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
제 6화
나는 몰랐다.
앞서 말한 대로 누나가 제국에 팔려 나갔을 때 나는 산속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내가 산에 박힌 1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 그 10년 동안 세상은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테슬란 왕국은 사라져 있었으며, 발란티에 가문도 완전히 멸문한 상황이었고, 툴칸 제국이라는 안 그래도 거대했던 국가는 이 서대륙 전체를 집어삼킨 전무후무한 단일 국가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역사를 되짚을 생각은 없었지만 딱 하나는 되짚어야 할 것 같다.
제1차 대륙전쟁이 벌어졌을 때, 테슬란 왕국은 망했지만 발란티에 가문은 ‘잠시 동안’은 살아남았었다.
제3자가 보기엔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연 또한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당시 툴칸 제국 4황자의 첩이었던 누나는 애원했었다.
가족만큼은 살려 달라고, 당연히 4황자와 당시 황제는 누나의 부탁을 무시했다.
정실도 아니고 첩이라는 처지의 누나의 처지는 암담하다 못해 암울한 수준이었고 황실의 그 누구도 누나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누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성질 더러운 4황자는 누나를 알몸으로 만든 채 별채로 쫓아내 버렸다.
하지만 누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알몸인 채로 사 일 밤낮 동안 비를 맞으며 애원했고 결국 황제와 4황자는 누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게 내가 ‘처음’ 들었던 이야기였고, 당시 대륙에 널리 퍼져 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뒷이야기를 안다.
전생에서 4황자를 잡아다가 고문하며 알게 된 진실은, 타인의 생각보다 더 처참했으며 동시에 나를 괴물로 만들었다.
발란티에 후작가의 생명이 잠시 연장되었던 그때, 4황자는 당장이라도 후작가를 멸문시킬 수 있다며 누나를 가지고 놀았었다.
폭력은 기본이었고 4황자의 고약한 성적인 취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누나는 4황자의 장난감이 되었고, 사고로 죽은 2황자를 제외한 3황자와 당시의 황제, 즉 지금의 황태자는 누나를 몸종으로 삼았었다.
아주 우애 깊은 형제애라고 해야 할까.
X같은 새끼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지금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최악의 미래.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둘째만큼은 살려 달라고 끊임없이 애원했을 누나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리고 문제가 터졌다.
누나가 임신을 한 것이다.
보통 때랑은 상황이 달랐다.
4황자뿐만이 아니라 3황자, 심지어 황제까지 그게 누구의 씨인지 모르는 수준이었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아이가 황제의 아이라면?
가뜩이나 아름답던 누나의 외모를 질투하던 정실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은 간단했다.
목숨의 위협까지 느낀 4황자는 누나를 강제로 유산시켰으며 누나는 정실들에 의해 별채에 틀어박혀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발란티에 후작가가 멸문한 것도 이때쯤이다.
그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악마가 되었고 복수의 길을 걸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복수에 성공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문이란 고문을 놈들에게 시도했으며 최대한 고통을 받으며 죽게 만들었다.
툴칸이라는 이름을 쓰는 모든 존재.
구족, 십족, 아니 놈들과 팔 하나라도 스친 모든 존재를 죽였다.
황후, 황녀, 4황자의 아내, 3황자의 아내 등등.
그년들의 가문도 멸족시켰고 대를 이어 조금이라도 연관되어 있는 가문도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건물은 먼지 하나 남겨 두지 않았으며, 피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에서 지워졌다.
그렇게 나는 복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처참한 미래다.
꽈아악-
“너…… 괜찮은 거야?”
누나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많은 게 달라질 거야.”
“…….”
“누나는 희생하지 않아도 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게 해 줄게.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누나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마 말이 없는 건 누나의 어깨가 조금씩 젖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눈물이라는 걸 흘려 본 게.
* * *
감옥에서 나온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본관으로 향했다.
항상 내성적이고 자기 의견도 확실하게 내세우는 방법을 모르던 막내가 변했다.
나쁜 방향이 아니라 매우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엘리자베스는 확신했다.
유약한 잭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자식으로서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오직 권력과 더 높은 자리만을 추구하는 아버지에게도 항상 외면당했으며, 둘째어머니에게 견제를 받기도 했다.
그 어떤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까.
또한,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어린 잭이 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숨고, 몸을 마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이 그렇게 잭을 견제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귀족 작위가 계승될 때 그 대상자는 전통적으로 항상 ‘장남’이었다.
하지만, 예외가 없지는 않다.
바로, 장남이 아닌 차남이 작위를 계승하는 예외.
그거 때문이다.
잭이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후작 부인의 배경인 맨티스 백작가는 차남인 잭이 후작 위를 계승하는 꼴을 절대로 지켜볼 생각이 없기에 잭을 견제했고, 잭이 후작가에서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맨티스라는 배경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은 후작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잭이 어떤 아이인지 모를 리 없다.
잭은 작위에 관심이 없는 아이였으며 그저 장미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을 여행하는 것을 꿈꾸는 그런 아이다.
그런데 그런 막내를 감옥에 보낸다고?
거기다 흑마법을 사용했다고?
18세의 나이에 6서클을 이룬 ‘천재’인 엘리자베스의 눈에도 흑마법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7서클인 후작이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후작 부인의 입김이 강하게 든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계속 걸었고 본관에 도착했다.
