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60)
제 561화
박무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러지.
그리고 이어지는 정우영의 말을 전부 들은 뒤 납득했다.
동시에 판단했다.
‘메론, 이거 뭔가 있는 놈인가.’
오고 간 대화 내용을 생각해 보면 이건 도저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대사들이었다.
‘찝찝해. 성이 없는 평민인 것도 그렇고, 아카데미 수석인 놈이 동대륙으로 온 것도 그렇고.’
조용히 정우영의 말을 되짚던 박무기는 그대로 움찔 몸을 떨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리 질문하는 정우영에게 박무기가 물었다.
“메론, 그놈이 ‘명령’을 받고 왔다, 이렇게 말했다고?”
“예. 하지만 허수일 확률이 높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거다. 하지만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아무리 허세라도 느낌이 싸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확신할 수 있나?”
“…….”
“목숨 걸고 확신할 수 있냐 이 말이야.”
“……모르겠습니다.”
박무기가 한숨을 터트린다.
“보자고, 메론 그놈에게 따로 명령을 내린 놈이 누구일까.”
모든 게 불확실하다. 그럼 가장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야 한다.
“……밀로스 제국의 감찰총장이나 그에 비견되는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놈이 평민이라는 점이겠지요.”
평민. 이게 중요했다.
“아카데미 수석이긴 하지만 그런 놈에게 감찰총장쯤 되는 인물이 직접 명령을 내렸을 리 없습니다.”
총장뿐만이 아니라 그 밑의 중앙감찰청에 속한 모든 인물들도 해당된다.
과연 그들이 천하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꼬리를 잡았더라면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한 애송이를 보낼까?
말도 안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애송이를 보낼 게 아니라 명망 있는, 그런 인물을 ‘파견’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건 메론이 명령을 받았다는 말이 허세라는 증거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박무기가 고개를 저었다.
“아카데미 졸업자들이 관공서에서 일하는 것은 의무다. 그 의무를 저버리면 말도 안 되는 불이익을 받게 돼. 그런데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애송이가 부임지에 오자마자 허세를 부린다? 그건 또 그것대로 이상하지.”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정리하면.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가 밀로스 제국의 주요 인물은 아닐 거다, 이거지.”
“…….”
“그를 죽이고 싶다고 했나?”
“예. 지금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습니다.”
정우영의 그 말에 박무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으음.
“자네 마음은 이해하나 일단 지켜만 보는 걸로 하지.”
“……당주님. 정말 그러셔야겠습니까.”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자네야말로 정말 그래야겠나?”
그 말에 정우영은 놓고 있던 이성의 끈을 다시 붙잡았다.
박무기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놈을 죽이는 거? 쉽겠지. 그런데 놈이 부임한 지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았어. 하루 만에 놈을 죽인다? 아카데미 수석 졸업자야. 그런 놈이 동대륙 감찰관으로 왔다는 것을 우리조차 미심쩍게 생각하고 있는데 밀로스 제국이라고 다르겠나?”
다를 거 없다.
“거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야. 논란이 될 것이고 놈이 죽은 사건은 주목을 받겠지. 자네도 알겠지만 주목을 받게 되면 밀로스 제국의 윗놈들 중 황제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놈들이 뒤늦게라도 그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제대로 된 놈을 파견시키지 않겠나?”
“…….”
“그때는 도관의 놈들이 올 수도 있고 중앙감찰청에서 감찰관이 올 수도 있어. 당연히 혼자 오지는 않겠지. 천하성이 어수선해진다는 뜻이야. 시간을 들이고 또 들여야 해.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지. 자네는 그걸 못 참나?”
“……참을 수 있습니다.”
“그래, 참을 수 있지. 내가 그 많은 순찰사 중에 자네를 편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는 자네를 믿어. 그러니 이번에는 그대가 참으시게.”
박무기는 참으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있었다.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좋게 타일렀다.
이건, 그만큼 박무기가 정우영을 아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네가 결정하시게.”
“무엇을 말입니까?”
“담당 구역을 바꿔 줄 수도 있고 당분간 휴가를 보내 줄 수도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대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휴가를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대 생각은 어떠신가?”
