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07)
제 508화
“절대자라…….”
신의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을 부활시키려면 대체 어찌해야 하오.”
들려오지 않는 답이었다.
“죽은 게 맞는 거요? 아니면 살아 있는 거요?”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들려오지 않는 메아리.
솔직히 말하면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이 빙정은 그 어떤 수법으로도 풀리지가 않았다.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신의는 검존 혁진강과 형제다. 엘리자베스와 잭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엘리자베스는 재능이 넘친다. 잭의 재능과 흡사할 정도로.
둘의 차이는 딱 하나다. 바로 경험과 나이. 그리고 의지.
신의 혁운영도 마찬가지다.
신의는 분명 혁진강과 같은 핏줄이다. 그렇기에 비슷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신의 혁운영은 검존보다 약한 것인가.
이것도 명확하게 설명이 가능했다.
검존은 무공을 배웠다. 그 무공에 모든 재능을 쏟아부었다. 신의는, ‘주술’을 배웠다. 그 주술이 시간이 갈수록 의술로 둔갑한 거다. 그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서로의 경지는 다를지라도 느끼고 겪고, 깨달은 것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신의가 잭의 몸을 치료할 수 있었던 거다. 그 정도의 재능을 의술에 쏟아 넣었기에 초월자의 경지에 들어서지 않고도 초월자의 힘을 쓸 수 있었던 거다. 스스로의 수명을 깎아 넣고 스스로의 수명을 다시 회복시키고.
영혼의 충돌, 그릇의 충돌. 신의의 몸은 이미 엉망이다.
그런 정신력과 그런 의술로도 이 빙정을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건 애초에 그런 범주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라그나로크가 맞다. 정확히는 라그나로크의 신체.
신의는 라그나로크를 부활시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격 미달이다. 그는 ‘누군가의 의지’로 부활하는 자가 아니다.
스스로 깨어날 시기를 선택하는 웅크린 괴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신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당신이 눈을 뜨면 과연 세상은 어떻게 될까.”
신의는 웃음이 많았다.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또한 그 웃음 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래, 이건 분명 광기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공동 안에는 신의의 조용한 웃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한동안, 쭉.
* * *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가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장담할 수 있는데 신의는 라그나로크를 ‘절대’ 부활시키지 못한다.
근거는 있다.
묵시록의 두 가지 예언.
그건 엄청난 힌트였다. 그리고 그건 서대륙과 동대륙에 있는 이들을 위한 예언이 아니었다.
오직 나를 위한 예언.
신의는 그것에 접근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모를 거다. 적어도 이 동대륙의 무인들은 모를 거다.
조금 구체화해 보자.
툭, 툭.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주변이 침묵에 잠긴다. 고요한 상황 속에서 정보들을 다시 재배치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전생에서 내가 했던 행동들을 절대 잊지 않았다. 잊을 수가 없지, 잊으면 지금의 내가 없는데.
그래, 이게 제일 중요하다.
혼기, 혹은 선기.
이 두 개의 기운을 사용하는 이들은 종족의 격을 뛰어넘은 이들이다.
과거에는 두 개의 기운을 쓰는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
신격.
신의 힘을 갖춘 자.
신이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 자.
왜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격을 초월한 이들은 세상의 운명에 간섭이 가능하다. 미약할지라도 조금이나마 간섭이 가능하다.
왜 달마의 묵시록은 두 개로 나누어졌는가.
묵시록은 동대륙에서 작성이 되었다. 그렇기에 동대륙에 있는 이들은 모른다.
서쪽에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
두 개로 나누어진 묵시록 중 내가 이 동대륙에 오지 않은 그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했나.
싸움을 했다.
격을 강제로 초월한 하프 블러드들을 수십 명 이상 썰었다. 이스칸다르와 하인케스 베커만, 그리고 도관의 주인이자 영생을 원했던 아서 군나르를 죽였다.
