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57)
제 458화
듣고 보니 재미있다.
“기회?”
“역으로 제안하마. 내 밑으로 들어오거라.”
염존의 입가에 걸려 있던 그 찢어질 듯한 미소가 이제는 서늘해진다.
“네 녀석이 통치한다는 그 국가를 내게 넘겨라. 내 네놈에게 재상의 자리 정도는 주겠다. 지금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이 아니겠느냐.”
내 입가에도 웃음이 새겨진다.
“어떻게 늑대가 개새끼 밑으로 들어가냐. 피웅신아.”
모든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그냥 대답뿐만이 아니라 대화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염존의 손이 움직인다. 다섯 개의 태양도 움직였다. 나를 향해 날아왔고 뭉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한 행동은 별게 아니었다.
가장 먼저 천마신검을 놓았다.
그리고 내가 꺼낼 수 있는 혼기를 전부 터트렸다.
전력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내 몸을 둥근 막이 감싼다.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혼기로 만들어진 막이 똑같이 회전한다. 염존이 만든 염양이라는 그 둥근 태양이 꽂힌다.
콰지지직-!!
전부 찢겨 나갔다.
사방으로 불꽃이 터져 나간다. 땅이 녹는다. 주변에는 먼지도 없었다. 먼지조차 전부 소멸했기에.
거의 수천 도가 넘는, 말도 안 되는 그 열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당황한 표정의 염존이 보인다. 내 몸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염존의 눈빛이 빛났다.
놈은 자기 팔에 박혀 있던 천마신검을 빼냈다.
그리고 손잡이를 고쳐 쥔다. 그대로 휘두르려던 그때.
파직-!
스파크가 튀며 염존이 움찔한다. 그런 놈을 향해 다리를 들었다. 내 오른발이 놈의 명치를.
콰아아아아앙-!!
그대로 걷어찼다.
염존이 멀리 날아간다. 허공으로 치솟던 천마신검은 자연스럽게 내 왼손으로 들어왔다.
멀리서 놈이 일어선다. 나를 노려본다. 묻고 싶은 그런 표정이다. 왜 이 검이 이런 반응을 보인 건지. 그 외 등등.
그냥 한마디 해 줬다.
“얘도 아나 봐. 누가 진짜 주인인지.”
천마신검을 들고 슬쩍 흔들었다. 놈의 눈에는 아마 자연스럽게 재생된 내 오른팔도 보일 거다.
당연하게도 절반이나 파였던 놈의 팔도 재생이 되었다.
놈이 물었다.
“어떻게 한 것이냐.”
“뭘?”
놈은 그 이상 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나도 안다. 놈이 뭘 물어보려던 건지.
천마신검에 대한 건 이미 풀렸을 거고 다른 거. 그러니까 방금 누가 봐도 나는 위기처럼 보였다.
놈이 만든 다섯 개의 태양, 그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포위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걸 풀었다. 전부 소멸시켰다. 그걸 어떻게 한 거냐고, 어떻게 부순 거냐고 그렇게 물으려는 게 확실하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본인도 알고는 있나 보다. 직접 듣고 싶은 모양인데, 친절하게 그냥 말해 주었다.
“격의 차이지. 그 이상 뭐가 필요해.”
가볍게 웃어 보이자 놈이 이를 간다.
새삼스럽지만 지금 이 ‘자연경’이라는 경지에 올라선 지금.
나나 저놈이나 사지가 잘려 나가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생시키면 그만이니까.
아서 군나르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놈의 몸에는 ‘핵’이 있었다. 정확히는 몸 자체가 혼기로 이루어진 혼기 덩어리였다.
그걸 전부 소멸시키고 전부 찢어발겨야만 완전히 죽일 수 있었는데 그건 단순하게 말하면 아서 군나르가 그렇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그놈만의 특징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나 눈앞의 염존은 다르다.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터지면 죽는다.
먼저 자르거나 먼저 터트리는 쪽이 이기는 거다. 이건 그런 싸움이다.
“건방진 새끼,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지나치게 여유롭구나.”
놈이 숨을 몰아쉰다. 주춤했던 불꽃이 다시 놈의 몸을 휘감았다. 온전히 붉게 물든, 홍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불꽃 속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여유가 어디까지 지속될지, 궁금하구나.”
