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33)
제 534화
chapter 3
황제가 연회를 지시했다. 축제를 열라고 명령했다. 그걸 들은 이들의 숫자가 수십만이 넘어간다.
실제로 연회가 열렸다. 술과 고기가 풀렸다.
사랑하는 이가 있는 이들은 서로 사랑을 나눴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있었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있었다.
키메라들과의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 장례식도 거행했다. 대규모 장례식이었다.
슬퍼했던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연회가 열리면서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것은 당연했다. 오늘은 밀로스 제국이 승리한 날이다.
비석이 세워질 거고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될 거다.
시체들로 가득했던 로테르담 광장에 수많은 이들이 고기를 뜯고 있었다. 횃불이 밝혀진 그곳은 오전까지만 해도 키메라들과 죽고 죽이는 전쟁을 펼쳤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대체.
“황제가 뭘 했는데.”
“뭘 하긴, 저어기, 동대륙이라는 곳에서 싸웠지 않았나.”
“그걸 우리가 직접 본 게 아니잖아.”
얼굴이 붉었다. 횃불로 붉어진 감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큰 이유는 취해서다.
만취 상태의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싸운 건 우리라고.
“키메라랑 싸우면서 죽은 건 우리라고!”
분탕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황제가 뭘 하다 왔는지 제대로 아는 이들은 거의 없으니까.
심지어 동대륙 마궁에서 지내다 서대륙으로 이주한 유제하의 수하들조차 잭이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천마신교, 그리고 천외천.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잭이 자기 입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했다, 이렇게 떠들어 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는 거다.
이렇게, 잭을 원망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곳 로테르담뿐만이 아니라 연회가 열리는 대륙 곳곳에서.
그리고 이곳.
로테르담에서 키메라와 싸우다 죽은 건 우리라고, 황제가 뭘 했냐고 외치던 남자의 뒤쪽으로 그림자가 진다.
주변이 조용했다.
취기 어린 남자, 제이미가 고개를 돌린다.
딸꾹.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딸꾹, 딸꾹.
잭 밀로스.
황제가 그곳에 있었다.
뒤늦게 모두가 예를 표한다.
황제를 뵙습니다-!
잭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냥 주변을 둘러보더니, 마지막으로 취기 어린 남자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잭은 그렇게 제이미를 스쳐 지나갔다.
굳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로테르담에서 연회를 즐기던 도관의 전사들과 몇몇 이종족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피가 솟구칠 줄 알았는데, 뭐지.
의뭉스러운 눈으로 잭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평소였다면 때려 죽였거나 어떻게든 죽였을 텐데, 왜?
거기까지였다.
잭은 그렇게 사라졌고 잠시 멈췄던 연회는 다시 시작되었다.
* * *
잠시 로테르담에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고향으로 갈 사람들은 다 고향으로 갔다. 걸어서 간 이들도 있고, 마력 기차를 타고 간 이들도 있고 텔레포트로 간 이들도 있다.
스승님과 론, 그리고 우리 누나는 텔레포트로 이동한 쪽이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발란티에 후작가였는데, 나는 잠시 이곳에 남았다.
금방 가겠다고, 저녁 먹기 전에 간다고 그렇게 말해 놓고 로테르담에 남았다.
산 위에서 불타오르는 시체들을 내려다본 게 한 3시간 정도 전이었고 지금은 연회가 열리는 그곳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전쟁이 끝났다고 모두를 속였다. 의도야 어찌 됐건 속인 건 맞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나.
포기? 안 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안다.
천천히 걸었다.
생각이 깊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수 시간 전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라그나로크를 죽일 방법을.
일단 놈과 겨루면서 의문점이 몇 가지 생겼다.
첫째. 놈은 과연 전력이었는가.
처음에는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확신했다. 놈은 처음 나타났던 그 순간부터 이미 전력이었다는 거.
잠을 오래 처자서 몸이 처졌거나 감각을 잃었거나 희미해졌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저 아리송한 헛소리만 했을 뿐.
둘째는 내가 놈에게 닿았다는 그 생각 자체다.
과연 나는 놈에게 닿은 걸까.
방심을 유도했고 몰아붙였고, 전력을 다했다. 정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게 해서 빈틈 정도는 만들었다. 하지만 결정타를 먹이지 못했다. 그건 닿은 게 아니다. 닿은 것처럼 보일 뿐.
놈을 죽이려면 두 가지를 넘어야 한다. 놈에게 일단 닿아야 하고 결정타를 먹여야 한다.
셋째, 대체 놈의 약점은 어디인가.
염존 화천대사를 비롯해 천마와 검존까지.
그들을 죽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들의 힘을 전부 소모시킨 뒤 심장을 터트리는 것, 혹은 그들의 목을 날려 버리는 것.
라그나로크는 앞선 세 놈과 다르다.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도 다르고 모든 게 다르다.
전자는 택할 수 없다.
나보다 월등히 강한데 놈의 힘을 소모시킨다? 말도 안 된다. 한 방을 노려야 한다.
무조건 목을 날려야 한다. 그리고 그 목을 짓밟아야 한다.
머리를 쓸어 올렸다.
어떻게 해야 목을 날릴 수 있을까.
