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35)
제 536화
유설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라그나로크의 말대로 그는 이 빙궁에 있는 사람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등산을 하는 사람이 휴식하듯, 이곳에 와서 먹을 게 있냐고 물었을 뿐이다. 괴물 수십만 마리를 이끌고 올라온 사람이 기껏 하는 소리가 먹을 게 있냐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사람을 먹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요리를 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해 줬다.
궁금했다. 왜 죽이지 않았나. 왜 이곳에 왔나.
굳이 묻지 않았다. 왜냐면 라그나로크가 알아서 설명해 줬으니까.
“정상에 선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시는가?”
“…….”
“모르겠지. 알 턱이 없지. 애들처럼 소꿉장난이나 하는 그대가 알 리 없지.”
유설하는 침묵했다.
“나는 이무기였다네. 땅을 기어 다녔지. 태어날 때부터 느꼈어,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수저를 들어 잘게 썰린 고기를 집어 먹는 라그나로크를, 유설하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무기였다고? 남들과 다르다고?
“왕이 될 존재라고 해야겠지. 태어날 때부터 마나를 느꼈고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영혼의 본질을 이해했고 20세가 되었을 때 이무기라는 종족을 초월했지.”
잔에 술을 따른 뒤 쭉 들이켰다.
“같은 이무기들도 그런 나를 견제하더군.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전부 끌어안았어. 함께 가고자 했지.”
“…….”
“그런데 외면하더군. 나를 버리고 아수라와 손을 잡았더군. 그때 깨달았다네.”
무엇을 깨달은 걸까.
“나는 필연적인 존재라는 것을.”
“…….”
“전쟁의 시대를 겪어 본 적이 있으신가?”
“……아니요.”
기대도 안 했다는 듯 라그나로크는 웃었다.
“탐욕과 전쟁은 절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 항상 그랬어. 지성체는 항상 무언가를 갈구했고 가장 간단한 수단인 전쟁을 택했지.”
땅을 가지기 위해, 돈을 가지기 위해, 그리고 권력을 가지기 위해.
항상 그랬다. 정말 항상 그러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것은 세상의 흐름이었다네. 잠깐 동안 전쟁이 멈췄던 적은 있었지. 하지만 보이지 않았을 뿐 어딘가에서는 항상 전쟁을 했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은 일어난다네. 욕망과 탐욕이 세상을 움직이니까.”
라그나로크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결국 세상은 전쟁의 시대구나. 그건 절대 막을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걸 조절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깨달았다. 필연.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
전쟁은 필연이고 그 세상에서 태어난 스스로는 필연적인 존재였다.
“나를 죽이기 위해 세력을 길러라.”
“…….”
“전쟁을 하고 싶다면 해라. 하면서 강자를 기르고 힘을 길러 나를 죽여라.”
“…….”
“언젠가 부활할 나를 죽이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라.”
라그나로크는 기다렸던 거다. 자기를 죽여 줄 사람을.
그리고 자기를 죽일 사람이라면 자신이 깨달았던 것처럼 스스로가 필연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정도의 자리까지 올라오려면 무조건 전쟁의 시대를 겪어야 하니까.
지성체로서의 본능과 지성체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깨달아야 하니까.
“자네는 전쟁의 시대를 겪지 못했어. 그저 소꿉장난을 했지. 왜 그랬는지 아시는가?”
“……문맥을 들어 보니 대충은 알겠네요.”
라그나로크가 더, 답을 갈구하는 표정으로 유설하를 바라본다.
“……당신이 천마신교를 세웠고 천외천이라는 조직을 세웠군요.”
“제법 눈치도 있군.”
“달마라는 남자가 묵시록을 작성한 것도 당신의 의도였나요?”
의외로 이 부분에서 라그나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랑 관계가 없다네. 달마라는 남자는 스스로가 그렇게 행동했고 스스로가 운명에 끼어든 거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야.”
“…….”
“선후관계가 잘못되었군. 애초부터 천마신교와 천외천의 목적은 ‘언젠가’ 부활하게 될 ‘나’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네. 달마라는 남자는 내가 언제 부활하는지에 대해 묵시록을 작성한 거고. 이해가 가시는가?”
“네. 충분히요.”
라그나로크는 다시 한번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천마신교와 천외천이 음지에서 이 동대륙을 지배했다네. 자연스럽게 두 개의 경계가 생겨났지.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롭게 살아가는 자네 같은 사람이 있는 경계, 그리고 미래를 대비한 채 힘을 기르는 경계.”
술을 한잔 마시며, 라그나로크가 물었다.
“꽤, 행복하지 않으셨는가?”
“…….”
“세상은 주기적으로 물갈이가 되어야 한다네.”
“……전쟁이 필연이라면 그 전쟁을 컨트롤하는 당신이 필연적인 존재다, 그런 건가요?”
“허허, 지금까지 뭘 들었나?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군.”
“……잘 보셨네요.”
라그나로크가 폭소를 터트렸다. 이 상황이 진심으로 재미있나 보다.
“자네가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 경지까지 올라왔겠지. 아니 그런가?”
저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된다. 라그나로크의 기준은 아마 범인이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그런 것일 거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초월한 존재.
이 세상의 진짜 정점이자 절대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존재.
그런 존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어떤 두 개의 단체가 서로 검을 겨누고 싸울 수도 있다.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전부 죽지는 않는다. 그건 과정이다. 스스로의 삶을 쟁취하는 과정.
