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496)
제 497화
묘한 말이었다. 검존 혁진강, 천외천의 수장인 그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 누가 되었건 의심했을 거다. 넌 혁진강이 맞냐고.
안타깝게도 지금 이 동굴에 있는 남자는 혁진강이 맞다.
그저 베커만이 어떤 남자인지 떠보려는 것뿐이다. 말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없으니까.
베커만은 답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나 베커만, 평생 검을 잡았고 그 길만을 걸었습니다. 한 남자의 검이 되었어도 그 길만큼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인간으로서의, 검사로서의, 그리고 마나 유저로서의 내 길입니다.”
“길이다?”
“나는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황제가 죽기를 원한다면 그 황제를 죽이는 게 내가 가는 길입니다. 황제의 주변 인물을 죽여 그에게 슬픔을 유발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건 내가 가는 길이 아니니까. 나 스스로가 추해지는 길이니까. 나는 죽어도 검으로 죽을 거고 살아도 검으로 살 겁니다.”
그건 베커만의 신념이었다. 왜 잭이 베커만을 가만히 놔두었는가. 위협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왜 놔두었는가.
셀이 향후에 죽여야 하는 남자라서? 아니다. 베커만은 이런 남자라는 것을 알아서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셀을 가지고 실험을 했던 것은 베커만의 기준으로 전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드래곤은 세상에 없다고 알려진 존재였고 인간들의 세상에서 인간 외의 생명에게 동정을 가지는 것은 검으로서의 길이 아니다.
스스로의 길과 이스칸다르의 검이 된 베커만은 그에 맞는 일을 했을 뿐이다. 비록 그가 10살 남짓한 꼬맹이였다 해도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그거면 충분한 거다.
오히려 이종족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이종족들을 자기 가족으로 삼는 잭이 이상한 거다.
혁진강이 말했다.
“참…… 보면 볼수록 괜찮군.”
짧게 감평을 내린 혁진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을 정정하겠네.”
정정한다? 무슨 뜻일까.
혁진강이 베커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외천으로 들어오라는 것은 나의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네. 하지만 자네는 이 천외천과 어울리지 않아.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
“그러니.”
혁진강이 베커만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님’으로 천외천에 오시게.”
“……손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손님.”
“천외천으로 들어가는 것과 손님으로 가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혁진강의 입가에 다시 한번 미소가 그려진다.
“천외천에 들어온다면 의무를 따라야겠지만 손님으로 온다면 따르지 않아도 되네. 즉.”
“즉?”
“내 곁에 자네와 자네의 어린 제자를 두고 싶다는 이야기지.”
“…….”
“검술에 조예가 깊은 모양인데 모자라. 내 몇 수 알려 줄 수도 있어.”
솔직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걸 거절하면 진짜 미친놈이지.
베커만은 그 정도의 미친놈은 아니었다.
손을 뻗었고 혁진강의 손을 잡았다.
“그럼, 앞으로 잘해 보세.”
“……잘 부탁드립니다.”
뒤에 있던 로만도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두 남자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혁진강은 그 기분을 오랫동안 느낄 수 없었다. 왜냐면.
“천자 님!!”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한 여인이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베커만은 그녀를 보자마자 놀랐다. 아는 얼굴이어서가 아니다. 강했기 때문이다. 그냥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최소 한 단계 위의 강자라고.
벽안단제 정화.
천마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은거한 뒤 천외천에 들어왔던 무인, 그녀가 혁진강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걸 들은 혁진강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광존…… 이 새끼가…….”
* * *
천마신검을 휘둘렀다.
서걱-!
거지 대여섯 명의 목이 날아간다. 손으로 땅을 짚었다.
주변 땅이 전부 뒤집어졌다. 수백이 넘는 거지가 생매장됐다. 자리를 박찼다.
퍼버버벅 하고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온갖 무기들이 박힌다. 허공을 박차며 대각선으로 하강했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몸을 회전시켰다. 원심력을 담아 휘둘렀다.
