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62)
제 563화
하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꿈이든 현실이든 이 상황에서는 무조건, 한 가지 행동을 해야 한다.
하비는 냉큼 무릎을 꿇은 뒤 외쳤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 우렁찬 목소리에 건너편의 남자가 빙긋 웃는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고?”
“예, 폐하. 저는 잘 지냈습니…….”
“가출도 했다며?”
“……그게…….”
잭은 부드럽게 웃으며 하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집이 센 건 알겠는데, 부모 마음을 그렇게 속 썩이게 하면 쓰나.”
그 말에 하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하비도 안다. 어린애 투정이라는 거.
하지만 그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버지는, 그러니까 아베이루는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말을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아베이루가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확실하게 말하는데 밀로스 황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황제가 와 있다.
황제, 잭 밀로스가 말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너의 궁금증은 풀렸을 거 같은데, 맞을까? 거짓말은 하지 말고.”
“……예. 풀렸습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폐하의 모습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잭의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잭이 의자에 앉는다. 창밖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하겠지. 왜 메론이 다니엘이라면 어렸을 때 보았던 그때의 모습이 단 하나도 없던 걸까. 그런 거.”
“……예.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다니엘의 모습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지, 매일같이 메론을 보면서 어떻게 다니엘과 연관 짓지 못한 것인지, 스스로가 멍청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멍청했습니다.”
말을 하면서 긴장이 풀린 하비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런 하비를 바라보며 잭은 웃었다.
나이를 먹고 국가를 만들고, 운영을 하다 보니 요즘에는 이런 게 재미가 있더라.
하비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잭은 이렇게 말했다.
“녀석이 원했거든.”
“신분을 감추는 것, 말입니까.”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을 감추고 싶어 했어. 정확히는 인정받고 싶어 했지.”
하비는 눈치가 빠르다.
“황태자로서의 인정 말씀이시군요.”
잭이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서겠다, 그 의지가 내게는 너무나도 잘 느껴져. 그리고 그 의지는 내 생각이나 네 생각보다 더 단단해. 지금까지 녀석이 너한테 신분을 밝히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잭은 이 자리에 왜 온 걸까.
하비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잭은 꿰뚫어 보았다.
아무리 하비가 똑똑하다고 해도 잭만큼은 아니다.
“중앙보급청에서 일한다지?”
“……예, 과분한 자리입니다. 저는 한없이 부족한 놈인데.”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는 마. 아카데미의 교육은 수준이 높아. 차석이면 중앙보급청에서 일하기에 충분해. 사실 말이 차석이지 수석이나 다름이 없어. 다니엘 걔는, 내 아들이긴 하지만 소싯적의 나보다 더 괴물이거든.”
성적 차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니엘은 괴물이다. 한번 들으면 그게 뭐든 다니엘은 전부 기억했으며 무언가를 배우면, 순식간에 그것을 응용했다.
다니엘은 그런 남자다.
잭이 하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마저 말하면.
“너한테 부족한 건 경험이고 그 경험은 나이를 먹으면 채워져.”
잭이 그대로 손을 뻗어 하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우리 확실히 하자. 나는 다니엘의 정체가 메론이라는 사실을 너한테 말해 준 적이 없어. 네가 스스로 깨달은 거야. 나도 내 아들한테 할 말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맞지?”
“……예, 맞습니다.”
결국 황제도 아버지다. 아무리 현시점에서 인간을 초월하고, 그 초월한 상태에서 한 번 더 격을 초월한 괴물이지만 한 자식의 아버지다.
“앞으로 네 생각보다 큰일이 벌어질 거야.”
“……어디에서요?”
“동대륙에서.”
잭이 하비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네가 도와주었으면 해. 중앙보급청을 네 걸로 만들어 봐. 네 힘으로. 그리고.”
그리고.
이다음이 중요했다.
“세상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봐.”
하비는 온몸이 떨려 왔다.
뭐라고 해야 할까. 희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환희라고 해야 할까.
간단하다.
지금 하비는 인정받은 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황제에게.
물론 황제 이전에 외삼촌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건 다른 거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보라는 이 말은 분명 인정을 받은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말을 과연 하비 혼자만 들었을까.
“9살 때였나. 다니엘한테 먼저 말했으니까 괜한 오해는 하지 말자.”
“…….”
“왜? 섭섭해?”
“아닙니다. 폐하.”
잭의 웃음은 여전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항상 잭은 웃음이 많았다.
기분이 나쁠 때도 웃었고 좋을 때도 웃었다.
잭이 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작은 구슬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뭔가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한, 그런 구슬이다.
잭이 말했다.
“영약이야. 드래곤 하트랑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될걸.”
크게 놀랐다. 그렇게 귀한 것을 이리도 쉽게 주다니.
당연히.
“다니엘은 여덟 살 때 먼저 먹은 거니까 오해하지 말고.”
“……많은 걸 챙겨 주셨군요.”
“아들이니까.”
그러고는 이어서 하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도와주라.”
“……메론을요?”
“그럼 누구겠어?”
“메론은 제가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할 녀석입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잭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이렇게 걱정 안 했지.”
책임의 무게.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책임은 혼자 짊어져서는 안 된다.
혼자 사는 세상이라면 상관없겠지만 황태자라는 자리에 앉으려면, 그 책임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같이 짊어질 사람이 필요하다.