메나마에게 건네준 만년한철 덩어리라면 적어도 검 열 자루 이상은 나올 거다. 깎아 만든 비수도 그 정도 나올 거고 파편을 암기처럼 사용한다면 그 숫자는 더 많아진다.
천마신검이나 천이검처럼 어마어마한 명검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일회용이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고개를 들었다.
“황제가 뭘 했는데-!”
한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키메라랑 싸운 건 우리라고-! 싸우면서 죽은 건 우리라고-!”
울분과 진심, 그리고 슬픔, 그 모든 게 담겨져 있었다. 아마 전쟁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이겠지.
다가가자 그가 딸꾹질을 한다.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이해했으니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한 번 져서 그런가.
처음으로 져서 무언가 내 사고가 변한 걸까. 뭐든지 처음은 어렵다고 한다. 난 패배하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간질거린다. 눈앞의 이 남자를 죽여야겠다, 죽이자, 찢어 죽이자, 그런 정신 나간 욕망은 아니었다.
안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편안했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생했으니까 쉬라고.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쉬라고.
툭툭.
그렇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무너진 건물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연회가 다시 시작되는 소리가 들린다. 신경 쓰지 않았다.
쭉 걸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어느새 숲속에 와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익숙한데…… 잘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눈앞에 보였다. 장미별관.
나는 어느새 발란티에 후작가까지 왔나 보다.
나도 모르게 축지를 사용한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텔레포트를 쓴 걸까.
후자는 아니었다. 전자였다.
내 가슴이 이곳으로 가기를 원했다. 영혼이 반응했고 내 걸음과 공명했다.
땅을 접었고 이동했다. 그뿐이다.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이 ‘마신경’이라는 경지에 익숙해졌구나.
의식과 무의식이 혼용될 정도로, 영혼의 힘이 몸 자체를 덮었구나.
작게 웃었다.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여전했다. 지속적인 관리를 하는 건지 여전히 장미가 피어 있었다. 분수대는 깨끗했고 입구에는 먼지 한 톨 없다. 문을 열었다.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론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언제 오시나 했습니다.”
앞치마를 두른 론이 손에 들린 냄비를 슬쩍 내게 보인다.
“도련님이 좋아하는 스테이크 준비했습니다.”
고개를 돌렸다. 장미별관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바로 스승님. 식탁에 앉아 계신 스승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스승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제야 스승님이 묻는다.
[생각이 많이 복잡해 보이는구나.]“티 많이 납니까?”
[많이 나지. 그래서 답을 찾았느냐?]답하지 않았다.
왜냐면 찾지 못했으니까.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하나 있다. 하지만 그건 도박수에 불과하다. 나는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서대륙의 운명을 도박에 걸 수는 없다.
[묻지 못했는데 이제 물어야겠구나. 라그나로크는 강했느냐.]“예. 장난 아니었습니다.”
론이 스테이크를 접시에 담아 나와 스승님의 앞에 내려놓는다. 그러면서 잠시 우리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갔다. 자리를 피해 준 거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냥 같이 와서 먹지.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두 가지요?”
[하나는 놈과 싸워서 이기는 것. 하지만 확률은 낮지. 얼마로 잡아야 할까. 한 1%?]고개를 저었다. 1%였으면 오히려 두 팔 벌려 환호했을 거다.
[그 이하라는 뜻이구나. 그렇다면 남은 하나의 선택지는 어떨까.]“그게 뭡니까?”
[숙이는 것이다.]“…….”
[그에게 고개를 숙여 구걸하면 된다. 이건 그나마 확률이 높겠지.]피식 웃고 말았다. 우리 스승님이 이렇게 장난을 치실 줄은 나도 몰랐는데.
“제 꼴이 확실히 말이 아니긴 한가 봅니다. 그런 농담도 다 하시고.”
[재미있었느냐?]“예. 조금 재미있었습니다.”
스승님은 말없이 한 점의 고기를 입에 넣었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전 항상 막다른 골목에 서 있었습니다.”
스승님이 수저를 내려놓는다. 진지한 이야기가 오갈 것을 알아채셨기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려는 거다. 상대를 존중하는 스승님 특유의 버릇이다. 난 이래서 스승님이 좋다.
“그 막다른 골목에서 저는 항상 답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도 찾겠다?]“예. 찾을 겁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스승님.”
[말하거라.]잠시 숨을 골랐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질문은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
“제가 스승님과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식을 낳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이름도 지어 놨습니다.”
[이름?]“예. 남자면 다니엘, 여자면 아그네스.”
스승님이 부드럽게 웃는다.
“꽤 오래 생각한 이름이거든요. 그러니 아름답고 좋을 수밖에요.”
우리는 웃음을 교환했다. 그런데.
“만약에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된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스승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본다. 나도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왔다. 양손으로 내 볼을 잡는다. 내 입에 키스했다. 받아들였다. 혀가 얽힌다. 스테이크 맛이 난다.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있었다. 머지않아 스승님이 입을 뗀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느냐.]“……그렇습니까?”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된다 해도 나는 상관없다. 안타깝긴 하겠지. 섭섭하긴 하겠지. 하지만 네가 있고 내가 있다. 그거면 되지 않겠느냐.]물끄러미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황제는 만인의 어버이다. 백성을 자식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웃음이 터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