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5)
제 56화
드래곤이 이제는 애처럼 울음을 터트린다.
사실 애가 맞긴 하다.
태어난 지 10년도 채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애라고 하지 뭐라고 해.
거기다 온몸에는 힘이 없는지 꿈틀꿈틀 떨고 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천천히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니까 뿔도 잘려 나가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 드래곤의 뿔은 별 효능이 없다.
정말 별의별 실험을 다 했구나.
“이름 모를 꼬맹아. 스스로의 의지는 무엇보다 중요해. 마지막으로 물을게. 다른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나는…….
눈물 흘리는 꼬마 드래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한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안 들려. 크게 대답해.”
무미건조한 내 말에, 드래곤의 눈물이 더욱더 진해진다.
그러고는 악에 받친 듯 외쳤다.
-살고 싶어!
슬며시 웃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이 상황은 약간 의도하지 않은 사고랑 비슷했다.
전생의 나는 녀석을 죽였고, 지금의 생에서도 아마 높은 확률로 녀석을 죽였을 거다.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게 아니라, 죽여야 했기에 죽인 거다.
정신이 망가진 채 온전한 생각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인형이 되었던 녀석에게, 안식 말고 더 나은 결과가 남아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녀석은 과거 내 기억 속의 녀석이 아니었다.
그땐 죽여 달라고, 제발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이렇게 살고 싶다고 하잖아.
그럼.
살려 줘야지.
“그래, 살려 줄게. 나랑 가자.”
고개를 돌리자 스승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고개를 돌리시는데, 분명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지금 스승님은 희미하게 웃었다.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네놈들은 누구냐!!”
* * *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불길 속을 헤치며 귓가를 파고든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190cm에 달하는 키에,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이는 몸.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분명 내 옆에 있는 드래곤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 분명하다.
물론 내가 웃은 이유는 고작 이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짧고 단정하게 깎은 머리와, 얼굴에는 흉터조차 없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
하지만 놈의 나이는 30줄을 넘어 40줄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분명 38살쯤 됐을 것이다.
현재 대륙 최강의 검사라 불리는 남자.
하인케스 베커만.
놈이 나와 스승님을 향해 검을 겨눈다.
새끼, 오랜만에 보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놈들은 대체 누구냐.”
슬쩍 고개를 돌리자 꼬마 드래곤이 몸을 덜덜 떨며 베커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스승님은 나를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스승님의 저 시선.
내 느낌이 맞는다면 ‘그냥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라는, 그런 시선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생각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실, 안 그러셔도 이제부터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베커만이 이를 갈며 말했다.
“대답하지 않겠다? 그럼, 대답하게 해 주마.”
쿠웅-!
놈의 몸이 그 자리에서 한 점의 빛이 되어 사라지고.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쥐고 있던 장검에 혼기를 담았다.
콰아아아앙-!!
언제 뽑았는지 모를 놈의 검과, 언제 휘둘렀는지 모를 내 검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기며 맞부딪친다.
이어서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주변에,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밀려난다.
놈과 아주 가까운 거리.
놈의 일그러진 표정과 놈의 힘줄 돋은 팔.
‘이때쯤의 베커만이 이 정도였구나.’
엄밀히 말하면 미래의 베커만보다 약하다.
말 그대로 지금 나는 놈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은 가면 뒤로 보이는 내 표정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웃어? 감히 내 앞에서 웃어?”
아니었나 보다.
“왜? 난 웃으면 안 되냐?”
“이 건방진 놈이……!!”
베커만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붉게 물들고 주변 땅이 터져 나가고, 치솟아 오르던 불길이 사방으로 밀려 나간다.
10서클.
마스터 중 최상급인 적색赤色 마나의 소유자.
현재 대륙에서 인간족 최강이라 불리는 이의 기세다.
아마 이 정도면 발락투스도 이길 수 있을 거다.
그런 놈에 맞서서 나는.
언젠가처럼, 전력으로 혼기를 개방했다.
