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9)
제 50화
꼬맹이가 웃는 얼굴로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펑펑 터지는 불꽃들이 계속해서 하늘을 수놓는다.
내게는 별 의미 없는 불꽃놀이지만 우리 꼬맹이에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을 축복하는, 불꽃 축제의 본래 의미대로 샬롯은 살짝 글썽거리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서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떠올렸다.
내일.
내일 밤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내일이네요, 스승님.”
[무엇이 말이냐.]“보름달 뜨는 날이요.”
[…….]스승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준비는 해 둬야지.
머지않아 불꽃놀이가 끝나고, 나는 샬롯과 스승님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는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속옷 전문 샵.
안으로 들어서자 마네킹에 속옷을 걸고 있던 30대 중반의 여성이 내게 묻는다.
“어머? 혹시 길 잃었니? 여긴 꼬마들이 올 데가 아닌데.”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위쪽은 70G 사이즈에, 아래는…… 음.”
매장에 있는 속옷들을 둘러보다, 어느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딱 저 정도면 될 거 같네요.”
“……혹시 누나 선물이니?”
피식 웃고 말았다.
“38-23-36.”
“응?”
“쓰리 사이즈입니다. 위에 맞는 속옷, 없습니까?”
점장의 눈빛이 살짝 빛난다.
“그런데, 내가 들은 게 맞니? 38-23-36?”
“제대로 들으셨네요.”
“……그렇게 이상적인 몸매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만 보자, 70G면 꽉 찼다는 건데, 그 가슴에 허리가 23? 누굴 놀리니 지금?”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도 내 어깨에 앉아 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스승님이 보기 드물게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내 쓰리 사이즈를 아냐는 듯한 그런 눈빛인데.
굳이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나는 스승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그저 씩 웃어 주자 스승님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아 그리고, 그 속옷을 입을 여성분이 키가 약 171cm 정도 됩니다. 가능하면 조금 수수하지만 고급스러운, 그런 디자인으로다가 위아래 세트로 골라 주셨으면 하네요.”
“……정말 특이한 손님이구나.”
“자주 듣는 소리긴 한데. 사이즈에 맞는 속옷,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없지는 않은데 가격이 만만치 않단다. 말했다시피 그런 이상적인 몸매에 어울리는 속옷은, 특히 브라는 거의 마네킹에나 쓸 법하거든. 알고 있지? 전시용이라는 단어.”
점원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예술 도시 쪽에서 꽤 이름 날리던 디자이너분이 만든 게 두 세트 정도 있긴 한데…… 꼬마야. 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니?”
슬쩍 골드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내 보이자 점장이 밝게 웃는다.
돈 냄새를 제대로 맡은 그런 모습이다.
* * *
콰아앙-!
디트리히 헤르만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난다.
손을 뻗었다.
의자가 잡힌다.
망설임 없이 벽에 집어 던졌다.
콰아앙-!!
산산조각 나는 의자의 파편 아래로 수없이 많은 파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으…… 으아아씨이이바알!!”
콰아앙-!
콰아앙-!
디트리히는 주변에 있는 가구란 가구는 모조리 부쉈으며, 손에 잡히는 게 그 어떤 것이든 사방으로 집어 던졌다.
디트리히는 분노하고 있었다.
“잭…… 잭 발란티에!! 그 빌어먹을 새끼!!”
순간이지만 그놈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그 사실이 디트리히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놈에게 겁을 먹었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 살짝 실금을 했다.
젠장.
“개자식! 씹어 먹을 새끼!!”
디트리히는 다시 주먹을 힘껏 들어 올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미칠 듯한 살의.
디트리히는 결국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뜨거운 기운.
식힐 생각도 없고 식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잭 발란티에!!”
서걱-!!
코앞에 있던 탁자를 그대로 두 동강 내 버린 디트리히가 악에 받친 듯 외친다.
“네놈을 저렇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야!”
Chapter 2
아카데미 개강은 정확히 이틀 후다.
