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68)
제 469화
신의도 웃는다. 그 웃음은 뭔가 묘했다.
“과연. 마魔, 라는 이름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그의 눈이 다시 한번 내 몸을 살핀다.
“정과 기와 신이 모두 상했어. 신체의 회복은 자연 치유로 회복되겠지만 그건 자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최소 한 달에서 두 달을 누워 있다는 가정 하에나 가능해. 노리는 이들이 많을 테니 몸은 더 상하겠지. 중요한 건 말일세.”
신의의 말에 집중했다.
“자네의 기와 정. 그 두 개가 흔들리고 있다네.”
“흔들린다고?”
“간단한 거네. 무인은 싸울수록 강해지지. 더 높은 경지를 보고 더 높은 벽을 깨거나 돌파하면 가장 먼저 정이 성장을 하고 기가 뒤를 따르네. 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하는 거고.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무인들의 몸은 이런 방식으로 움직여. 자네도 다를 바 없어. 다만.”
“다만?”
“여기서 문제인 것은 신체가 엉망인 상태에서 정과 기가 팽창했어, 보아하니 ‘벽’을 봤나 본데. 맞나?”
말로 답하지 않았다. 그냥 표정으로 말했다.
신의는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염존을 죽이고 정천맹을 완전히 무너뜨린 남자가 거기서 더 강해진다? 허허, 대단하다는 말 말고는 나오지가 않아. 정말 대단하군.”
“내가 보기엔 그쪽이 더 대단한데.”
“내가?”
신의는 내 몸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상처가 심한 거? 그거까지는 그러려니 해도 내가 벽을 본 것까지 눈치챈다는 건 실력이다. 보니까 경지는 대충 초절정에서 화경 수준인데 초월자가 벽을 본 걸 알아챈다?
대단하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이 노인에게 해야 한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특정 부분에 재능이 쏠려 있는 이들.
이런 사람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여하튼, 마저 말하자면 자네의 몸이 천천히 ‘원래 상태’로 회복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거야.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앞서 말했듯.”
“다음 경지로 나아갔어도 계속 싸우게 될 테니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을 거다?”
노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놈 봐라? 척하면 척이네. 그런 표정이다.
“그렇지. 더 큰 문제는 그 상태에서 만약 적이 습격을 한다거나 하면 싸울 수밖에 없을 거고 싸우다 보면 신체는 더 다치겠고, 이론상의 일이긴 하지만 그 상태에서 만약 보았던 벽을 깨게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등선을 하게 되겠지.”
말이 조금 아리송하다. 등선을 한다?
내 표정을 읽은 신의가 웃으며 말한다.
“신체가 그릇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버린다는 뜻이라네. 뒤져서 신선이 되는 거지. 이해가 되시는가?”
옆에 있던 론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근처에 있던 수라도제도 비슷하긴 했는데, 눈앞의 신의는 여전히 웃고 있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하게 하자고, 정기신에서 말하는 기는 선기, 그러니까 자네의 영혼을 포함해서 말하는 건데, 난 그거까지는 치료할 수가 없어. 하지만.”
하지만?
“자네의 신체는 회복시킬 수 있지. 재료가 좀 필요하고 땀 좀 흘리겠지만 가능해. 왜냐면 나니까.”
자신감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럴 만한 자신감이다. 일단 눈이 좋잖아. 실력은 보지 않았어도 믿을 만하다.
신의가 묻는다.
“어떻게, 치료받으시겠는가?”
신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경고는 해 둬야겠지.
“치료를 하다가 맘이 바뀌어서 날 죽이거나 해도 상관없어.”
“…….”
“하나만 명심해. 절대, 그 어느 순간에도 살기는 품지 마. 품으면.”
“품으면?”
“당신은 죽어. 얼마 전에 세상 하직한 염존처럼.”
신의의 입가에 피어 있던 미소가 진해진다.
“재미있겠군.”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수라도제를 바라본다.
“전에 빌려 썼던 소환단 3개의 빚은 이제 없어. 그러니 다시는 재촉하지 말게.”
