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41)
제 542화
chapter 5
천천히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신축성 마법이 걸려 있는 검은색 면바지. 그리고 검은색 긴팔 티.
굽 주변이 전부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발목까지 오는 단화.
내 옷차림은 간소했다. 지나치게 간소했다.
고개를 돌렸다.
알몸의 스승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 고혹적이다. 부드럽게 웃었다. 스승님도 웃었다.
스승님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불로 몸을 가린 채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까치발로 내 입에 키스했다.
손으로 스승님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입술을 떼어 낸 스승님이 내게 말했다.
[조심하거라.]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라그나로크와의 싸움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팔 몇 번 날아가고 다리도 날아갈 거다. 최대한 조심할 건데, 확답을 드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약속할 수 있다.
가볍게 스승님을 끌어안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평온한 목소리로 스승님이 말했다.
[다녀오거라. 기다리마.]스승님을 떼어 내고는 방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갔고 밖으로 나왔다. 정문 쪽에 한 남자가 있었다.
론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론이 가볍게 웃는다.
그런데 걱정이 한가득이다. 나름 내색하지 않으려는 거 같은데 티가 너무 난다. 얼마 전까지 내 표정이 저랬나.
론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말했다.
“전에 론이 말했잖아.”
“무엇을요?”
“내가 죽는 순간에 내 곁에 있고 싶다고.”
좀 오래전에 한 말처럼 느껴진다.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 론의 역할은 아직 안 끝났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론을 스쳐 지나가며 천천히 걸었다.
잠깐이었다. 정말 오래 걷지 않았다.
눈을 떴다.
나는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아공간을 열었고 메나마에게서 받은 모든 무구들을 꺼내 들었다. 9개의 무기와 만년한철 부스러기로 만든 수십 개의 암기가 떠오르더니 내 주변을 맴돌았다.
준비는 끝났다.
마신경 중급. 이 경지가 지금의 나로서는 최대다.
9일째, 보름달이 뜬 날이었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았다.
* * *
라그나로크는 눈을 감았다. 세상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느꼈다. 무언가가 엉켜 있음을.
감긴 눈은 여전했다. 그 눈으로 라그나로크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단 엉킨 세상의 흐름을 확인했다. 의념을 집어넣었다. 세상이 밝아진다.
라그나로크는 새하얀 공간에 자리했다.
무의식의 경계.
이어서 세상이 밝아진다.
그것도 잠시였다. 밝아진 세상은 다시 어두워졌으니까.
밤이 되었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가려져 있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몸에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기운이 하늘을 덮은 거다. 그 기류가 남자의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라그나로크는 그 내부를 꿰뚫어 보았다.
일단 남자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지쳤다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팔과 다리, 목, 허벅지, 사타구니 몸의 모든 부분이 꿰매어져 있었다.
마치 만들다 만 봉제 인형 같았다. 사지가 개박살 난 시신의 장례를 치러 줄 때 장의사들은 그 시체를 꿰맨다.
딱 그 꼴이었다.
라그나로크가 고개를 돌린다.
일단 주변에 시체가 가득했다. 터지고, 찢어지고, 목이 잘린 최소 수천의 시체들.
그리고 그 너머로 키메라들도 보인다.
하늘에는 검은 기류를 품은 남자가 있었고 지상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천마 영정. 그리고 검존 혁진강.
그 둘의 모습은 처참했다. 서 있긴 했지만 말 그대로 서 있는 것뿐이었다.
하늘에 있던 남자가 자리에 내려선다.
툭, 가볍게 착지한 뒤 천천히 걸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마와 검존은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고 결국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둘을 내려다보던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은 잭 발란티에다.]그의 몸에서 기류가 옅어진다. 안광을 내뿜던 눈도 가라앉았다.
그건 압도적인 승자의 모습이었다. 이건 기억의 파편이다.
라그나로크는 확신했다. 이게, 전생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스스로를 잭 발란티에라 소개한 남자는 분명, 얼마 전에 보았던 잭 밀로스가 맞다. 성이 다르긴 하지만 상관없다. 개명하는 거야 누구든 하는 일이니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여기서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저 남자의 모습이다.
회한 가득한, 정말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다 본 남자의 모습.
라그나로크가 가장 원하는 모습이다. 저게 절대자다.
그가 말했다.
“아…… 아아…….”
[세상에서 가장 악랄했던 내가 죽음으로써 스승님의 유지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잭 발란티에가 걷는다.
천천히 걸어간 뒤 검존의 옆에 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지금도 모르겠구나. 검존이라 했지.]“쿨럭…… 괴물…… 새끼.”
잭 발란티에가 고개를 젓는다.
[눈에 보이는 외형이 괴물이라고 해서 그의 내부까지 괴물이라 단정 짓는 것은 오만이다. 반대로 말하면 외형이 인간이라고 해서 내부가 무조건 인간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오만이지. 너는 인간의 외형으로 괴물의 마음을 품고 있구나.]검존은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잭 발란티에의 발이 검존의 목을 짓밟았으니까.
[신념에 미친 개버러지 새끼한테 가장 어울리는 최후를 주마.]쿨럭, 쿨럭.
숨이 막히는지 들기도 버거워 보이는 팔로 잭의 다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치우지도 못했고 밀어내지도 못했다.
켁켁.
아무리 지쳤다고 해도 초월자다. 자연경의 끝자락에 있는 검존 혁진강이었기에 보통의 사람보다 오래 버텼다.
사실 신체가 보통 인간의 그것이라 보기 어려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3분이 지났고 5분이 지났다.
