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45)
제 446화
그렇게 묘한 대치 상황이 벌어질 때, 붉은 갑옷을 입고 있는 병사가 말했다.
“도련님…… 아니지, 폐하. 저 어떻게 멀리 벗어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장난기마저 어려 있었다.
더 가관인 건 이 황제라는 남자가 이렇게 답했다는 거다.
“됐어. 그냥 그 자리에 있어.”
그가 고개를 돌린다. 순간 섬뜩했다. 그의 가라앉아 있는 눈과 마주치는 순간 태극검제는 본능적으로 검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가 마저 말했다.
“금방 끝나니까.”
뚝 하고, 이성의 끈이 끊기는 기분이다. 태극검제.
그 이름은 어디 가서 무시받을 이름은 아니었다.
그는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대로 이 남자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검을 그대로 밀었다. 생각대로라면 검 끝이 이 남자의 목을 뚫었을 거다. 뚫고 밖으로 삐져나왔을 거다. 혹은 뒷짐을 지고 있는 이 남자가 뒷짐을 풀었을 거다.
두 가지 상황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면 검이, 움직이질 않았으니까.
“……어?”
자고로 싸움에서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하수나 하는 짓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검이 움직이지 않는다. 미동도 없다.
기운을 몰아넣었다. 그제야 조금씩 움직인다. 앞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뒤로 움직인 거다.
으득, 이가 물린다.
쥐고 있던 검이 의지를 배반한 것처럼 반대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검의 움직임을 제한하려 했다. 하지만 못했다. 그저 미약한 제동만 걸었을 뿐이다.
천천히 검이 움직인다. 손으로 쥐고 있는 그 검이 스스로의 목을 겨누고 있는 상황까지 되었을 때, 태극검제는 넋이 나갈 뻔했다.
스스로를 황제라 소개한 남자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저 붉은 갑주를 입은 남자는 멀리 벗어날 필요도 없었다. 그의 말대로 금방 끝났으니까.
그가 뒷짐을 푼다. 그러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허공에 발판을 만들고 그 발판을 밟고.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어서 그의 주먹이 뻗어 온다.
뻐어억-!
“쿨럭-!”
복부에서 올라오는 통증과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
내부가 진탕이 된 것 같다. 으득, 이가 물린다.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풀었다. 검제라는 칭호가 있긴 하지만 검만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술도 그는 수준급이었으니까.
고통을 무시했다. 몸을 움직였다. 손을 뻗었다. 무언가 잡힌다. 힐끗 보니 그의 옷깃이었다.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터억, 뚜둑.
태극검제는 볼 수 있었다. 그의 로브를 잡아챈 오른팔이 기형적으로 꺾여 있는 것을.
반응이 늦었다. 0.5초 늦었다.
고통이 올라온다. 신음을 삼켰다.
적색으로 물든 발이 움직였다. 내공이 용솟음친다. 뻗어 나간 발은 후웅, 허공을 갈랐다. 그 자리에 황제는 없었다.
그게 끝이었다.
콰악-!
무언가 뒷목을 붙잡는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친절하게도 발판마저 마련되어 있었다.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황제는 뒤로 이동했고 뒷목을 잡아챈 거다. 그냥 제압당한 거다.
보통 싸움이 벌어졌을 때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제압당했다는 것은 그 정도로 격의 차이가 있다는 거다. 대체.
“귀인은…… 누구시오?”
“말했는데, 밀로스 제국의 황제라고.”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밀로스 제국? 아니 그런 게 존재하기 이전에.
“왜 자꾸 장난을 치시는 거요? 이 세상에 다른 대륙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때였다. 피식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린다.
태극검제는 확신했다. 저건 저 남자의 웃음소리라는 것을.
여러 번 웃는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저건 조금 의미가 달랐다.
그냥 웃음이 아니라 비웃음이었으니까.
“네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가진 힘에 비해 지나치게 오만하네.”
“…….”
“한 가지 말해 줄 테니 귓구멍 열고 잘 들어. 나는 거짓말 따위는 안 해. 할 이유도 없고 그딴 걸로 낭비할 시간이 없어. 내가 한가한 놈이 아니거든.”
태극검제는 느낄 수 있었다. 뒷목을 잡아채고 있던 손이 풀렸다는 것을.
자리에서 일어선 뒤 고개를 돌렸다.
“…….”
왜 살려 줬냐고, 왜 죽이지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단순한 이유였다. 그걸 묻기 전에 그가 말하는 게 더 빨랐으니까.
“살려 줬으니까 밥 정도는 사 줄 수 있지?”
“…….”
“밑에 만두집 냄새가 기가 막히던데, 그거나 좀 사 줘. 그리고 이 대륙의 판도나 뭐 그런 것들도 이야기해 주고.”
“…….”
“대답이 없네. 싫어? 목숨값치고는 너무 비싼가?”
그의 살기 어린 웃음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나치게 싸다. 이건 그냥 자비를 베푼 거다.
“……안내하겠소. 따라오시오.”
* * *
태극검제는 팔을 치료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은 전국시대요. 정확히는 수천 년 전부터 전국시대였지. 강자존이라는 사상을 들어 보셨소?”
들어 보다마다, 심지어 너무나도 익숙했다.
“강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하지만 그 강자가 옳은 존재라고 그 누가 판단하겠소.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그것을 사심이라 하지 않소이까. 결국.”
“승자의 사심이 대의가 되고 진리가 된다?”
“그렇소. 그렇기에 현 ‘중원’에는 세 개의 단체가 있소이다.”
“세 개?”
“일단 정파와 사파가 있소. 단체명은 각각 정천맹과 사천맹.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교.”
흥미롭긴 했다.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 누구냐고 물었지. 바로 말해 주겠소.”
론과 나는 귀를 기울였다.