불꽃놀이를 구경할 때 짐작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아카데미 학생들은 어센블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알기로 아카데미 학생들의 숫자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부 합치면 대충 칠백 명 정도 된다.
그중 절반 이상은 기숙사에 들어가 있었고 나머지는 도시 내의 여관에서 머물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숙사가 아무리 좋다고는 해도, 가족들이 기숙사 내부까지 들어올 수는 없으니까.
아, 내가 왜 이렇게 떠들고 있냐면 지금 현기증이 나고 있거든.
슬쩍 고개를 돌리자 핫도그를 해맑게 먹고 있는 샬롯이 보인다.
아주 붉게 물들어 있는 핫도그.
새삼스럽지만 저 붉은 소스는 전부 내 피다.
저거뿐만이 아니라 샬롯이 먹는 그 모든 군것질거리들에 내 피를 뿌려 주었으니 현기증이 날 만도 하다.
“맛있냐?”
“헤헤. 네, 보스.”
“그래, 맛있으면 됐다.”
그렇게, 나는 잠시 도시를 구경하다 그대로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저녁.
언덕을 오르자 거대한 저택이 보인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젠 내 집처럼 자연스럽다.
정문 앞까지 걸어갔을 때, 잠깐 걸음을 멈췄다.
강제로 멈췄다고 해야 하나.
정문 앞에 무언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형체.
시야를 좁혔다.
정확히는 한 남자가 정문 옆에 있는 벽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양 무릎을 좁힌 채 그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남자.
아니, 남의 집 담장 앞에서 저게 뭔 궁상이야?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근육, 체형. 그리고 덥수룩한 머리카락.
그 정도면 충분했다.
타노스.
그 꼬마가 분명하다.
이어서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품에 한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는 나와, 한 손에 붉게 물들어 있는 핫도그를 먹고 있는 샬롯을 바라보던 타노스가 내게 말했다.
“며칠만…… 신세 질 수 있겠습니까?”
슬며시 웃고 말았다.
“얼마든지.”
* * *
식자재를 정리하던 요리사, 기네스는 뒤늦게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두툼한 소등심 스테이크에 레드와인을 곁들인 소스.
그리고 건강을 생각한 유기농 야채.
고작 10분도 지나기 전에 식사 자리가 완성되었다.
나는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조금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눈에 봐도, 꽤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거리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배를 채우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식욕이 동한다고 해야 할까.
피가 뚝뚝 흘러나오는 스테이크를 작게 썰고 입가에 넣었다.
그대로 씹으려던 그때.
“흐윽…… 흑…….”
울음소리.
맞은편에 있던 타노스가 고기를 씹으며 울고 있었다.
아까부터 굉장히 시무룩해 보여서 아슬아슬하다 싶었는데, 결국 터졌나 보다.
“크흑…….”
억눌린 것을 토해 내듯 조금씩 터져 나오는 그 울음은 너무나도 처절했으며, 서럽기까지 했다.
얼마나 처절해 보이냐면 도저히 말을 걸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할까.
그건 내 옆에 앉아 있던 샬롯도 마찬가지고 내 어깨에 앉아 있던 스승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뿐이랴.
내 빈 잔에 토마토 주스를 채워 주던 요리사도 잠깐 멈칫거릴 정도였다.
묘한 분위기.
나는 타노스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그저, 식사에 열중했다.
그런데.
“급하게 준비해서 그런가, 이번 요리는 소스가 좀 맵네.”
눈치 빠른 요리사, 기네스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웃는다.
“그렇군요. 앞으로 세기를 조금 조절해 보겠습니다.”
왜 울고 있는지.
왜 집 앞에서 기다렸는지.
며칠 신세 지겠다는 그 말이 어떤 심정으로 나온 건지.
그리고 왜 저렇게 서러워하는 건지.
나는 묻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타노스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 * *
“……추태를 보였습니다.”
날이 밝자 타노스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서러울 때도 있고 그런 거지.”
