 무너뜨리고 혼자서 대륙 전체를 통일시켰잖아.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해?”
“가족이니까.”
“…….”
“누나니까 하는 거야.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 무게를 덜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나 말고는 없어.”
누나의 표정이 묘해진다.
“진짜 이유가 뭐야?”
“무슨 이유?”
“이러는 진짜 이유.”
이거 봐, 똑똑하다니까.
거기다 날카로운 거 봐 봐, 감각도 있어.
“누나.”
“응.”
“난 뒤가 없어야 돼.”
“……응?”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꼭 한 번쯤은 했어야 했던 말인데 이렇게 하게 되네.
“난 내 직감을 절대적으로 믿어. 그 직감이 지금 말해 주고 있거든. 머지않아 큰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
“…….”
“곧 있으면 내가 회귀를 한 이유부터 전생의 기억이 왜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지 그 모든 게 밝혀져. 그런데 그냥은 안 밝혀질 거 같거든.”
“그래서 누군가와 싸우게 될 거다?”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았기에 전생에 없던 것이 내게 생겼다. 바로 지켜야 할 이들과 지켜야 할 땅이다.
그 두 개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난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 키메라는 1차적인 문제다. 즉 2차적인 문제.
만약 내가 죽는 그런 상황을 말하는 거다.
난 죽어도 혼자 죽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든 어떻게든 같이 죽는다. 키메라들만 스승님이 막으면 서대륙은 안전해진다. 하지만 스승님은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 그럼 그 이후에 누가 황제가 되냐고.
그런 상황에서도 나와 스승님이 만든 이 세상이, 우리가 쌓아 왔던 모든 것들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 싶다.
그래서 누나는 보험이다.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내 보험.
“전에 론을 통해서 보내 줬던 이무기의 독, 기억하지?”
“하지.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누나가 슬쩍 자기 오른쪽 허리춤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걸 왜 누나한테 줬을 거 같아?”
“……인질이 되는 걸 막기 위해?”
그게 모든 이유처럼 보일 거다. 하지만 아니다.
“클라크 발란티에가 죽을 때 무슨 생각 했어?”
“…….”
“뒷산에 버렸던 그 시체 앞에서 다짐했잖아. 클라크 같은 귀족은 되지 않겠다고.”
“다 보고 있었니?”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이상하게 오래전에 벌어진 일인 것 같다.
클라크 발란티에, 내 혈족상 아버지인 그는 내 손에 죽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뒷산에 버렸다. 들개들 먹이로 주려고.
그 시체 앞에서 누나는 다짐했다. 지금 나는 그 각오를 묻고 있는 거다.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 평범한 아내로서의 삶, 혹은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삶, 그런 삶을 누나는 누리지 못해.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사람은 그래야 되거든. 나는 선택했고 누나도 선택했어. 맞지?”
“맞아.”
“그 각오가 흔들리지 않았냐고,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물었던 거야. 그 독은 그런 의미거든.”
“최악의 상황을 항상 대비하고 명예롭게 죽거나, 다 내려놓고 평범하게 살다 죽거나. 그런 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시선을 교환했고 서로 납득했다.
누나는 내게 이무기의 독을 건네주지 않았다. 이건 선택한 거다.
귀족으로서의 삶을.
혹은 그보다 높은 자리에서 아랫사람들을 책임지는 삶을.
잠시 샛길로 샜던 주제를 다시 끌고 왔다.
“져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뭔데 그게.”
“져도 그냥 지지는 않을 거라는 거.”
“…….”
“내가 죽으면 상대도 죽어. 그게 신이라 할지라도.”
침묵이 자리했다.
한참을 있다가 누나가 말한다.
“……오글거려.”
그렇게 나는 누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그 외 등등.
누나의 마지막 말만 빼면 좋은 시간이었다.
그 마지막 말이 뭐였냐면.
“난 발란티에로 살 거야. 그러니까 돌아와. 돌아와서 발렌타인 님께 프러포즈해. 그리고.”
“그리고?”
“화해해. 얼굴 치료도 좀 하고, 지금 네 얼굴 부어 있는 건 아니?”
조금 얼얼하다 했는데 부어 있었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맞을 수도 있지.
분위기가 조금 요상해진다. 누나가 말했다.
“행복한 가정을 가져.”
“행복한 가정?”
“난 네가 웃으며 살았으면 좋겠어.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냥 말없이 웃었다.
내가 행복해지는 순간은 우리 스승님의 수명이 늘어날 때뿐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짧다. 만약 스승님이 죽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면 나는, 정말로 더 못 살 것 같아.
그래서 그냥 웃었다.
“가 볼게.”
“응, 잘 갔다 와.”
이미 스파게티는 전부 먹었다. 다 먹었는데. 뭔가 좀 허전하네.
자리에서 일어서다 그게 뭔지 깨달았다.
“론은?”
생각해보니 론이 안 보인 지가 꽤 된 것 같다. 회의실에 집합하라고 했었을 때도 론은 없었거든. 이걸 지금 눈치챘네.
누나가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굳이 묻지 않았다. 죽었을 리는 없거든. 우리 론이 혹시 뒤늦게 청춘을 불태우고 있나.
누나가 웃고 있는걸 보니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거면 충분하지.
그렇게, 나는 항구 도시 로테르담으로 텔레포트 했다.
