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1)
제 52화
바스락-!
무언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밟는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소리였다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내 귀에 들린다는 건 절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느낌.
지금뿐만이 아니라 아까부터 너무 익숙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지금 내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불청객이 왔다고.
“공……자님?”
타노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큼지막한 눈동자에 비쳐 있는 내 모습은, 묘하게도 웃고 있었다.
매우 싸늘한.
죽음의 냄새를 맡은 살인자의 웃음.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저기 자고 있는 우리 꼬맹이 데리고 내 옆으로 와.”
타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참.
“보복하러 오라고 하긴 했는데 진짜 올 줄은 몰랐네.”
앞서 말했던 대로 이건 내 감이다.
정확히는 경험으로 다져진 내 직감.
공기가, 그리고 마나가 내게 말해 주고 있었다.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살기를.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오총사는 어디 갔지?
기네스는?
조용히 기운을 퍼트리자, 건물 뒤편에 오총사와 기네스가 몰려 있는 게 느껴진다.
움직임은 없지만 규칙적인 숨.
아무래도 기절했나 보다.
어쩐지.
아까부터 묘하게 이쪽을 지켜보는 시선이, 평소보다 조금 노골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나는 그게 영감님이 다른 놈들을 또 파견시켰나 했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네.
“공자님, 데리고 왔…….”
“보스. 이제 밥 먹으러…….”
내게 다가온 타노스와 잠에서 깬 샬롯이 도중에 말을 멈춘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담장에, 옥상에, 그리고 정문에 암행복을 입고 있는 삼십여 명의 낯선 이들이 보였다. 저마다 어둠과 동화되듯 눈을 빼고는 몸 전체를 검은색으로 물들인 이들.
그리고 정문에 서 있는 네 명의 남자.
일단 한 놈은 누군지 모르겠고, 다른 두 명은 아카데미에서 나한테 쳐 맞고 기절했던 두 놈이다.
가장 중요한 나머지 하나.
디트리히 헤르만.
그 망나니가 살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이 상황이 너무 만족스럽다는 그 속내를 대변한 웃음이 내 뇌리에 각인된다.
나는 슬며시 목을 풀었다.
새끼.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건 기억하지?”
* * *
이번 일로 인한 뒷감당?
디트리히는 생각하지 않았다.
놈이 왜 어센블 공작가의 별장에서 머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관심사가 아니다.
‘내 이름은 디트리히 헤르만, 나는 동부 대영지의 자랑스러운 후작이 될 몸이다.’
어차피 힘이 지배하는 세상.
가문의 힘이 곧 자신의 힘이 될 텐데, 왜 거슬리는 놈을 살려 두어야 하나.
발란티에 후작가? 어센블 공작가?
다 필요 없다.
그중에서 어센블 공작가가 거슬리긴 하지만 어차피 댈 수 있는 핑계는 많다.
먼저 공격한 게 잭 발란티에고, 먼저 죽이려고 살수를 시도했던 게 잭 발란티에라고 주장하면, 심지어 증인마저 존재한다면, 헤르만 후작가와 발란티에 후작가의 2차전으로 양상을 좁힐 수 있다.
디트리히는 불같은 성격에 망나니 기질이 넘쳐흘렀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니었다.
디트리히는 말없이 옆에 있는 복면을 쓴 남자를 바라보았다.
펜타닐 길드의 마스터 벤타몬.
9서클의 강자이기도 한 그의 무력은 굳이 두 번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브리핑했다시피 우리의 목표는 잭 발란티에. 한 명이다. 다른 놈들은 죽이지 말고 오직 그놈만 죽여야 한다. 폰.”
“예. 마스터.”
“현재 목표는?”
1조와 2조로 나누어진 현재 펜타닐 암살단은 말 그대로 최정예들만 모여 있었다.
6서클 아래의 이들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중에는 부단장인 7서클 마나 유저까지 존재했다.
