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58)
제 559화
나는 안다.
그녀는 항상 빛났다.
그리고 그 빛 너머에, 너무나도 큰 어둠이 잠들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
‘로드님.’
머리에 나선형의 긴 뿔을 하고 있는 그녀는 매일매일 수련을 했다.
내가 부를 때마다 그녀는 수련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느냐.’
그 말투는, 마치 어머니의 말투와도 같았다.
흡사했지만 나는 안다.
저건 어머니의 말투를 닮고자 한 그녀의 노력이라는 것을.
내가 아는 셀 밀로스는, 아니, 드래곤 로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힘들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물으면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끊어내지 못하는 고리를 계속 잡고 있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느니라.’
나는 다시 말했다.
‘그 고리를 강제로 끊어낸다면 그건 잡고 있을 때보다 더 힘든 일이 아니겠습니까?’
드래곤 로드는 답했다.
‘그래도 끊어내야 한다.’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끊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욕심이 세상을 어떻게 어지럽히는지 나는 안다. 직접 겪어 봤고 두 눈으로 보아 왔다. 간혹 그 욕심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때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였다.’
‘저희 아버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후회 안 하시겠습니까?’
그녀도 진지하게 답했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하지 않고 싶다.’
진심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녀와 나는 여러 번 만났다.
항상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드래곤 로드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해 왔었기에 앞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녀가 물었다.
‘배우고 싶은 게 있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안다. 맞느냐.’
‘예.’
그녀가 더 자세하게 물었다.
‘언령을 배우고 싶었다고 했었지.’
‘예.’
‘아직도 그 마음, 여전한 것이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예. 여전합니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할 만한 일을 찾았다는 듯.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았다는 듯한, 그런 미소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럼 오늘부터 나를 스승님이라 부르거라.’
밝게 웃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밝게 웃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예, 스승님.’
내가 8살 때의 일이었다.
* * *
천천히 눈을 떴다.
이곳은 정우영 순찰사가 안내해 준 허름한 숙소였다.
가장 먼저 천장이 보인다. 보자마자 웃고 말았다.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너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 전환점은 예상했던 순간에 올 때도 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올 수도 있다고.
언제 오건 너의 직감대로 행동하라고.
그 전환점이 온다면 절대로 놓치지 말고 그것을 기회로 삼으라고.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가르쳤다.
책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약속에 대한 중요성은 더더욱 강조했다.
더 나아가, 사람과의 인연도 강조했다.
그 인연에 있는 은恩과 원怨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거기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그 행동 양식을 정하라는 말을 남겼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많이 달랐다.
‘살면서 마음에 드는 여인이 생길 것이다. 그 여인의 나이가 어리건 많건 상관하지 않는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그저, 이다음이 중요했다.
‘후회하지 말거라.’
후회.
아버님과 어머님은 항상 강조하셨다.
‘너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이면 된다. 그녀라면 우리는 절대로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여러 가지 문답을 주고받았으며 여러 가지를 배웠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 왔다.
부담이 될 정도라는 생각이 들 만큼 큰 사랑이었다.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것을 보답하기 전에, 먼저 찾았을 뿐이다.
맞다.
그저 찾았을 뿐이다.
내 삶을 전부 바치고 싶을 정도의 여인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 책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버지에게 배웠다.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배웠다.
싫다는 뜻은 아니었다.
책임이라는 것이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정도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이곳은 동대륙이다.
아무리 밀로스 제국의 감찰관이어도 활동하는 지역이 동대륙이니 동대륙의 복장 양식을 입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사 두었던 검은색 장포를 걸치고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온전한 동대륙의 복장은 아니다. 서대륙의 복장과 혼합했다고 해야 할까.
마법으로 가볍게 몸을 씻은 뒤, 머리를 뒤로 묶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었다.
콰지직.
허공이 찢어지며 그곳으로 내 손이 쭉 들어갔다.
잠시 손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손에 걸리는 것 하나를 그대로 끄집어냈다.
그것은 안경이었다.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건너편에서, 정우영 순찰사가 밝게 웃는다.
“굉장하군요.”
“무엇이 말입니까?”
“사람의 인상이 그렇게 순식간에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보입니까? 지금 제 모습이?”
“지적이고, 날카로워 보입니다. 감찰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배워 보고 싶군요. 눈에 쓰고 있는 그것은 서대륙에서 시력이 안 좋은 이들을 위해 ‘폐하’께서 친히 만들었다는 안경, 맞습니까?”
“맞습니다.”
정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가시죠. 안내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감찰관이다.
감찰관은 감찰을 해야 한다.
나는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감찰을 하러 가는 것이다.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천하성, 사천 지역 정왕부에는 여러 개의 무림세가가 있다.
그들 중 순찰사 정우영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취월루로 모여들었다.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총 여섯 명.
하지만 나름 이름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 주변이 조금 시끄러웠다.
“대협,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협이라 불린 남자는 사천의 광원세가의 가주인 광소왕이었다. 마와 결탁에 아녀자들을 범하고 다니던 색마 여러 명을 때려잡은 그는 사천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이다.
각진 얼굴의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영광은 무슨, 그리고 나는 대협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무인일 뿐이오. 그러니 과한 예의는 삼가 주셨으면 하오.”
말투부터 근본이 넘치는 그의 옆에는, 굉장히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사천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월녀문의 문주였다. 별호는 월녀검越女劍.
이름은 정설란.
그녀의 위명은 대협이라 불린 광소왕과는 사뭇 달랐다.