수라도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바로 이동하지.”
“어디로?”
“치료실.”
신의가 내 몸을 다시 한 번 살핀다.
“말은 안 했는데, 그 몸 상태로 계속 깨어 있으면 회복은 더 느려질 것이네. 아마.”
“아마?”
“이성을 잃거나 쓰러지거나 그러겠지. 몇 날 며칠을 미친 듯 누워 있을 거고, 그게 숙달이 되면 지나친 불면증이 될 거고…… 그냥 인생 피곤해지는 거지. 지금 머리가 쿡쿡 쑤시고 신체가 둔해졌다는 느낌이 들 텐데, 아니신가?”
“확실히 돌팔이는 아니야.”
신의가 피식 웃는다.
“내가 돌팔이였으면 신의라는 이름을 50년 동안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오시게. 바로 시작할 터이니.”
그렇게 신의를 따라 이동했다. 멀리 가지는 않았다. 근처에 있던 석실이라고 해야 하나.
대충 웬만한 건물 2층 크기만 한 거대한 석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하지도 않던 인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거대한 창을 들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와 훨씬 작은 여자애. 그러니까 남매.
그중 창을 들고 있던 남자가 탄성 비슷한 걸 터트린다.
“아…… 은인?”
은인은 무슨. 그보다.
“의외로 자주 보네, 이러다 정이라도 들겠어.”
빙궁에서 잠깐 만났던 하후돈이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저 꼬마애는 하후영이라는 그의 동생이고.
그러고 보니 그 생사초인지 생령초인지 하는 걸로 병을 치료한다고 하던데. 그 치료를 설마 맨땅에서 했을까.
의궁으로 왔을 거고 신의의 손을 빌렸을 거다. 신의가 나를 바라보더니 한마디 한다.
“물 건너온 거치고는 꽤 굵직굵직한 이들과 안면이 있구만.”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하후돈과 하후영을 바라보았다.
하후돈은 그냥 그대로였지만 하후영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이던 그때의 꼬마는 없었다. 그냥 정상인.
정상인처럼 보이는데 그 전의 모습이 어땠는지 아는 내 입장에서 저건 거의 환골탈태급처럼 느껴진다. 치료는 잘됐나 보다.
내 몸과 주변을 둘러보던 하후돈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확실히 이해한 듯하다. 그랬으니 이런 말을 했겠지.
“……호법, 서겠습니다.”
“언제 끝날 줄 알고?”
“……상관없습니다. 몇 날 며칠, 혹은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지키겠습니다. 은혜를 입었는데 그것도 하지 못한다면 나 하후돈, 살아 있을 이유가 없소이다.”
이거 봐. 난 이쪽 동대륙 애들이랑 잘 맞는다니까.
“마음대로 해. 그리고.”
“예, 말씀하시지요.”
“심심하다 싶으면 여기 있는 우리 론한테 심법이라든가 그런 거 좀 알려 줘 봐.”
“심법…… 말씀이십니까?”
“싫으면 말고.”
하후돈이 고개를 젓는다.
“흑마심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심법이고 제가 수학했던 흑마문의 비전 심법인데 이걸 알려 드리겠습니다.”
거울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지금 내 표정은 되게 괴상하지 않을까.
너무 아낌없이 주는데.
“괜찮겠어?”
“오히려 제가 과분합니다. 덕분에 동생을 구할 수 있었고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드릴 수 있다면 이 몸뚱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너무 징그러운 소리라 그냥 답하지 않았다.
“일 봐라.”
하후돈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옆에 있던 하후영도 고개를 꾸벅 숙인다. 우리 론만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제자리에서 움찔움찔 떨고 있다.
“오버하지 말고, 저기서 쟤네랑 짝짜꿍하고 있어.”
“……진짜 괜찮으신 거죠?”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발란티에 후작가에서 론이 해 준 스테이크를 먹던 날이었나? 그 날 내가 했던 말 기억나?”
“……장미 별장 지하에 있던 운동실을 ‘처음’ 봤던 그때를 말씀하시는 거죠? 맨티스 백작가의 개였던 수습기사, 그 병아리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라면 예, 기억납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나?”
