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09)
제 510화
꽈아아아아아앙-!!
문은 미동도 없었다. 뭘까.
이 문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열 수 있는 걸까.
뒤늦게 이 모든 공간이 흔들린다. 영혼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라고.
이 이상을 보면 심장이 터질 거라고.
두통이 심해진다. 손은 더 떨렸다.
까드득, 한 번 더 이를 악문 그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 거다.
정면에 식탁이 보이고 의자가 보인다. 근처에 있던 론이 보이고 유설하가 보인다. 스승님은 보이지 않았다. 내 뒤쪽에 있나 보다.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왜냐면 곧바로 머리가 핑 돌았으니까.
속이 울렁거린다. 무언가 올라오려는 게 느껴진다. 그냥 삼켰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거린다. 팔을 뻗어 식탁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누군가 나를 부축한다. 론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도련…….”
“쿨럭-!”
결국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몸이 떨려 왔다.
“도련님-!”
론이 외쳤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의자에 다시 앉았다.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그러다 계속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스승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스승님이 묻는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보았느냐?]스승님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 따위 할 시간이 아니다. 뭐가 중요한지 나랑 스승님은 아니까.
그보다 어디까지 보았냐고.
솔직히 말하면, 중간에 끊기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아주 충분했다.
머리가 회전한다. 아마 살면서 이렇게 머리를 돌려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게 비유가 아니라 정말 두뇌가 머릿속에서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되게 어지러웠거든.
여하튼.
깊게 심호흡했다. 스승님이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 주었는데, 수건이 순식간에 무슨 물에 빠진 것처럼 젖는다.
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수준이었다.
[……표정을 보니 많은 것을 본 모양이구나.]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많은 것을 보긴 했다.
수도 없이 말했지만 나는 바보가 아니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들이 퍼즐 조각이라 했을 때, 몇 가지가 부족했다. 연결 고리.
그래, 연결 고리가 부족했다.
그런데 지금 그 연결 고리가 맞춰졌다. 의심스러운 조각이 몇 개 남긴 했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다 제자리를 찾았으니까.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라그나로크가 부활하는지. 라그나로크는 지금 뭐 하는지. 그걸 나는 알아냈다.
[복잡해 보이는데…… 일단 좀 쉬거라.]스승님 말대로.
“정리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승님도 고개를 끄덕인다.
론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멀리서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유설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자, 보자.
생각하면 할수록, 이 라그나로크라는 놈은 참으로 악랄한 새끼인 것 같다.
스승님은 400년을 살았다. 이건 특수한 경우다. 지금 스승님은 수명이 많이 남지 않았다. 엘릭서가 있다 해도 적다. 그리고 이 시간이라는 것에는 라그나로크도 예외는 아닐 거다.
무려 수천 년 전의 존재다. 그 시간대에 놈이 한 행동들을 보면 절대 정상으로 볼 수가 없다. 그냥 딱 꼬라지 보니까 그건 미친 사이코다. 나보다 더한 사이코.
즉, 놈은 지금 처자고 있다.
아마 ‘정신’은 세상을 지켜보고 있겠지.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했다는 뜻이다.
이건 합리적인 추측이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추측이기도 하고.
방금 전에 보았던 전생에서 나는 라그나로크를 보았고 ‘잭 발란티에’를 보았다.
지켜봤다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보았다는 뜻이다.
전생에서의 ‘잭 발란티에’는 ‘라그나로크’와 동일 선상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음.
고개를 돌려 잠시 론을 바라보았다. 스승님도 바라보았다.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일단 접었다.
자연스럽게 손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툭- 툭.
그렇다면, 놈을 어떻게 깨워야 하는가.
전생에서 벌어진 일을 보자.
천외천과 천마신교는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서대륙을 멸망시켰다. 왜 멸망시켰나.
묵시록의 예언을 따른 거다.
서쪽에서 이방인이 오지 않았기에 오도록 만든 거다.
묵시록의 마지막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서쪽에서 방문자가 오면 머지않은 시일 내에 라그나로크가 부활한다.
둘째, 서쪽에서 방문자가 오지 않고 라그나로크가 부활한다.
나는 전에도 말했지만 예언은 믿지 않는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는 예언이 있을 때 그 하늘을 전부 막아 버리면 비는 내리지 않으니까. 즉 예언은 강한 힘을 지닌 존재에게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예언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 예언이 이 동대륙을,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언을 이해해야 라그나로크를 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장단에 잠깐 놀아 준다, 그런 거지.
우선 전생에서 천마신교와 천외천은 서대륙으로 오면서 두 가지 예언 중 하나를 발생시켰다.
‘데스 나이트’가 아니라 지금의 나, ‘잭 밀로스’를 예언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
데스 나이트는 나와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존재다. 전에도 언급했듯 다르게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전생에서 ‘나’는 동대륙으로 가지 않았다. 현생에서 나는 동대륙으로 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 서대륙의 이방인이 동대륙으로 오면 머지않은 시일 내에 라그나로크가 부활한다는 첫 번째 예언이고 두 번째 예언은 전생에서 벌어진 거다.
전생에서의 그 일은 지금 이 시간으로부터 20년 후에 벌어지는 일이다.