내가 죽인 이들 하나하나가 전부 세상의 운명에 조금이라도 개입할 수 있는 괴물들이다. 그들이 가진 힘이 세상에 퍼졌다. 세상이 불완전해졌다.
그리고, 키메라들이 침공했다.
그 키메라들을 내가 과연 가만 놔두었을까.
내가 아무리 데스 나이트가 되어도 나는 나다. 전부 죽였을 거다.
계속 죽였을 거다.
여기서 막힌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 키메라들은 왜 서대륙으로 왔는가.
그 키메라들을 조종하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게 라그나로크인가 천외천인가 아니면 천마신교인가.
키메라가 자의식을 가지고 혼자 왔다? 아니. 그건 아니다.
내가 본 기억의 파편 속에서는 분명 키메라는 명령을 따르는 존재였다.
그게, 라그나로크일 확률이 높다 생각했는데 나열된 퍼즐에 의하면 그건 아닌 거 같다.
확인할 방법? 있다.
딱 하나 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 스승님이 보인다. 그리고 론과 유설하가 보인다.
론과 유설하에게는 미안하지만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하지만 스승님은 다르다.
“저, 잠깐 기절해도 됩니까?”
[……무슨 말인 것이냐?]애써 웃었다.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던 건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기억의 파편을 한번 훑어보려 합니다.”
[훑는다?]“정확히는 딱 하나를 찾고자 합니다.”
[그게 무엇이냐.]가볍게 심호흡했다. 스승님이 나를 지켜 줄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미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이야기도 해 줘야겠지. 내가 찾고자 하는 것. 내가 보고자 하는 것.
“전생에서 서대륙이 멸망한 후, 키메라들이 침공을 한 그 이후, 그 이후를 조금 보려 합니다.”
[……가능하겠느냐?]솔직히 말하면 힘들 거다. 지금껏 내가 왜 기억의 파편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소모되는 기력이 너무나도 크기에 하지 않았던 거다.
내 영혼의 문을 열고 내 영혼의 기억을 읽어야 한다. 해석하고 분해하고 느껴야 한다.
죽지는 않을 거다. 아마 꽤 지치겠지. 꽤 많은 기력을 소모하겠지.
스승님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와 동시에 스승님이 내 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리셨다. 그건 그렇게 하겠다는 동의였다.
그대로 바닥을 발로 슥 훑었다. 먼지가 밖으로 털려 나간다. 자리에 앉았다.
가부좌를 틀었다. 미간이 파인다. 영혼이 자극된다.
망설임은 없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여기서 허비했다.
의식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chapter 3
그의 눈에는 검은 휘광이 줄기차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서대륙의 지배자, 마나의 지배자, 하늘의 악마, 검의 귀신, 검의 황제. 낯부끄러운 온갖 수식어가 붙어 있던 그 존재는 죽었다.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기에.
그런데 살아났다.
자의가 아니었다.
아서 군나르.
영생을 추구하는 과거의 망령이 갈기갈기 찢긴 괴물의 시신을 모았고 되살렸다. 되살아난 그 존재는 이지를 찾았고 자신을 그리 만든 모든 놈들을 죽였다.
데스 나이트가 되었어도 ‘잭 발란티에’는 잭 발란티에다. 잭 발란티에가 도관의 마지막 전사의 머리를 날렸을 때, 서대륙의 모든 인구가 전멸했다.
잭이 멸망시킨 게 아니었다.
키메라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미쳐 날뛰었다. 그들은 잭을 노리지 않았다. 보면 도망쳤고 눈앞에 보이는 일반 주민들을 노렸다. 한두 놈이었다면, 만약 그 숫자가 수백이었다면 잭은 막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의미 없었다.
잭이 도관의 전사들을 죽이는 그 속도보다 월등히 빨랐다. 키메라들은 지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움직였다.
너무나도 강해 괴물이라 불렸던 잭 발란티에지만 그의 본질은 인간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사실 다른 말은 그저 비유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대륙의 주민들을 전부 죽인 저것들은 말 그대로의 괴물이었다.
