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47)
제 548화
눈을 떴다.
모든 걸 이해했다.
사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라그나로크는 시간을 돌릴 존재가 아니었거든.
라그나로크는 시간을 돌릴 놈이 아니다. 돌릴 힘은 있겠지만 그럴 놈이 아니다.
잠을 자며 수천 년을 보낸 것만 봐도 간단했다.
그런데 시간이 돌려진 것은 팩트였다.
그럼 누가 돌렸나.
라그나로크가 아니면 과거의 나. 둘 중 하나일 확률이 가장 높았는데 라그나로크가 나가리 되면 당연히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나는 데스 나이트로서의 기억이 없다.
같은 존재이되 다른 존재지만 몇 가지 기억이 공유되고 몇 가지는 공유되지 않았던 그 모든 이유가 지금 다 밝혀졌다.
과거의 내가 의도한 거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스승님을 지킬 수 있게, 내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내가 더 성장할 수 있게 판을 짠 거다.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였더라면 충분히 그랬을 테니까.
공감도 했고 이해도 했다.
다만, 아마 데스 나이트도 이건 예상 못 했을 거다.
하필이면 이 문이 열리면서 서대륙이랑 동대륙을 불문하고 모든 지성체가 나랑 스승님의 관계를 알게 되었잖아.
시간이 돌려진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잖아.
솔직히 조금, 아주 조금 낯간지럽긴 하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눈앞의 저 새끼를 죽이고, 지금도 울고 있을 내 여자를 꽉 안아 주는 거.
고개를 들었다.
“……대단한 남자였군.”
[감상문을 써 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어쩌겠나. 난 진심인 것을.”
내가 봐도 진심처럼 보이긴 했다.
라그나로크가 주변을 둘러본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이미 벌어졌던 일이다…… 그런 이야기군.”
[…….]“이대로 그대와 싸우면 난 죽겠지. 그대는 어찌 생각하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라그나로크에게 나는 깔끔하게 답해 주었다.
[뒤지겠지. 이변 없이.]라그나로크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고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그의 앞에 검은 공간이 열린다. 쩌저적.
그건 아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갑옷 하나가 빠져나오더니 라그나로크의 몸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모습은 굉장히 특이했다. 일단 전부 붉은색이었다.
그 붉은색의 갑주 정중앙에 얼굴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사람 얼굴은 아니었다. 입을 벌리고 있는 검은색의 괴물.
흡사 악마와도 같았다.
상의와 하의가 갖춰지고, 그 안에서 건틀렛 하나도 빠져나온다.
메나마가 내게 만들어 준 분노라는 이름의 건틀렛과 흡사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뭐 하냐?]“뭐 하긴, 자네도 원하지 않는가.”
[무엇을?]내 질문에 라그나로크는 딴소리를 했다.
“설마 내가 도망치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음.
[도망치게?]“아니. 자네가 어떻게 볼지는 몰라도 나는 도망 따윈 치지 않는다네.”
[…….]“죽어도 당당하게 죽을 것이네. 그대의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돌덩이가 그 정도는 되어야 만족스럽지 않겠나?”
흔한 엑스트라가 되기보다 무게감이 있는 엑스트라가 되겠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다시 라그나로크가 손을 뻗었다. 그의 아공간에 헝겊으로 둘둘 말린 무언가가 빨려 나온다.
뭘까.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헝겊이 펼쳐진다. 그곳에는 총 다섯 개의 말린 종이가 있었다.
“흑연초라는 건데, 혹시 들어 보셨나?”
흑연초면 담배를 말하는 걸 거다. 피워 본 적은 없지만 들어 본 적은 있다. 일종의 마약으로 구분되는 담밴데. 보니까 이 라그나로크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나 보다.
그대로 하나를 입에 물더니, 나머지 네 개를 내게 던졌다.
“한 대 피우시게.”
[담배 끊었는데.]흘흘, 웃던 라그나로크가 자기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직.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무슨 기운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검은 연기였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아수라가 이 담배를 내게 처음 권했었어.”
[…….]“처음에는 독을 넣었나 싶었지. 하지만 그냥 폈다네. 독을 넣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남은 네 개의 흑연초 중에 하나를 입에 물고 세 개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을 튕기며 불을 붙였다.
치직.
흑연초를 피운 적은 없지만, 담배를 피워 본 적은 있다.
익숙하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라그나로크가 말을 잇는다.
“자네는 나처럼 되지 않겠지.”
[…….]“이 자리까지 올라온 방향이 달라. 잃는 것은 죽음이요, 얻는 것은 온 세상일지니……? 대단하군.”
