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590)
제 591화
당초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회천교는 무너뜨릴 대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상황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회천교에 대한 자료를 검토했다.
회천교는 절대로 작은 조직이 아니다.
아버지가 휘하로 들였던 초창기의 무명보다는 훨씬 크지만, 초창기의 도관보다는 작은.
딱 그 중간에 위치한 조직이다.
교주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상관없다.
그런 조직이라면, 충분히 ‘오른팔’로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왕도가 아닌 패도를 걷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내게 영월이 물었다.
“저희와 손을 잡으시는 데에 교주님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이 말씀이신가요? 그러니까, 신뢰를 위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무언가 착각을 한 모양이다.
“손을 잡는다고 내 입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는데.”
“……네?”
레이먼드 베크는 천하성의 일부 세력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거래하고 또 거래했다.
그 대가는 무엇이었나.
결국 배신이었다.
베크가 정말 대단한 남자였고 가진 게 많았고, 가진 힘이 괴물 수준이었더라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애초에 내가 습격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중앙감찰청을 움직여 베크의 뒤통수를 친 것은 천하성이다.
돌아가는 정황상 남궁철영이 확실하지만 그게 더 문제다.
고작 남궁철영이다.
고작.
그래, 고작 대당주 따위한테 뒤통수를 맞은 거다.
나는 레이먼드 베크라는 동대륙 감찰청장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거의 진리라고 봐도 좋았다.
절대로 우스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 거래라는 것을 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완벽한 우위에 섰을 때나 하는 거라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굳이 거래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나는 눈앞에 있는 영월에게 말했다.
“손을 잡는다는 전제는 없다. 회천교가 택할 선택지는 두 가지다. 내 밑으로 들어올지, 들어오지 않을지.”
영월의 눈은 아름다웠다. 아마 동대륙에서 굉장한 미인이라 불릴 정도의 외모가 분명했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커지고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오냐오냐해 주니 네가 진짜 뭐라도 된 것 같냐고.
그렇게 말하려던 영월은 하지 못했다.
내가, 기운을 끌어올렸으니까.
콰아아아아아-!!
주변에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것은 거의 폭풍과도 같았다.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가고 땅들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진동한다.
적색 마스터의 기운이 아니다.
초월자의 기운이다.
혼기魂氣.
내 영혼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영월은 경악했다. 그런 영월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미리 마음속으로 결정해 두는 게 좋을 거다.”
“무…… 무엇을요?”
“나는 나보다 위에 있는 자들과 손 따위는 잡지 않아. 내가 손을 잡는 경우는 하나다.”
“그게…… 뭐죠?”
“내게 머리를 숙여라. 그 외의 선택지는 없어.”
“…….”
“알겠나?”
침을 꿀꺽 삼킨 영월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나는 끌어올렸던 기운을 가라앉혔다.
“이제, 회천교의 교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나?”
이번에도 영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메론이 기운을 끌어올린 그 시각, 천하성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남자는 수저를 쥐고 있던 동작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오호…… 호오…….”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어마어마했다.
이거, 이런 기운을 얼마 만에 느껴 본 건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다.
천하성주 류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가 떨린다.
현재로서 지금 느낀 기운의 수준은 대략 생사경 중급에서 상급 정도였다.
그것도 최소치로 잡은 거다.
그리고,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각각의 초월자에게는 개성이라는 게 있다.
그런 초월자가 뿜어내는 혼기에도 개성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일 터.
류진은 지금 느낀 이 기운을 난생처음 느껴 본다.
처음 보는 초월자다.
살이 떨려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쾅.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류진은 천목산의 정상에 와 있었다.
순식간에 천하성 본관에서 이곳으로 이동한 거다. 마법이나 보법이나 경신술 그딴 건 쓰지 않았다.
그냥, 자리를 박찼을 뿐이다.
바지만 입고 상체를 훤히 드러낸 그의 복장은 묘하게 산과 잘 어울렸다.
류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여기다.
여기가 분명하다.
땅이 갈라져 있고 나무들이 뽑혀 나가 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그 짧은 사이에 이동한 건가?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을 때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류진의 뒤쪽에 누군가 내려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류진은 곧바로 환하게 웃고 말았다.
