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2)
제 53화
* * *
불시의 일격을 얻어맞았기 때문일까.
나는 맥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고개를 들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스승님의 본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 손으로 살짝 붉어진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픕니다. 스승님.”
[기억나느냐.]기억?
[나를 처음 동굴에서 꺼낼 때, 그때 너는 내 의견을 무시했다. 내 말을 무시했고 내 의사를 무시했지.]말없이 스승님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아팠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것 같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구나.
죽기 직전까지도, 나는 스승님을 그리워했다.
보고 싶었고, 보게 되었다.
순간 눈물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때 네가 그러지 않았느냐. 한 대 맞겠다고.]분명 그러긴 했었지.
입가에 쓴웃음을 지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는 조용히 스승님의 몸을 덮어 주었다.
현재 내 키는 170cm.
스승님의 키도 171cm.
스승님에게 입혀 준 코트의 단추를, 천천히 아래에서부터 위로 하나하나 채워 주었다.
“날이 조금 춥습니다.”
스승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스승님을 그곳에서 데리고 나온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지 않는다?]“예. 스승님 의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해도 그게 옳은 일이었으니까요.”
[내가 그곳에서 갇혀 죽는 것을 원했다면?]작게 웃고 말았다.
“원하지 않았다는 걸 저는 압니다.”
[…….]“저는 스승님의 제자니까요.”
결국, 스승님이 고개를 돌린다.
잠깐 병풍이 되었던 암살자들을 둘러보던 스승님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모두가 침묵한다.
스승님의 존재감.
정확히는 스승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
스승님은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 이 주변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인간들만의 세상을 만든 건 적어도 우린 다른 종족과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그 누구도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스승님은 연설을 하는 것도, 맹약을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넋두리처럼 말을 할 뿐.
[잘못된 생각이었어. 굳이 이종족을 분리할 필요가 없었구나.]스승님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를 동굴에서 꺼내 준 것은 내가 자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냐?]“예, 스승님.”
[내게 많은 것을 말해 주지 않은 이유도, 내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기 때문인 것이냐?]이번에는 말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이냐?]스승님은 진지했다.
당연히 나도 진지했다.
“아니요. 스승님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닙니다. 그저 믿어선 안 될 자를 믿었고, 그로 인해 스승님이 만든 결과물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단호한 내 말에 스승님이 천천히 하늘을 바라본다.
밝게 떠 있는 달.
스승님의 지금 모습은 마치, 달의 여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그렇구나. 결국 그 동굴은 내게 도피처였고, 내가 나 스스로를 가두는 나만의 감옥이었던 것이구나.]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암살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어서, 스승님이 매우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내 제자가 신세를 졌더구나.]제자.
나보고 제자……란다.
속으로는 내가 회귀를 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나를 제자로 보기보다는 아이로 바라보시던 스승님이, 나를 제자라고 칭했다.
웃고 말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내 제자를 죽이려 온 것이니, 내 손속이 지나치더라도 원망은 하지 말거라.]그때, 디트리히가 외쳤다.
“뭐 해!! 전부 죽여!!”
이어서 9서클 마나 유저와 모든 마나 유저들이 그 자리를 박찼다.
그들을 바라보던 스승님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대지를 뒤덮고 하늘을 물들일 칠흑이여.]”
주변에 광풍이 휘몰아치며, 모두가 그 자리에서 정지한다.
시공간의 왜곡.
그들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지만 모순되게도 멈춰 있었다.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 자리에서 오직 나와 스승님 말고는 없었다.
“[내 명에 반응하여, 세상에 재림할지어니.]”
스승님의 손이 천천히 허공을 긋는다.
쩌적-!!
모두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 순간.
스승님의 손에 따라 허공이 갈라졌고 그 사이에서 로브를 입은 거대한 해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골의 입이 천천히 벌려지고, 그 너머로 칠흑과도 같은 암흑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칠흑이 터져 나온다.
-!!-!!!-!!!!!-!!!!!!
귀가 멀고, 세상이 찢어지고, 그 괴성에 하늘이 갈라진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괴성은 터져 나왔고, 세상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떨렸으며, 실제로 하늘은 갈라졌다.
어마어마한 기운의 파동.
주변 건물이 흔들리고, 허공의 모든 마나가 가라앉았다.
모두가 경배하고, 모두가 숨을 죽인다.
엉덩이 무거운 흑해의 두 로드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스터들.
그리고 마수의 숲에서 현재 인간 병사들과 격전을 치르고 있을 모든 존재들이 그 자리에서 숨을 죽였을 것이다.
쩌엉-!
거울 깨지는 소리와 함께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허공을 박찼던 9서클 마나 유저.
그의 몸이 천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아오르던 세 명의 암살자도 마찬가지였고, 그 외의 수십 명의 암살자들.
그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뭐…… 뭐야…… 뭐야, 이게!!”
절규를 내뱉는 디트리히의 몸도 마찬가지.
그의 다리가 가루가 되고,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죽…… 죽어……? 내가? 살…… 살려…… 살려 줘…….”
어마어마한 공포.
단순한 죽음의 공포라기보다는 그보다 한 차원 위의 공포인 소멸의 공포.
그렇게, 디트리히의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디트리히라고 추정되던 가루는 순식간에 분해되고, 쪼개지며, 완전히 소멸했다.
