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8)
제 59화
* * *
모리스 백작가의 장남인 페렌 모리스가 페일론에게 묻는다.
“너 왜 그래?”
“어…… 어? 뭐가?”
“이 새끼 진짜 이상하네. 쟤가 네 동생이라고? 그 막내?”
“어…….”
페렌의 미간이 슬며시 찌푸려진다.
“저능아라며? 그런데 방금 좀, 이상했다? 누가 보면 네가 저능아인 줄 알겠어.”
“…….”
페일론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대로 고개만 숙였다.
평소였다면 말에 불같이 화를 냈을 텐데, 그러지 않은 모습에 페렌도 고개를 갸웃한다.
그때였다.
순간 페일론의 고개가 추켜올려진다.
“……X발.”
생각해 보니, 짜증 난다.
내가 왜 저놈한테 겁을 먹어야 하는 거지?
어차피 내 장난감이었던 놈이잖아.
빌어먹을 새끼.
페일론의 눈가에 독기가 생겨났다.
코앞에 있던 페렌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설 정도였다.
이어서 페일론이 몸을 돌린다.
“어? 야, 어디 가?”
“야, 페일론!”
“저 새끼 갑자기 왜 저래? 조울증이야?”
페렌을 비롯한 두 명의 학생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지만 페일론은 듣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페일론은 등을 돌리고 있는 잭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외쳤다.
“야! 머저리!”
잭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 눈빛.
아주 무미건조한 그 눈빛에. 페일론은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힘찬 걸음걸이가 늦어지고, 힘을 주고 있던 어깨에 힘이 빠진다.
실실 웃던 잭이 묻는다.
“새끼, 기세 좋네? 한 대 치겠다?”
페일론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게…… 그러니까……!”
말을 잇던 페일론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잭이 피식 웃고는 다시 몸을 돌린다.
그 모습을 페일론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 공포증은 분명 치료되었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드는 걸까.
페일론은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몰랐다.
이게 트라우마라는 것을.
* * *
타노스와 꼬맹이를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낸 나는 스승님과 함께 총장을 만나고 있었다.
이미 영감님이 나를 특별 취급 한다는 사실은 아카데미 내의 교수진에게 퍼졌는지 총장이 거주하는 건물의 병사는 말없이 나를 통과시켜 주었다.
“블루투스가 죽었다더군.”
영감님이 내게 처음 내뱉은 말이다.
“그래서요?”
“…….”
영감님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충격받지 않냐는 듯한 그런 눈빛인데. 아니, 내가 왜 충격을 받아?
뒤지든 말든.
고문을 당해 뼈가 조각나든 안 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끝이에요? 할 말 더 없어요?”
“어…… 음…… 없네.”
뭐야 싱겁게.
“아. 그리고 제게 선물해 주신 별장, 꽤 마음에 듭니다. 생각보다 좋던데요? 요리사도 의외로 요리 솜씨가 뛰어나고.”
“아, 그런가?”
영감님의 반응이 뭔가 묘하다.
블루투스가 죽었다는 말에 별 반응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이 여전히 의아스러운 걸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때.
“아. 잠깐.”
영감님이 나를 붙잡는다.
“그, 지금 검술학부 1학년으로 알고 있네만.”
이 영감님이 무슨 말을 하려고.
“혹시, 마법학부로 옮길 생각 없는가?”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거참.
이건 뻔하잖아.
“아이고, 마탑주가 영감님한테까지 부탁했구만.”
“그렇게 됐네.”
“그런데, 어차피 저 수업 참여 안 할 건데요?”
기다렸다는 듯 영감님이 말한다.
“그게 말이네, 머지않아 아카데미법이 개정될 것이네.”
응? 벌써?
“자네에게 해 줬던 내 조언, 기억하는가?”
“기억하죠. 그 덕에 우리가 거래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한 것 아니겠습니까?”
실실 웃자, 영감님도 피식 웃는다.
“음. 선도부 아이들이 보고를 올리기를, 다른 학생들이 자네처럼 ‘편법’을 사용하려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던데…….”
말끝을 흐리는 영감님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다.
편법은 선구자가 있으면 뒤를 따라오는 놈들도 있는 법.
