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01)
제 502화
내 옆에 계신 스승님이, 내 머리를 쓸어내렸다. 이게 말은 안 했는데 아까 광존이랑 싸우면서 머리카락이 좀 잘려 나가긴 했거든.
이건 좀 이따가 정리해야 할 듯.
마저 말했다.
“조금 말을 꼬아서 이해가 잘 안 가는 모양인데.”
잠시 말을 멈춘 뒤 주변에 있는 모두와 눈을 한 번씩 맞췄다.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전부가, 지금 나한테는 짐 덩어리라는 거야.”
“…….”
“이곳에서 죽어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랑 그걸 내가 지켜보는 거랑은 달라. 내 행동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을 주거든. 그러니까, 전부 서대륙으로 가.”
“…….”
“유제하.”
“예.”
“설득할 시간이 일주일 필요하다고 했지?”
“……예.”
“3시간으로 줄여. 갈 사람만 데려가. 가지 않을 사람은 이곳에 내버려 둬. 그 이상 난 신경 안 쓴다. 무슨 말인지 알지?”
순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제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했다는 모습인데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실소가 터져 나온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놈이 왜 여기서 예, 예 대답만 하고 있냐? 3시간이 너무 많아? 30분으로 줄여 줄까?”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의 유제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3시간…… 3시간 안에 다녀오겠습니다.”
“가 봐.”
“예.”
그렇게 유제하는 사라졌다.
그리고.
“셀, 샬롯.”
-네, 보스.
“네, 보스.”
“이곳 좌표랑, 흑해가 있는 그곳 좌표 알지?”
“……네.”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여분의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무슨 이름이 있는 검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회귀를 하고 스승님을 데리러 바위산으로 갔을 때, 나는 곧바로 아카데미가 있는 어센블을 목적지로 삼았다.
그곳으로 가는 와중에 있던 마을에서 검 한 자루를 샀는데 이게 그 검이다. 싸구려 검.
내가 바가지를 써 가면서 산 검.
그 검의 검면에 수식을 적어 갔다.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기운, 검이 못 버티겠다는 듯 부르르 떨렸다. 무시했다. 어차피 일회용이니까.
그러고는 그걸 셀에게 건네주었다.
“그 경계선에 도착하면 그 검을 그쪽 바다에 집어 던져.”
-마나를 집어넣어서요?
“어. 그렇게 하면 그 장막이 잠시 동안은 풀릴 거거든. 그렇게 되면 통과해.”
-아…… 네. 그렇게 할게요.
잠시 두 녀석을 바라보았다. 서대륙에서 이곳으로 올 때 내가 보였던 마지막 모습은 조금…… 좋지 않았다.
두 녀석이 보았을 때도 좋지는 않았을 거다. 왜냐면 그때 나는 쓴소리를 했으니까.
정확히는 이렇게 말했다.
‘니들 눈에는 내가 어디 가서 비명횡사할 놈으로 보이냐?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냐, 기분 더럽게.’
그리고.
‘너희를 따르는 애들이 있잖아. 있으면 책임감 있게 행동해. 철없는 애새끼처럼 굴지 말고.’.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때 기분이 좀 좋지가 않았다.
스승님한테 뺨을 맞고 뭔가 좀 풀리지 않아서 말이 좀 험하게 나갔는데 지금까지도 조금, 신경 쓰이긴 했다.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어떻게. 잘 지냈냐.”
두 꼬마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셀은 조금 성장한 거 같고, 샬롯도…… 꽤 성장했네.”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셀은 심장에 7개 서클, 샬롯은 6개 서클. 빠르네?”
“……고마워요, 보스.”
손을 뻗어 두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린 나이에 서클을 저렇게 급격하게 올리면 후에 문제가 생기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 두 녀석은 예외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자식을 가져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이 두 꼬마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마 부모가 느낄 법한 감정일 거다.
“그때 말 좀 세게 한 거, 미안하다.”
-아…….
“조금 순화해서 말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누가 내 뺨을 후려쳤었거든.”
두 꼬마가 슬쩍 내 어깨에 있는 스승님을 바라본다.
“화풀이한 거라고 생각해도 돼.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아.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다는 거 알지?”
두 녀석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타노스는 왜 안 왔냐, 타노스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수련에 매진 중이라고 한다. 너희 둘은 왜 왔냐니까, 그나마 1인분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샬롯이 피안화를 극한까지 일으키면 적색 마스터도 죽일 수 있다.
물론 샬롯도 죽긴 하지만 중요한 건 죽일 수 있다는 부분이다.
셀은 마법을 쓴다. 로드의 핏줄답게 이미 언령 마법을 마스터했다. 리스크가 따르긴 하겠지만 충분히 1인분 정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두 녀석이 동대륙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신경 쓰인다는 거다.
“조만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오른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스승님은 그게 먼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하시지만 난 아니거든.”
서대륙을 침공할 키메라를 말하는 것이다. 스승님과 대화했듯 먼 미래에 벌어질 일일 수도 있으나 난 아닌 것 같다.
곧. 정말 곧 그 일이 터질 것 같다. 그냥 불길했다. 그 느낌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뿐이다. 그러니까.
“가서 대비하고 있어. 스승님은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까.”
두 꼬마는 똑똑했다. 정말 똑똑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표정 보니까 눈치챘나 보다. 그래도 확실히 하는 게 낫겠지.