쩌어엉-!!
거울 깨지는 소리와 함께 코앞에 있던 수천이 넘는 거지들이 자리에서 멈춘다.
약 2초가 지났을 때 주르륵, 그들의 몸이 상하로 등분된다.
그대로 손을 휘저었다.
시체들이 떠오르며 탑으로 이동된다.
다시 자리를 박찼다. 죽이고 또 죽였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거지들을 계속 죽였다. 죽인 뒤 탑을 쌓았다. 탑은 더 높아져 갔다.
높아질수록 내가 죽이는 거지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론과 하후돈, 그리고 유제하와 그의 사병들도 가세하긴 했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넋을 놓고 있었다.
수십만의 시체가 쌓이자 거지들도 주춤했다. 그럼에도 내 검은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서걱-!
콰아앙-!!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린다. 거지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시 달려들었다. 손을 뻗자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친다.
콰아아아앙-!!
수백이 넘는 거지가 자리에서 쓰러진다. 꿈틀꿈틀, 벌레처럼 몸을 떨었다.
반대쪽으로 손을 뻗었다. 헬파이어 마법이, 마치 염존의 그것처럼 수십 개 생겨났고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앙-!!
불길이 치솟고 굉음에 비명이 삼켜진다.
“괴…… 괴물…….”
그리 내뱉는 거지의 목이 서걱, 하늘로 솟아오른다.
황제가 말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오직 나만의 대지.]”
황제의 기운이 주변으로 뻗어 나간다.
살아남은 거지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직접 본 건 처음이다. 상상도 못 한, 말도 안 되는 존재.
“[이곳에 허락받지 않은 모든 것이 얼려지리라.]”
쩌어엉-!!
주변이 전부 얼었다. 도망치려던 거지들은 물론 도망치고 있던 거지들까지.
그들 모두가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나마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거지들이 주춤, 물러선다.
이제는 황제에게 무기를 겨눈 거지는 없었다.
“개방을 건드리는 이는 여태껏 없었다?”
“…….”
“고작해야 머릿수 말고는 내세울 것도 없는 것들이 자기 생명을 담보로 위협을 한다…… 재미있구나.”
황제가 검을 고쳐 쥔다.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그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걸이나 하며 살아가는 버러지 새끼들이 왜 그리도 당당한 것이냐.”
거지들은 뒤로 물러섰다.
“종도에서도 보았고 빙궁에서도 보았고 마궁에서도 보았다. 각 도시의 주민들이 일을 하러 나갈 때 너희들은 구걸을 하더구나.”
검을 역수로 고쳐 쥐고 그대로 땅에 박아 넣었다.
푸욱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콰아아앙.
코앞, 약 300미터 반경이 초토화된다. 기술의 이름은 없다. 그냥 마나로 땅을 터트린 것뿐이니까.
검을 뽑고 말을 이었다.
“구걸을 하는 와중에도 네놈들의 눈은 당당했다.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이들이나 돈을 주지 않는 이들을 노려보며 개방이 어쩌구 협박을 하는 모양새를 몇 번 봤는데 참으로 꼴불견이더구나.”
과장 하나 없는 진실이다. 여태껏 언급을 안 했던 이유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다. 내가 이 대륙에서 계속 살 것도 아닌데 눈에 보이는 꼬라지가 꼴불견이라고 참견하는 것도 웃기고, 그냥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적이 됐잖아. 그럼 신경 써야지.
“서대륙에는 빈민들이 많았다.”
살아남은 거지들의 숫자는 대충 수십만이 넘는다. 그들 모두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귀족들의 수탈, 무능한 왕족들에 의한 탄압, 가진 능력을 펼치지도 못하고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빈민이 되었다. 그들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천마신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 온갖 공사를 시작했고 사업을 벌였지. 나를 위해, 그리고 내 국가의 백성들을 위해 수없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스스로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일을 했고 너희 같은 버러지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구걸을 했지. 내 말은 안 했는데.”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내가 하려는 모든 일이 끝나면 나는 서대륙에 있는 거지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다.”
