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36)
제 537화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셀이 입을 열었다.
-동대륙의 무인들은, 수준이 꽤 높았어요.
“…….”
-솔직히 말하면 그 전력의 절반 정도가 서대륙으로 왔으면 우린 아마 전멸했을걸요.
타노스는 동대륙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서대륙으로 온 하후돈과 유제하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데려온 무인들도 보았다.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인데, 그 정도라고?
-키메라들도 솔직히 말하면 우리 입장에서야 버거웠던 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그거, 정말 별거 아니었어요. 확실하게 해야 하는 건데, 지금 우리 서대륙의 전력은 동대륙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아요. 절반이 뭐야, 3분의 1도 안 될걸요.
“…….”
-그리고 보스가 어떤 몸으로 로테르담에 떨어졌는지 보셨죠?
보았다. 이 셋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보았다.
잭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솔직히 살아 있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한쪽 눈은 없었고 오른팔도 뜯겨져 있었고 오른쪽 다리도 뜯겨져 있었다.
그건 승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패자의 모습이었다. 다만 잭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심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다.
항상 그런 몸 상태로 싸워 왔고 항상 이겼으니까.
그런 것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네 의견을 들려줘.”
샬롯의 물음에 셀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라그나로크라는 존재가 보스를 이겼고, 보스를 이쪽 서대륙으로 보냈다면.
셀은 슬며시 팔짱을 꼈다.
-머지않아 라그나로크가 이곳으로 올 테고 서대륙은 전멸하겠지. 보스는 그 결과를 아니까, 연회를 연 거고.
나름의 추론이었지만 꽤 신빙성이 있었다.
어찌 보면 이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이 서대륙 전체가 힘을 보태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보스는 아는 거지.
“…….”
-이건 보스의 배려야. 한 번 더 싸우실 생각이고 만약 진다면 서대륙은 멸망할 테니까.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웃고 떠들라고. 소중한 사람이랑 시간을 보내라고.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셋은 그 누구보다 잭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정말로 없었다.
셋의 분위기가 침울해진다.
“……뭐 먹을 거라도, 만들어서 드릴까.”
샬롯의 말에 셀이 피식 웃는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는 셀에게 샬롯이 물었다.
“어디 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셀이 말한다.
-수련하러.
“……수련?”
셀이 물끄러미 샬롯을 바라본다.
-잘 생각해 봐.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
샬롯과 셀은 눈빛을 교환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너랑 나 정도면…… 알지?
나이가 어릴수록 경지는 낮다.
이게 보편적인 상식이다.
잭의 나이가 10대 초반인 이유는 회귀를 했기 때문이다. 그건 논외로 쳐야 한다. 하지만 셀과 샬롯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동 나이대의 아이들보다 월등하다.
사실 월등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가 않다. 비교하는 것조차 우스울 정도로 차이가 심하니까.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난다.
그런 둘이라면, 딱 하나 할 수 있는 게 있다.
라그나로크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시선을 이끌 수 있다는 뜻이다. 1초. 길면 2초.
샬롯이 피안화를 터트리고 셀이 언령 마법을 전부 터트리면 적어도 라그나로크의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왜냐면 어리니까.
어린 나이에 마스터급 이상의 힘을 쓴다면.
암왕 주체가 그러했듯 라그나로크도 잠시 동안은 놀랄 거다. 그건 분명했다. 그렇게 잭에게 기회를 만들어준다면 어떨까.
셀은 그 한순간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잭을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셀은 그렇게 훈련실로 들어갔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래곤들도 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샬롯은 그 자리에서 한숨을 터트렸다.
“오빤 어떻게 할 거예요?”
“찾아봐야지. 폐하한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샬롯은 궁금해졌다. 과연 지금 잭은 뭐 하고 있을까.
* * *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 그 정도 지났나.
바다 위에서 눈을 뜬 나는 그대로 하늘 위로 올라갔다. 몸이 훨씬 더 가볍다. 체득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적응했다고 해야 할까.
마신경.
그 경지에 나는 빠르게 적응했다.
그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밤이었다. 하지만 서대륙은 환했다. 여기저기에 불빛이 있었으니까.
장례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축제를 즐기느라 불 피워 놓고 노는 것일 수도 있다.
귀를 기울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놀고 있는 거라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신의의 머리를 꺼내 들었다.
곧바로 되살렸다.
목만 남은 신의가 천천히 눈을 뜬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상황이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런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오랜만이다.”
신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나 보다. 왜냐면 이런 말을 내뱉었거든.
{……내가, 살아 있는가.}
“그럴 리가.”
{…….}
“목만 남아 있는데 살아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신의가 나를 바라본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 그렇게 바라보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신의가 말을 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내게 신의가 말했다.
{……무거워졌군.}
“살이 찌지는 않았는데.”
내 농담에 신의는 웃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물었을 뿐이다.
{벽을 깼나?}
결국 웃고 말았다. 이게 그렇게 티가 나나.
{전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군. 이건 벽을 깨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야. 허어…… 한데, 그렇게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신의가 잠시 눈을 감는다. 생각을 정리하는 거다.
{검존과 천마는 죽었겠군.}
고개를 끄덕이자, 신의가 재차 묻는다.
{검존의 최후는 어떠했나?}
“그냥 흔한 무인이 죽는 것처럼 죽었지. 아. 그리고, 네가 그때 전해 달라던 말, 그건 전해 줬다.”
{허허…… 그걸?}
신의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다 뚝, 그의 웃음이 그쳤다.