폰이라 불린 이는 바로 펜타닐 길드의 부단장.
그가 대답한다.
“목표물은 어제 아카데미에 특별 입학 처리되었던 샬롯이라는 아이, 그리고 현재 아카데미의 4학년인 타노스라는 학생과 함께 연병장에 있습니다.”
“특이사항은?”
“샬롯이라는 아이가 마나 하트를 만들고 있고, 현재 9시간이 넘도록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걸로 보아, 웬만해서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었다.
아카데미 특별 입학이니 뭐니 해도, 결국 꼬마는 꼬마다.
마나 하트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최소 이틀 이상.
“요리사와 다섯 명의 하인이 있다고 하던데, 그들은?”
“위치 파악 완료됐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곧바로 치우겠습니다.”
여기서 치운다는 말은 죽인다는 말이 아니라 기절시킨다는 말이다.
아무리 테슬란 왕국에 주둔하는 용병단 중 3순위 안으로 들어가는 펜타닐 용병단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테슬란 왕국이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대륙 전체로 시선을 옮기면 15위, 아니 20위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벤타몬은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테슬란 왕국의 실세라 불리는 어센블 가문.
그들과 최대한 마찰을 피해야 한다고.
보통 서클 유저들은 똑똑하다.
9서클 마나 유저인 벤타몬도 생각 외로 똑똑한 남자였다.
생각, 외로.
“공작가의 기사들이 출동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합니다.”
“제로?”
“오기 전 공작가의 지하 감옥에 불이 났습니다. 그 화재를 진압하고 조사하느라 별장에 신경을 쓸 시간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오늘은.”
혹여 공작가의 기사들이 출동한다면 플랜을 변경할 계획까지 세워 두었다.
그런데 지하 감옥에 불이 났다?
운이 연속해서 겹치는 상황이다.
벤타몬은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나, 이 정도면 변수는 모조리 처리됐다고 보면 된다.
“특급 의뢰, 목표는 잭 발란티에. 임무, 시작한다.”
“충!”
그 말을 끝으로 암살자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마나를 끌어 올리며, 있는 듯 없는 듯 움직이는 그들은 은밀 그 자체였다.
밤을 가르는 갈까마귀.
암살단이 움직였다.
목표물, 잭 발란티에를 암살하기 위해.
* * *
디트리히가 팔짱을 끼고는 마치, 승자라도 되는 것처럼 으스대며 말했다.
“네놈은 두 가지 죄를 지었다.”
여기서는 어떤 표정 변화를 보여 주어야 하나.
무시하고 저 불청객들을 일단 하나하나 처리하는 게 나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가장 강해 보이는 남자.
정확히는 디트리히의 옆에 붙어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여유로웠으며 누구보다 강한 기도를 뿜어내고 있었다.
경지는 9서클.
이 중에서 가장 강한 놈.
저놈이 책임자다.
그가 슬며시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마치, 잠깐 이야기 나눌 시간을 주겠다는 그런 모습이다.
잠깐 어울려 줘야 하나.
어울려 주지 뭐.
“두 가지?”
“그래, 두 가지. 우선 첫째. 네놈은 헤르만 가문을 모욕했다.”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헤로인이랑 헤르만 중에 헷갈렸는데 헤르만이 맞았네. 좋은 걸 알았어.”
으득-!
이를 악문 놈이 이내 피식 웃는다.
“그래, 어차피 곧 죽을 놈이니 이 내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마. 네놈이 저지른 죄, 두 번째.”
“말해 봐. 그거 듣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네.”
“……네놈은 귀족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듣고 있었는데, 이것 봐라.
이건 좀 웃긴데?
“모범?”
“귀족은 기득권이자 피라미드 계급상 중간과 가장 위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네놈은 가장 아래에 있는 평민과 어울렸지. 그건 귀족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은 것은 물론 귀족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네놈은 죽어야 한다.”
짝짝짝!