[…….]“놀라워. 그 ‘잭 발란티에’라는 존재와 지금의 자네의 힘이 겹쳐지는 것 같은데, 자네 스스로도 느끼고 있나?”
[무엇을?]“지금 그대가 계속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굳이 답하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전생의 데스 나이트였던 잭 발란티에는 시간을 되돌렸다. 그의 존재는 소멸했지만, 그의 생각은 내 영혼에 박혀 있다. 가슴속에 있던 하얀색의 문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는데 라그나로크의 말대로 겹쳐지고 있는 거다.
깨달음과 힘. 그 모든 게 겹쳐지고 있다.
라그나로크는 지금 그걸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거다. 강자로서의 여유라고 보기엔 조금 어렵다. 그냥 싸울 거면 전력으로 확실하게 부딪치자, 그런 거겠지.
“흥미로워. 진심으로 난 자네가 흥미롭네.”
[그래서?]“별 의미는 없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라그나로크가 실실 웃는다.
웃으며 내게 물었다.
“아까 그 수식을 만약 내가 내 심장에 새긴다면 어찌 될까.”
나도 웃고 말았다.
[한번 해 보든지.]그 말에 라그나로크는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린다.
“자네 말대로 난 항상 죽음을 두려워했었네. 아이러니하게 두려워하면서도 죽고 싶었지. 자네랑은 다르기에 아마 나는 자네처럼 되지 못할 것이야.”
그건 분명 사실이다.
개나 소나 나처럼 됐으면 데스 나이트를 만들었을 때 죄다 미쳐 날뛰었겠지. 라그나로크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한동안 그렇게 피우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씨가 좋군.”
툭, 흑연초를 털어 낸 그가 나를 바라본다.
“세상을 지키겠다고 했었지.”
[그랬지.]“그럼 한번 지켜보시게. 이 자리에서 자네가 나를 죽이지 못하면 그 날 세상은 부서질 테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나와 라그나로크는 가는 길이 다르다. 추구하는 게 다르고 원하는 게 다르며 신념과 생각 자체가 다르다.
사실 같은 게 이상하지.
나이 차이가 얼만데.
라그나로크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미소 짓는다.
“이제 시작하지.”
이제 대화는 의미 없었다.
지키려는 자와 부수려는 자의 싸움이다. 이기는 쪽이 모든 것을 갖는다. 손에 들린 흑연초를 소멸시킨 뒤 자리를 박찼다. 라그나로크도 자리를 박찼다.
콰아아아앙-!!
* * *
굉음은 쉴 새 없이 울렸다.
흑해 한가운데에서 잭과 라그나로크가 싸우는 소리는,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양쪽 대륙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가 갈라지고, 바다에서 화산이 터진다.
지각이 바뀌었고 양쪽 대륙이 미친 듯이 떨렸다.
이건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정말로 신들의 싸움이었다.
싸움은 오래 지속되었다. 2시간, 8시간, 12시간. 24시간, 48시간.
양쪽 대륙의 사람들은 기도했다.
선악의 의미와는 조금 달랐다. 그저 응원하고 싶었다. 라그나로크가 만드는 세상보다 잭이 만드는 세상이 더 좋을 것이라고 모두는 생각했으니까.
또한, 시간이라는 것을 되돌릴 정도의 압도적인 힘도 보여 주었다.
죽었던 이들을 살린 게 잭이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럼, 당연히 잭을 응원하고 잭을 바라는 게 맞다.
발렌타인도 그중 하나였다. 무릎을 꿇고 양쪽 손을 맞잡았다.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발렌타인은 그 누구에게 의지해 본 적이 없다.
과거의 발렌타인은 의지를 받는 사람이었지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신이라는 존재는 당연히 믿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저 바랐을 뿐이다.
잭이 돌아오기를.
이기기를.
내 제자가, 내 남자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굉음은 100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이 계속 벌어진다.
그렇게 5일째가 되었을 때 굉음이 멈췄다.
하늘에는 하현달이 떠 있었다.
모두가 하늘을 바라본다.
달빛을 가리며 한 남자가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엉망이었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검게 물들어 있는 두 개의 눈.
그 눈에서는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빛을 머금고 있는 그 눈빛, 보름달이 담겨져 있는 그 신비로운 눈에 모두가 숨을 죽인다.
잭이었다.
잭은 승리했다.
항상 그랬듯 승리했다.
환호성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서대륙의 주민들이었지만 아무도 내뱉지 않았다.
숨소리도 죽였다.
셀도 마찬가지였고 샬롯도 마찬가지였다. 타노스도 마찬가지였고 론도 마찬가지였다. 유설하도 엘리자베스도, 그리고 아베이루도.