만두는 이미 다 먹은 지 오래다.
“그대가 말해 준 서클이라는 체계와 마스터라는 체계로 보자면 그쪽 세상의 ‘상급 마스터’를 우리 세상에서는 현경이라 부르는 것 같은데, 현경에 오른 고수는 많지 않소. 일마, 삼존, 삼왕, 오제. 이들이 그들이지.”
“많네.”
“많소이까?”
상급 마스터는 적색 마나를 사용한다. 보통 적색 마스터라고 하는데 지금 눈앞의 태극검제도 적색 마스터다.
템-사미트 이스마엘과 흡사한 경지. 그런데 사미트 같은 애가 12명이나 있단다. 태극검제를 빼면 11명이지만 이 정도도 굉장히 많은 거다.
더 놀라운 건, 저들이 ‘최소 적색 마스터’라는 거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은거한 이들도 있소이다. 특히 전대 고수들이 그러한데, 전대 삼왕을 비롯한 전대 오제들까지. 그중 죽은 이들도 있겠지만 아마 산에서 은거하는 이들도 있을 거외다.”
놀랍네.
정말 놀랍다. 이건 도가 지나친데.
“마저 말하겠소. 검존 혁진강과 염존 화천대사, 그리고 광존 원재. 이 세 명이 삼존이라 불리는 인물들이오. 그중 검존과 광존이 현재 실종 상태지. 은거했다고는 하는데 근 30년이 넘도록 본 사람이 없소.”
“실종?”
“깨끗하게 사라졌지. 그들의 소재를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소. 간간이 어디서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전부 거짓으로 밝혀졌소. 그래서 최근에는 이미 ‘등선’을 해서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이다, 그게 정설로 굳어 있소.”
“그럼 나머지 한 명인 염존은?”
“염존은 현재 정천맹주를 맡고 있소.”
대충 이해가 간다. 이쪽 대륙에서 정점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 중 두 명이 실종되었고 그중 한 명은 동대륙의 주축 단체 하나를 이끌고 있다, 오케이.
계속하라며 턱짓하자 태극검제가 말을 잇는다.
“삼왕에는 명왕 제령대사. 독왕 여화. 암왕 주체가 있소. 독왕과 암왕이 사천맹을 이끌고 있고 명왕은 중립을 지키고 있소. 여담인데 사천맹의 실질적인 주인은 암왕 주체요. 그는 가장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으며 서쪽을 꽉 잡고 있소. 서천암왕이라는 별호도 따로 가지고 있을 정도요.”
확실히 이름이 죄다 고대어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리고 오제에는 나 태극검제 종운성, 수라도제 유제하. 패력무제 진우. 흑마창제 하후돈. 한천빙제 유설하. 이것도 여담인데 지금 이곳 종도로 오고 있는 수라도제와 한천빙제는 남매관계요. 각각 빙궁과 마궁을 다스리고 있는데, 그 두 개가 사실 과거에는 한 개의 땅이었소. 서로 의견 차이로 갈라진 거지. 그 외에도…….”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조금씩 산으로 빠지려는 것 같다고.
그래서 질문했다. 그 많은 이름들 중 현 세상의 정점은 누구냐고.
“정점이라…… 천하제일을 말하는 거라면 간단하오.”
종운성이 팔짱을 낀다.
“앞서 말했듯 현재 검존과 광존이 은거 중이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본 사람이 근 30년 동안 없었지. 그래서 삼존이라는 단어는 없애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던 15년 전, 한 남자가 세상에 등장했소.”
“한 남자?”
“천마신교의 11대 교주 천마 영정. 실종된 두 명의 존자가 있었다 해도 영정, 그가 현 세상의 천하제일이오. 그것에는 정천맹주인 염존 화천대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거요.”
대충 들을 건 다 들었다.
이쪽 동대륙이 어떤 세상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자, 그럼 가장 중요한 거.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을 아나?”
“라그…… 뭐요?”
“라그나로크Ragnarok.”
“라그나뢰……크? 모르겠소. 난 들어 본 적이 없소이다.”
표정을 보니 확실히 못 들어 본 것 같다. 발음하기도 힘들어하는 거 같은데, 음.
“그럼 아수라는?”
순간 태극검제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수라? 이쯤 되니 조금 이해가 안 가는데 정말로 서대륙에서 오신 거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라그나로크는 모르는데 아수라는 아는 눈치다.
흔한 이름인가.
“아수라, 모를 리 없지 않소이까. 천마신교가 받들어 모시는 신의 이름이 아수란데.”
단서를 찾은 느낌이다.
“마지막 질문. 천마신교는 어디에 있나?”
“천마산에 있소. 여기서 가려면 꽤 걸릴 텐데?”
“얼마나 걸리는데?”
“최소 4주, 말은 안 했는데 지금 이곳이 천마신교와 정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소이다.”
상관없다. 대략적인 위치만 알면 되니까.
텔레포트 마법이 이럴 때 유용하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종운성이 황급히 말한다.
“바로 가실 거요?”
“가야지. 내가 여기서 뭐 해.”
“……그, 혹시 급한 게 아니시면 며칠 쉬었다 가시는 게 어떻겠소?”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솔직히 상황이 조금 달라져서 급하지는 않았다. 상황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긴 했거든. 좀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내게 론이 말했다.
“도련님.”
“왜?”
“이참에 여기서 며칠 쉬었다가 가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고개를 갸웃했다. 론까지 왜 이래?
“사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긴 했지.”
“거기다 제대로 쉬신 적도 없는 걸로 압니다. 상황 파악도 좀 할 겸 여기서 며칠만 쉬었다 가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론은 간절해 보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날 걱정해 주는 건 론밖에 없다. 정말 옛날부터 사람이 한결같다.
“그럼 며칠만 좀 쉬었다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