“…….”
“드래곤도, 황제도, 그 누구도 못 한 일을 후작 부인 따위가 한다고?”
말이 이어질수록 기억이 나는 건지 론이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저 말을 이었다.
“난 내가 죽고자 하는 순간이 아니면 절대 안 죽어.”
결국 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의를 바라본다.
신의에게 눈으로 말했다. 부탁한다고.
신의의 표정은 괴상했다.
얘네는 왜 갑자기 신파를 벌이고 지랄이야, 그런 표정이다.
신의는 석실로 들어갔고 그 뒤를 나는 따라 들어갔다.
chapter 6
그냥 든 생각이다.
잘 도망쳤구나.
명왕 제령대사는 폐허가 된 당왕산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당왕산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폐허라고 해야 할까. 없던 절벽이 생기고 나무가 사라지고 그냥 땅 자체가 사라졌다.
제령대사는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범위는 얼마나 될까. 한 50km? 모르겠다. 더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듯 명왕 제령대사는 잠시 그곳을 바라보았다.
“……대사님.”
친위대 한 명이 작게 불렀지만 무시했다. 그냥 신경 쓰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경외감이 든다. 아니지.
조금 아름답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저게 한 명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 저게 무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
대체 저런 걸 하려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져야 하는 건가.
조금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염존이, 이렇게 강했나?’
엄밀히 말하면 염존이 행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 남자가 지치고 쓰러졌던 것은 확실하다. 목격자들이 있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런 남자가 염존과 싸웠고 염존이 몰아붙였다는 거다.
‘중간에 깨달음을 얻었나?’
그렇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서쪽의 황제는 지친 상태에서도 저런 힘을 쓸 정도의 괴물이다.
저 괴물을 저렇게 지치게 만든 염존은, 분명 벽을 깬 거다. 아마 싸우는 도중에 각성했겠지.
자연경, 아마 그 경지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서쪽의 황제에 대한 경외감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친다.
‘그 서대륙이라는 곳에는 괴물만 있는가.’
황제라고 했다. 서쪽의 황제.
제령대사는 앉은 채 턱을 괬다.
‘가장 강해서 황제가 되었겠지. 이걸 다르게 보면 그런 괴물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배경이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서대륙은 이곳 무림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곳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그런 서대륙에는 강자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인데, 왜 온 걸까.
‘저 정도 힘이면 거기서 편하게 살면 될 것을 왜 이곳으로 온 거지?’
탐구심? 호기심? 글쎄.
그런 종류는 아닌 것 같다. 황제라는 남자의 성격은 딱 봐도 되게 지랄맞아 보인다.
태극검제를 죽이고 염존을 죽이고, 아무리 힘이 있다 해도 이렇게 막 나가는 놈은 없다.
분명 황제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 때문에 이곳으로 온 거다.
무인들은 생각했어야 했다. 황제는 왜 이 동대륙으로 온 걸까.
‘태극검제가 염존에게 편지를 보냈다는데…… 그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나?’
뒤진 태극검제는 라그나로크에 대한 이야기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염존에게 보낸 편지에는 정확히 그 내용만 쏙 빠져 있었는데, 그걸 제령대사가 알 턱이 없다. 뒤진 염존도 모른다.
왜냐면 태극검제는 죽었으니까.
제령대사는 턱을 짚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런 전체적인 상황을 모르는 제령대사였기에 내려지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군.’
대륙 정벌이 아닐까 싶었는데, 대륙 정벌이었으면 혼자 오는 게 아니라 병력을 데리고 왔겠지.
전쟁을 벌이려고 했으면 홍포신군이니 뭐니 하는 호위 한 명만 데리고 왔을 리는 없다. 정말.
“왜 온 거지?”
“그러게 말일세, 대체 왜 온 걸까.”
제령대사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기운을 끌어 올렸다. 하얀색 빛이 제령대사의 몸을 덮는다.
명왕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제령대사의 선기가 하얗기 때문이다.
그런 제령대사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