다니엘이 그걸 깨닫기를 잭은 바랄 뿐이었다.
“고생하고, 다음에 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잭은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하비는,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잭의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하비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잭 밀로스는, 아니 황제는 사라졌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욕심은 내지 마. 욕심을 내려거든 모든 것을 걸어. 네 목숨도 네 가족도. 그게 아니라면 시도조차 하지 마. 그저 조력자로 남아.’
평온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해도 황제는 황제다.
전 대륙을 힘으로 완전히 묶어 버린 괴물.
지금도 황제는 단신으로 전 대륙과 싸울 수 있다.
그리고 싸우게 되면, 이변 같은 게 수도 없이 생겨난다 해도 결국 황제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황제는 그 정도의 괴물이다.
하비는 손에 들린 영약을 꽉 움켜쥐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뭔가 큰일에 휩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세대교체인가.’
세상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할 때가 되긴 했다.
하비는 웃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 멀리 있는 메론, 아니, 다니엘도 웃고 있지 않을까.
* * *
하비의 감은 정확했다.
메론은 웃고 있었다.
“우리 신임 감찰관님께서 눈깔에 보이는 게 없으신가 봅니다.”
눈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당적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메론이 아닌 다른 이들이어도 웃었을 거다.
시작은 간단했다.
우선 오전에 메론은 당적상에게 자리를 청소하라 지시했고 부장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부장에게서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냥 전출 신고 해라, 해 줄 이야기 없다,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비웠고 때마침 당적상이 청소를 끝냈다.
하지만 감찰청장과 제대로 이야기가 끝난 것도 아니고, 일처리를 할 게 그리 많았던 것도 아니다.
사실, 일이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엘레나를 비롯한 사건들을 다시 훑어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기도 했고 퇴근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메론의 눈앞에 당적상이 나타났다.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아직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안 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적이 드물다고 해야 할까, 건물 몇 개가 보이긴 했으나 불이 꺼져 있었다. 골목길, 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앞서 말한 건물들은 빈 건물이 확실했다. 안에서 생명체의 반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메론은 노렸다.
일부러 숙소까지 빙 돌아가야 하는 이 길을 걸은 이유는 누군가가 따라오기를 바랐기 때문인데 당적상은 그거에 걸렸다.
확실히 하자.
주변에는 메론과 당적상, 단둘뿐이다.
“왜? 아까처럼 또 주둥이 털어 봐. 뭣도 없는 버러지 새끼가 감찰관이랍시고 명함 들고 다니…….”
“용건만 간단히.”
“……하, 이 새끼 봐라?”
메론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이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참에 하자면 저는 그쪽한테 거는 기대가 없습니다.”
“……뭐라고?”
“오래 본 사이는 아니지만 아까 밑바닥을 너무 봐서, 더 이상 기대가 안 됩니다.”
당적상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났다.
“더 볼일 있습니까?”
“있다면?”
메론이 한숨을 터트렸다.
“아까랑 같으시네. 청소하는 데 십 년이나 걸린다고 하더니 이제는 대화에도 십 년이 걸리나, 제가 갈 길이 바쁩니다. 부탁인데 빠르게 끝냅시다.”
그렇게 말하는 메론은,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당적상은 열이 뻗쳐 올랐다.
분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여러 가지의 감정 중 폭력과 가장 가깝게 연결된 감정은 분노다.
분노에 찬 당적상은 그것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의 손이 푸르게 물들었다. 그대로 뻗었다.
메론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 버리려는 게 확실했다.
다만.
터억.
맥없이 메론의 손에 잡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막아?”
고개를 끄덕인 메론이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묻는 건데, 나 말고 다른 감찰관들, 당신이 죽였습니까?”
“죽였다면?”
당연히.
“데려가야지요.”
꽈아악, 메론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반 죽여 놓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네가, 나를?”
“예.”
고작 신임 감찰관이다. 방금 공격을 어떻게 막은 건지 당적상은 모른다. 그저 운이 좋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는 별게 없었다. 앞서 말했듯 신임 감찰관이니까.
그리고 지금 놈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음에도 통증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런 애송이는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은지 당적상은 안다.
알기에, 그는 항상 그래 왔듯 놈을 줘패기로 했다.
반대쪽 주먹에 힘을 몰아넣은 뒤 그대로 휘둘렀다.
이 주먹에 이 메론이라는 놈의 면상은 곤죽이 될 것이다.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뻐어어억-!!
허공에 피를 수놓으며 날아가는 것은 당적상이었다.
얼굴이 뜨거웠다. 고통이, 뇌를 울린다.
고개를 들었다.
손을 털어내고 있는 메론이 보였다.
아까와 다를 바 없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 달라 보인다.
손을 툭툭, 털어내던 메론이 얼굴에 쓰고 있던 안경을 아공간에 집어넣는다.
이어서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 헤쳤다.
“당신을 감찰관 살해 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불응 시 생기는 피해는 전부 당적상 씨 몫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동시에 콰아아아앙-!!
허공으로 마나가 터져 나갔다.
메론의 몸에서 터져 나온 마나다.
분명히 말하는데, 중급 마스터인 당적상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힘이었다.
설마.
적색, 마스터?
모르겠다. 그보다 더 괴물일 수도 있다.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후회했다.
감찰청장, 그 새끼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메론이 웃으며 걸어온다.
“그냥은 안 되겠네. 일단 좀 맞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