쿠궁-!
뿜어져 나오던 놈의 기운이 순식간에 밀려난다.
밀려 나갔던 불길은 완전히 사라졌고, 내 심장으로부터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검은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근원조차 불투명한 힘.
베커만은 지금의 내 모습에서 어마어마한 위화감을 느꼈을 거다.
내가 왜 과거에 인간이 아닌 악마라 불렸겠는가.
지금의 이 모습 때문이다.
혼기를 몸 전체에 두른 지금의 내 모습은 마치 칠흑처럼 어두웠다.
“이 기운, 아까 느꼈던 그 위화감…….”
뭐라 씨불이려는 걸 무시하고, 그대로 발을 들어 앞으로 내질렀다.
흠칫한 놈이 재빠르게 검면으로 막는다.
콰앙-!
주르륵-!
놈이 밀려나고.
빠직-!
놈의 검에 금이 갔다.
놈의 미간에도 금이 간다.
무시했다.
이어서 쥐고 있던 검을, 마치 파리채 휘두르듯 가볍게 휘둘렀다.
주변 공기, 마나, 그 모든 게 내 움직임에 동조한다.
기상천외한 일.
그 상황에서 10서클의 베커만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반응했다.
놈이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쥐고는 휘둘러지는 내 공격을 막으려 한다.
그 모습에 슬쩍 실소가 지어질 뻔했다.
베커만은 분명, 지금 내 검을 흘리고는 반격을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다.
검사들만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
쩌어어어엉-!!
내 검을 막은 베커만은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허공에 흩날리는 쇠 파편들.
콰아앙-!!
“주군!!”
구석에 처박힌 베커만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검 손잡이만 남은 놈의 검.
그리고 당황 어린 시선.
놈이, 내게 묻는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새끼.
“알아서 뭐 하게?”
“뭐?”
가면 너머로 실소를 터트리는 내 모습에 베커만은 아까처럼 달려들지 않았다.
경계심.
그의 표정에 드러나 있는 것은 분명 경계심이다.
“예언 하나 할까?”
“……뭐라?”
예언.
음. 분명 내 머릿속에 있는 이 문장은 예언이 맞다.
“순진하고 꿈만 큰 놈이지만, 그놈이 대륙 최강의 검사가 되는 날, 그 자리에서 너는 죽을 거다.”
예언이라는 단어는 적절했다.
하인케스 베커만.
놈은 우리 타노스의 몫이다.
“……너 같은 놈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정체를 밝혀라!”
나는 놈의 말에 화답해 주었다.
놈을 향해 왼손 중지를 추켜올려 준 것.
엿 먹으라는 내 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은 베커만이 옆에 있던 제자, 아니 수하로 추정되는 놈의 검을 빼앗고는.
“놈!”
쿠웅-!
다시 자리를 박찬다.
그 모습을, 나는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그러고는 슬쩍 시선만 돌려 한 팔이 잘려 나가 있는 드래곤을 눈에 담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놈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모든 게 눈에 들어온다.
어깨 근육의 움직임, 놈의 마나의 유동.
놈의 눈동자. 그 안에 담긴 감정.
공격을 시도한 뒤 놈이 취할 반응.
저 검을 휘둘렀을 때 검이 향할 수백, 수천 가지의 검로.
모든 게 읽히고, 모든 걸 읽었다.
후웅-!!
놈의 검이 휘둘러지고, 자연스럽게 내 팔도 휘둘러진다.
서걱-!
절단음과 함께 베커만의 검을 쥐고 있던 오른팔이, 어깻죽지부터 완전히 잘려 나가 하늘로 솟구친다.
언젠가 말한 적이 있었는데, 갈 때 가더라도 선물을 주는 것은 예의 중의 예의.
나는 예의가 아주 바른 사람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베커만.
놈의 멍한 표정.
그리고 놈의 몸에 보이는 무수한 허점들.
“새삼스럽긴 한데,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네.”
