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08)
제 509화
검존이 벽안단제 정화에게 물었다.
“천마는?”
“……관망 중인 것 같습니다.”
“전언 정도는 남겼을 터인데, 설마 없었느냐.”
정화가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가 라그나로크라 확신이 되었을 때 참전하겠다. 그게 아니라면 천마신교는 움직이지 않는다.’”
웃음을 터트렸다.
“음흉한 새끼, 진작에 죽여 놓을 걸 그랬나 보군.”
지금의 검존은 20년 후의 검존이다. 확실히 무언가 달랐다.
그런 검존에게 정화가 말했다.
“천자시여, 진정하소서.”
“……진정?”
“큰 싸움을 앞두고 계시지 않습니까. 신의의 죽음은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건 천자님의 잘못이 아니십니다.”
“…….”
“천마와의 동맹은 일시적인 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을 끝내고 천자께서는 동생의 복수를 하면 됩니다. 천마를 쳐 죽이면 됩니다. 천자께서는 충분히 그러실 힘이 있으십니다.”
검존은 조금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의 혁운영은 죽었다. 그것도 ‘5년 전’에 죽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물며 묵시록이라는 이미 정해져 있는 예언서의 그 끝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게 천외천이다. 세상의 흐름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의 혁운영은 이 시기에도 천마신교와 천외천을 싸움 붙이려고 했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 본질은 그대로라는 증거다.
검존은 전생이나 현생이나 모른다. 신의가 왜 그러했는지.
신의를 죽인 천마의 부교주, 그 천월이라는 새끼도 모를 것이다.
신의는 무엇을 하려고 했던 걸까. 신의는 왜 그렇게 조급해했던 걸까. 왜 그렇게 벽에 막힌 괴물처럼 미쳐 날뛰었던 걸까.
모든 게 수수께끼다.
또한. 검존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등잔 밑이 매우 어둡다는 사실을.
라그나로크는 실존한다. 깨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시체를 신의가 보관해 놓고 있다는 것을 가족이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다.
신의는 입이 무겁다. 철근같이 무겁다. 이쪽 시간대에서 5년 전에 죽은 신의는 그 누구에게도 라그나로크가 빙정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알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필연이다.
모든 것이 오해로 시작된 것처럼 보여도 이건 흐름이다. 이게 인과고 이게 전생에서 벌어진 일이다.
검존이 천이검을 고쳐 쥔다.
그에 맞춰 천외천의 무인들도 무기를 고쳐 쥐었다.
이제 시작이다.
때마침 데스 나이트가 주변에 있던 키메라를 모두 죽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검존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검존의 뒤쪽에 있는 수없이 많은 초월자들과 그 뒤쪽으로 또 다른 숫자의 키메라들까지.
검존은 느꼈다. 저 데스 나이트가 웃었다는 것을.
아이러니한 것은 그다음 벌어졌다.
“[한 번에 오거라.]”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소리였다. 목소리 자체가…… 그냥 소름이 끼쳤다. 데스 나이트가 말한 거다.
그런데 누구에게 하는 걸까.
검존은 느꼈다. 저 괴물은 ‘우리’에게 저 소리를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오지 않겠다? 어쩔 수 없구나.]”
데스 나이트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데스 나이트의 몸이 사라졌다.
0.1초가 지났을까.
콰아아앙-!! 콰앙-!!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연달아 울렸다.
검존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무언가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몸을 옆으로 살짝 틀었다. 그러자 콰아아앙.
땅에 무언가 처박힌다.
남자였다.
외모는 30대 중반. 머리는 짧았다. 굵직하게 생긴 인상의 그는 바닥에 처박힌 채 웃고 있었다.
검존은 그를 안다.
천마 영정.
“하하. 하하하.”
영정은 웃었다. 계속 웃고 있었다.
그를 내려다보던 검존이 퉁명스럽게 툭 던지듯 말했다.
“많이 아파 보이시는군. 그러게 왜 숨어 있었나.”
천마는 답하지 않았다. 웃음이 뚝, 그친다.
천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존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었던 건지 순식간에 이곳 근처로 온 천마신교의 무인들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천외천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하늘을 바라본다.
그곳에 있었다. 데스 나이트.
검은색 안광이 모두의 눈에 각인된다.
그의 손에는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검이 있었다. 길이는 굉장히 길었다. 흡사 장검.
그는 그것을 쥔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400년이다.]”
“…….”
“[이 땅을 그나마 사람 사는 곳처럼 만들고 싶다는 내 스승님의 소망은 400년이나 이어졌다.]”
주변이 침묵에 잠긴다.
데스 나이트는 쇳소리 가득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죽일 놈들만 죽였다. 살려 둘 이들은 살려 주었다. 어린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미래였으니까. 그들이 살아가고 바라볼 미래는 적어도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다.]”
“…….”
“[책임을 모르는 이들, 착취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이들, 희생을 모르는 이들, 그리고 주제도 모르는 이들을 전부 죽였다. 그렇게 나도 죽었다. 쓰레기들이 죽은 세상에서 쓰레기가 살아남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내 죽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죽어야 했으니까.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나 같은 쓰레기는 죽어야 했으니까. 그런 나를 숨어 있던 쓰레기가 되살렸다. 쓰레기가 더 있었다. 다 치우고, 더 치우려 해도 이젠 의미가 없구나.]”
데스 나이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이 더 농밀해졌다.
“[그 키메라들이 죽인 이들은 다 죄가 없는 이들이다. 세상을 살아갈 미래의 씨앗이었다.]”
검존이 물었다.
“당신이 라그나로크요?”