“왐마, 이게 누구여, 우리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허허, 여기가 천하성인 것을 모르는 이가 없거늘, 천하성의 주인인 이 몸이 이곳에 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이오?”
류진은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 설산의 여왕님께서는 이곳에 웬일이시오?”
류진이 설산의 여왕이라 부를 만한 이는 한 명밖에 없다.
빙궁의 주인 유설하.
오직 그녀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 정도라면 방금 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녀가 이곳으로 온 거다.
다니엘이, 대체 누구를 상대하기에 이 정도의 기운을 퍼트린 것인가.
류진이 저렇게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큰일은 아닌 것 같았다.
수련을 한 걸까.
모르겠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설하가 류진의 말에 답했다.
“너랑 같은 이유겠지.”
류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짐작 가는 인물이 없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 설산에만 있어서 소식이 어두울 터인데, 혹시 들으셨나?”
“무엇을?”
“우리 동대륙에 새로운 괴물이 나타났다는 사실.”
유설하는 표정 관리를 잘한다. 잘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류진은 유설하의 표정을 꿰뚫어 봤으니까.
“오호. 아시는구만. 알면 이야기가 편하겠네. 이 기운, 아무래도 그 ‘남자’가 퍼트린 것 같아. 이거 빙궁주의 체면이 말이 아니겠어.”
“……뭐?”
“별건 아니고, 얼추 내가 느낀 이 기운의 농도가 적어도 우리 빙궁주님보다는 우월하더라고. 이거 조만간 무림서열록의 이름이 바뀌겠어.”
유설하는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류진도 유설하와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다.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의 길을 가려던 그때였다.
쩌저적.
공간이 갈라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여인의 모습을 본 류진과 유설하가 그대로 경악했다.
여인의 키는 서대륙을 기준으로 얼추 170cm 정도 되었다.
이마에는 두 개의 나선형 뿔이 있었으며 머리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오뚝한 코와 작은 입술.
그리고 붉은 기가 감도는 두 눈동자.
그것은, 인간이라기에는 존재감이 인간과 같지 않았고 단순한 초월자라고 하기에는 일반적인 초월자가 아니었다.
그냥.
종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두 명의 초월자는 저 여인이 누구인지 안다.
현재 동대륙의 무림서열록 1위에 있는 이는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드래곤 로드.
이름은 셀.
지금 두 초월자 앞에 있는 저 여인이, 바로 무림서열록 1위의 셀이다.
셀을 본 순간 류진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거이거, 오늘 무슨 날인가. 반가운 얼굴들이 자주 보이는구려. 드래곤 로드, 그간 잘 지내셨소?”
셀은 조용했다.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고 이번에는 유설하를 바라보았다.
유설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셀과 여러 가지로 엮여 있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다 과거의 일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친하지도 않다.
서로 가는 길이 너무 달랐고 이미 자리해 있는 위치 자체가 너무 달라졌으니까.
셀은.
자신을 아는 대부분의 이들 사이에서 고립을 택했고 스스로 모든 이들과 단절했다.
“오랜만이에요. 빙궁주.”
“그러게요. 오랜만입니다. 드래곤 로드.”
“그간 별일 없으셨죠?”
“……없지요. 있을 일이 있겠습니까. 서대륙과는 다르게 동대륙은 매우 조용하니까.”
본래 유설하는 셀이라는 존재를 ‘아이’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셀은 너무 커져 버렸다.
말을 높이는 게 맞다.
동대륙의 지존이니까.
셀은 물끄러미 주변을 둘러보았다. 셀도 느낀 거다. 다니엘의 기운을.
“…….”
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있었다.
셀은 생각했다.
다니엘이 동대륙으로 온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왜 찾아오지 않았을까.
갑작스럽게 드는 이 ‘감정’에, 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다 보면 오겠지.
한 번쯤은 얼굴을 보고 싶긴 했었다.
처음으로 받아들인 제자였으니까.
그리고 그 제자와는 아직 ‘의절’하지 않았으니까.