타노스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묻는다.
“이유…… 묻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조금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됐어. 저마다 비밀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법인데, 괜히 부담 주고 싶진 않네.”
이 흑해보다 드넓은 배려심.
내 어깨에 앉은 스승님이 나를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고개를 돌려 보니 또 똥폼 잡고 있구나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자.
“너도 알다시피 아카데미 수업에는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알지?”
“예.”
“며칠이든 몇 달이든 상관없으니까 여기서 지내. 방은 어제 네가 잤던 그 방이면 될 거 같고,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으면 어제 그 요리사 알지? 이름은 기네스. 그 양반한테 부탁하면 되고. 그리고 저기 밖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저기 다섯 명은 오총사. 차례대로 일이삼사오로 부르면 되는데, 날 감시하려고 온 애들이거든. 친해지고 싶으면 친하게 지내고. 아니면 말고.”
말이 이어질수록 타노스가 고개를 갸웃한다.
“여기 발란티에 후작가의 별장 같은 거 아니었습니까?”
“어, 아니야. 원래는 어센블 공작가의 귀빈을 모신다는 집이었다던데. 지금은 그냥 내가 선물 받은 집. 음…… 그래, 그냥 별장이라고 하자. 마땅한 단어가 생각 안 났었는데 별장. 괜찮네.”
대충 이해한 타노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병장 한쪽으로 가더니 그곳에서 어제처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몸에 있는 상처들은 어젯밤 밥 먹기 전 포션을 먹여 주면서 치료해 주었다.
아 혹시, 어제 울던 게 포션이 아까워서 그랬던 건가?
실없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코앞에, 우리 뱀파이어 꼬맹이가 아담한 덩치에 맞은 작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차렷 자세로 나를 바라본다.
어젯밤 샬롯은 말했다.
싸움을 잘하고 싶다고.
그 질문에 나는 답했다.
내일 당장 시작하자고.
그러니까, 바로 시작하자.
“좋아. 우선 마나 서클부터 만들어 볼까?”
“네 보스!”
* * *
디트리히를 보좌하는 시종이자, 잭이 호위라고 판단했던 6서클 마법사가 디트리히에게 물었다.
“소가주님.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왜? 이러면 안 돼?”
살벌한 눈빛에 마법사가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어젯밤. 디트리히는 사고를 쳤다.
아카데미에서의 사고가 아니라 분명 큰일이 터질 수밖에 없는 사고.
그날 밤. 디트리히는 한 길드에 의뢰를 넣었다.
그 길드의 이름은 펜타닐.
겉으로는 마수의 숲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 길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펜타닐 길드가 암살자 집단이라는 거.
“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 감히 내게…… 감히, 감히!!”
디트리히가 발작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일은 일상이라는 듯 마법사는 이번에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일이 굉장히 커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여전했다.
이게 왜 큰일이냐.
간단하다.
펜타닐 길드는 현 테슬란 왕국의 삼대 용병단 중 하나이자, 그 길드 마스터는 왕국에서 고작 스무 명도 되지 않는 9서클 마나 유저 중 한 명이다.
특히 단검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그는 진짜 프로 중의 프로.
그런 이들에게 디트리히는 의뢰를 넣었다.
내용은 바로 잭 발란티에의 암살.
귀족가의 자제를 암살한다…… 말은 쉽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은 극히 드물다.
바로 귀족들 간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 눈치 봐야 하는 사항이 많았으니까.
이건 결과가 어찌 되든 분명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영지 간의 다툼으로 변경될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리얼 망나니인 디트리히가 그런 것을 신경 쓰겠는가.
조금 자세히 말하면 이 일이 영지 간의 다툼으로 커진다 해도 디트리히는 신경 쓰지 않았다.
헤르만 후작가는 동부를 꽉 잡고 있다.
대영주라고 불리며 왕국에 있는 다섯 명의 후작 중 가장 큰 영지와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 걱정이 드는 게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