정우영은 잠시 고민했다. 박무기의 마음은 충분히 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수십 년도 더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안다.
정우영은, 결정했다.
“남겠습니다. 놈을 가까이에 두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놈을 더 세세하게 관찰하겠습니다.”
단호한 그 말에 박무기는 만족했다.
믿음직스러웠다.
다른 무인들이었더라면 그 술집에서 메론에게 시비가 걸린 순간 검을 뽑았을 것이다.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게 무인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순찰사라는 자리는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밀로스 제국에 감찰관이 있다면 천하성에는 순찰사가 있다. 정우영은 참았다.
아마 앞으로도 더 참을 수 있을 거다.
“이 일은 내가 직접 ‘윗선’에 보고하겠네. 최대한 조치를 취해 볼 터이니 자네는 그저 조용히 놈을 지켜만 봐. 할 수 있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
나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공기가 굉장히 싸늘했다.
시선을 내렸다.
내 시선에 보이는 것은 폐허였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으리으리한 건물이 있었을 것이 확실한 그런 폐허.
곳곳에는 건물 파편들이 있었고 그곳에는 광명光明이라 적힌 명패마저 보일 정도다.
이곳이 바로 전 광명세가의 터전이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대로 손을 내밀어 땅을 짚었다.
마나를 끌어올린 뒤 땅속으로 보내보았다. 이어서 땅 주변을, 거의 반경 5km에 달하는 모든 곳을 뒤졌다.
시신이 무더기로 묻힌, 그런 곳은 없었다.
몇 개의 시신이 보이긴 했지만 단순히 노화로 인해 죽은 이들의 것이었다.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그대로 손을 떼어낸 뒤 쪼그려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번만 더 강조하자.
특별한 건 없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을 것 같다.
조금 아쉬웠다.
‘……흑마법을 배웠더라면 일이 편해졌을 텐데.’
흑마법 중에는 땅의 기억을 읽는 마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사용하지 못한다.
말은 안 했는데 어머니는 엄격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두 분은 다른 것은 다 가르쳐도 흑마법만큼은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흑마법만큼은 안 된다.’
왜냐고 물었었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직 너는 자격이 안 되니까.’
자격.
이게 중요했다.
‘망자들을 되살릴 수 있는 흑마법은 알고 있는 이들이 최소여야 하는 마법이다.’
‘대니, 잘 들어. 우리가 너를 못 믿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이 마법을 사용하면 세상이 너를 어떻게 바라볼까.’
‘너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도 그게 쉬울 리가 없잖아.’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 웃었었다.
‘네가 아무리 절제할 수 있고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네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네가 살아 있는 동안 수도 없이 일어날 거다. 그게 세상이거든. 그 모든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남자이자 가장 책임감 있는 남자가 될 때, 그때가 아니라면 흑마법은 절대로 알려 주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물었었다.
만약 그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냐고.
그때의 아버지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흑마법은 내 손에서 대가 끊기겠지.’
그건 그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고 세상에서 지워 버릴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섭섭하지 않았더라면 더 이상했을 거다. 하지만 이해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흑마법은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한다 해도 세간에 좋게 보일 수가 없는 마법이다.
흑마법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귀신에게 형체를 줄 수도 있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극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방법을 총망라한 마법이다.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쪽이 좋다.
사용한다 해도 그것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자이거나 확실하게 책임을 다해 사용할 수 있는 자여야만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해한다.
그저, 조금 더 분발하면 된다.
자격을 갖추면 된다.
그러면 억울할 것도, 섭섭해할 것도 없다.
그대로 손에 들린 자료를 훑어보았다.
[광명세가는 하루아침에 멸문했다. 이게 정상적인 일일까. 광명세가주의 시신은 없었고 식솔들의 시신도 없다.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고 시신을 태워 버렸을 수도 있다. 야밤에 도주를 했다기에는 밤 내내 굉음이 터져 나왔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있었다. 직접 조사를 하러 왔지만 정우영 순찰사는 협조하지 않았고 그 외, 다른 세가주들도 모두 협조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청 내부의 사람들도 협조하지 않았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이제 한 문장만이 남았다.