정파 쪽에도 속해 있지 않고 사파 쪽에도 속해 있지 않은 그녀는 철저한 중립을 표방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취월루 내부로 입장했고 그 안에서 볼 수 있었다.
총 네 명의 남자였다.
사천표국의 국주, 진주언가의 가주, 모산파의 문주, 그리고.
천하성 감찰청장 레이먼드 베크.
재미있는 건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바로 베크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착석했다.
이들은 가벼운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고 천하성 내부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때였다.
닫혀 있던 미닫이문이 열린다.
안경을 쓴, 메론의 모습에 모두가 잠시 흠칫했다.
예상했던 것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그건 잠시였다.
신임 감찰관이다. 처음에는 다 의욕이 넘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기 마련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메론이 말했다.
“반갑습니다. 천하성 감찰청에 새로 부임한 메론입니다.”
그 인사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메론은 그 자리에 녹아들었다.
“대협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신가?”
“예. 광원세가라는 거대한 단체를 이끌면서도 단신으로 색마들을 척결하고 다니셨잖습니까. 존경받아 마땅하고 모두가 본받을 업적이 확실합니다. 대협 덕분에 사천에서 색마들이 활개 치지 못하고 다니는 것일 테니, 대협의 존재는 사천에서 큰 무게를 지니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광원세가의 가주인 광소왕은 기분이 좋아졌다.
메론이라는 남자, 충분히 괜찮은 남자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메론은 이어서 월녀문의 궁주인 정설란에게 말을 걸었다.
“월녀문, 그 단체의 위명은 아카데미에서도 유명합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명문정파인 아미파의 전신을 잇는 가문이라고도 배우는데, 맞습니까?”
정파에 속한 이들에게 있어서 아미파는, 범접 불가능한 단체다.
오직 여성으로만 이루어졌던 아미파였고, 아미파는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천하제일인을 여러 번 배출하기도 했다.
천하성이 아무리 커도 그 내부에 속한 사천이다.
심지어 그 사천을 다섯 개로 쪼갰다.
정왕부와 비슷한 네 개의 지역이 더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정왕부에서도 월녀문은 크게 봐야 두 번째 내지 세 번째 수준의 가문일 뿐이다. 그런 가문을 전설의 아미파와 견준다?
그건 그것 자체로 영광이다.
정설란은 기분이 좋았다.
“어머, 우리 신임 감찰관님께서는 어찌 이렇게 하시는 말씀도 멋있으신지.”
그 말 한마디로 메론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술을 한잔 따라 주기까지 했으니 이건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네 개의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두 사람만이 메론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감찰청장 베크와 순찰사 정우영이 그 둘이었다.
베크는 생각했다.
‘저놈 저거, 처세술이 제법이군.’
정우영은 조금 달랐다.
‘이거 잘만 하면 복잡한 일 없이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어.’
감찰관이라는 자리가 가진 위치는 매우 특수하다.
앞서 가볍게 언급했듯 감찰관은 독립된 기관이다.
독립된 수사 기관으로서 혼자서 수사할 수도, 혼자서 형을 집행할 수도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다고 봐도 좋았다.
적어도 이곳 동대륙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게 맞다.
뒤에 밀로스 제국이 있으니까.
베크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청에서 묻지 못했던 건데, 천하성에 온 소감이 어떠신가?”
메론이 빙긋 웃었다.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이토록 훌륭하신 분들도 많고 음식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메론의 손이 술잔을 툭 쳤다.
“술이 맛있습니다. 술이 맛있다는 것은 이곳이 좋은 곳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예. 제가 존경하는 분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존경하는 분이라…….
“그게 누구인지 묻고 싶은데, 말해 줄 수 있겠나?”
못 할 것도 없다는 듯, 메론이 말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라……. 그렇군.”
베크는 길게 물을 생각이 없었다. 초반부터 너무 드러내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행동이니까.
중요한 건 하나다.
아직까지는 메론이 마음에 든다는 거.
튀는 행동도 하지 않을 것 같고 굳이 문제를 만들 것 같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기회를 틈타 이번에는 정우영 순찰사가 입을 열었다.
“저는 신임 감찰관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건데, 인물이 너무 훤칠하십니다.”
메론이 웃음을 터트렸다.
메론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 좋은, 그런 술자리였다.
정확히 여기까지만 그러했다.
이어지는 메론의 말이 술자리를 얼어붙게 했다.
“하나 여쭤 보고 싶은데, 답해 줄 수 있겠습니까?”
“뭐든 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정우영에게 메론이 말했다.
“제16회 밀로스 아카데미 검술학부 우수 졸업, 마법과 검술에 두루 재능이 있었고 계속 노력만 한다면 향후 마스터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는 인재, 성격은 매우 당차고 교우 관계가 원만함, 나이 19세, 사망한 나이 19세, 광명세가 멸문 사건을 조사하던 중 숙직실에서 목을 매고 사망.”
조용했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술자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그런 침묵이었다.
메론은 조용히 손을 뻗어 가득 채워져 있는 술잔을 그대로 들이켰다.
그의 두 눈이, 당황한 정우영을 직시한다.
“이름 엘레나, 이 여자에 대해 아는 거 없습니까?”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전출 신고 총 82회, 중범죄로 파면 16회, 사고사 7회,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우영은 생각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부드럽다고 생각되던 메론의 웃음이 왜 이렇게 차갑게 느껴지는 걸까.
“물었는데, 아는 거 없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