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42)
제 543화
* * *
라그나로크는 눈을 떴다. 그의 앞에 있었다.
잭 발란티에가 아닌 잭 밀로스가.
그가 눈을 뜬다.
9개의 무기가 그의 주변에 떠올라 있었고 그 뒤로 수백 개가 넘는 암기도 떠올라 있었다.
바다에 앉아 있던 황제의 눈과 라그나로크의 눈이 마주친다.
오늘이 10일째 되는 날이다.
위에 있던 라그나로크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준비는 끝나셨는가.”
황제는 입으로 답하지 않았다.
떠올라 있던 무기 중 가장 거대한 검.
오만이라는 이름의 대검이 라그나로크의 미간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게 대답이었다.
콰아아아앙-!!
* * *
라그나로크가 잭과 조우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혈마와 유설하는 서대륙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요람 왕국의 제1 선착장, 그곳의 땅을 밟자마자 그들의 미간은 구겨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안 구겨지는 게 이상했다.
왜냐면.
지나치게 평화로웠으니까.
마치 여행 온 것처럼 구석에서 몇 개의 낚싯대를 가지고 노는 이들도 있었고 멀리서는 어업선이 수십 척 이상 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잘못 온 줄 알았다.
심지어 연회를 벌인 건지 술 냄새까지 났다. 감각이 보통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은 두 남녀였기에 알아챌 수 있었던 사실이다.
“이게…… 이게 대체?”
혈마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는 이들이 없는 걸까.
왜 전쟁이 끝난 것처럼, 이렇게 태평하게 있는 거지?
처음에 몸 전체를 덮은 당황이라는 감정은 순식간에 분노가 되었다.
발로 땅을 강하게 밟았다.
콰아아아앙-!!
땅이 쩌저적 갈라지며 태평하게 놀던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춘다.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하늘 높이 솟구친 채, 마치 자기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이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당장, 누구든지 내 앞에 와서 설명해라.”
누가 보면 행패처럼 보일 거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행패인가.
지금 라그나로크라는 세상이 탄생한 이래 가장 강하며 가장 포악한 괴물이 이 서대륙으로 오고 있다.
혼자 오는 것도 아니다. 수십만이 넘는 키메라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다.
이대로면 서대륙이 멸망하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그런데 이 꼴은 무엇이란 말인가.
축하하듯 연회를 벌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여행을 하고,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미 죽을 각오로, 이 땅에 목숨을 바칠 각오로 온 혈마와 유설하가 분노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다.
지금은 그나마 신사적으로 나오고 있는 거다.
그때였다.
혈마의 앞에서 빛이 터졌다.
동시에 혈마와 유설하가 눈을 크게 뜬다.
그 빛 속에서 등장한 건 세 명의 꼬마였으니까.
정확히는 한 명의 덩치가 좀 심하게 크긴 했지만 그래도 꼬마인 건 맞았다.
셀과 타노스, 그리고 샬롯.
혈마와 유설하는 셀과 샬롯을 안다.
유설하는 천마신교로 가기까지 저 두 명과 동행했고 혈마는 천마신교에서 저 둘을 보았으니까.
가장 앞에 있던 셀이 물었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이긴 한데, 일단 설명부터 듣고 싶은데.”
-무슨 설명이요?
혈마가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너무 평화롭다.
“왜, 싸울 준비를 하지 않는 거지?”
-…….
“설마 포기했나?”
셀이 고개를 젓는다. 포기? 그럴 리가.
혈마의 질문에 셀은 질문으로 답했다.
-도우러 오신 거죠? 우리 폐하를.
“그래, 도우러 왔다. 조금이라도 그에게 힘이 되어 주려…….”
-그럼 됐어요.
혈마가 눈을 끔뻑인다. 됐다고? 뭐가?
-이게 전부인 거죠?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셀이 손을 펼쳤다.
마나가 주변으로 휘몰아친다.
-[매스 텔레포트].
순식간에 혈마를 비롯한 동대륙의 지원 병력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로테르담.
10일 전에 전쟁이 벌어졌던 그곳이다.
아직 핏자국이 마르지도 않은 그곳에 꽤 많은 이들이 있었다.
오크 로드, 톤 그륜힐.
하피 로드, 레온 빌레아, 엘프 로드 바르바라 귀도, 그 외 도관의 수석 대전사 안토니오 세나, 그 외의 도관의 전사들.