내가 알기로 내년 2학기부터 아카데미의 모든 법이 개정되는 걸로 알고 있다.
정확히는, 개정된 법이 발효된다고 해야겠지.
그 개정을 하는 시기가 언제인지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이맘때쯤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자네는 꼼짝없이 수업에 참여해야 하네.”
“그렇겠죠?”
“하지만 말이네.”
영감님이 씩 웃는다.
“마법학부로 옮긴다면 자네가 받아야 할 수업 시간을 대폭 줄여 주겠네.”
이것 봐라.
조금 흥미가 생긴다.
분명 내게 필요한 건 졸업장이다.
하지만 아카데미 수업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
묘하게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 이건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한 거다.
솔직히, 나 같은 미친놈이 수업에 참여하면 그게 애들한테 도움이 되겠어?
나는 나보다 수준 낮은 애들한테 뭐라도 배우는 시늉을 해야 되고, 내 지랄맞은 성격을 다른 애들은 겪어야 하는데, 그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
쓸데없는 짓이고, 의미 없는 짓이지.
그런데 우리 영감님이 생각보다 괜찮은 제안을 해 온다.
마법학부로 옮기면 수업 시간을 대폭 줄여 주겠다…….
영감님의 입장에서는 마탑주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체면치레 그 이상을 하게 되는 거고 내 경우에는…… 뭐, 나쁠 게 전혀 없는 거래.
“이야, 영감님. 거래할 줄 아시네.”
“내 나이가 몇인 줄은 아느냐. 허허허.”
아, 이거 참.
재미있게 됐네.
그럼 세부 사항을 좀 논의해 볼까?
“주 1일.”
“……응?”
영감님이 순간 멍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내가 들은 게 맞느냐는 그런 표정인데.
다시 말해 줘야 하나 보다.
“수업 참여는 주 1일 어떻습니까? 대폭 깎아 주신다면서요?”
“……그래도 주 1일은 조금 그렇지 않은가? 주…… 3일 정도라면 몰라도.”
그 짧은 순간 계산한 걸까.
1일과 3일.
이게 물건을 사는 일이었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2일을 외쳤을 것이다.
“일단 영감님이 알아 두셔야 할 게 있는데요.”
“내가?”
“예.”
영감님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한번 말해 보게.”
“저는 아카데미의 수업을 아주 진지하게 듣거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계속하게.”
“배울 것도 없고, 솔직히 더 뛰어난 스승이 있는데 그 아랫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조금 우습지 않습니까?”
집무실에 앉아 있던 영감님의 시선이 내 뒤쪽.
정확히는 집무실 구석에 있는 큰 소파에 앉아 있는 스승님에게 꽂혀 든다.
그러고는 내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왜 아카데미에 온 건가?”
아카데미 근처에 집을 구했지만, 아카데미 수업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왜 굳이 이 아카데미에 왔나.
영감님 입장에서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다.
“영감님. 제가 원하는 건 다른 것도 아닌 졸업장, 그 작은 단추 하나입니다.”
영감님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졸업장? 아, 혹시 아카데미의 보고에 들어가려고?”
아카데미 보고.
모든 학교가 으레 그렇듯 졸업생들에게는 증표를 주기 마련이다.
대부분은 그냥 증서나, 아카데미 졸업자임을 증명하는 단추 같은 것들을 툭 던져 주지만 테슬란 왕국은 조금 다르다.
증서를 주고, 아카데미 졸업자임을 증명하는 단추도 주지만, 거기에서 딱 하나를 더 얹어 준다.
바로, 아카데미의 보고를 열어 주는 것.
갑주와 로브, 지팡이부터 시작해서 검, 모닝스타, 클로 등등.
400년의 역사 속에서 그려졌던 온갖 무구들이 마법작용이 되어 있는 채로 그 안에 존재한다.
졸업생들은 그 무구들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가져갈 수 있다.
물론, 그 무구들의 등급은 사실 그렇게 높지는 않다.
대부분이 흑철이나 강철을 다듬어서 만들었던 물건들이고, 예전에는 드워프들이 직접 제련까지 해서 최상급의 무기 소리를 듣던 것들도 있었지만 그건 이미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놈들이 채 갔다.