놈이 자리를 박찬다. 나도 마주 달려 나갔다.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싸운 그 수많은 적들은 말만 적이지 실제로는 적이 아니었다.
나는 적이 없었다. 세상에 군림했다. 외로웠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전생에서 내 목적은 하나였다. 툴칸을 무너트리는 것. 하지만 깊게 파고들면 다른 목적도 하나 있었다.
그 누구보다 강해지는 것.
당신의 제자는 이렇게 성장했다고, 당신의 제자는 세상에서 고금 제일이라는 단어로 불릴 정도로 성장했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싸웠다. 입가에 웃음을 띠며 살았다. 호승심과 경쟁심, 그 모든 게 합쳐진 게 지금의 나다.
벽을 깨고 계속 깼다.
이곳에서 자연경이라 부르는 그 경지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서대륙에 적은 없구나. 정상에 섰구나. 전생에서 대륙 최강의 검사였던 베커만을 검술로 죽이고 내 목적지였던 이스칸다르도 죽였다.
그 이후 허무했다. 그 허무감은 현생에서도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싸울 만한 상대가 있다. 염존, 그리고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 영정.
거기다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모를 라그나로크라는 괴물까지.
웃었다.
웃음을 터트렸다.
천마신검이, 하늘을 갈랐다.
chapter 3
염존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검이 스친다. 턱밑이 살짝 찢기며 허공으로 피가 튄다. 이번에는 몸을 틀었다. 옷소매가 잘려 나간다.
공기가, 허공의 마나가, 선기로 만들어진 불꽃이 신호를 보낸다. 피하라고.
뒤로 걸음을 옮기며 몸을 뒤로 젖혔다. 코앞에 검이 스쳐 지나간다. 검이 방향을 바꾼다. 손으로 땅을 짚고 옆으로 회전했다. 아슬아슬하게 검이 스친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다리에 힘을 주었다.
콰앙-!
놈의 검은 길다. 정말로 길었다. 검이 아니라 마치 창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 검을 휘두르는데 단 한 점의 위화감도 없었다. 또한 검로 하나하나가 치명적이다. 굉장히 능숙했다. 보통 누군가와 싸움을 할 때 상대 무기의 리치가 월등히 길다면 거리를 좁히는 게 상식이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리치가 긴 무기의 소유자는 불리해지니까.
하지만 이 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접근해야 했다. 그래야 공격할 수 있으니까.
뻗어 가던 염존은 자연스럽게 주먹에 기운을 모았다.
적룡식 제2장 염룡승천.
주먹에 붉은 기운이 회오리처럼 휘감긴다. 그걸 휘두르려던 그때 섬뜩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본능이 외친다. 공격하지 말고 피하라고.
염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대로 공격하면 되잖아. 이 주먹을 놈의 심장에 꽂아 버리면 끝나는 거 아닌가.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본능이다. 일반 무인의 본능이 아닌 전설상의 경지인 자연경에 오른 무인의 본능. 그럼 따르는 게 맞다.
그대로 서쪽의 황제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서걱하며 허공이 갈린다.
황제를 스치는 와중이었지만 염존은 볼 수 있었다. 방금 전 염존이 주먹을 내뻗으려던 그 장소의 공간이 길게 갈라져 있는 것을.
마치 차원이 갈라진 것 같다.
순간 섬뜩했다.
‘……노렸다? 아니면…… 읽혔다?’
모르겠다. 놈이 싸움을 잘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염존도 살아온 세월이 있다.
경험에서는 절대 지지 않는다. 이 자리까지 쉽게 올라오지 않았으니까.
황제의 입가에 새겨진 웃음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놈이 검을 든다.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움켜쥔다.
“[미미한 시작의 불꽃은 지상을 태우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게 뭐지?
주변 공기가, 주변에 퍼져 있던 놈의 검은 기운이 요동친다.
“[천상을 태우는 영원이 되어.]”
검은 기운이 붉게 변했다. 염존은 이번에도 소름이 돋았다.
대체.
대체 이놈은 뭐지? 뭐길래 이런 기술을 쓰는 거지?
