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21)
제 522화
서걱-!
조금 늦었는지 볼 쪽에 작은 상흔이 그려진다. 황제는 자신의 얼굴 옆에 뻗어 있는 단검을 보고 있었다.
빠르네.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뒤쪽으로 휘둘렀다.
서걱-!
황제의 볼에 상처를 낸 무인이 그대로 상하가 분리된다. 피가 터져 나오던 그때 파지직-! 열 줄기의 번개가 황제의 몸을 강타했다.
황제의 몸이 앞으로 쏠린다. 발을 뻗어 균형을 맞췄다. 고개를 든 황제의 눈에 보였다. 노랗게 물든 부채가 방금 전처럼 뻗어져 오는 것을.
동귀어진이다. 천월은 모든 것을 끌어 올렸다. 누가 봐도 황제의 위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위기였다. 천월의 부채는 정확하게 황제의 목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황제는 그 상태로 검을 휘둘렀다. 거창한 이름이 붙은 기술은 아니었다. 그냥 휘두른 거다. 그게 공간을 왜곡하고 직선으로 뻗어 있던 검이 거의 곡선처럼 보일 정도로 빨랐을 뿐이다. 황제도 전력이었다. 한 박자 느렸지만 전력으로 상대했다. 천월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직감했으니까.
부채와 천마신검이 공간을 찢는다. 서로에게 닿기 직전 천월은 깨달았다.
‘죽었다.’
황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말하는 거다. 본인의 부채는 더 느렸고 황제의 검은 더 빨랐다.
준비 동작에 차이가 있었는데 어찌 저렇게 검을 빠르게 휘두르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건 주마등이었다.
살아온 세월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굉음이 터졌다.
천월은 눈을 껌뻑였다. 주변에 있던 신교의 무인들도 눈을 껌뻑였다.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으니까.
일단 천월은 살아 있었다.
아까 황제에게 잘려나갔던 팔 하나를 제외하면 멀쩡했다. 하지만 황제는 멀쩡하지 않았다.
천월의 앞에는 팔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천월의 팔이 아니라 황제의 팔이었다. 그리고 거리는 약 40M.
건물 다섯 채 정도가 완전히 박살 난 그곳에 황제는 박혀 있었다.
천월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후 천월을 제외한 모두가 그 자리에서 한 가지 행동을 했다.
무릎을 꿇고, 외친 것이다.
“만세만세萬歲萬歲, 만만세萬萬歲!”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맨발이었고 무복 하의만 입고 있었다.
상의는 벗고 있었으며 몸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그리고 검은색 장포를 마치 망토처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남자는 키가 컸다.
상대적으로 작은 천월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다.
세상 사람들은 저 남자를 이렇게 부른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천마天魔 영정寧靜.
chapter 6
발렌타인은 이미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고개를 돌렸다.
론과 유설하가 보인다. 이들이 지금 있는 곳은 빙궁. 그것도 유설하의 거처다.
세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시작되었다.]무엇이 시작되었다는 걸까.
[운명의 시계추가 움직이는구나.]발렌타인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날이 밝다. 시작은 이미 했다. 그렇다면 언제 끝날까.
오래갈 수도 있고 금방 끝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결과다.
잭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
생각은 많았지만 사실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일단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발렌타인이 물었다.
[우리는 바로 서대륙으로 갈 것이다. 같이 가겠느냐.]그건 유설하에게 한 질문이었다. 론에게는 하지 않았다. 왜냐면 당연히 서대륙으로 갈 거라 생각했으니까.
유설하가 고개를 젓는다.
“전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요. 제 영지민들, 그들을 두고 저 혼자 갈 수가 없네요.”
발렌타인은 납득했다. 그러고는 론을 바라본다.
[준비하거라.]론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는데 발렌타인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유설하에게 질문한 것과는 조금 다른 어조로 물었다.
[왜?]“…….”
[녀석에게 있어서 너 정도의 인물이면 그야말로 약점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셀과 샬롯을 서대륙으로 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이유가 무엇이냐.]론은 입에 자물쇠라도 채운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발렌타인이 재차 묻는다.
[대답하지 않으려는 것이냐?]발렌타인이 잠깐 유설하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론을 바라본다.
[설마 사적인 감정 때문은 아니겠지. 그 정도로 철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다른 사람도 아니고 론이다. 엘리자베스만큼이나 잭에게 중요한 사람. 론은 그 정도의 위치에 있다.
그리고 지금 동대륙에서 잭을 중심으로 한 전쟁이 벌어졌다.
거기에 론이 있게 된다면 그건, 잭에게 있어 재앙이다.
론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사적인 감정 때문은 아닙니다.”
[그래? 그럼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하거라. 그게 아니라면 팔다리를 다 잘라서라도 데려갈 테니.]과격한 말투였지만 이게 발렌타인이다. 또한 발렌타인은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과거 정점에 섰던 그녀다.
단순히 힘만 가지고 있다고 정점이 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정점에 서서 군림하려면 기본적으로 단호해야 한다. 발렌타인은 한다면 하는 여자였다.
론이 말했다.
“묵시록이라는 곳에 등장하는 남자는 한 명이 아닙니다.”
론의 두 눈은 또렷했다.
“분명 묵시록에는 ‘두 명의 이방인’이 등장합니다.”
[그래서?]“그 두 명은 저와 도련님을 말하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라그나로크는 부활할 것이다. 너의 역할은 그저 녀석과 이 동대륙에 같이 오는 것, 그게 전부였을 수도 있다.]“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론은 지금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다.