실제로 동대륙은 굉장히 평화로웠다.
천마신교와 천외천이 암중에서 동대륙을 지배해 왔기에 큰 싸움은 그렇게 많이 벌어지지 않았다. 정말 가끔 벌어졌다.
예를 들면, 정마전쟁.
창존 유운제가 천마신교에 싸움을 걸었던 그때의 사건.
그런 빅 이벤트를 제외하면 생각보다 큰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경계는 철저하게 나눠져 있었다.
큰 전쟁? 벌어졌겠지. 최소 천 년의 세월이다.
그 천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게 이상했을 거다.
하지만 유설하는 모른다. ‘큰 전쟁’이라고 해봤자 끽해야 앞서 말한 정마전쟁이 전부다. 경계가 철저하게 나눠져 있었다는 증거였다.
천외천 내부에서 전쟁이 벌어진 적도 있었고 천마신교는 천마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백마교와 혈마교, 그 외 다른 교들이 전쟁을 일으킨 적도 있다.
유설하는 그저, 나눠진 경계가 너무나도 철저했기에 그런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뿐이다.
분명 유설하는 평화의 시대를 살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의 균형, 세상의 질서.
라그나로크는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지키는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유설하는 질문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당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하겠죠.”
라그나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군.”
“…….”
“사실 내색은 안 했지만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네.”
“무엇이 말인가요?”
“나는 이 동대륙을 중심으로 삼았었거든.”
“……예?”
“서대륙은 솔직히 별 관심이 없었어. 어차피 패배자들이 도망친 땅이었으니까. 거기서 뭘 하든지 난 정말 관심이 없었다네. 난 동대륙만을 신경 썼어. 그런데…… 그런 서대륙에서 그런 남자가 나타날 줄이야.”
“……잭 밀로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라그나로크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듯.
“그 남자 이름이 잭 밀로스였나? 난 또 아수라의 후손이길래 아수라 8세, 9세 이런 이름일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군.”
농담을 하려는 걸까. 아쉽지만 아닌 듯했다. 라그나로크는 꽤 진지해 보였으니까.
이어서 라그나로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시려는 건가요?”
“그렇다네. 10일을 약속했는데 벌서 이틀이 지나지 않았는가. 이제 슬슬 가야지.”
장포 하나를 걸치고 있는 라그나로크가 고개를 돌린다.
“일단 서대륙을 정리하고 이야기할 생각인데 미리 해 두겠네. 자네가 다음 세대를 이끄시게.”
“……네?”
“천마신교나 천외천처럼 강자를 기르라는 말일세.”
“…….”
“앞으로의 역사는 새로 쓰여질 것이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잊으시게. 이곳이 빙궁이라 했나? 이름도 새로 지어 주지. 북해빙궁. 자네가 북해빙궁의 초대 궁주일세. 나를 죽일 전사들을 기르시게. 무인을 기르고 세상의 균형을 맞추라는 말일세.”
“……싫다면요?”
“글쎄. 생각도 안 해 봐서 잘 모르겠군.”
“…….”
“내가 그리 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네.”
라그나로크는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에게, 유설하가 다급하게 물었다.
“만약.”
우뚝, 라그나로크의 몸이 멈춘다.
“……잭 밀로스가, 당신을 죽인다면?”
라그나로크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간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필연적인 존재가 탄생하게 되겠지.”
굉장히 확신에 어린 어조였다. 유설하가 물었다.
“……그 남자가, 당신과 같아질 거라고 정말 확신하시나요?”
그 질문에 라그나로크는 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렸으니까.
그가 걷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유설하는 소름이 돋았다. 왜냐면.
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으니까.
……미친놈.
* * *
서대륙 전체가 왁자지껄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승리를 축하했다.
죽은 이들은 가슴속에 묻었다.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고, 말 그대로 연회였다.
각 지역에 있는 모든 아카데미는 휴강을 했다.
딱 하루만 아카데미 학생들끼리 야자 타임을 하는 등, 저마다 친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날 모두가 고향으로 향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휩쓸리지 않은 아이가 정확히 세 명 있었다.
한 명은 타노스.
고작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더 성숙해져 있었다. 또한 벌써 7서클 마나 유저가 되었다.
그리고 샬롯.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비록 6서클 마나 유저였지만 시간문제였다.
셀은 이미 8서클 마나 유저가 되었다. 마나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셋은, 아카데미 한구석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계속 여기 있어도 되는 거예요?”
샬롯의 질문이었고 대상은 타노스였다.
타노스는 현재 요람을 다스린다. 그런데 굳이 그곳에 가지 않고 이곳 아카데미에 남아 있었다.
“그쪽도 여기랑 비슷하거든.”
“아…… 연회요?”
타노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그게 모든 이유의 끝은 아니었다.
“느낌이 좋지가 않아서.”
진심이었다. 정말로 느낌이 좋지가 않다.
“정말 전쟁이 끝난 걸까.”
“……오빤 아닌 거 같아요?”
“어.”
타노스는 잭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솔직히 말하면 잭뿐만이 아니라 잭의 후세, 잭이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그 자식에게도 충성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맹목적으로 믿었다. 그럴 만도 했다. 답도 없던 인생에 답을 내려 준 인물이니까.
잭이 아니었다면 지금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고 이렇게 이야기도 못했을 거고 가문의 원한도 갚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이번 건 정말 느낌이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셀과 샬롯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