멀리 있던 론이 고개를 홱 돌린다.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그런 표정인데 안타깝지만 난 진심이다.
누군가는 나를 성군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폭군이라 부른다. 관심 없다. 그 누가 나를 평가할 수 있을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거머리처럼 빌붙는 이들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주변 이들의 의욕을 상실시키고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지.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봐도 그런 이들은 살려 둘 필요가 없다.”
천천히 영혼의 힘을 끌어 올렸다. 하늘에 희미한 문이 생긴다. 쩌적, 금이 간다. 문이 열리고 그 문에서 흘러나온 혼기가 검을 만들었다. 검이 불타오른다.
밤인데도 대낮처럼 환해졌다.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결론은 하나다.
“오늘 개방은 멸문한다. 거지라는 족속은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죽일 것이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모르겠다. 거지들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수만? 수십만?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이 마궁이라는 곳의 위치가 꽤 외진 곳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서 이렇게 끊임없이 인원이 보충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무슨 텔레포트 능력자라도 있나.
“물러서지 마라-! 놈은 지쳤다-!”
헛소리다. 지치긴.
몸이 정상이 아닐 때도 제국을 무너뜨린 나다. 광존과 싸웠다 해도 지금 몸은 지극히 정상이다.
지치기는커녕 활력만 샘솟았다.
죽이고 또 죽였다.
시체가 쌓인다. 완전히 터져 나가 보존조차 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보름달이 여전히 떠 있는 걸 보니 아직 하루가 지난 것 같지는 않다. 계속해서 움직였다. 검을 고쳐 쥐었다. 파지직, 검에서 노란 빛이 터져 나왔다. 땅에 꽂자 사방으로 번개가 내려친다.
콰아아앙-!!
주변에 있던 수천 명의 거지가 자리에서 쓰러졌다. 핏물을 타고 전류가 흘러 들어간 거다.
천마신검을 뽑으며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겁을 먹었다지. 금각권제라는 일화를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는 모양인데 왜, 짐을 금각권제와 같다고 생각하지?”
천천히 걸었다.
거지들은 뒤로 물러섰다.
손을 들었다. 오랜만에 언령을 사용했다.
“[애니메이티드, 데드.]”
쿠우웅.
고요하다.
시체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죽인 이들의 숫자는 족히 수십만이 넘는다. 고작 몇 시간 만에 수십만이 모인 것도 놀라운데 그 수십만이 죽고 지금 그 비슷한 수준의 거지가 눈앞에 있다. 지금 더 오고 있는 거 같은데 아마 그들은 내가 아니라 자기들의 동료였던 거지를 상대해야 할 거다.
수십 미터, 수백 미터, 산 아래까지 던져진 거지들의 시체는 물론 가까이에 있는 시체들까지.
그들의 눈에 사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뼈가 훤히 드러난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일어섰다.
그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
그건 포효였다. 시체의 포효.
“아…… 아아…….”
거지들 중에 도망치는 이들도 생겨났다. 자리에서 주저앉는 이들도 있었고 뒷걸음질 치다 뒤로 넘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무시했다.
“[전부 죽여라.]”
“—!!”
시체들이 달려 나갔다. 거지들이 도륙된다. 그걸 지켜보며 나는 딱 한 가지 행동을 했다.
생겨나는 새로운 시체들로 다시 탑을 쌓은 거다.
높이는 점점 더 높아졌다.
꼭대기에는 말뚝에 꽂힌 광존의 머리가 여전히 박혀 있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툭.
무언가가 왔다.
공간을 뚫고 두 다리가 땅에 닿는 그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190cm가 넘는 거구에 템-사미트나 하후돈 같은 어마어마한 근육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탄탄한, 그런 몸을 지니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은 그 자체로 꽤 위협적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