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9)
제 60화
“그런데 말이네.”
그런 나를 이번에도 영감님이 다시 붙잡는다.
“또 뭐가요?”
“어제 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고개를 돌렸다.
영감님의 곧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오총사한테 보고를 받은 걸까.
거기다 분위기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단어에 담긴 무게는 다르다.
순식간에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대화법.
이건 누굴 심문할 때나 쓰는 기술인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정말인가?”
정말이겠습니까?
속내랑은 다른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고 보니 그 오총사랑 요리사가 밥 준비는 안 하고 있길래 혹시나 하고 가 봤더니 죄다 기절해 있더라고요. 무슨 상황인지는 안 물어봤는데, 대충 보니 자기들끼리 싸웠나 봅니다.”
“싸웠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잖습니까?”
영감님이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뻐끔댄다.
걔들이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14살짜리 애한테 애들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데 하는, 그런 표정이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대로 총장실을 나왔다.
고개를 들자 벽에 걸린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등에 새하얀 여덟 장의 날개를 달고 있는 검은 머리의 한 여인이 붉은 피부에 머리에 뿔까지 나 있는 남자를 검으로 찍어 누르고 있는.
이건 뭐가 이렇게 쓸데없이 고퀄리티야?
잠시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두세 걸음 정도 옮겼을 때,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잠깐만.
스승님은?
슬쩍 고개를 돌려 닫혀 있는 총장실 문을 바라보았다.
아직 안 나오셨나.
* * *
[차가 맛있더구나.]“…….”
롬멜 총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치열한 정치판에서 수십 년을 굴렀던 롬멜 총장은 눈썰미가 좋다.
그냥 좋은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좋다.
그간 보아 왔던 수많은 귀족들.
심지어 국왕까지도 독대를 자주 했던 롬멜은 이 순간, 그 어느 순간에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위압? 위엄?
단어로 정의하기가 어려울 정도였기에 롬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의 여인, 발렌타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연설도 꽤 인상적이었고.]손짓, 발짓. 그리고 말투와 작은 몸놀림까지.
하나하나가 범상치가 않다.
롬멜 총장은 확신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의 신분은 절대 범상치 않을 것이라고.
코앞에 서 있던 발렌타인이 의자에 앉은 롬멜을 내려다본다.
[한데, 너는 총장이라는 자리보다는 장군이라는 자리가 더 어울리는 듯싶구나.]하대가 이렇게 익숙할 수가 있을까.
롬멜 총장은 긴장했다.
왕 앞에서 긴장하지 않던 그 롬멜이, 지금 긴장한 것이다.
하지만 롬멜에게 있어서 속내를 숨기고 표정을 감추는 것은 익숙한 일.
롬멜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다.
“허허, 장군이라. 제가 전장을 누빈 적이 있긴 있었습니다. 잠시였지만.”
집무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발렌타인이, 여전히 롬멜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벨라미라는 아이도 그렇고, 테슬란에는 아직도 인재가 참 많아. 너에게 묻겠다.]“…….”
[정말 지킬 수, 있겠느냐?]발렌타인의 물음은 직설적이었다.
적어도 롬멜 총장은 그렇게 느꼈다.
그 직설적인 물음에 롬멜은 순간 망설였다.
이어서, 발렌타인이 다른 형식으로 되묻는다.
[지킬 생각이, 있는 것이냐?]롬멜 총장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그 순간.
벌컥-
“안 나오시고 뭐 하십니까?”
[……이제 나가려고 했느니라.]* * *
주변에서 온갖 시선이 쏟아진다.
스승님과 나란히 걸으며 계속 스승님의 표정을 살폈다.
스승님의 외모와 분위기는 주변에 있는 이들은 물론, 심지어 왕족들까지도 감히 그 어떤 말을 내뱉지 못할 정도로 신비롭다.
음.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신 걸까.
아마 그건 아닌 것 같다.
스승님은 이런 시선에 이미 익숙하실 테니까.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총장이 데이트라도 하잡니까? 표정이 영 아니신데.”
[음…….]“음?”
[롬멜 총장이라, 너는 그 아이를 믿느냐?]슬쩍 웃고 말았다.
“스승님. 저는 제 사람 말고 그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렇구나.]“그저 필요에 따른 관계일 뿐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스승님이 왜 저렇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른다.
인형일 때의 스승님은 그저 눈썰미가 좋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본체로 변한 스승님의 눈썰미는 세상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그 눈으로, 스승님은 과연 총장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미래에 꽤 뛰어난 전술가로 이름을 알리게 될 영감님은 기본적으로 사람이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
전쟁이 벌어지기 전 총장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마, 영감님이 내게 져 주는 듯하면서 편의를 봐주는 것도 그 욕망의 한 조각이 아닐까.
그걸 스승님은 읽으신 게 아닐까.
슬쩍 웃고 말았다.
[하긴, 네 녀석이 누구한테 이용당할 그런 녀석이 아닌데,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하하.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스승님이 버릇처럼 검지로 내 이마를 툭 밀어낸다.
밀려난 고개를 원상 복귀시키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간판에는 ‘알라베스 길드’라고 적혀 있었다.
용병, 헌터 등등.
그 모든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곳.
[여기는 왜 온 것이냐?]왜 왔긴요.
“제가 그거 하나는 알거든요.”
[무엇을?]“9서클 마나 유저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거.”