{시체를 되살리는 능력이 있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그래서 나를 왜 살렸나.}
엄밀히 말하면 이건 살린 게 아니다. 하지만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귀찮았으니까.
바로 물었다.
“라그나로크, 부활시키려고 했었지?”
{음…… 그랬지.}
그 말은.
“놈의 몸이 어디에 있었는지 안다는 건데, 어디 있었냐?”
신의는 의외로 순순히 말해 주었다.
{결계였지. 의궁 지하에 두 겹으로 만들어진 다른 공간이 있었다네. 그곳에 라그나로크의 몸이 있더군.}
“몸만?”
{아니. 거대한 빙정에 싸여 있었다네.}
“빙정?”
{보아하니 이쪽이 서대륙인 거 같은데, 내가 이쪽 서대륙을 잘 몰라. 하지만 아마 비슷한 방식의 기술은 있겠지.}
갑자기 뭔 소리인가 싶다.
{냉동 인간, 몸 전체를 얼리면서 신체 기능을 잠시 정지시키는 등의 마취 기술. 그런데 이게 빙정이라는 ‘영약’에 선기가 섞이면 꽤…… 재미있어지지.}
나는 조용히 신의를 바라보았다.
{그 결계 안에서 천 년 이상을 보냈겠지. 아마 정신을 차린 것은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야. 왜냐면 그가 나한테 신호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더군.}
“그래?”
{예를 들면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고, 정신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관조하는…… 처음에는 그런 걸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아마 종을 초월한 괴물들이 죽고 죽으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다음, 곧바로 나왔다.
{오랫동안 잠을 자면서 신체 능력을 보존하고 싶었던 모양이더군. 아마 지금 라그나로크의 신체는 과거의 신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야.}
즉.
“삶의 욕구가, 생각보다 크다?”
신의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거…… 꽤 괜찮군. 관점을 다르게 생각했어. 맞아, 자네 말대로 라그나로크는 삶에 대한 욕구가 생각보다 커. 절대자라서 무결점의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더군. 참…… 아이러니하지?}
확실해졌다. 신의는 내게 굉장히 우호적이라는 거.
그러다 조금 궁금해졌다. 바로 물었다.
“영약의 기운을 추출해서 다른 사람의 수명을 늘려 주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
신의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눈빛이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간단했다.
{자연경에서 그다음 단계로 진입하지 않으셨나?}
“했지.”
{그럼 굳이 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군. 왜냐면 자네 정도면 할 수 있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원리는 안다. 따라 할 수도 있고. 다만.
“주의할 점이라던가 그런 거, 없냐?”
{주의할 점이라…… 다른 사람의 수명을 빼앗아서 주입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딱히 주의할 건 없다네.}
“빼앗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 선천지기라는 게 굉장히 오묘해. 여기서 빼앗는다는 것의 의미는 상대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로 빼앗는다, 이런 뜻인데. 이 말인 즉 빼앗는 대상의 선천지기가 거부 반응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거야. 그의 영혼이 온전히 동의를 한 게 아니니까. 그럴 경우에는 부작용이 생기지.}
“예를 들면?”
{구음절맥. 서로 다른 성격의 선천지기가 충돌하면서 혈맥이 얼어 버리거나 굳어 버리는 병. 쉽게 말하면 그거지. 몸에 맞지 않는 축적된 선천지기가 몸에 들어오면 부작용이 생긴다, 만약 온전히, 몸과 마음을 바쳐 정말 진지하게 이 사람에게 내 선천지기를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무조건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네.}
즉, 내 수명을 스승님에게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난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영약을 쓰는 것이네. 난 미친 짓을 했을지언정 의술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매 순간 진지했으니까.}
어깨를 으쓱했다.
“하후돈의 동생의 혈맥을 막아 놨잖아. 그건 뭔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그 아이의 인생에서는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네.}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야 어찌 됐건 진지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신의가 내게 말했다.
{잠시 주변을 좀 보여 주겠는가.}
신의의 머리를 잡은 뒤, 그대로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이게 서대륙이군. 건축 양식도 다르고 사람도 생각 외로 많고, 음, 저건…… 드래곤인가?}
신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건너편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오고 있었다. 작은 드래곤.
셀이었다.
신의가 웃음을 터트린다.
{하나 묻고 싶은데, 물으면 답해 줄 수 있나?}
“충분히.”
{이 모든 것을, 지킬 수 있겠나?}
물끄러미 신의를 바라보았다.
{살려 달라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이게 무슨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적어도 내가 거짓말은 안 하고 있다는 거 자네는 알지 않나?}
“그러게. 생각해 보니 신기하네. 처음 만났을 때는 면상에 철판 깐 것처럼 구라도 잘 치더니 왜 지금은 사실대로 다 말하냐.”
신의가 웃음을 터트린다.
{난 혼돈을 원했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네. 난 세상이 엉망이 되는 걸 원해. 하지만 자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나.}
“…….”
{내가 거짓말하는 것을 눈치챘으면서도 자네는 약속을 지켰지. 그런 자네를 계속 속인다? 허허, 내가 개새끼이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니야.}
말없이 조용히 있자 신의가 다시 물었다.
{지킬 수 있냐고 물은 것도 사실 큰 의미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라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곧 죽을 시체한테 답도 못 해 주나? 이거 섭섭하구만.}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웃기는 놈이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가오는 셀을 바라보며 답했다.
“지켜야지.”
왜냐면.
“난 황제니까.”
만인의 어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