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11)
제 512화
양불휘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뒤통수?”
“천마가 날 죽이라거나 그런 명령을 내리면 그때 달려들 거냐고.”
정확한 문맥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거 같은데 사실 별거 없다. 문맥 그대로니까.
양불휘가 답했다.
“상황 봐서 결정해야겠지. 절대 치지 않겠다고는 말 못해. 하지만.”
“하지만?”
“치게 될 상황이 생긴다면, 그래야 할 상황이 벌어진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이야기하겠네.”
“그래. 그래라.”
그대로 검을 뽑았다. 혈마가 쿨럭 피를 토해 낸다. 나는 조용히 옆으로 이동했다. 당연한 거라서 이야기 안 했는데 아까 잘려 나갔던 발은 재생된 지 오래다.
혈마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기 명치를 몇 번 더듬더니 헛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살려 줄 줄은 몰랐는데.”
“내가 탈모 걸린 애들을 보면 마음이 좀 약해지는 버릇이 있거든.”
“…….”
“그래서, 살려 줬는데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나?”
혈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말?”
“고맙다거나 그런 거.”
양불휘는 말없이 웃었다. 그것도 굉장히 음흉하게.
다시 검을 잡으려는 모양새를 취하자 황급히, 그가 말했다.
“식사라도 하시겠는가?”
“방금 먹었는데?”
“식사를 말인가? 어디서? 설마 저 주막에서? 저긴 빈 곳인데?”
“빈 곳 아니던데, 거기서 부교주라는 애가 갈비탕 해 주더라.”
부교주라는 말이 나오자 혈마의 미간이 구겨진다. 작게 그 새끼는 여전히 도움이 되질 않는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숙소가 필요하지 않으신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다들 나만 보면 재워 주겠다고 말을 하는 걸까.
저쪽에 있는 유설하도 그랬고 지금은 뒤져서 하늘나라로 간 태극검제도 그랬고 지금쯤 배 타고 항해하고 있을 유제하도 그렇고.
내가 잠잘 곳도 없게 생겼나.
물론 거절하지는 않았다.
천마신교.
조금만 더 둘러보고 싶다.
론에게서 스승님을 다시 건네받았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저 둘, 계속 붙어 있더라.
음흉한 시선으로 론을 바라보자 론이 머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냥.”
“…….”
“보기 좋네.”
“…….”
고개를 돌렸다. 혈마는 기대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쳐다만 보고 있냐. 길 터.”
혈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우리는 혈마를 따라 혈마교의 교원으로 향했다.
* * *
론과 유설하는 잭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밀착한 채로 따라붙은 건 아니었다. 조금 거리를 벌렸다. 한 10m 정도.
따라붙은 거리는 멀었지만 론과 유설하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밀착했다는 그 단어가 아주 적절할 정도였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여기가 어딘가. 천마신교다.
유설하는 무림인이다. 그런 유설하의 입장에서 이곳은 굉장히 복잡한 곳이다.
무림인 관점에서는 베일에 싸여 있는 괴물들의 집단, 천하제일인이 웅크리고 있는 성지.
유설하 개인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였던 창존 유운제가 정파의 무인들을 모아 정마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천마에게 죽임을 당했던 그런 곳.
여담인데 창존이 사용하던 창은 정천맹주였던 염존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디에다 숨겨 뒀는지 유설하는 모른다는 거다. 솔직히 가지고 싶었다. 본인이 창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품이었으니까.
그래서 복잡했던 거다. 또한 미약하게나마 두렵기까지 했다.
잭 밀로스는 강하다. 유설하는 확신했다. 여태껏 살면서 보았던 무인들 중에 가장 강하다고.
발렌타인도 강하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 달랐다. 격의 차이가.
그런 잭이 자신을 신경 써 줄까. 오빠인 유제하와는 다르게 유설하는 잭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옆에 있는 이 남자는 묘하게 달랐다.
그냥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항상 무인으로 살았고 힘을 추구했다. 연애를 한 적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길게 연애한 적은 없었다. 인연이 아니라고 느꼈으니까. 안정감도 느끼지 못했고 호승심도 느끼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다.
힐끗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론을 바라보았다. 금발 머리의 이 남자는 그 시선을 눈치채고는 부드럽게 웃는다.
“왜 그렇게 힐끗힐끗 쳐다보십니까. 그냥 실컷 보시지요. 닳는 것도 아닌데.”
“……원래 그래요?”
“뭐가 말입니까?”
“말투요.”
론은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말투? 무슨 말투?
“그, 말투에 배려가 너무 많이 들어 있는 거 같아서요. 저 그렇게 많은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에요.”
유설하는 강자다. 한천빙‘제’.
겉으로 드러난 무림이라는 세상과 그 이면의 천마신교와 천외천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 땅에서도 급이 있다.
유설하는 그 땅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는 무인이다.
론은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래서 싫습니까?”
“……싫은 건 아닌데.”
“그럼 된 거죠.”
“…….”
“제가 햇수로 대충 20년 정도 숙이면서 살았습니다. 배려해 주어야 했고 숨어야 했거든요.”