내가 바보 등신도 아니고, 디트리히라는 놈과 그 9서클 마나 유저의 관계를 몰라볼 리 없다.
그 모습들은 아무리 봐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형태였다.
돈을 주고, 돈을 받은 관계.
하지만 돈을 준 놈은 죽었고 받은 놈도 죽었다.
그럼 돈은?
당연히 내 거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스승님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스승님의 모습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투가 매우 공손하다.
일단 여기가 나름 정보 길드의 역할도 하고 있으니까.
음.
그때, 스승님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때맞춰 용건을 꺼내 들었다.
“지부장님 좀 뵙고 싶은데? 아마 이렇게 전하면 알 거야. 어젯밤, 9서클, 암살.”
스승님에게 집중되어 있던 길드원의 시선이 내게 옮겨진다.
이어서, 그가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눈이 커진다.
그러고는 갑자기.
“……어? 설마 잭 발…… 흡.”
코앞에 있던 직원이 말을 하다 말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잠깐만.
이것 봐라?
“날 아네?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
“…….”
“설마. 그거야?”
하…….
공돈 얻을 생각에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착 가라앉는다.
길드원이 나를 알고, 마치 귀신을 본 듯 놀란다.
이 반응, 뻔하잖아.
“혹시나 했는데 그 X신이 중개소를 통해서 의뢰를 넣었었나 보네. 와, 놀랍다. 1:1로 접촉한 게 아니고 거래소를 통해서 나를 암살하려 했다? 이게 진짜야?”
이곳에 온 이유는 일단 의뢰를 넣기 위해서였다.
주인 없는 그 돈을 찾기 위해서.
당연히 대가도 지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5분 줄게. 5분 안에 지부장 안 뛰어나오면 알라베스인지 뭔지 하는 이 모험가 길드, 오늘부로 대륙에서 지워질 거다.”
길드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놈이 무언가 아는 게 있다는 듯 슬며시 몸을 돌리고는 구석에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스승님과 함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속으로 5분을 세면서.
그런 내게 스승님이 묻는다.
[진심인 것이냐?]“뭐가요?”
[이 길드를 대륙에서 지우겠다는 그 말.]진심이다.
진심인데, 아무래도 스승님께는 조금 설명해 드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왕국에 길드라는 이름의 단체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중 ‘모험가’라는 말이 붙은 길드는 일반적인 길드가 아니라 ‘중개소’의 역할을 하고 있죠. 일종의 정보 단체라고 해야 할까요?”
[세상이 변하긴 했구나. 중개소라…… 그래서?]“사실 여기에는 그 디트리히라는 놈이 지급한 청부금을 찾아 달라고 의뢰 넣으려고 온 거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그 남자 반응 보셨죠?”
[너를 알고 있는 것 같더구나, 무엇보다 네가 살아 있는 것에 놀란 것 같던데. 그게 관련이 있는 것이냐?]“예. 저는 그 머저리가 암살자들과 1:1로 접촉한 줄 알았습니다. 귀족이 귀족을 죽이는 의뢰를 중개소를 통해서 한다는 건 온 세상에 광고하는 거나 다름이 없거든요. 설마 그 디트리히가 그 정도로 멍청하다고는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이 중개소를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졌었나 봅니다. 생각보다 더 멍청한 놈이었네요.”
스승님이 고개를 갸웃한다.
[정보 단체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들이 그 정보를 습득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고개를 저었다.
“지금, 주변 시선 느껴지십니까?”
스승님이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 눈에 보이는 7명. 저들 모두가 너를 쳐다보며 죽은 사람이 돌아왔을 때 지었을 법한 표정을 짓고 있구나.]피식 웃고 말았다.
“말단 길드원이 다 알고 있는 것만큼 더 명백한 증거가 있을까요? 도구가 있고, 손과 발이 있고, 일을 행했다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슬쩍 고개를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저를 죽이려 한 놈들과, 그놈들에게 돈 받자고 일거리를 소개시켜 준 놈들, 제 입장에서는 똑같은 놈들입니다.”
[…….]“4분 남았네요. 4분 안에 지부장이 안 나오면 저는 오늘 알라베스 길드를 대륙에서 지울 겁니다.”
스승님의 눈이 조금 안쓰럽게 변한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조금은 짐작이 가는구나.]씁쓸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3분 남았다.
* * *
“저, 지부장님.”
의자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한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저, 그게…….”
알라베스 길드의 어센블 지부장 아베이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보고하러 온 것 같은데, 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뭐지?
“밖에 ‘잭 발란티에’가 왔습니다.”
순간 아베이루의 눈매가 찌푸려진다.
일단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잭 발란티에?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이름을 듣지는 못했지만 확실합니다. 그리고 지부장님께 이렇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어젯밤, 9서클, 암살. 그리고, 5분 안에 지부장님 안 나오면 알라베스 길드가 오늘 안에 대륙에서 사라진다고…….”
아베이루.
흔하디흔한 용병에서 한 길드의 지부장까지 올라온 그의 나이는 고작해야 34세.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그의 감각은 남달랐다.
어센블의 지부장은 알라베스 길드의 가장 큰 노른자위.
그 노른자위를 책임지고 있는 아베이루는 이 순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챘다.
아니지.
멀리 갈 것도 없이 하나만 보면 된다.
잭 발란티에가 살아 있다.
아니, 펜타닐 길드의 최정예 암살자들과 길드 마스터가 암살을 하러 갔는데, 살아 있다?
지부장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에 있냐?”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