나도 모르게 물개 박수를 치고 말았다.
이거 대단한 놈이었네?
“그냥 몇 대 맞은 게 쪽팔려서 나 죽이려는 거 아니었어?”
“이놈이!! 목숨을 구걸해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냐?!”
“왜? 구걸하면 살려 주게?”
“이…… 익!!”
“거봐, 안 살려 줄 거잖아. 이거 진짜 답도 없는 새끼였네. 남자 새끼가 쳐 맞은 게 분하면 분하다고 말을 하던가. 뭔 웃기지도 않는 핑계를 갖다 대고 있어? X신이야 뭐야.”
검을 쓰는 것이나 마나를 쓰는 것만큼 내 주둥이도 수준급이다.
“빌어먹을 새끼!! 죽여!!”
박수 치던 손을 내리고, 슬며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니, 걸어 나가려 했다.
내 옆에 있던 타노스가 슬쩍 내 앞을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도망치십시오.”
“응?”
“저를 믿어 주신 거,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저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가십시오. 어떻게 해서든 공자님이 도망칠 시간을 벌겠습니다.”
솔직히, 조금 감동했다.
이 자식 이거,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더니 의리도 있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우리 뱀파이어 꼬맹이는 지금 이 순간 마나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나름 자세도 잡았는데, 그냥 귀엽게만 보인다.
아, 이거 참.
기분 좋다.
픽 웃고는 타노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걱정 말고 내 뒤로 와.”
“예?”
“휩쓸리기 싫으면 내 뒤로 와. 샬롯, 너도.”
샬롯은 곧바로 타노스의 팔을 잡고는 내 뒤로 이동했다.
역시 우리 꼬맹이가 말을 잘 들어.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어깨에 앉은 스승님이 내 귀를 잡아당긴다.
뭐야.
설마.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직접 처리하시게요?”
스승님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어깨에서 뛰어내릴 뿐.
디트리히의 말에 자리를 박차려던 몇몇 암살자가 그 자리에서 멈칫한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디트리히의 옆에 있던 9서클 마나 유저도 잠깐 멈칫했다.
복면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분명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움직이는 인형?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움직이는 인형에서, 조금씩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의식하고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실제로 스승님의 몸에는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존재를 억압받고 있던 알 속의 생명체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는 것처럼.
그 빛은 점점 커져만 갔으며 점점 찬란해졌다.
슬쩍 하늘을 바라보자 어느샌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보름달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스승님의 몸에서 나오던 빛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눈이 멀어 버릴 정도의 빛.
이윽고.
파아아앙-!!
주변으로 강한 파공음이 터져 나온다.
* * *
사방에 솟구치는 먼지들로 인해 모두가 눈을 가리던 그때, 마치 거짓말처럼 먼지가 조용히 바닥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
모두가 할 말을 잃는다.
인형이 사람으로 변했다.
이 단순한 문장을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고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압도적인 미美.
여신의 강림이라 부를 정도로 압도적인 외모의 여자.
긴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으며 그 머리를 따라 내려오는 매끈한 라인은 그 자체로 고결해 보였으며, 짙은 속눈썹과 오똑하게 솟은 코.
계란형의 얼굴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맑은 두 눈동자.
모두가 입을 벌리고 그녀를 바라본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알몸의 여인이지만, 음심 같은 것도 동하지 않았을 거다.
신성함 그 자체.
어찌, 경배의 대상을 보고 음심이 동하겠는가.
그 누가 알까.
과거 이 대륙의 정점이었으며, 인류를 피라미드의 최상층으로 끌어올린 희대의 영웅.
누군가에게는 강제로 잊히기를 바랐고, 실제로 잊히기까지 했던 과거의 유물.
발렌타인 밀로스.
그녀가 400년의 공백을 깨고 세상에 등장했다.
그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짜악-!
그녀가 앞에 있던 목표물. 잭 발란티에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