“아…….”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그런 세월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추억이 가득했죠. 그때 생긴 습관이라 쉽게 버릴 수가 없네요. 고칠까요? 고쳐 달라고 하시면 노력해 볼 수는 있는데.”
유설하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웃고 말았다.
“말을 참 재미있게 하시네요.”
“제가요?”
“네. 그쪽이요.”
말 그대로 론의 말은 꽤 재미있었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생긴 버릇인데 유설하가 고쳐 달라고 하면 노력은 해 보겠다고 한다.
자고로 사람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유설하가 지금 그랬다. 그 사소한 어조와 태도, 무심결에 귀밑으로 손을 올렸다. 원래라면 긴 머리가 흘러 내려왔어야 하는데 진우라는 사이코 새끼한테 잘려 나갔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고개를 돌리자 당연하게도 론은 웃고 있었다. 웃음이 생각보다 더 많은 남자였네.
그런 둘을 한 남자가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바로 혈마였다. 혈마 양불휘.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허 참, 누가 보면 무슨 소풍이라도 온 줄 알…….”
양불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잭이 손으로 어깨를 둘렀으니까.
론과 유설하는 서로에게 집중해 있는 상태라 혈마의 말을 듣지 못했다. 잭은 혈마의 목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혈마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살면서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얼마 없어.”
“…….”
“지금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대. 가능하면 난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연애 코치를 한다거나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어. 잘할 자신도 없고. 그래서 가능하면, 적어도 방해만큼은 안 받게 해 주고 싶거든.”
잭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함부로 입 놀리지 마. 그냥 입 닫고 있어. 땅속에 생으로 매장시켜 버리기 전에.”
“…….”
혈마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이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대충 알 것 같았으니까.
자기 사람을 끔찍하게 여기는, 그런 남자.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듯 혈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잭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걸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발렌타인이 잭의 귓가에 속삭인다.
[이런 게 궁금해지는구나.]“뭐가요?”
[부케를 받을지 아니면 던질지.]결혼 문화다.
결혼식 때 신부가 뒤로 부케를 던진다. 그 부케를 받은 사람이 그다음 번에 결혼한다는 속설인데 만약 6개월 이내에 부케를 받은 사람이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노처녀가 된다고 한다.
그대로 고개를 돌린 잭은 볼 수 있었다. 웃고 있는 발렌타인을.
잭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진다.
“아마 던지실 겁니다. 받는 건 유설하가 될 거고.”
“왜요? 받고 싶으신 겁니까?”
[조금 궁금하긴 하더구나.]뭐가 궁금한 걸까.
[부케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까. 너도 알다시피 나는 친구가 없다. 많은 친구를 사귀진 않았지만 그나마 있는 이들도 다 죽었으니까.]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노처녀가 아닐까. 배부른 생각인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잭이 슬쩍 머리만 옆으로 움직여 발렌타인을 툭 건드렸다.
“원하시면 론이랑 유설하를 먼저 보내고 그 부케를 받게 해 보겠습니다.”
발렌타인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냥 해 본 소리다. 신경 쓰지 말거라.]잭은 발렌타인을 안다. 그냥 해 본 소리일 리가 없다.
그리고 둘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굉장히 평화롭다고.
둘은 생각보다 오래 살았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겪었다.
이런 평화의 끝이 어떤지 둘은 안다. 겪었으니까. 이건 간단한 거다.
폭풍 전의 고요함.
잭은 생각했다. 폭풍이 치기 전까지는 스승님과 함께하고 싶다고.
발렌타인은 생각했다. 폭풍이 치기 전까지는 잭과 함께하고 싶다고.
둘은 웃음을 교환했다.
그들의 옆에 있던 혈마의 표정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양쪽에서 지랄염병을 해 대니 표정이 좋을 수가 없다.
누구는 50년이 넘도록 솔론데.
* * *
혈마가 거주한다던 교원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더 거대한 곳이었다.
정확히는 이 천마신교라는 땅 자체가 거대했다.
정천맹이 있던 그 땅과 태극검제가 있던 종도를 전부 합친 것의 한 10배 정도 된다고 해야 하나.
그 정도의 땅인데도 내부에 뭐가 있는지, 천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 어떤 건축 양식이 유행인지, 이런 사소한 정보도 알려진 게 없었다.
통제를 잘한다는 의민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다.
이 천마신교의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그 무인.
이름이 오판석이었는데, 그 남자는 무림에서 왕이나 존으로 불릴 만한 강자였다. 그런 무인이 경비를 서고 있는데 뚫린다? 말도 안 되지. 천외천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천외천의 존재도 모르는 일반 무인들이 뭘 알겠어.
그렇게 혈마교의 교원이라는 곳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잠깐 돌아다녔다.
몸도 회복시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군것질거리도 얻어먹고.
론과 유설하는 잠시 따로 자리를 비웠다. 론이 마법을 가르쳐 준다나 뭐라나.
그냥 내 곁에 있으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둘이 좋은 시간 보내겠지. 그렇게 지금, 나는 혈마와 천장이 뻥 뚫린 주막 비슷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