20년 동안 이 동대륙에서 놈들은 무엇을 했나.
설마 손잡고 강강 술래하면서 쎄쎄쎄를 하지는 않았을 거다.
현재 천외천과 천마신교의 관계를 보고 20년 후에 두 집단의 관계를 보면 무언가 일이 계속 터지긴 했을 거다. 하지만 딱 하나.
라그나로크가, 부활하지 않았다.
20년이 넘도록 부활하지 않았다는 거다. 즉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거고 그 조건은 하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그냥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전쟁.
내가 라그나로크를 아주 악랄한 새끼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다.
내게 달려들었던 그 여자.
그 여자는 초월자였다. 경지는 이쪽 동대륙 수준으로 따져보면 대충 신화경 정도.
그 정도의 고수가 죽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췄다. 왜 그 순간 두 개의 붉은 눈이 등장했을까. 왜 그게 나를 바라봤을까. 이건 하나밖에 없다. 라그나로크가 깨어났다는 거다. 그 순간이 기점이었다는 거다. 즉. 놈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 전체가 혼돈에 빠져야 한다.
격을 초월한 ‘초월자’들이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그들의 영혼이 세상에 퍼졌을 때.
그 퍼진 양이 일정 한계치를 초과했을 때 놈은 부활한다.
정리하면.
“라그나로크는, 누군가가 부활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상황이 부활시키는 존재입니다.”
[……상황?]뜬금없는 내 말이었지만 충분했다. 이 문장에 모든 게 들어가 있었으니까.
스승님이 생각에 잠긴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럼 지금, 그 ‘엔트로피’는 얼마나 차오른 걸까.
절반? 모르겠다.
전생과는 다르게 현생에서 하프 블러드는 없었다.
또한 20년이라는 세월이 변수다.
골이 파인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을 거다.
그럼 그냥 이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냥 조용히만 있으면 라그나로크는 부활하지 않는 거 아니냐고.
고개를 저었다. 시간의 문제일 뿐 라그나로크는 어떤 식으로든 부활한다.
지금 이 대륙에 있는 초월자들이 영생불멸하는 게 아니잖아.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는 죽을 거고 그렇게 되면 라그나로크는 부활하는 거다.
툭- 툭.
그런데, 내가 말은 안 했는데.
방금 그 기억의 파편에서 꽤 재미있는 걸 보았다.
그 키메라들이 검존의 명령을 따르던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거슬린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상상 이상으로 더럽다.
그러니까. 천마신교랑 천외천.
이 새끼들이 서대륙을 멸망시켰다는 거지?
* * *
천궁에는 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수련실이 존재한다.
밀실이라고 해도 좋고 공동이라고 해도 좋다.
검존은 그곳 정중앙에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명상을 하고 있는 거다.
베커만과의 대화 이후 고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검존 개인에게 있어서는 거의 수일, 어쩌면 수십 일 이상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생각이 변했으니까.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아주 작은 의심. 그게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갔으니까.
대체.
왜 잭 밀로스라는 서쪽의 황제가 라그나로크의 부활과 연관이 있는 거지?
이건 정말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이곳 동대륙이다.
동대륙에서 아수라가 탄생했고 라그나로크가 탄생했다. 두 괴물이 싸웠고 다른 이들은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 중심이 되는 게 당연한 거다.
검존 혁진강은 분명 그리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그런데 하필이면 왜, 저 멀리 있는 서대륙이라는 곳의 황제가 그 중심이 되나.
그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직접 겨뤄 보았기에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닐 거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의 힘은 적어도 검존과 동수였다.
이 동대륙에는 천마도 있다.
잭 밀로스에 버금가는 강자가 이미 두 명이나 있다는 거다.
여기로 봐도 저기로 봐도 동대륙이 세상의 중심이다.
미간이 깊게 파인다.
왜. 왜. 왜.
잭 밀로스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
천마는 잭 밀로스와 무엇이 다른가. 동대륙은 서대륙과 무엇이 다른가.
검존의 눈이 천천히 떠진다.
하나밖에 없다.
역천逆天. 바로 역천자의 존재다.
잭 밀로스는 역천을 했기에 특별하다. 역천을 했기에 묵시록이 두 개로 나눠진 거다.
그렇다면, 그가 역천하기 전의 세상은 어땠을까.
그곳에서 천외천은 무엇을 했고 천마신교는 무엇을 했을까.
혹시.
볼 수 없을까.
검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시간 축이 뒤틀렸다면…… 그 운명의 축이 뒤틀렸다면 분명 흔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확인할 수도 있겠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지치긴 하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그것을 보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것을 알게 되면.
이 가슴속의 혼란은 가라앉을 거고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중심을 잡을 테니까.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다.
천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검존은 천마를 본 적이 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있다. 그는 아주 오만한 남자였다. 오만하면서도 멍청하지 않은 그런 남자.
그는 항상 ‘최선의 결과’를 추구한다. 혹시 천마도 지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게 아닐까.
고개를 저었다. 잡생각은 여기까지다.
검존은 다시 눈을 감았다.
역천의 흔적.
시간선이 뒤틀린 곳, 그 지점을 찾기 위해 심상 속으로 의식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