데스 나이트가 피식 웃는다. 그건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냥 어처구니없다는 웃음.
“[그게 뭐 하는 새낀지 나는 모른다. 그 존재를 찾고 싶었다면 조사를 했어야지. 정보를 모았어야지. 대화를 했어야지. 왜 서대륙을 멸망시킨 것이냐. 왜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인 것이냐.]”
짚고 넘어갈 건 넘어가야 한다. 천외천과 천마신교는 이곳 서대륙에 ‘조사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키메라를 먼저 보냈고 본대가 후에 도착했다. 여기서 키메라를 보내고 본대가 도착한 것. 이 과정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의 차이가 있다.
묵시록의 내용처럼 서쪽에서 방문자가 왔어야 하지만 오지 않았다. 않았기에 오도록 만든 거다.
키메라를 먼저 보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게 만든 거다. 키메라를 먼저 보냈는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본대를 이끌고 서대륙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거다. 본대는 ‘오늘’ 도착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괴물을.
검존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데스 나이트가 눈을 크게 뜬다. 참으로 놀랍다는 표정이다.
“[너는 ‘그쪽’이구나.]”
“그쪽?”
“[내가 아주 역겹게 생각하는 부류가 여럿 있다. 버러지라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그런 놈들인데, 너 같은 새끼가 그중 하나다.]”
미간이 구겨진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멸망을 시킨다? 신념에 미친 개버러지 새끼가 주둥이만 살았구나.]”
데스 나이트의 입은 굉장히 과격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무게를 잡은 건지, 그리고 지금까지 얼마나 언어를 순화한 건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신념에 미쳤어도 귀는 먹지 않았을 것으로 안다. 그러니 잘 듣거라.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검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지금부터 너희 모두를 죽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데스 나이트, 잭 발란티에가 눈을 감는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태양이 가려졌고 그의 몸이 어둠으로 완전히 물들었다.
검존은 주먹을 꽉 쥐었다. 검존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모두가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데스 나이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아까보다 더 농밀해졌으니까.
키메라들을 상대할 때 그의 힘은 전력이 아니었던 걸까.
세상에.
이건 좀…… 심한데.
처음에는 동급처럼 느껴졌는데 모르겠다. 이걸 자연경이라고 부를 수 있나? 무언가, 정말 무언가가 다르다. 검존과 천마의 눈에 보인다.
데스 나이트.
눈동자, 심지어 흰자까지 그 모든 게 검게 물든 그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모습이.
“[오늘, 세상은 멸망한다.]”
* * *
기억의 파편을 나는 지켜보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참았다.
더 봐야 했으니까.
생각하는 것은 후에 할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뜻대로 흘러가면 그게 세상인가.
데스 나이트가 된 전생의 ‘잭 발란티에’를 향해 여자가 달려들었다. 그녀는 검존보다 빨랐고 천마보다 빨랐다.
모두가 전투태세를 취할 때 그녀는 준비했던 거다. 기습을.
데스 나이트가 검을 휘두른다.
서걱.
그녀의 목이 하늘로 솟구친다. 그 순간이었다.
모든 게 정지했다.
데스 나이트도, 수천의 키메라들도, 대응하려던 검존 혁진강도, 그리고 처음 보지만 검존과 비슷한 경지의 천마라는 저 남자도.
모두가 정지했다.
끊기듯 조금씩 움직인다. 그러다 다시 멈춘다. 세상이 흔들렸다.
두통이 심해진다. 찌릿찌릿.
그리고 쩌적.
하늘이 갈라진다. 눈앞의 모든 게 갈라진다.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조금씩 움직인다. 그러다 다시 멈춘다.
다시 하늘이 갈라진다. 눈앞의 모든 게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땅은 사라졌고 검존도 사라졌고 천마도 사라졌고 키메라도, 시체도, 모든 게 사라졌다.
동시에.
갈라진 세상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생겨났다.
언제부터일까. 저 두 개의 눈은 언제부터 저곳에 있었을까.
마치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다. 존재하는데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것.
너무나도 압도적인 차이가 있기에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두 개의 눈이 움직인다. 나를 바라본다.
데스 나이트를 바라본 게 아니라 ‘나’를 바라본 거다. 눈이 마주쳤다.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얼마 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모르겠다.
얼마 만이라는 단어는 그냥…… 의미 없는 것 같다.
처음이다.
정말 처음이다.
무언가에 압도된 느낌.
마나를 배우기 전이건 배운 후건, 이런 느낌을 나는 그 누구에게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스승님에게도 받아 본 적이 없다. 대륙 최강의 검사였던 베커만에게도, 황제였던 이스칸다르에게도, 그리고 검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알 것 같다.
이건 그거다.
두려움.
입술이 마르는 느낌이다. 아니 느낌이 아니다. 입술은 말랐다. 그 와중에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혀로 입술을 핥았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한 걸음 내디딘 순간.
붉은 눈이 사라졌다.
다시 세상이 바뀐다.
이번에는 데스 나이트가 된 ‘잭 발란티에’가 고개를 돌린 것 같다. 그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
찌릿, 뇌가 울린다. 두근, 심장이 뛴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새하얀 공간이 있었다.
그 새하얀 공간 속에 문이 있었다.
빠드득, 이가 물린다.
온몸으로 느끼던 그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졌다.
분노라는 감정이 올라온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분명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꺼림칙했다. 잔재가 남아 있는 것 같다. 그게 분노와 섞인다. 형용 못 할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주먹을 쥐었다. 모든 힘을 쥐어짜 냈다.
광존의 목을 땄을 때처럼 모든 힘이 주먹에 몰린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문을 향해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