전생의 베커만이었다면 이런 허점은 적어도 열 번의 공방 정도는 오간 뒤에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시간대에서는 너무 강하고, 베커만은 지금의 시간대에서는 너무 약하다.
나는 아까처럼 발을 들어 올렸고 그대로 내질렀다.
뻐어억-!
콰아아앙-!!
거의 빛의 속도와 맞먹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 베커만이 그대로 벽에 처박힌다.
그게 끝이었다.
베커만은 아까처럼 돌무더기를 헤치며 걸어 나오지 못했다.
완전히 기절했으니까.
“작은 바람이긴 한데, 제발 조금만 더 성장해 주라.”
베커만이 모시고 있는 놈은 황태자다.
그리고 황태자는 강경파의 수장.
대충 3년에서 4년 정도 후에 모조리 목을 따 버릴 건데, 너무 시시하면 재미가 없잖아.
지금도 이렇게 시시한데.
슬쩍 고개를 돌리자, 멍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베커만이 걸치고 있던 까마귀 망토와 비슷한 망토를 걸치고 있는 남자.
그런데 묘하게 낯이 익다.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이거, 계속 보다 보니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아!
그놈이구나.
“베커만의 제자. 이름이 메렝게스……였나?”
“…….”
맞나 보다.
전생에서 나는 베커만을 죽였다.
그때, 그런 나를 향해 달려들었던 단 한 명의 검사.
일 검에 목을 날려 버려서 기억이 잘 안 났던 모양이다.
“스승과 제자는 한 몸이지. 팔이 잘렸는데 네 팔이 멀쩡하면 안 되겠지?”
슬쩍 손을 들어 올린 뒤,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허공의 마나가 청년의 몸을 속박하고, 내 주먹이 펴지는 그 순간.
퍼걱-!
메렝게스의 한쪽 팔이 완전히 터졌다.
“아…… 아아악!!”
잠시 놈과 돌무더기에 처박힌 베커만을 바라보았다.
그게 끝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 스승님이 말한다.
[텔레포트.]* * *
별장으로 돌아왔다.
[무료해 보이는구나.]가면을 벗으며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내가 대답해 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익숙합니다.”
세계관 최강자.
그 자리는 지독한 고독과 무료함을 동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내게는 그 자리가 익숙하고, 스승님에게도 그 자리가 익숙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런데 너는 이름이 뭐냐?”
-셀…… 셀 바하무트 볼리…….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녀석의 머리를, 나는 툭툭 두드려 주었다.
“일단 뒤에 붙은 이름은 그냥 버리자. 자식 버린 부모 이름을 뭐 하러 따라? 앞으로 네 이름은 셀이다. 셀. 오케이?”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일단 회복부터 해야겠지?
품 안에 있던 상급 포션을 꺼내 들려던 그때, 스승님이 불쑥 손을 내민다.
그 손에 들린 고급진 유리병.
이거, 분명 최상급 포션인데?
그새 아공간을 여셨나 보다.
슬쩍 스승님의 표정을 살피자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작게 웃으며 포션을 받아 들었다.
“조금, 아플 거다.”
일단 녀석의 몸에 박혀 있던 세 개의 쇠막대와 심장 부근을 찌르고 있는 두어 개의 쇠막대를 망설임 없이 뽑아냈다.
-윽…….
그러고는 최상급 포션을 녀석의 몸에 그대로 뿌려 주었다.
조금 모자랄 것 같아 상급 포션도 그대로 뿌려 줬다.
느리긴 하지만 뚫려 있던 상처들은 조금씩 재생이 되고 있었다.
딱 하나 빼고.
“잘려 나간 팔은 바로 재생이 힘들 거 같네. 일단 푹 자고 일어나면 기력 정도는 회복되어 있을 테니까. 팔은 그때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내 말에 안심했기 때문일까.
녀석이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떨군다.
집중해서 살펴보니 잠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몇 초 사이에 잠이 드냐.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