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00)
제 501화
온몸이 피투성이였는데 그 여유로운 웃음은 분명 얼마 전까지의 유제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유제하를 유설하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처음 볼 때부터 무언가 미심쩍었던 건데. 설마.
“……너…… 깼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유제하는 알아들었다.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체득하지는 못했지만 깼지.”
유설하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러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이 배다른 오빠인 유제하에게 정말 지고 싶지 않았다. 같은 경지에서 제의 자리에 있던 것도 이젠 옛말이다.
유제하의 말을 그냥 넘기기에는 그의 태도와 모습이 달라졌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유설하는 그걸 확실하게 느꼈다. 유제하의 말은, 분명 진실이다.
유제하는 벽을 깼다. 이젠 제의 자리에 앉아 있을 무인이 아니라, 왕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무인이 되었다는 것을 유설하는 깨달았다.
이가, 악물린다.
나는 못 넘었는데, 나는 패력무제 따위에게 개처럼 처맞았는데. 그리고 굴욕까지 당했는데 왜 저놈은.
유설하는 무인이다. 자고로 무인은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 순간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주먹을 너무나도 강하게 쥐고 있었기에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아마 눈물이 흘렀을 거다.
그런 유설하의 모습에 유제하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 저러는 거지.
그러고는 천천히 유설하의 모습을 살폈다.
일단 입고 있는 옷이 엉망이다. 뿐일까. 머리.
유설하의 머리는 꽤 길었다. 세간에는 한천빙제의 머리가 길게 흩날리면 그 길이만큼 길이 얼어붙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길었다. 그런데 지금은 꽤 짧아졌다.
마치 얼어붙었다가 깨진 것처럼 머리가 엉망진창이다.
단발까지는 아닌데, 비슷하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챌 수밖에 없다.
“누구랑 싸우고 왔구나.”
“…….”
“검 같은 것에 당한 상처는 아니야. 주먹과 발. 박투술의 흔적인데…….”
잠시 말을 멈춘 유제하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누구인지 알아챘기에.
“너를 그 정도로 몰아붙일 만한 무인이면, 패력무제?”
귀신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유제하는 무림에서 나름 잔뼈가 굵다.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이었고 그게 정답이었다.
평소였다면, 벽을 깨지 못한 유제하였다면 높은 확률로 놀렸을 거다.
한심한 년, 그렇게 깝죽거리고 돌아다니니 처맞기나 하지. 어쩐지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있길래 뭔가 했더니 등등.
그런 소리를 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경지를 높인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거다. 유제하는 성장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걸어가 배다른 동생을, 원래는 만나기만 하면 쌍욕만 하던 동생을 끌어안았다.
유설하도 평소의 유설하가 아니었다.
아무런 반항 없이 품에 안겼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유설하에게 유제하가 말했다.
“패력무제, 내가 죽여 줄 수 있다.”
“…….”
“마궁의 주민들을 받아 주었으니 그 정도는 내가 해 줄 수 있다. 어찌 생각하느냐.”
유설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유제하는 무인의 자세로 받아들였다.
“그래, 당하고만 사는 건 내가 아는 유설하가 아니지. 내가 수련을 도와줄 수 있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너도 현경에 이르렀으니 혹시 모르지 않느냐. 생사경으로 갈 수도.”
결국 유설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유제하의 가슴팍을 밀었다.
“죽었어.”
“……패력무제가?”
“어.”
“그럼, 그렇게 궁상떨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렇게 싸우고 네가 죽였다면 결국 승자라는 건데…….”
“내가 안 죽였어.”
“……음.”
유제하와 거리를 벌린 유설하가 눈가를 슥 훔친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했다.
“축하해. 올라간 거.”
“그래.”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정말로 어색했다.
그걸 지켜보는 구경꾼들에게는 아니었지만.
물론 구경꾼들도 구경꾼들 나름 어색했다. 셀과 샬롯은 처음 보는 또래의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처음 보는 또래의 아이인 하후영도 그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후돈은 그런 하후영과 두 꼬마를 바라보고 있었고 론은 멀찍이 물러서서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설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잠시 걷겠다던 잭이 돌아왔다.
그런데 혼자, 왔다.
어깨에는 못 보던 인형이 있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이들과 모르는 이들 모두가 놀랐다.
서로 다른 의미로 놀란 거지만 특히 유제하와 하후돈은 조금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껏 잭과 동행하며 그의 행동을 보았다. 그의 말투도 그의 모든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저런 인형을 데리고 다니는 취미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인이 아닌가.
그것도 천하제일을 논하는 무인이 애들이나 데리고 놀 법한 그런 인형을 데리고 있다?
이건 동대륙에서 나고 자란 유제하와 하후돈에게는 꽤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어…… 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지가 않는다.
그 인형은 대체 뭡니까, 그 말이 정말 나오지가 않았다. 하면 뒤지게 처맞을 것 같았기에.
그래도 생각까지는 했다.
혹시 서대륙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은 저런 인형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걸까.
혹시 나도 인형을 데리고 다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인형이, 말을 했다.
[왜 그리들 쳐다보느냐.]한 번만 더 강조하자. 인형이 말을 했다. 세상에. 인형이 말을 하다니.
[인형 처음 보느냐.]순간 흠칫했다. 뒤늦게 깨달았다.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설마…… 발렌타인 님?”