이어서 미리 약속된 것처럼 후작과 독대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아버님. 잭을 감옥에서 나오게 해 주세요.”
이곳에 오기 전, 잭에게 약속했다.
반드시 감옥에서 꺼내 주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려던 엘리자베스에게 후작이 냉정한 어조로 묻는다.
“왜?”
“잭에게 망신을 주려는 거면 이미 충분하잖아요.”
“망신이라, 왜 망신이라 생각하느냐.”
“잭은 흑마법을 배우지 않았어요.”
애초에 흑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전설상의 마법’으로 취급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걸 잭이 배웠다?
말도 안 된다.
흑마법을 배웠다는 그 핑계는 히든카드다.
합당한 이유를 밝히기 힘든 경우나, 밝히기 싫은 이유가 있을 때 쓰는 히든카드.
후작은 잠시간 말없이 눈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 향을 음미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여유로워서 엘리자베스는 도리어 현실감이 사라질 정도였다.
아들이 감옥에 있는데 저런 모습이라니.
“잭이 후계자의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거, 아버님은 잘 아시잖아요.”
“계속해 보거라.”
후작의 어조는 여전했다.
엘리자베스는 말을 이으려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왜.
왜 굳이 잭을 감옥에 가둔 걸까.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잭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왕국 전체에 알려질 것이다.
순간, 엘리자베스는 깨달았다.
너무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경고였네요.”
차를 음미하던 후작의 손이 그대로 허공에서 멈춘다.
“저를 향한 경고.”
잔을 탁- 하고 내려놓은 후작이 희미하게 웃었다.
“제법이구나.”
엘리자베스는 똑똑했다.
그렇기에 이 후작가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일찍이 깨달았다.
권력 있는 집안에 시집을 가는 것.
그럼으로써 발란티에 후작가의 이름을 조금이나마 드높이는 것.
그게 후작이 바라는 거고, 엘리자베스는 그 ‘씨받이’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니지만, 엘리자베스는 오래전 돌아가셨던 어머니 노아를 대신해 잭을 보살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희생이라는 것은 그녀 스스로가 자신에게 새긴 의무이자, 책임이다.
잭.
엘리자베스에게 약점은 바로 잭이다.
그래서 잭을 감옥에 보낸 거다.
이건 잭을 향한 경고가 아니라, 엘리자베스 자신을 향한 경고였다.
허튼짓을 하거나, 씨받이라는 운명을 거부할 경우, 잭에게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후작의 경고.
엘리자베스는 말없이 아버지인 클라크 발란티에를 응시했다.
그가, 말했다.
“적어도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쯤 되면 막내를 가문에서 축출할 생각이다.”
잭은 후작의 입장에서 최우선순위가 아니다.
잭이 후계자가 된다면 막강한 재력을 품고 있는 후작 부인의 배경을 잃게 된다.
압도적인 재력을 가진 맨티스 백작가와 유약한 막내.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니 후작이 잭의 편의를 봐줄 이유는 없었다.
그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진행될 예정이다.
“너도 알다시피 막내는 우리 발란티에 후작가와 어울리지 않는다. 성년이 지나면 공식적으로는 ‘사망’했다고 처리될 거고, 신분을 숨긴 채 가까운 곳에서 평범한 상인들처럼 장사나 하면서 살게 만들 생각이다. 그 외의 것들을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그때까지 너는 다른 생각 말고 네 본분을 잊지 말거라. 그 이후도 마찬가지고.”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 엘리자베스를 안심시키려는 거짓된 약속일지라도 엘리자베스는 그걸 믿어야 했다.
그거 말고는 답이 없었으니까.
설령 잭이 ‘실종’된다 해도, 클라크가 잭은 사실 어디어디의 산에서 살고 있다…… 어느 어느 마을에서 잡상인을 하고 있다…… 그렇게 말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답답하다고는 해도, 그게 장녀이자 자신이 해야 할 의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
“우연이라고 보기엔 참 아이러니하더구나. 서클도 없는 막내가 3서클을 이룬 둘째를 제압하다니.”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후작 몰래 침을 꿀꺽 삼켰다.
막내가 서클이 없어?
그럼 내가 아까 본 건 뭔데?
“이미 지난 일이니 상관없겠지. 네 말대로 막내를 감옥에서 나오게 해 주마.”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엘리자베스는 자리에서 일어서 입구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엘리자베스가 그대로 고개만 돌려 후작을 바라본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그래, 가서 쉬거라.”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문이 턱 하고 닫히는 순간, 후작의 입가에 생겨났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밖으로 나온 엘리자베스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촉촉해진 눈가를, 손으로 슬며시 훔쳤다.
그러고는 최대한 평온해 보이도록 표정 관리를 하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터억-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은 엘리자베스는 그대로 문에 등을 기댔다.
‘우리 그냥 산으로 도망가서 같이 살자. 정말 누나를 위해 주고 잘해 줄 수 있는 남자도 찾아보고, 나도 내 마음에 드는 여자 찾아서 오순도순 농사나 지으면서, 우리 그렇게 살자.’
막내의 말이 머릿속을 헤집는 것과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조용히 숨을 토해 냈다.
아직은.
그건 아직 안 될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