이어서 영혼계의 문이 닫힌다.
조용하다.
침묵이 자리한 그곳에서, 내 코트를 입고 있던 스승님이 천천히 몸을 돌린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은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사이로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다른 이도 아닌 나를 바라본다.
스승님의 눈빛을 나는 피하지 않았다.
우리의 눈이 허공에서 얽혀 든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에서의 제자, 그리고 벌어지지 않은 미래에서의 스승.
지금은 새롭게 인연을 맺는 스승과 제자.
희미하게 웃어 보이자, 스승님도 희미하게 웃는다.
그렇게, 이 자리에서 숨을 쉬고 살아 있는 이들은 내 일행 말고는 없었다.
Chapter 3
작고, 협소한 공간에서 한 남자와 한 노인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잔을 쥔 채 마치 정지한 듯 가만히 있는 남자에게 노인이 묻는다.
“베커만 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하인케스 베커만.
현재 인간족 최강의 남자.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정도로 툴칸 제국 역사상 최강의 마나 유저인 그가, 이내 피식 웃는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손에 든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베커만은 생각했다.
‘얼마 전에도 지금처럼 묘한 위화감이 들었던 것 같은데…….’
온 세상에 퍼졌던 거대한 기운.
베커만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혼기를 모르는 자들은 그저 거대한 위화감을 느끼고, 혼기를 아는 자들은 거대한 경계심을 느끼게 된다.
아직, 베커만의 수준은 그저 위화감을 느낄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 * *
푸르게 물든 바다.
지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바다.
그 바다의 곳곳에는 중간중간 소용돌이치는 구간이 있었다.
약 500미터 간격으로 수도 없이 펼쳐져 있는 소용돌이 구간.
묘한 것은 소용돌이치는 구간이 매우 검게 물들어 있었다는 거.
그래서 이 바다를 많은 사람들은 흑해라고 부른다.
그곳 한 중간에 위치한 거대한 섬.
그곳에서 거대한 덩치의 드래곤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의심할 여지가 없군.”
맞은편에 있던 똑같은 드래곤이 말을 받았다.
“전에 느꼈던 혼기의 유동과 이번 혼기의 유동. 이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
두 드래곤의 머릿속에 한 인물의 이름이 동시에 떠오른다.
“발렌타인 밀로스.”
아직도 심장에는 그년이 새긴 혼의 속박이 걸려 있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인간.
의도적으로 잊으려 해도, 이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살아 있었던 것인가.”
이오시프 레 볼리모트.
아돌프 레 바하무트.
두 로드는 전설이 재림했음을 깨닫는다.
바하무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인간 주제에 400년을 살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대체, 대체 언제까지 세상에 군림하려 하는가.”
* * *
샬롯의 떨리는 목소리가 침묵을 깬다.
“최종 보스…… 아니, 발렌타인 님?”
스승님이 고개를 돌렸다.
멍한 표정의 샬롯과,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감히 인식조차 허용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무武의 정점을 본 타노스.
그 둘을 바라보던 스승님의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피어난다.
[고결한 진조의 피를 이은 샬롯 드 로얄.]샬롯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스승님이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타노스를 바라본다.
[증오와 욕망에 지배되지 않고 노력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전사 타노스.]“예…… 예.”
스승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한 손으로는 샬롯의 머리를, 다른 한 손으로는 타노스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한다.
[노력하고, 멈추지 말고, 정진하거라.]두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스승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발렌타인 밀로스. 못난 제자를 둔 과거의 유물이지. 앞으로도 내 제자, 잘 부탁한다.]그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타노스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좌우로 털어 낸다.
그리고 나도 깜짝 놀랄 말을 내뱉었다.
“전부 맞는 말씀이시지만, 하나는 틀리신 것 같습니다.”
[틀리다?]“예.”
[어떤 점이?]“공자님은…… 아니, 잭 님은, 절대 못나신 분이 아닙니다.”
신뢰랑은 조금 거리가 있었다.
개인의 생각이라고 해야 할까.
맞다.
개인의 생각, 타노스는 의리가 아주 넘치는 녀석이었다.
타노스의 말에 스승님은 작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실언을 했구나. 너의 말이 옳다.]이야.
이거 조금 놀랍다.
스승님이 웬일이래.
그런데 사실.
“맞는 말이죠. 사실 제가 못나지는 않잖아요.”
슬쩍 옆으로 끼어든 뒤 실실 웃으며 말하자 스승님이 오른손 검지로 내 이마를 툭 밀어냈다.
여전히 까탈스러우시네.
[내 잘난 제자와 단둘이 이야기해야 할 게 있는데, 자리를 비켜 주지 않겠느냐?]스승님의 말에 샬롯과 타노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는데, 뭔가 아쉽다.
나는 잠시 그 둘에게 다가갔다.
“잠깐만. 일단 샬롯은 배고프면 주방에 내 피 조금 뽑아 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 먹고 자고, 타노스, 너는 저기 뒤뜰 가면 기절해 있는 오총사랑 요리사 있을 거야. 걔들 다 깨우고 배고프면 밥 만들어 달라고 해. 아니면 밤도 늦었으니 일찍 잠이라도 자고.”
“네, 보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와 스승님만 수련장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