[확신?]“제 역할이 정말 끝났을 거라고 확신하냐고 여쭌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 확신이다. 1% 내지 2%, 심지어 소수점의 확률이 결과를 바꾸는 게 세상이다. 발렌타인이 확신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1%의 확률.
확신할 수 없는 그 확률 때문이다.
“도련님이 아무리 싸움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라그나로크라는 괴물은 지금의 도련님보다 한 수 위의 괴물입니다. 기록이 증명하니까요.”
[…….]“도련님이나 발렌타인 님은 그런 운명에 간섭이 가능하실 겁니다. 변수가 될 확률을 바꿔 버리는 게 가능하십니다. 하지만 저 같은 ‘일반인’은 그런 게 불가능합니다.”
론은 단호했다. 정말로 단호했다.
“제가 있어야 도련님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요?”
[억측이다.]“쓰여 있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도련님이나 발렌타인 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필연必然이 바로 이런 것 아닙니까?”
발렌타인은 조용히 론을 바라보았다.
론의 각오를 발렌타인은 읽었다.
[만약, 네가 인질로 잡히거나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론은 도관의 전사다. 차기 대전사로 촉망받았던 인재 중의 인재.
흑마법 중에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자살 마법도 존재한다. 론은 웬만한 흑마법은 전부 사용이 가능하다. 인재 중의 인재였으니까.
발렌타인은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조금 복잡했다.
론의 말에도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동대륙의 모든 상황을 지배하는 것은 그 묵시록이다. 그렇다면 그 묵시록의 흐름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쩌면 그게 필요조건일 수도 있다. 이미 쓰인 묵시록의 끝을 보기 위한 조건.
선택의 순간이 온 것 같다. 깊게 생각하던 발렌타인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셋은 헤어졌다.
발렌타인은 서대륙으로.
유설하는 빙궁으로.
그리고 론은, 잭이 있는 곳으로.
* * *
천외천의 무인들이 머무는 천궁은 평소에는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굉장히 조용했다. 정확히는 하루 전부터 조용했다.
천자이자 천외천의 수장인 혁진강이 폐관에 들었으니까.
깨달음을 얻은 걸까.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보통 폐관에 들었던 무인은 한 단계 성장을 하고 나온다.
모두는 기대했다. 안 그래도 현재 적수가 거의 없는 혁진강이다.
천하제일인이 천마라고? 웃기는 소리.
천외천의 무인들에게 있어서 천하제일인은 혁진강이다.
그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 한다. 조용한 게 당연했다.
그곳에 신의가 나타났다.
신의는 아무런 방해 없이 걸음을 옮겼고 도착했다.
수천의 키메라들이 몰려 있는 창고, 그 앞에 있던 신의가 손을 뻗는다.
문고리를 잡는 그 순간.
“뭐 하시는 겁니까?”
익숙한 목소리다. 신의가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벽안단제 정화.
“우리 자주 보는 것 같소이다.”
“……예. 자주 보게 되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최근에 키메라 제작을 의뢰한 적은 없었는데.”
신의는 키메라를 만들 수 있다. 이 문 너머에 있는 수천의 키메라는 신의가 만든 거다.
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무림이라는 곳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들의 시체를 가지고 오거나 그들이 죽기 전에 데리고만 오면 그들로 만들 수 있다.
키메라는 정확히 9484마리다.
최소 초절정에 이르는 무인으로 만든 키메라고 이건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다. 아마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만 단위의 키메라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투가 여전히 딱딱하시구려. 내가 이래 봬도 검존의 동생인데 말이오.”
“……천자 님의 동생이지만 제가 모시는 분은 아니질 않습니까.”
“그건 맞지.”
신의는 큭큭 웃었다.
그런 신의에게 정화가 재차 물었다.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음,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거요?”
“막겠지요.”
“솔직하게 말하면?”
“적어도 한두 번쯤 생각은 하겠지요. 하지만.”
“하지만?”
“결국은 막게 될 겁니다. 그 문은 오직 혁진강 님만이 열 수 있는 문이니까.”
신의가 피식 웃는다.
“융통성이 없으시구만, 이 안에 있는 키메라들은 적어도 내 자식이랑 다르지가 않은데 얼굴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거 아니요?”
“……세 번이나 묻게 하시는군요. 네 번은 없습니다. 왜 그 문을 잡고 계신 겁니까.”
신의는 솔직하게 말했다.
“라그나로크가 내게 말했소. 이 문을 열어 키메라들을 서대륙으로 보내라고.”
신의는 정말로 솔직하게 말한 거지만 그걸 정화가 믿을 리 없다.
“저랑 장난하자는 건가요?”
“허허, 솔직하게 말하라며? 난 솔직하게 말했소. 그러니 거기서 생각 좀 하고 계시오.”
“생각을 하고 있어라?”
“왜냐면 나는 이제 이 문을 열 거니까.”
정화가 말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쿠궁, 그리고 벌컥.
철문이 열렸다.
신의가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정화가 신의의 앞을 가로막는다.
“거참, 고집 세시네.”
“……여기까지입니다. 의궁으로 다시 가시지요. 배웅 정도는 해 드리겠습니다.”
신의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정말로 이 자리를 뜨려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정화는 안심했다.
신의가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뒤를 돌아본다.
“배웅해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소? 옆구리가 좀 시린 데 안 오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