“[내 앞에, 강림하리라.]”
놈의 검이 휘둘러진다. 사방을 불태우고 있던 검은 불꽃이 내려앉았다. 염존이 양손을 펼친다. 놈의 검은 기운과 붉은 기운이 부딪친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굉음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 세상이 무너지고 땅 전체가 떨릴 듯한 말도 안 되는 굉음.
벼락이 가까이에서 친다 해도 이 정도의 소리는 아니었다.
염존은 버텼다. 전력을 다해 버텼다. 신기하게도 조금이나마 밀어내는 게 느껴진다.
염존의 입가에 웃음이 새겨진다. 붉은 기운이 검은 기운을, 분명 밀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본능이 외친다. 몸을 젖히라고.
왜? 의문이 머리를 강타한다.
염존은 본능을 따랐다. 그냥 따른 것은 아니었다. 우선 몸 주변으로 기운을 터트렸다. 붉은 기운이 마치 방패처럼 주변을 감싼다. 동시에 몸을 뒤로 젖혔다. 조금 늦었던 걸까.
푸욱-!
검은색의 장검이 명치를 뚫었다. 쿨럭, 피가 터져 나온다. 고개를 들었다. 염존의 주변을 실드처럼 감싸고 있던 붉은 기운을 뒤집어쓴, 황제.
놈의 옷이 타들어 간다. 놈의 팔이, 그리고 놈의 다리가 불에 짓눌리며 터져 갔다. 그런데도 웃고 있었다.
순간 멍했다.
처음부터 느꼈다. 이 황제라는 놈은 다른 무인들과 뭔가 다르다고.
그게 뭔지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모든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았다. 사실 힌트는 여러 번 남겨졌었다.
지속적으로 외친 본능.
무인으로서의 그 본능은 절대적이다. 그건 성장의 발판이 되었고 무인을 지탱해 주니까.
염존은 여러 번 공격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본능이 외쳤다. 하지 말라고. 피하라고.
그게 어떤 뜻인지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놈은.
애초부터 자기 몸의 ‘안위’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냥꾼이 먹잇감을 사냥할 때 가장 이상적인 순간은 먹잇감이 다른 먹잇감을 공격할 때다.
공격하는 그 순간,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무방비가 된다.
염존도 마찬가지였다.
염존이 공격할 수 있는 그 순간은 반대로 염존이 공격당할 수 있는 순간이다.
매 순간 놈은 빈틈을 보였다. 들어오라고. 여기로 좀 들어오라고.
다 함정이었다. 이 서쪽의 황제라는 놈은 정말 미친놈이다.
상대보다 강하건 약하건 상황이 유리하건 불리하건 어떤 식으로든 빈틈을 보이고 그 빈틈으로 들어오면 신체의 일부를 주고 상대의 목을 치는.
혹은 신체의 반을 주고 상대의 목을 치는. 이런 방식이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면 이런 괴물이 된단 말인가.’
으득 이가 맞물린다.
차이는 깨달았다. 놀랍게도 자연경에 올랐음에도 동수, 아니 한 계단, 어쩌면 그 이상 아래다.
으득, 맞물린 이가 부서진다.
양손을 뻗었다.
명치를 뚫고 있던 놈의 장검을 움켜쥐었다. 염존이 말했다.
“……심오하군.”
서쪽의 황제가 팔에 힘을 준다. 염존도 힘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씩 밀린다.
검이 염존의 기준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조금씩 살이 갈라진다. 근육이 찢어지고 심장에 다가간다.
인정한다. 서로의 싸움 방식이 다르다.
동귀어진은 최후의 수다. 이 사고 방식이 동대륙 무인들의 기본 상식이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아니다.
잃지 않고 얻는 것, 이게 싸움의 기본이고 무인들의 상식이다. 그걸 추구하는 게 무인이고 그걸 잘하는 자를 이 대륙에서는 강자라 부른다.
서쪽의 황제는 그저 항상 매 순간, 잃을 각오로 싸움에 임한다. 그 차이다. 기존의 상식이 깨진 기분이다. 그게 진짜 강자다. 그게 진짜 고수고 그게 진짜 지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