그래도 매년 무구들을 채워 넣긴 하지만 쓸 만한 무구들만 있을 뿐이지, 분명 좋은 무구들은 없다.
영감님은 내가 지금 그 무구들을 노리고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한, 70점짜리 정답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내게 말하거라. 공작가에서 쓰던 검들, 아니지, 벨라미가 자네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데 그런 시답잖은 검을 주면 안 되겠지. 적어도 기사단장이 쓸 법한 그런 검을 준비해 주겠네. 물론 지팡이도 건네줄 거고. 그중 한 개만 받아도 아카데미 보고에 있는 검들보다 수준이 월등히 높을 것이야.”
“당연히 공짜는 아니겠고요?”
영감님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한다.
파격적인 대우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파격적인 대우까지는 아니다.
벨라미 크래그는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영감님의 사람이다.
그것도 무려 30년이 넘도록 충성을 바친 충신.
그런 충신이 제자를 거두어들이고 싶어 한다.
내게 저런 선물을 준다는 건 벨라미를 챙기는 동시에 나를 영감님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속셈일 확률이 높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꽤, 귀여우시네.
무엇보다.
“제가 가지려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다?”
슬쩍 고개만 돌려 햇살을 받으며 아주,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스승님을 잠깐 바라보았다.
“제가 가지려는 거, 정확히 제가 찾으려는 건 ‘진실’입니다.”
영감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표정인데, 그냥 그러려니 하자.
아카데미 보고에는 일단 건국왕이 남긴 검이 숨겨져 있다.
나는 그 검이 필요하다.
앞으로 썰어야 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내 혼기의 힘을 버틸 수 있는 무기는 필수다.
하지만 그 무기의 가치는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내가 정말 ‘검’만 필요했더라면 지금 당장 아카데미 보고로 들어가 문을 부수고 무기만 챙겨서 왕국을 떴겠지.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그 검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영감님과 눈을 맞췄다.
“저는 졸업을 할 겁니다. 졸업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빨라진다면 더 좋겠지요.”
영감님은 눈치가 아주 빠른 사람이다.
그냥 빠른 게 아니라,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내가 고작 저 말만 했을 뿐이지만, 영감님은 내 속내를 눈치챘다.
“월반도 원하고…… 수업에는 가능하면 적게 참여하고 싶다?”
“그렇죠.”
“정말, 당돌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아이가 되었구나. 좋아. 월반에 대해서는 차후에 이야기해 보도록 하고 이 자리에서는 전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나는 주3일을 원했고, 너는 주1일을 원했지. 그럼 그 중간인 주2일이 어떻겠느냐?”
거절할 이유가 없다.
“좋습니다.”
“그럼 자네는 오늘부터 마법학부 1학년일…….”
“대신.”
“응?”
“마탑주의 제자가 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음.”
“당연한 거잖아요? 아무리 마탑주라는 직위가 높다고는 해도 그게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로 발전하는 하이패스 티켓도 아니고. 그건 제가 마탑주랑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개정된 법이 발효되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살려고 합니다.”
“어…… 음…….”
영감님은 꽤나 보기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탑주가 일에 얽혀서 그런가.
지나치게 내 편의를 봐주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조금은 양보해 줘야 할 듯.
“제가 눈이 좋거든요?”
“……눈?”
“마나 유저를 보면 말입니다. 아, 이 사람은 이 정도로 성장하겠구나. 이 사람의 재능이 이 정도구나, 그런 게 느껴지거든요?”
영감님의 눈동자가 살짝 빛난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게 가능하다고?”
피식 웃고 말았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재능은 마탑주나 영감님이 생각하시는 거 그 이상입니다.”
“오호.”
“자, 다음 거래는 이걸로 합시다.”
“옥석을 가리는 재능이라…… 그게 진실이라면 내가 너를 책임지고 후작으로 만들어 주마.”
와. 이 영감님이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그딴 거 줘도 안 가질 건데요.”
“그래?”
어깨를 으쓱했다.
대충 이 정도 운을 떼 줬으면 충분하다.
나눌 대화는 끝난 것 같으니까.
이제 집에나 가야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선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