유설하의 물음에 인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딱 한 가지를 생각했다.
정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딱 한 가지만을 떠올린 거다.
약점.
셀과 샬롯의 경우에는 발렌타인이 인형으로 돌아간 것을 서대륙에서와 같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곳은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니까.
셀과 샬롯을 제외한 이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왜 인간의 몸에서 인형의 몸으로 돌아갔겠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이유가 뭐든 간에, 저 무소불위의, 말도 안 되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황제에게 빈틈이 보였다는 거다.
저 인형은 황제의 스승이다. 그런데 잭과 척을 지게 될 뻔한 이들이 과연 그걸 모를까.
천외천이 지금은 물러났다고 해도 이미 한번 대립했다. 손잡고 짝짜꿍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소강상태가 된 거다. 그 상태에서 황제의 저 빈틈을 보게 된다면.
생각이 있는 존재라면 저걸 노리지 않을까.
잭이 말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대충 판 좀 짜 봐.”
유제하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판이라면…… 어떤 판 말씀이신지요.”
잭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긴 구면인 사람보다 초면인 사람이 더 많은 거 같은데, 당연히 술판이라도 깔아야지. 통성명 안 하게?”
“아…… 예,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유제하는 달려 나갔다. 산짐승이라도 잡아오기 위해서.
하후돈도 달려 나갔다. 멀쩡한 민가에서 마실 거라도 찾기 위해서.
여하튼 그렇게, 잭이 돌아왔다.
* * *
조촐한 자리가 마련됐다.
서로 통성명했고, 사슴의 다리를 뜯었고 맛있게 구워 먹었다.
오랜만에 강철로 만들어진 쇠빨대를 내 쇄골에 박아 넣고 피를 먹고 있는 샬롯을 제외하면 꽤 평화로웠다.
“뱀파이어라…… 참으로 서대륙이라는 곳은 복잡한 곳이군.”
뒤에서 유제하가 중얼거리는 소리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조용히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이쯤 됐으니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법하다.
천외천天外天.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말을 쓰며 이 동대륙의 ‘무림’을 뒤에서 지배하고 있는 단체.
그리고 그 단체의 수장인 검존 혁진강.
그 검존이 어떤 남자인지는 안다. 지니고 있는 힘? 나도 보는 눈이 있다. 감각도 있다. 지금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검존은 강하다.
처음에는 나보다 약간 약하거나 동급이라 생각했다. 가볍게 손을 섞고 난 이후 확신했다. 검존은 절대 나보다 밑이 아니라는 거. 나와 완벽한 동급. 같은 선상에 있다는 거.
스승님한테는 조금 미안한 소리지만 아마 검존은 스승님보다 약간 강할 거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힘’만을 가지고 말한 거다.
높게 쳐줘야 하는가, 그런 종류의 질문에는 절대 높게 쳐줄 수가 없었다.
개방의 일만 봐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검존은 분명 말했다. 개방의 모든 일을 광존에게 맡겼다고.
그건 광존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일이 터졌잖아.
그게 광존 개인의 행동이다? 그래서 광존만의 잘못이다? 웃기는 소리지.
적어도 한 단체의 수장이 된 놈은 그 밑에 있는 애들을 제대로 통솔해야 한다.
그들이 수장의 말을 무시하고 자유 의지로 움직인다?
그게 아니라 수장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했다? 이게 정말 수하만의 잘못일까.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수하의 잘못은 약 10, 수장의 잘못은 90이다.
수장의 잘못은 그 90에서 올라가면 올라갔지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천외천이라는 조직은 단합력이 아주 쓰레기라는 뜻이다.
검존이 어떤 남자인지는 앞서도 말했듯 확실하게 알았다. 대의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나랑은 다른 남자.
이건 정보력이라는 측면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천외천이 어떤 조직인지 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검존은 사과했고, 천자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고개를 숙였지만 내가, 걔네들이랑 손잡고 짝짜꿍하는 건 상상도 안 된다.
칼 겨누고 죽였으면 죽였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뭐라고 해야 할까.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천외천에 대한 것은 이제 알았기에 이 무림을 양분하고 있는 천마신교에 대한 것을 알아야 한다.
대놓고 아수라라는 존재를 신으로 모시는 천마신교.
웬만한 것들은 이제 다 치웠다. 이제 천마신교로 가야겠다. 딱 하나만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은 정리됐고 마음은 결정을 내렸다.
“유제하.”
“예, 주군. 말씀하십시오.”
“너, 가라.”
무언가 엄청난 일을 시킬 거라 생각했는지 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제하가 멍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예?”
“서대륙으로 가라. 하후돈 너도.”
유제하의 표정이 하후돈에게도 전염됐다.
뿐일까.
“샬롯, 셀, 너희 둘도 서대륙으로 가.”
-보스…….
“보스…….”
샬롯이 빨대를 뽑는다. 가볍게 손으로 쇄골을 쓰다듬자 피부가 아물었다.
샬롯이 뒤로 물러선다. 분위기를 살피던 모두가 내 주변으로 다가온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내가 여기 왜 온 건지는 알지?”
“네…….”
“무엇을 하려 하는지도 알고?”
“……네.”
“지금 그 일이 안 끝났어.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데 내가 지금 지켜야 될 사람들이 이곳에 더 늘어났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