검존은 계속 발버둥 쳤다. 입에서 살려 달라고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잭 발란티에의 발은 치워지지 않았으니까. 몸에 감각이 사라진다.
하체의 감각도 사라졌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똥오줌을 지렸다는 것을.
검존은 혀를 깨물고 싶었다. 치욕적이었다. 이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잭 발란티에의 검은 눈과 마주쳤을 때, 검존은 직감했다.
애초에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를 건드렸구나.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흐르고 검존은 죽었다.
똥오줌을 다 싸며, 무인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최후. 그게 검존이라는 이름을 쓰던 천외천의 천자. 그의 최후였다.
그렇게 만든 잭이 짧은 감상을 토해 낸다.
[버러지는 버러지답게 죽어야지.]작게, 참으로 어울리는 최후구나, 그렇게 말한 잭이 몸을 돌린다.
잭의 시선에 비쳐 보였다. 천마가, 덜덜 떨며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항복을 하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자기 목을 자기가 끊으려고 한 거다. 천마의 손이 움직인다.
하지만 우뚝, 멈췄다.
천마의 떨리는 눈이 움직인다. 자기 손이 자기 목에서 약 1cm 떨어진 채 멈춰 있었다. 자의로 한 게 아니다. 그저 허락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잭이 움직인다. 천마를 가볍게 걷어찼다. 쓰러진 천마의 목을 밟았다. 방금 전에 죽은 검존처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였다.
천마는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런 애원이 무색하게도 검존과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홀로 남은 전장에서 잭 발란티에는 웃었다.
폭소를 터트렸다.
어쩌면 그건 광소였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와 같구나, 나와 같은 것을 겪었구나.
지켜보던 라그나로크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거기까지였다.
기억의 파편을 엿보던 라그나로크가 고개를 돌린다. 때마침 잭 발란티에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곳에 있었다.
전생의 라그나로크가.
“듣기 좋은 웃음이구나.”
전생에서 잭 발란티에가 라그나로크와 마주한 순간이다.
현생의 라그나로크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다.
이걸 느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 광경을 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전생에서 마주했구나.
생겨났던 의문이 이제 풀어지려 하고 있었다.
잭 발란티에가 눈매를 찌푸린다.
[넌 뭐냐.]“글쎄. 맞혀 보시겠는가.”
수도 없이 말했지만 현생의 잭 밀로스와 전생의 잭 발란티에는 다르다. 뭐가 다르냐면 말투가.
[보통 지가 누구인지 남한테 물어보는 새끼면 하나밖에 없는데, 치매 걸린 새끼가 길을 잘못 들었나.]“허…… 허허…… 뭐라?”
[귀까지 처먹었나. 뒤지기 싫으면 그냥 꺼져.]전생의 라그나로크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했다.
이런 말을 살면서 그 누구에게 들어 봤겠나. 심지어.
“자네는 내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않는가? 느껴지는 것도 없으신가? 지금의 나는 자네보다 강해.”
잭 발란티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정말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래서?]“……응?”
[네가 나보다 강하든 말든, 그래서 어쩌라고.]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현생의 라그나로크는 분명 그리 생각했다.
힘의 차이를 느꼈으면서도. 이 자신감은 대체 뭐지.
상대가 강하건 말건 그딴 건 관심도 없다는 듯, 어차피 그런 세상을 항상 살아왔다는 듯한 저 태도.
진심으로 놀라웠다. 잊고 있던 게 하나 떠오른다. 투쟁심.
적수가 없었고 싸울 만한 상대가 없었다.
항상 지배자였고 항상 군림했다. 도전했던 자는 아수라 한 명이었고 아수라가 죽은 이후 그 누구도 라그나로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워밍업 수준이 되었던 이들도 없었다. 그 정도의 차이였으니까.
그래서 잊었다. 투쟁이라는 것을, 도전자를 상대한다는 그 감정을, 수천 년 동안 잠을 잤던 이유는 이 기분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라그나로크는 깨달았다.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의 귓가로 잭 발란티에의 목소리가 꽂힌다.
[동대륙에서 온 새끼냐?]“……말투가 적응이 되지는 않지만…… 대답해 주자면 그렇다네. 나는 동대륙에서 왔다네.”
[이 두 새끼랑 관련이 있고?]엄밀히 말하면 관련이 있었다. 천외천과 천마신교를 처음 세운 사람은 라그나로크니까.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잘됐네.]“잘됐다? 무엇이?”
잭 발란티에의 주먹이 쥐어진다.
[뒤질 새끼가 뒤질 자리를 알아서 찾아와 줬는데, 그만큼 잘된 일이 어디 있어.]전생의 라그나로크도 할 말은 있었다.
“그거야 자네가 나를 죽일 경우에…….”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면 잭의 주먹이 면상을 후려쳤으니까.
꽈아아아앙-!!
라그나로크가 멀리 날아간다.
콰앙, 쿵.
먼지로 자욱한 그곳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크흐흐.
잭 발란티에의 몸에서 다시 기류가 피어올랐다.
잭 발란티에가 걷는다.
전생의 라그나로크가 고개를 들었다.
전생의 라그나로크의 눈에 꽂힌다.
검은색 안광, 찬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안광을 한 남자의 눈이.
그는 어느새 라그나로크의 앞에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잭 발란티에도 웃는다.
전생의 라그나로크가 손을 들어 올린다. 중지와 엄지가 맞닿았다. 튕겨지려던 순간 잭 발란티에가 다리를 뻗었다.
콰아아앙-!!
핑거 스냅을 하려던 라그나로크의 손이 튕겨 나간다. 무언가 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무위로 돌린 거다.
잭 발란티에가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라그나로크도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후려친다.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