셀은 잠시 류진과 유설하를 바라본 뒤 그대로 공간을 뚫고 사라졌다.
유설하와 류진도 마찬가지였다.
유설하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설산으로 돌아갔으며 류진은.
잠시 그 자리에 남아 셀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전의 싸움은 무승부였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저 자리를 노릴 것이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와하하하하하하.
천하성의 주인인 류진은 광소를 터트리며 다시 천하성으로 복귀했다.
* * *
동대륙에는 메론을 제외한 총 ‘네 명’의 초월자가 존재한다.
셀, 류진, 유설하.
그리고 스스로를 회천교주라 말하고 다니는 남자.
이들 모두가 메론이 퍼트린 초월자의 기운을 느꼈다.
당연한 거다.
느끼는 게 맞다.
초월자가 어디 길거리에 흔하디흔한 그런 존재도 아니고, 영혼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의 힘이 일반적인 이들의 힘과 같을 리 없다. 초월자는 초월자를 느낀다.
그게 진리다.
여하튼, 영월은 메론과 함께 천목산에서 텔레포트했다.
좌표는 이미 알려 준 상황이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신전이었다.
동대륙 내부에 있는 서대륙 양식의 신전.
그곳에서 두 사람은 걸었다.
앞서 걷는 메론과 뒤에서 따라붙는 영월.
뒤에서 따라붙던 영월은 메론의 뒷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아까, 이 남자가 퍼트린 기운에서 영월은 그 말로만 듣던 ‘제왕의 기운’을 느꼈으니까.
이건 정말 책에서만 나오는 단어다.
역사적으로 제왕의 기운을 보였던 남자는 오직 두 명이다.
라그나로크, 황제 잭 밀로스.
이 두 사람에 대한 책들을 보면 ‘제왕의 기운’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다.
‘한 번 느끼는 순간 이 기운의 주인이 하늘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가 무엇을 한다 해도 이 남자에게는 아무것도 영향을 주지 못할 거라는 확신 어린 확신.’
‘영혼을 지옥에서부터 해방시켜 주는 기운이고 이 기운을 느꼈을 때 기쁨과 비탄을 느끼게 되며 스스로의 영혼의 빛이 광채 속에 잠들 수 있음을 느끼게 되는 기운이다.’
매우 추상적인 설명이지만 영월은, 지금 저 묘사에 나온 것들을 그대로 느꼈다.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회천교의 교주에게조차 느껴 본 적이 없는 기운인데.
만약 모르는 이들이라면 착각 아니냐고 물었을 테지만 영월은 바보가 아니다.
확신했다.
너무 근거리였고 근거리였기에 너무 확실하게 느꼈다.
제왕의 기운이 맞다.
그러다, 머릿속에 떠올랐다.
‘황제 잭 밀로스와 네크로맨서 발렌타인 밀로스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
그 아들이 만약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19세.
메론과 같은 나이다.
그런데 들리는 바로는 천공성에서 황태자 수업을 받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의 그 모습을 꽤 많은 이들이 확인했었다.
공식 석상에서 얼굴만 비추고 그대로 사라지는.
유령 같은 황태자.
그런데, 만약 그 황태자가 신분을 숨긴 채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닐 거다.
정말 아닐 거다.
제왕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이런 상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느꼈다.
영월이 무언가 물으려던 그때였다.
“아까 기운을 느꼈어.”
어둠으로 둘러싸인 신전에서 쇳소리 같은, 그런 불길한 목소리가 울렸다.
메론이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의 모습은 흉측했다.
“초월자더군. 그것도 최소 생사경 중급쯤에 달하는.”
그 남자는 붕대로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붕대가 붉다. 안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입고 있는 검붉은 색의 장포에서도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메론이 물었다.
“회천교주, 맞나?”
“맞는데, 초면에 말을 놓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그럴 만하니까 놓는 거다.”
“…….”
“한 번만 묻지. 내 밑으로 들어오겠나?”
회천교주가 말했다.
“싫다.”
“그래, 그럼 되었다.”
메론의 주변으로 거대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그대로, 메론이 자리를 박찼다.
콰아아아아앙-!!