* * *
툴칸을 지울 때도 혼자 움직이긴 했지만 참 익숙하지가 않다. 회귀를 한 이후 스승님과 항상 함께 움직였던 그 시간들이 벌써 지나치게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항구 도시 로테르담으로 가자마자 나를 알아본 이들이 자리에서 엎드린다.
“폐하를 뵙습니다-!”
아직 즉위도 안 했는데 폐하라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해 대니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걸음을 계속 옮겼다.
옮기는 곳마다 모두가 무릎을 꿇는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건데 예술가 영감님이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천공성, 그게 확실히 괜찮은 것 같다.
지금도 이럴진대 그때가 되면 내가 밖에 나돌아다닐 수나 있을까.
이거 너무 부담되잖아. 물론 지금 하려는 일이 잘 해결된다는 전제 하에 하는 배부른 고민이지만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도 나름 무게를 잡아 가며 걸었다.
그렇게 항구 도시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여태껏 놀란 것과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놀라고 말았다.
우선 첫 번째.
누나가 나를 위해 만들어 주겠다며 깜짝 선물 형식으로 준비하고 있던 배는 일단 일주일 전에 완성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의 등급 체계를 파괴할 정도로 배는 튼튼했다. 정확히는 그냥 거대했다.
흑해의 소용돌이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마나의 기류를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배.
그 배의 기旗는 밀로스 제국의 국기와 같았다. 검은 바탕에 드래곤과 해골.
그 위용이 내가 봐도 대단해 보여서 놀란 거고 두 번째로 놀란 이유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섭섭합니다, 도련님.”
우리 론이, 항구에서 선원들이랑 짐을 옮기고 있었거든.
“론이 왜 여기 있어?”
“왜 여기 있긴요. 도련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게 누굽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바로 우리 스승님.
하지만 론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생각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론이지.”
“방금 다른 생각 하신 거 같은데?”
“아닐걸.”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요.”
다시 생각해 보니까 론이 맞기도 한 것 같다. 귀신같네.
“도련님이라면 깨어나자마자 여기로 오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예.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신기하게 그 느낌이 맞았네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냥 느낌이라고? 동대륙에 대해 론은 모른다.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니까. 배가 완성된 게 일주일 전이긴 하지만 그걸 근거라고 삼기엔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고 론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정말 확신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손을 툭툭 털어대던 론이 다가왔다. 그리고 물었다.
“기억 안 나십니까?”
“무슨 기억?”
“발란티에 후작령에서 도련님께서 저에게 엘리자베스 님을 지켜 달라고 말씀하셨던 그때를 말하는 건데, 기억 안 나시나 봅니다. 괜히 더 섭섭해지려고 합니다.”
볼을 긁적였다. 기억이 나지 않다는 건 분명 거짓말이다. 나도 기억난다. 분명 이런 대화를 나눴었지.
‘론이 우리 누나 곁에 있어 줬으면 해. 4년, 딱 4년만 누나를 지켜 줘. 그 이후에 론은 론의 인생을 살아.’
‘제 인생이요?’
‘항상 뒤에서 숨어 있는 인생 말고 론이 하고 싶은 거, 론만의 행복을 찾으라는 거지.’
‘그런데 왜 하필 4년입니까?’
‘4년이면 내가 누나를 지킬 수 있거든.’
‘누구로부터요?’
‘세상으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론의 능력보다 더 뛰어난 이들이 누나의 주변에 포진해 있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지만, 이렇게 신경 쓰게 되네.
“제 인생을 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지.”
“저는 죽을 때까지 노아 님의 핏줄을 지킬 겁니다. 이게 제 인생입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면 말리기 어렵지. 그리고 사실 좀 외롭기도 했고.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위험할 수도 있어.”
론이 씩 웃는다.
“기억 안 나십니까?”
“또 뭐가?”
“도련님이 힘들어하실 때 도련님 곁에는 항상 제가 있었습니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랑 위험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항해하는 동안 드실 음식은 미리 준비하셨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바다에 있는 거 아무거나 잡아서 먹으려고 했다.
“제가 도련님 음식 솜씨를 아는데, 아마 항해하는 도중에 그걸 계속 먹으시면 아무리 초월자여도 웬만하면 탈이 날 겁니다.”
내가 요리를 잘 못하긴 하지. 그런데 초월자가 배탈 나면 그건 그거대로 웃긴 거잖아.
그래도,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 아니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저는 도련님이 항상 맛있는 걸 먹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 위험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잖습니까.”
“뭘 몰라?”
“제가 죽으면 도련님이 각성하고 그러실 수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론.
“최근에 소설을 좀 많이 봤나 봐.”
“티 납니까?”
“많이. 그런데 그건 너무 옛날 클리셰잖아. 요즘엔 주변 인물이 죽고 그러면 독자들이 쌍욕해.”
론은 웃음을 터트렸고 나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고 바로 출항 준비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거절해.
“그럼 부탁할게.”
당연한 소리지만 선원은 없다. 이 ‘노아 호’의 선원은 총 두 명이다.
아마 이게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론과 단둘이 여행하는 게.
일단 예상 도착 시간은 5일이다. 그리고 중간에 들를 곳이 하나 있다.
문제는 거기서 시간을 얼마나 지체하는지가 관건인데, 길어야 전체 항해 기간이 일주일을 넘지는 않을 거다. 되게 빠르게 갈 거거든.
그렇게 배가 출항했다.
나는 출항할 때까지도 쭉 항구를 바라보았다.
오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