그리고 드래곤 10마리와 정예 드워프, 정예 엘프 부대.
최근 들어 새로운 신궁이라는 별명을 얻은 인간족 최강의 궁사 베네딕트와 가장 최근에 합류했던 수라도제 유제하, 흑마창제 하후돈.
그 외 등등.
그들의 숫자는 거의 5천에 달했다.
최소 9서클을 이룬 이들을 전부 모은 거다. 거기에 최소 마스터급의 전력 약 120명이 추가됐다.
혈마와 유설하가 데리고 온 병력이 그 120명이다.
셀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혈마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황제, 잭 밀로스.
전에도 말했지만 그가 어떤 남자인지 자세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는 안다.
왜 서대륙의 주민들이 연회를 펼치고 자유롭게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은 결국 황제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건 배려였다. 자기 백성을 위한 배려.
또한 자신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절대 지지 않겠다는 자신감.
그런데, 셀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의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럼 황제는 자기가 싸우러 가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건데,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뭔가?”
-우리 폐하가, 티를 좀 많이 내고 다니셨거든요.
사실이었다.
블랙맨은 잭을 만나고 의아했었다.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에.
바르바라 귀도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황제는 관심 없었을 거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이고 있는 상태였을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티를 계속 내고 다녔으니 알 만한 이들은 알 수밖에 없었다.
혈마는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렸다.
예상이 맞았다.
황제는 1%가 부족했다.
그 1%를 채워 주려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이 자리에 무려 5천이나 있었다.
비록 전력은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했다.
혈마와 유설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었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채 다리를 꼬고 있는 한 여인이.
[오랜만이구나.]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에 유설하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깊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건 감사의 인사였다. 반가움의 인사였고.
혈마는 물끄러미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익숙했다. 분명 들어 본 적 있다.
생각했고 떠올렸다.
천마신교에서 보았던 그 ‘인형’의 목소리가 저랬다는 것을.
“……달밤에 황제와 술을 한잔 기울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황제의 어깨에 앉아 있던 인형, 맞소?”
발렌타인이 피식 웃는다.
[여자를 만나고 싶다며 징징대던 너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 속에 맴도는데, 어떻게 여자는 좀 만나 봤느냐.]혈마가 폭소를 터트렸다. 아, 역시 세상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그 만날 시간을 벌고 싶어서 여기 온 거요. 세상이 좀 살 만해져야 여자를 만나든 남자를 만나든 할 거 아니요.”
[여전하구나.]발렌타인이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은 조용했다. 그리고 왜 이 병력이 하필이면 이곳 로테르담으로 모였는가.
간단하다.
발렌타인이 처음 동대륙으로 가기 전에 서대륙에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놓은 적이 있었다.
일종의 신호 탐지기 같은 건데, 흑해의 경계를 기준으로 ‘무언가’가 그 경계를 통과한다면 그 신호가 발렌타인에게 간다.
그중 두 개가 울렸는데 하나는 눈앞에 있는 혈마와 유설하였고 다른 하나가 라그나로크였다.
그들이 오는 방향은 이쪽이다. 그래서 이쪽에 다 모인 거다.
[정비하거라. 모두.]모인 전력은 각자 제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무기를 재정비했다.
이곳을 수성한다. 이곳으로 몰려오는 수십만의 키메라를 막는다.
그게 이들의 역할이다.
잭은 혼자가 아니었다.
* * *
대검 오만은 라그나로크의 미간, 정확히 1cm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있었다.
“이게 대답이다? 경지는 한층 높아진 것 같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할 텐데.”
라그나로크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라그나로크를 상대하는 나도 진심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메나마가 만들어 준 건틀렛, 분노가 내 양손으로 빨려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손에 장착되었고 그 손을 양쪽으로 뻗었다.
장검 패도가 손에 잡힌다. 반대쪽 손을 뻗었다. 다른 장검 왕도가 손에 잡힌다.
왼손에 패도, 오른손에 왕도.
새삼스럽지만 나는 검을 잘 쓴다. 검 하나를 쥐었든 두 개를 쥐었든 결국 검은 검이다.
놈이 손을 들어 올린다. 그대로 오만의 날을 쥐는 그 순간.
나는 자리를 박찼다.