마수의 숲에 있는 이종족들의 모든 수장들도, 해럴드 린치와 롤랜드 린치도, 롬멜 총장도.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누구였나. 이 모든 것은 누구를 위해서였나.
그걸 모르는 이들은 이제 없다. 전 대륙에 침묵이 자리한다.
터억.
서대륙의 황제, 잭 밀로스가 땅에 내려섰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쥐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흑발의 여인.
잭의 양손이 그녀의 양손을 감싼다.
부드러웠다. 미소가 그려진다.
[다녀왔습니다. 스승님.]그녀가 눈을 뜬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발렌타인은 울면서 잭을 끌어안았다.
그제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 *
스승님의 눈물이 어깨를 적신다. 스승님은 애처럼 울고 계셨다. 등을 쓸어내렸다.
왜 그렇게 울고 있냐고, 그렇게 물으려다 말았다. 감정이 전해져 왔으니까.
스승님은 지금 굉장히 행복해하고 계셨다.
그거면 된 거잖아.
스승님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거다.
이후 벌어진 일은 자연스러웠다.
우선 스승님의 심장에 새겨져 있는 영혼의 속박을 부쉈다. 인형과 인간, 그 두 사이를 오가는 스승님은 이제 없다.
혼의 균형이 어긋난 불완전한 인간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온 거다.
“아…… 아아…….”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이게 더 듣기 좋았다.
나를 끌어안은 스승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고맙다고, 그 감정도 전해졌다.
나도 안다. 내가 대단하다는 거.
스승님을 인간으로 만들고 나는 괴물이 되었다.
말 자체에 담긴 힘도 달라질 거다.
이렇게.
[스승님.]“…….”
말없이 울고만 계신다. 부드럽게 웃었다.
[큰일 난 것 같습니다]그제야 스승님의 울음이 뚝 그친다. 불안한 어조로 스승님이 물었다.
“……큰일? 몸이 좋지 않은 것이냐. 설마…….”
소멸하냐고, 그렇게 물으려는 게 느껴진다.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오래 살고 싶었습니다.]스승님이 입을 다문다. 진지한 이야기가 오갈 것을 알았기에.
[스승님과 함께 오래 살고 싶었습니다.]“…….”
[스승님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되찾고, 수명을 늘려서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그런데?”
[제가 너무 커 버린 것 같습니다.]“커 버렸다? 무슨 의미인 것이냐.”
간단하다. 문맥 그대로니까.
[저, 천 년을 살 수도 있고 만 년을 살 수도 있습니다.]“…….”
[감각을 차단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느껴집니다. 유설하가 지금 론을 걱정하고 있는 것부터 서대륙 끝자락에 있는 항구에서 어부가 손에 들린 술병을 떨어트리는 것까지. 모든 게 느껴집니다.]“신이, 되었다는 뜻이냐?”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힘을 아무나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지금 저의 경지까지 올라올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 앞으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 신이 된 것 같습니다.]난 너무 커 버렸다. 내가 죽고자 하는 순간이 아니면 죽지 않는다고, 거의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조금 다른 의미로 정말 그렇게 됐다.
나는 천 년을 살고 만 년을 살고 심지어 십만 년을 살 수도 있다. 육체의 한계, 세포의 한계, 종의 한계, 그 한계를 넘어선 한계까지. 난 너무 커 버렸다.
스승님을 잠시 떼어 냈다.
처음부터 했어야 했다. 시간을 끌지 말았어야 했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려면 내 감정부터 확실하게 스승님에게 전했어야 했다. 그게 조금 늦어졌을 뿐이다.
“…….”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을 때까지, 사랑의 끝을 볼 때까지 저와 같이 살아 주시겠습니까.]나름의 프러포즈였다. 함께 살다가, 삶에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사랑하며 살다가 같이 죽자.
나는 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승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너는 시작부터 끝을 이야기하는구나.”
[…….]“우리의 생은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웃고 말았다.
“네가 죽고 싶어 할 때까지, 함께하자꾸나.”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다린 일이었고 오랫동안 바랐던 말이다.
“그리고, 다니엘이라고 이름을 지어야겠더구나.”
살짝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전에 스승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들이면 다니엘, 딸이면 아그네스.
이건 너무 간단했다.
라그나로크와 싸우기 전, 나는 스승님과 관계를 가졌다. 그때 임신한 거다.
남자아이를.
스승님이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쥔다. 내 입에 자기 입술을 맞춘다.
웃으며 받아들였다.
사랑한다고, 미친 듯이 사랑한다고 우리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모든 게 전해졌다.
내 인생에 드디어 휴식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