그리고 이 문장이 가장 중요했다. 이 문장은 내가 이렇게 막 나간 이유이기도 하다.
[최악의 경우, 천하성 감찰청의 모두가 천하성과 결탁했을 수도 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도 곧 살해당할 수도 있고.]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자극할 대로 자극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거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거요.”
몸을 돌렸다. 한 남자가 보인다.
그는 광원세가의 가주인 광소왕이었다.
“광명세가와 광원세가는 긴밀했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소.”
“그럼 광명세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이유를 알고 있겠군.”
말을 높일 생각은 없었다. 이 상황에서 굳이?
광소왕은 당당하게 말했다.
“모르오.”
“긴밀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긴밀한 것과 이유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 아니겠소?”
굳이 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광소왕을 바라보았다.
“엘레나, 그 여인에 대한 것이라면 몇 가지 말해 줄 게 있소.”
“몇 가지 말해 줄 게 있다……. 재미있네.”
그대로 걸음을 옮겨 광소왕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의미 있는 정보였으면 좋겠는데.”
“의미 있는 정보일 거요.”
말해 보라는 듯 턱짓하자 광소왕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집념이 강한 여자였소.”
“집념이 강하다?”
“엘레나 그녀는 이곳만을 조사한 게 아니라 사천 전체를 조사했소.”
전체를 조사했다?
말이 조금 묘했다.
일단 묻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내가 아는 정보는 이게 다요. 그녀가 꽤 오랜 시간 공들였다는 건 알고 있소. 그리고 무언가를 포착했겠지. 감찰관의 권한은 크니까. 이 의견에는 그대도 동의할 거요.”
“동의하지.”
“미심쩍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엘레나를 비롯해 감찰관들이 왜 ‘의문사’했는지 모르오. 그대 말대로 자살로 위장 당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그대가 감찰관으로서 감찰을 하다 보면 눈치채겠지만 우리나 월녀문 같은 중소 규모의 문파는 미꾸라지 수준도 되지 않소. 알고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지. 알게 되는 정보도 한정되어 있고.”
그건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엘레나라는 여인이 포착했을 수도 있고 그것은 그대의 생각보다 ‘더 큰 비밀’일 거요. 하지만 그대는 엘레나처럼 그것을 제대로 알아낼 수 없겠지.”
“왜지?”
“그대라는 존재는 여러모로 미심쩍은 게 많은 존재요. 아카데미 수석이면서도 천하성으로 파견을 왔지. 아무리 평민이더라도 수석이오. 수석은 어떤 식으로든 중앙보급청 내지 중앙감찰청으로 가는 것이 정석 루트요. 운이 좋다면 황제가 거주하는 천공성으로도 갈 수가 있고 도관으로 갈 수도 있겠지. 그런 인재가 천하성으로 온다? 이미 견제는 시작되었소. 정보는 꽁꽁 감춰 둘 것이고 쉽게 드러내지 않을 거요. 그대는, 더 힘든 길을 가야 하오.”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건 두고 봐야지.”
광소왕이 말했다.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해지려 하오. 왜 밀로스 제국의 감찰관들은 사고사로 위장 당해 죽었는가, 그리고.”
이후 나올 이야기는 나조차도 꺼림칙해서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다.
“왜, 사고사로 위장 당해 죽었다면 밀로스 제국은 이 일에 대한 세밀한 감찰을 실시하지 않았는가.”
상황상 내가 윗선의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지긴 했으나 그럴 리 없다.
이건 뻥카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
그 정도로 밀로스 제국에서는 천하성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없다.
이건 다르게 보면.
“밀로스 제국의 누군가가 천하성의 일을 은폐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거겠지.”
“그렇소.”
광소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받은 정보는 없지만.
“고맙다. 좋은 정보를 받았어.”
“겉치레는 됐소. 그리고.”
“그리고?”
“나는 그대에게 바라는 게 없고 그대도 내게 바라는 게 없으니 딱 이 정도가 우리 사이에 가장 이상적인 관계일 것이오. 이 관계에서 진전도, 후퇴도 없었으면 좋겠소.”
웃고 말았다. 그럼 이 이상 할 이야기는 없다.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내일 출근이, 조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