소리는 없었다. 왜냐면 공간을 넘었기에.
순식간에 라그나로크의 뒤쪽으로 넘어간 뒤 패도를 휘둘렀다. 놈이 고개를 뒤로 젖힌다. 왕도를 휘둘렀다. 놈이 팔을 들어 막는다.
콰앙-! 옆으로 몸이 살짝 밀리고 놈의 눈도 살짝 커졌다. 생각보다 더 빠르다는, 그걸 느낀 거겠지.
왕도를 손에서 놓았다. 하늘에 떠 있던 오만이 내 손에 잡힌다. 묵직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후우우웅-!!
라그나로크가 몸을 옆으로 튼다. 바다가 갈라진다. 놈의 중지와 엄지가 맞닿는다. 그 상태로 따악-.
스냅과 동시에 주변의 바다가 하늘로 솟구쳤다.
이 주변을 완전히 덮은 채, 바다 전체가 칼날이 되어 내게 쏘아진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라그나로크가 고개를 갸웃한다. 왜 저러는 거지. 그런 표정이다.
그대로 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무슨 무의식 속으로 진입했다 거나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바다 안으로 들어간 거다.
가속도를 얻으며 더 내려갔다.
심장이 세차게 뛴다.
쿵쿵쿵.
내게 쏘아지는 라그나로크의 공격이 내게 닿기 직전 양손을 꽉, 쥐었다.
쩌어어어엉-!!
내 주변의 모든 바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당연히 내게 쏘아지던 놈의 공격도 얼어붙었다. 놈의 공격이긴 해도 근본적으로 보면 저것도 물이니까.
얼음 너머로 라그나로크의 표정이 보인다. 놈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무시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오직 나만의 대지.]”
보통 물은 땅이라고 치지 않는다. 하지만 얼음이라면 땅으로 치는 이들도 있다. 난 지금 이 얼음을 내 땅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다고.
“[내 땅에는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고 범접하지 못하리.]”
얼어붙은 바다가 일시에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얼음 파편이 흩뿌려진다. 그대로 팔을 휘저었다. 얼음 파편들이 라그나로크에게 뻗어 나간다. 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왜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나 싶었더니 이런 걸 생각했나 보군.”
새끼가. 자기 몸으로 얼음 파편이 날아가는데 여유를 가지고 있네. 그런데 이어지는 행동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놈이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긴다.
콰아아아아앙-!!
놈에게 날아가던 모든 얼음 파편이 그 자리에서 산화되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주변의 모든 얼음이 깨지면서 놈과 나 사이가 열렸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놈의 코앞에 도착했다.
그대로 오만을 휘둘렀다. 놈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손을 내민다. 콰직, 오만이 그대로 잡힌다.
동시에 얼음 파편과 함께 날아가던 모든 무기들에게 의념을 보냈다. 일제히 놈을 공격하라고.
놈에게 쥐어진 오만은 그대로 놓았다.
그 순간 놈이 몸을 튼다. 나도 몸을 틀었다.
날아오던 암기, 나태가 나와 놈을 스쳐 지나간다. 손을 뻗었다. 나태가 방향을 틀며 내 손에 쥐어진다. 그대로 던졌다.
놈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가볍게 피한다. 그 순간 나는 공간을 도약했다.
크게 떠진 놈의 면상이 보인다. 왜냐면 내가 놈의 바로 위쪽으로 이동했으니까.
쥐고 있던 패도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쩌저적, 하늘을 찢고 공간을 찢으며 놈의 미간에 닿기 전, 놈의 몸이 회전한다.
원심력을 담은 놈의 발이 패도를 후려쳤다. 하늘로 솟구친다. 팔이 저릿하다. 이를 악물고 그대로 무릎을 뻗었다.
콰직-!
놈의 복부에 박힌다. 그대로 오른쪽 팔을 접은 채 내려찍었다.
메나마가 만들어 준 건틀렛, 분노에는 만년한철이 가시처럼 박혀 있다. 그 부분을 이용한 거다. 하지만 후웅.
허공을 가른다.
그 자리에 놈은 없었다.
옆구리 쪽이 싸늘하다. 돌아보지도 않았고 막지도 않았다. 그냥 땅을 박차며 몸을 옆으로 날렸다. 이건 경험과 본능이 합쳐진 결과였다.
피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