온몸에 가시 같은 돌기가 나 있었고 눈은 최소 여덟 개가 넘었으며 하나하나의 힘이 최소 마스터에 육박한다.
서대륙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스스로가 힘이 있는 존재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잭은 혼자였고 상대는 무수하게 많은 다수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상관없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상관없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잭 발란티에는 항상 그러했듯 다시 싸움을 준비했다.
서대륙의 모든 생명체를 죽인 키메라들은 마지막 남은 잭을 노렸으니까.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잭 발란티에는, 아니 데스 나이트는 싸웠다. 계속 싸웠다. 죽이고 또 죽였다.
키메라의 개체수가 많았다. 워낙 소수 대 다수의 싸움에 익숙한 데스 나이트였지만 이것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다. 그것도 초월자의 경지에서 스스로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 버린 인외의 존재.
그 존재를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숫자는 많았다. 최소 수천.
그중 가장 앞에 한 남자와 한 여인이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저게 라그나로크일까. 저 정도의 힘이라면 절대자라고 불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으니까.
저건 인간이다. 인간이었던 것이었고 죽은 것과 산 것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이다.
190cm가 넘는 거구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키메라 수천 마리와 데스 나이트가 충돌한다. 데스 나이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키메라 수십 마리가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데스 나이트의 몸에는 상처가 생겨났다.
땅은 뒤집어졌고 지진이 일어났다. 화산도 아닌 곳에서 용암이 터져 나온다. 해일이 일어났고 하늘에서는 번개가 쳤다.
거의 종말, 그 이상이었다.
데스 나이트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상처가 생기면 금방 재생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상처는 상처였다.
천 마리가 죽었다. 데스 나이트는 팔 하나를 잃었고 그걸 재생하기도 전에 천 마리를 더 죽였다. 그때 데스 나이트의 다리 한쪽은 없었다. 순간 데스 나이트의 몸이 사라진다.
키메라들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안광이 줄기차게 뻗어 나오며 검은 연기가 온몸을 덮고 있는 데스 나이트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검은 연기가 그의 다리를 대신했고 팔을 대신했다. 불사신.
그 단어로 설명이 가능했다.
그의 펴졌던 손이 꽉, 쥐어진다.
쩌어어엉-!!
거울 깨지는 소리가 울린다. 이건 단순한 거울이 아니었다.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경계의 거울이었다.
절반 가까이 되는 키메라들이 풀썩 쓰러진다. 그들의 심장과 머리는 전부 터져 있었다.
지켜보던 남자가 말했다.
“……저게 라그나로크인가. 아니면 저것을 죽이면 나타나는 놈이 라그나로크인가.”
남자의 뒤쪽에 있던 여인이 묻는다.
“검존께서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계시는군요.”
검존이라 불린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묵시록은 절대적이라네. 그런 묵시록이 예언했지. 서쪽에서 누군가 방문하면 라그나로크가 부활하고 만약 그가 방문하지 않는다 해도 라그나로크가 부활한다고. 어쩌면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무엇이 말씀이신지요.”
벽안단제 정화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키메라들을 썰고 있는 저 ‘괴물’은 도저히 인간 같지가 않았으니까.
그냥 두려웠다. 그런 정화의 귓가에 검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묵시록은 객관적인 사실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달마의 주관이 많이 들어간 예언서라네.”
“그렇다면…….”
“그래, 분명 달마는 이 순간을 보았어. 달마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절대 인간이 아닌 저 괴물을 보고 뭐라 생각했을까. 라그나로크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검존은 달마가 아니니까.
“기록 속에 존재하는 라그나로크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것도 어차피 기록에 불과해.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라그나로크를.”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슬슬 준비하는 거다. 또한 검존의 뒤쪽에 있던 수천이 넘는 천외천의 무인들과 그 뒤쪽으로 또다시 수천이 넘는 키메라들이 태세를 갖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