“저 검을 너희한테 준 거랑 연결되는 부분인데, 스승님 다음으로 너희 두 녀석을 내가 믿는다는 거거든, 확실히 이해한 거 맞지?”
-네.
“네.”
두 꼬마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두 녀석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두 녀석이 다가온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고 두 꼬마를 가볍게 안았다.
양손으로 각각 두 녀석의 뒷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그냥 행동만으로 뜻이 전해질 때가 있다. 그게 지금 이 순간이다.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 * *
멀리 있던 론은 그런 잭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던 유설하가 묻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다정하네요.”
론이 답했다.
“단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우리 도련…… 아니지, 우리 폐하가 얼마나 다정한지.”
“음…….”
“항상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이 대부분일 테니 당연한 거긴 하지만 폐하는 이유 없이 싸웠던 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자기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안정을 위해서. 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죠.”
유설하의 시선이 묘했다. 잭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론을 바라보는 유설하의 시선에는 분명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론이 고개를 돌린다.
유설하는 질문하려 했다. 어떻게 고작 며칠 만에 초절정을 넘어섰냐고, 어떻게 화경에 가까운 고수가 되었냐고.
그저 유설하보다 론이 빨랐을 뿐이다.
론의 시선이 유설하의 머리를 바라본다.
“머리가 많이 짧아지셨군요.”
“…….”
“단발도 꽤 어울리십니다.”
유설하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 패력무제 진우. 솔직히 강하긴 했다. 상성에 대한 것은 둘째 치고 싸운다면 이길 확률은 절반 정도로 잡고 있었다. 그런데 패배했다.
이견 없이 그냥 졌다.
론이 질문을 바꿨다.
“패력무제라는 남자는 강했습니까?”
“……강했죠.”
“어느 정도였습니까?”
“생사경, 선기를 쓰더라고요.”
“그래서 지신 겁니까?”
유설하가 고개를 젓는다.
“그냥…… 달랐어요.”
“다르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야 말하는 거지만, 지금도 뭐가 다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감 정도는 잡히실 거 아닙니까.”
유설하가 이번에도 고개를 젓는다.
“한 끗이라고 해야 하나. 단순히 경지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진우에게는 있고 저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잡힐 듯 말 듯 한 그 느낌이 지금도 짜증 나요. 답답하고.”
투덜거리는 유설하를 론은 묘한 표정으로 ‘내려’ 보았다.
유설하는 묘한 위화감을 순간 깨달았다.
“키가, 크셨네요?”
그 말대로다. 론은 키가 컸다. 정확히 4cm.
“170대 중반이었는데 제가 좀 오래 허리를 굽히고 살았었거든요.”
“그래요?”
“환골탈태를 하면서 뼈가 다시 맞춰지더니 커지던데요.”
“……축하드려요.”
유설하는 바보가 아니다. 론은 고작 며칠 만에 화경에 가까운 고수가 되었다.
이 남자의 잠재력이 뒤늦게 터진 걸까. 그렇다면 그 잠재력은 어느 정도일까.
대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까.
유설하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3시간 안에 그게 가능할까요.”
빙궁으로 달려간 유제하를 말하는 것이다.
론이 답했다.
“빙궁과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유제하 정도의 남자라면 30분 안으로 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게 있잖아요.”
가장 중요한 거라면.
“설득,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거뿐만이 아니죠. 설득도 설득인데 그 인원들을 어떻게 전부 서대륙으로 보내게요?”
론은 아무 말 없이 유설하를 바라보았다. 유설하가 말을 잇는다.
“배를 구해야 할 텐데 해안 도시는 좀 멀리 떨어져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시간이 많이 촉박하지 않을까요.”
론이 웃는다.
“내기하시겠습니까?”
“내기요?”
“유제하가 3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칠지 아니면 끝마치지 못할지.”
잠시 망설이던 유설하였지만 결정은 빨랐다.
“……전 못한다에 걸게요.”
“그럼 저는 한다에 걸겠습니다.”
뭔가 빼먹은 게 있는 것 같다.
“뭘 걸 건데요?”
“글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이 몸뚱이 하나밖에 없어서, 마법, 한번 배워 보시겠습니까?”
“마법이요?”
론은 묵묵히 말했다.
“혹시 모르잖습니까. 마법을 배움으로써 벽을 깨게 되실 수도.”
“음…… 그럼, 제가 지면요?”
“지면 저한테 마법 배우십시오.”
유설하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겨도 배우고 져도 배워요? 무슨 내기가 그래요.”
“싫습니까?”
“싫은 건 아닌데…….”
“들어 보니 여러 무인들을 초청해서 대화를 나누고 비무도 하고 그러셨다던데요.”
“……무림에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많은 걸 아시네요.”
“폐하를 보좌하려면 귀가 밝아야 하는데 제가 귀가 좀 밝습니다. 오다가다 듣게 되던데요. 그보다 내기, 하실 겁니까?”
유설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남자의 배려를.
사실 유설하쯤 되는 강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선함이다. 의지나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자고로 경지를 높이는 데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배우면서 신선함을 느끼고 의지를 더 굳건하게 만드는 것.
유설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요, 내기.”
처음 볼 때도 느낀 거지만 이 남자, 나쁘지는 않다.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